첩도 남자가 연륜이 있고 위치가 높을때 가능한거지 어린 나이에 첩 가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조선의 양반사회가 그렇게 간단한게 아니다. 어린 나이에 첩 가지면 여지저기서 비판받아 만신창이 된다. 부모도 욕 뒈지게 얻어 먹으니 부모가 가만둘리 없다.
@user-vm6mg5li1r
Жыл бұрын
하루아침에 역적몰리면 노비신세 잔인하네
@user-ue7ul1of8u
Жыл бұрын
그리하여 민재는 이탈리아 공차로 가면서도 순심이를 데리고 갔다고 안카나.ㅎ
@user-zv4ph8yn7l
Жыл бұрын
ㅎㅎ 유모어 짱!
@user-ge9lc1or3u
Жыл бұрын
다 늙어서 만나면 뭐하나요.영감 뒷치닥거리 시키려고 찾았그만요. 한 번 두 번 세 번을 살려줬는데 본각시 죽고 꼬부랑 노인이 되어 찾는 심보라니.
@minjung2027
Жыл бұрын
근데 그여종은 미래에서 왔데? 어찌알고 복주머니를 줬데?
@user-pk4md4ys1j
Жыл бұрын
순심이를 띄워주지 않으면 결혼할수 없기에 민제 대감은 머릴를 써 순심이를 띄워준게 아닌가 싶습니다. 양반이 노비와 결혼하면 탄핵 받아 양반사회에서 퇴출 당합니다.
@veronicakhan701
Жыл бұрын
건강하게 살다보니 60살은 시작입니다. 해피엔딩했으면 했는데... ㅎㅎㅎ
@user-pk4md4ys1j
Жыл бұрын
15살 장원급제는 천재다.
@user-dl4ud9kl1d
2 ай бұрын
남자 목소리가 노인 목소리 이네요 좀 아닌데요
@user-ij5di1uv1b
Жыл бұрын
돈이있었는데 왜 다늙어서 해결했나
@user-pl2zm5kv8w
Жыл бұрын
😢 12:36 😢
@BostonPark_
Жыл бұрын
저의 이름이 순심이여요 민재도련님 어디계셔요
@user-pk4md4ys1j
Жыл бұрын
노비와 결혼하면 양반사회에서 비판받아 진급이 안된다 밑바닥 벼슬을 맴돌아야 한다.
@user-jj6sf8sx6i
Жыл бұрын
정여립 모반사건 3년 뒤 임진왜란이 임박한 시기인데 행복하게 살았을까?피난가고 전란을 겪을수도 아니면 평양 이북에 살았다면 전란은 피했을수도 하지만 힘들었을듯
@user-jk7gh5yi9c
Жыл бұрын
안타까운 조선시대.
@MrSinusu
Жыл бұрын
순심이가 AI네. 목소리가 딱 그래.
@mhlee98
Жыл бұрын
선조빼곤 모든게 구라창작이군요...
@user-yr4qg4qr8s
Жыл бұрын
원래 창작은 구라인데...? 구라가 아닌 창작은 구라가 아니고 다큐지. 저 정도 창작이라면 박수 받아야 하지요...
@user-leesamsung
Жыл бұрын
남자들이 60살까지 순심이를 가만히 둿다고요?
@user-jg8pp1wy4p
Жыл бұрын
장난 하나?
@user-wr6fy1he4q
Жыл бұрын
정여립 어르신은 대감이 아닌데 잘못나왔네요;;; 대감은 정2품부터인데;; 그리고 역모사건의 진실은 아직 모르죠..
@yupiao8084
Жыл бұрын
인생 말년에 만나서 뭐해?
@user-cw4is7sg1t
Жыл бұрын
다 늙어서 뭔소용
@user-wk5so2ij1l
Жыл бұрын
민제~~나쁜사람
@vesta7777
Жыл бұрын
조선시대 평균 수명이 30대 중후반이었는데 너무 돌고돌아 만났네요
@jazzyman9959
Жыл бұрын
이런 미담스러운 이야기로 우리 조상들의 문제점을 보는 눈을 가리면 안 됩니다. 우리 조상들은 전세계적으로 유일하게 같은 민족을 노예로 만들고 그 노예제를 19세기 말까지 지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관기(官妓)라는 국가(중국의 속방이었으니 국가라는 표현이 적당할지 모르겠지만...)가 운영하는 세습 성노예제도가 있었고요. 위안부 문제로 일본을 비판하지만, 일단 위안부 문제는 군인상대로 매매춘영업을 하는 업자가 매매춘 여성의 정당한 동의를 받았는가의 여부고 그런 문제점에 일본 일선 군인이나 관료가 개입한 정도에 불과하지만, 이씨조선은 아예 국가제도로서 세습 성노예제도가 존재했습니다.
@suking404
Жыл бұрын
Jazz 일본인? 그 나라는 지나가는 여자 아무나 건들 던 요바이문화가 최근까지 있었음. 뒤틀린 얘기 하시려거든 실명 공개하고 하시면 좋겠네요.
@user-ri2vp7qt7f
Жыл бұрын
조선이 그 점에선 내세울 게 없었지만, 당시의 다른 나라에서도 귀족 이하의 인간들의 삶은 비참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jazzyman9959
Жыл бұрын
@@user-ri2vp7qt7f 아니죠...프랑스에선 야경국가란 소릴 들을정도로 자유주의가 확산된 시대였습니다. 독일은 비스마르크 혁명이 있었고, 일본은 메이지 유신이 있었습니다. 차별없는 초등교육과 차별없는 관직임용이 있었고요...하지만 이씨조선은 19말까지 중국에 처녀조공을 바치고 관에서 운영하는 세습성노예인 관기는 일본이 해방과 사회복귀를 지원했습니다. 미아리 사창가가 바로 그런 해방 관기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곳입니다.
@jazzyman9959
Жыл бұрын
@@suking404 ㅄ아...요바이를 공식제도로 관에서 운영했었냐? 얼마나 무식하면 같은 면에 두고 비교할 사항인지 아닌지 구분도 못하냐?
@user-yr2wg4kp8p
Жыл бұрын
지금 현실도 그렇다. 모든 세상의 삶도 같다. 그냥 본인 밥그릇에 맞게 삶을 살면 된다. 역사는 역사고 과거일뿐이다. 잊지말고 잘들 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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