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제일 먼저발전한곳이 대구라고 들었는데 그당시 서울은 촌동네였다고 들엏습니다 지금은 서울이 최대도시가됬네요
@youngjilee5779
3 жыл бұрын
내 고향은 대구시 중구 대안동 31번지 70년도에 서울에 올라왔지요 그리운 고향 동네가 없어졌지요 잘 봤습니다
@smlee5132
Жыл бұрын
대안동? 지금 어는 동이죠?
@youngjilee5779
Жыл бұрын
@@smlee5132 대구 지도 보면 대안동은 있는것 같습니다 내가 살던곳을 대안동 천주교회에서 매입하여 교회를 확장한걸로 알고 있습니다 5살 때 부터 거의 매일 엄마 따라 성당가서 무릎꿇고 기도한 생각이 납니다 5학년 나이에 올라왔는데요 그 시절 그 동네는 일본 절간을 피난민들이 살던곳으로 바로 옆 성당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죠 어린시절 친구 정주 정옥 안나 어렴풋이 생각납니다 대구종로초등학교 다녔습니다
1분 23초무렵 [대구 팔공산 봉화사 1926년] 이라고 나오는데 '봉화사'를 '동화사(桐華寺)'로 고쳐야겠습니다. 3분 29초 무렵 [1925년 대구 한일 극장]으로 나오는데, '한일극장'이라는 이름은 그보다 한참 뒤의 이름이고, 그 전의 이름은 '키네마극장'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일성-w3g
Жыл бұрын
1910년 이전의 대구 모습을 보여주시죠. 근대화 되지 못한 대구의 모습도 보고싶군요
@kjlee4800
Жыл бұрын
우리나라에 카메라가 처음 도입된 것은 일제 강점기인 1900년대 초반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았고, 전문적인 사진작가나 기자 등 일부 인물들만이 사용하였습니다. 그 후 1960년대에 들어서야 대중적으로 보급되면서, 일반 사람들도 보다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김일성-w3g
Жыл бұрын
@@kjlee4800 아 그렇군요. 사실을 잘 알고갑니다. 감사드려요
@hyunwoohan9517
Жыл бұрын
내 모교 대구중학교. 새롭다
@Fooderatm
3 жыл бұрын
귀한자료 감사합니다.
@나그네-v6m
3 жыл бұрын
잘봤네요 서울보다. 더좋은것 같은데요
@ohart2000
3 жыл бұрын
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석홍-o5e
Жыл бұрын
대구 최초의 외화 개봉관은 자유극장이고 그분은 본이 영천인 이후근 어른 입니다
@purplerain4899
Жыл бұрын
대구사범 건물은 아직 남아있지요
@블랑누아-k9b
Жыл бұрын
100년후엔 지금을 이렇게 보겠지...
@이동희-i5p
Жыл бұрын
대구의 중심에 반월당 네거리가 있는데, 반월당은 일제시대 2층목조 건물의 민족자본 백화점이었다... 하지만 2번의 화재로 사라졌고, 지금은 이름만 남아 있다.
@김처음
11 ай бұрын
참오래만에 듣는 이름이네요 돌아가신 부모님이 가끔 말하셨는데 ^ 미나카이^
@wand1004
Жыл бұрын
33년 제일교회라고 뜨는 그건물에서 90년대까지 예배봤었어요.
@최성린-l9n
Жыл бұрын
지금도 가동하잖아요
@youngjilee5779
5 ай бұрын
68년도 당시 제일 큰 건물이 대안회관 이었던걸로 아는데요 10층 건물입니다
@user-yj7jx6xd1z
3 жыл бұрын
한일극장이 역사가 깊네요 ㄷㄷㄷ
@이은경-l8l
3 жыл бұрын
귀한사진감사합니다
@무지-b4k
3 жыл бұрын
북성로 야경 멋지네요
@이동희-i5p
Жыл бұрын
신기한건 제일교회와 계산성당은 조그만한 언덕하나 사이였다는 거!!! 지금도 있음.
@송이석-i7r
3 жыл бұрын
대한민국을 지킬 마지막 보루
@davidjacobs8558
Жыл бұрын
4:39 이 사진 왼쪽에 나오는, 비교적 큰 규모의 한옥 건축물이 무었인지 궁금하군요.
@neoper8074
3 жыл бұрын
1930년대 운치있는 가로등이야 석조건물들이야 정말 멋지군,,,,지금은 30년짜리 하수구냄새나며 물새는 모래건물들뿐,,,
@홍길동-v9l9e
3 жыл бұрын
이젠 대구 사람으로서 역사유물이 없는 대구. ㅜ 넘 안타까워요
@beringSea
Жыл бұрын
계산성당있어요
@공용-h3u
9 ай бұрын
현재 경북대병원 행정동으로 사용하는 건물과 의과대 건물, 저당시 건물 고대로임. 첨탑만 빼고. 계산성당 제일교회랑 같은 총4개가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고 사용중. 한일극장은 90년대 후반까지 극장으로 유지되었고 개인적으로 쥐라기공원과 다이하드3를 봤음.
@niro8002
3 жыл бұрын
미녀가 진짜많아요 대구는 지난번에 한번가봤는데 다들 인상도 좋고
@beringSea
Жыл бұрын
대구에 미녀 별로없어요
@성이름-g3z9o
Жыл бұрын
대구에 미녀가 많다는 얘기는 6~70년대 섬유산업이 호황기일때 섬유공장에 여공들이 많아서 그만큼 미인도 많다는 얘기가 있었죠. 즉, 인구비율이 20대 여성이 엄청 많아서 미인이 많다는 얘기가 퍼진거죠.
@승패판독기
Жыл бұрын
@@beringSea 웃자고 한 이야기인데 재미가 개줳도 없는걸?
@stevenrhee8398
Жыл бұрын
제중원은 대구 동산의료원의 전신이고 현재 계명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이죠.
@권명수-r5i
Жыл бұрын
유익한 정보 고맙습니다
@그림자-o5x
3 жыл бұрын
늘 조은 영상 감사이 잘 보고있어요
@민재김-r8y
3 жыл бұрын
5분50초 부터 나오는 사진은 50년대 사진입니다.현 수성구가 아니라 계산성당 건너편 청라언덕에서 찍은사진입니다..위치상으론 중구입니다
@이승렬-h2h
3 жыл бұрын
맞습니다. 수성구는 당시 대부분 들판이었죠. 이상화시인의 시 의 바로 그 들판.
@김영희-r3r
3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Kei-man
3 жыл бұрын
당시 서울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듯 ^^
@heerong.12
2 жыл бұрын
제중원이? 동산병원으로 바꼈지만
@smk800
3 жыл бұрын
세월의 무성함이 느껴지는구나
@윤석정-y1u
3 жыл бұрын
우리나라 3대시장 대구 강경 개성
@Kim-ig3qq
3 жыл бұрын
신기한게 공공건물 학교 성당 교회 등 주요건물 대부분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다는 점...일본늠들이 대단하다는 생각..
@michaels3520
3 жыл бұрын
콘크리트건물도 수명을 불과 한 50년 정도로 잡는 것 같던데, 일본인들이 지은 토목,건축물들은 보통 100년 이상을 버티는 게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쪽으로는 일가견이 있는 듯...
@하늘-m1j
3 жыл бұрын
수십년엔.서울에서 가서옷사입고했네 옷감도 신발도 여기가 감이좋아서 옷도 잘입고했네요
@4ever2024
3 жыл бұрын
사촌동생 할아버지가 북성로 점포를 몇개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 이해가 되네
@user-sl3vo2qf8k
3 жыл бұрын
식민지를 거쳤던 나라들의 특징중 하나가 우체국이 크고 화려합니다. 이유는 당시의 우편 .물류, 전보 등 모든 물류의 흐름과 정보를 알아낼수 있기때문이죠. 단순 우편업무가 아닌 일종의 정보기관 역활을 했기때문입니다. 식민지의 정보와 흐름을 읽어서 그들을 통제 하고 크고 웅장하게 지어서 스스로 자신들이 열등함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죠
@삐용삐용-s8p
3 жыл бұрын
근거가 뭐죠?
@짱-g1c
3 жыл бұрын
옛건물 그대로 남아있었다면 전세계명소가 되었을것
@stephen2717
3 жыл бұрын
70년대 초반까지 상당수 남아있었는데.. 도시개발이 우선시된 행정이 아쉽기는하지요.
@행복-y1z1f
Жыл бұрын
대구야 이젠 뻘근것들 치우고 바로 살자
@몰아치기-p8n
3 жыл бұрын
대구는 서울 다음 대구 개성 한국 2대 도시였고 경제소득으로는 전국에서 가장 부자가 많은 도시였다
@davsaragx2
3 жыл бұрын
1분 26초: 대구제일교회
@jeonyongwoan
3 жыл бұрын
제 어릴적 기억속에 보았던 건물들이 몇개씩 보이니 기분이 이상하네요...뭔가 타임머신을 탄것 같습니다
@김용호-t2x
3 жыл бұрын
당시대구는제이도시.주요관공서대구에있서지요.
@quixc
3 жыл бұрын
일제시대 당시 큰 도시는 경성-부산-평양-대구로 대략 3~4위정도 됩니다
@Daegu_hyuni8787
Жыл бұрын
@@quixc 서울.평양.대구 순이였죠. 부산은 동래부에서 부산으로 컸고 대구는 대구부가 있었어요. 그 전에 경상 감영 이것만 봐도 부산보다 큰 도시입니다. 영남의 중심 도시가 대구였죠! 부산 사람들은 항상 서울 다음 급이 부산이라고 우김😅ㅋㅋㅋㅋ
@Daegu_hyuni8787
Жыл бұрын
@@quixc 홍준표 대구시장님도 인텨뷰 하실 때마다 자주 언급하시는 멘트가 있는데 서울.평양.대구 순으로 큰 도시였다고 말하시거든요. 부산은 작은 어촌이였고 피난민만 아니였으면 일본에서 밀어주지도 않았겠죠. 또 하나 부산을 밀어준건 바다 때문. 그 당시에 어른들이 경북대가 서울 스카이 다음 급이였다고 말씀하심.
@Daegu_hyuni8787
Жыл бұрын
@@quixc 그리고 부산은 지형적으로도 대도시가 될 수 없는 환경인데 대구보다 밀어준게 싫긴 하네요. 역사공부 좀만 해보면 대구가 더 큰 도시인데. 그리고 해방 후에도 부산이 인구가 많았지만 모든 행정기관 중심은 대구였지요. 그래서 부산에서 대구로 와서 많이 배워갔어요. 법원.교육기관 등. ㅡㅡㅡㅡㅡㅡㅡㅡ 다시 한번 서울ㅡ평양ㅡ대구 순이 맞고 서울 다음 대구가 한국의 2대 도시였어요.😊 우기지 마세요!
@user-00766
3 жыл бұрын
대구시청과 대구부청 뭐가 다르죠?
@ohart2000
3 жыл бұрын
일제 시대 일본놈들이 부산 부 대구 부 라고 시 이름을 부로 호칭했습니다 따라서 한국이 정한 시 라고 말하지 않고 일제시대는 대구 부라고 호칭했으며 시청이 아닌 부청이라 했읍니다 감사
@quixc
3 жыл бұрын
도심지는 "부"라고 호칭했고 주변 지방은'군'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시장을 '부윤'이라고 부르고 군에는 '군수'라고 했습니다. 단지 호칭만 부윤,군수로 다를뿐 계급은 똑같았습니다 이렇게 한 이유는 1910년 한일합방 후 조선은 일본의 영토가 되었으므로 일본과 똑같은 행정체계를 적용한겁니다.
@davidjacobs8558
Жыл бұрын
조선시대엔 ~시 라는 칭호를 쓰지 않았죠. 서울도, 한성부 라고 불렀드시, ~부 라고 불렀죠. 서울시장 은 한성부윤 이라고 불렀고. 일제가 만들어낸게 아니죠.
@trinity1203
Жыл бұрын
@@davidjacobs8558 반일종족주의가 너무 심해서 큰일입니다. 일본이라면 무조건 쌍심지를 켜고 반일한다고 난리니.. 좀 객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봐야겠죠
@davidjacobs8558
Жыл бұрын
@@trinity1203 20년전쯤 반일 선동이 하늘을 찌를때, 서울의 4대문을 남대문, 동대문, 서대문 식으로 부른게 일본놈들이 성문들을 비하하기 위해서 그랬다고 우기던 시절이 있었죠. 조선왕조실록에도 남대문, 동대문, 서대문 등등 으로 버젓이 적혀있는데도 불과하고 그런 반일 선동 친일파 몰이가 먹혀들어갔죠.
@남이성구
3 жыл бұрын
대대분 일본이 지은 건물이구나~
@DiGIMon74
Жыл бұрын
일제 들어와서 그런지 일본풍 모습이 보이네
@성균-c1u
3 жыл бұрын
내가 외국에서 태어 났지만 대구는 내 부모와 다를 빠 없음
@하늘-m1j
3 жыл бұрын
청라 언덕이 모델인것 여고라고 무순노래라고하던데
@영기이-q5i
Жыл бұрын
동무생각
@추풍령-x7g
Жыл бұрын
이은상 작사, 박태준 작곡 동무생각(여학생이 신명:SM 여고 학생추측...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위에 백합.....
@하늘-m1j
3 жыл бұрын
동성로가 여기서 나와 그가동성로인
@윤석정-y1u
3 жыл бұрын
대구는 625때피해없는도시
@성균-c1u
3 жыл бұрын
유일하게 재난 피해 없는 도시 ㄹㅇ
@강초형님
3 жыл бұрын
대구 팔공산 동화사임 봉화사가 아녀 .응
@ohart2000
3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서영희-k4t
3 жыл бұрын
일본인들이 기차역사.관청 둥의 건물을 수준높게 참 잘 지었네요.. 부산의 기차역 건믈도 일본인들이 도쿄역사.경성역사와 똑같이 지었는데 해방후 화재로 사라졌다는 말을 들었어요. 식민지의 건축물도 성의를 다해 지은 일본인들. 대단합니다.
@몰랑-h1m
3 жыл бұрын
본인들이 사니까 성심성의껏 지은거죠 조선인들을 위해 지었을까요
@beringSea
Жыл бұрын
@@몰랑-h1m 미개한 조선에서 마니 발전됬는건 맞죠
@삐용삐용-s8p
3 жыл бұрын
식민지 근대화의 생생한 사진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jalopy2005
3 жыл бұрын
일제강압기 ? 그렇죠. 일제의 강압이 없었다면 조선 스스로의 힘으로는 천년이 걸려도 조선의 저러한 문명화 근대화 법치국가 아사자 문맹자 퇴치 문화생활등은 불가능했겠죠. 일제의 조선 강점강압에 대해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whistleblower4570
3 жыл бұрын
미개한 나라가 일본때문에 엄청나게 변했죠.
@youngjilee5779
3 жыл бұрын
그건 틀린 말은 아니에요 맞아요 우리나라가 조선시대무터 문호를 개방하고 외국것을 받아들이고 무역왕래가 있었다면 일본을 앞질렀을 텐데요 어느 누구보다 좋은 손재주에 인내 단결심...
@jaedahlkwon9345
3 жыл бұрын
세상어느나라 침략국이 전쟁도안하고 나라를 꿀꺽잡숫고 식민지에 뭐하러 저렇게 많은 공립학교를 세우고 식민지 2등 시민을 본국사관학교에 입학시켜 장교도 하게하고 선생도 하게하는 이상한 침략국.....
@whistleblower4570
3 жыл бұрын
@@jaedahlkwon9345 이상할 것 하나도 없습니다. 그 당시는 유럽의 여러나라나 미국이 아프리카,아시아 남미의 국가들을 먹어 동화시킬 때 입니다. 먹히는 나라가 병신 짓했기 때문이죠.
@user-dr1vy9cv4p
3 жыл бұрын
그런논리라면? 미국이 아프리카 노예를 먹여주고 입혀주고 영어가르쳐서 서양인만들었다는논리! 흑인노예를 최선진국국민들었다는 괴변! 친일매국노 후손들의 괴변에 항복!
@michaelyi2532
3 жыл бұрын
한국은 일본이 와서, 괜히 성남시장처럼 이리저리 이권에 휘둘려 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필요한 걸 짓고 해서 근대화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 오히려 ktx도 지역주의로 좀 돌아가기도 하고 하는게....
@stillliving512
3 жыл бұрын
팔공산 봉화사ㅋ 듣도보도 못한 절이네.. 대구사진인건 우찌알았데.. 사진은 참 귀한건데.. 잘모르는자가 글을 달았네.. 안타깝다....
@ohart2000
3 жыл бұрын
처음 안내에 동화사로 정정했음
@김지공-e5j
3 жыл бұрын
오타정도는 알아먹는 센스 .. 진짜 몰라서 저러는지 참 ㅉㅉㅉ 다음카카오 서식중인 대구경북씹으로 온 대깨종자 아니지 ??
@태수안-n1t
9 ай бұрын
4분30초 남산초등 반갑구먼 37회졸업 61년생
@이홍기-e6i
3 жыл бұрын
미개한 조선을 한일합병하면서 인간답게 살수있게 만든 일본의 정성은 잊지 맙시다.
@몰랑-h1m
3 жыл бұрын
역사인식 보소
@이홍기-e6i
3 жыл бұрын
@@몰랑-h1m 모르면 열심히 공부 합시다.
@몰랑-h1m
3 жыл бұрын
@@이홍기-e6i 제발좀요🙏 머리 텅텅거리는 소리 그만 내고 본인부터 공부합시다
@trinity1203
Жыл бұрын
@@몰랑-h1m 머리 텅텅은 당신이야... 공부 좀 하고 살어. 반일종족주의에 빠져서 정신을 못차리네
@김중배-q3i
3 жыл бұрын
그나마 일본 때문에~~~~
@user-dr1vy9cv4p
3 жыл бұрын
스페인침략에 남미제국이 문명국 되고...김일성이 있었기에 북한이 평등사회인가? ㅁㅊㄴ
@quixc
3 жыл бұрын
@@user-dr1vy9cv4p 일본이 조선을 먹었기 때문에 조선이 개화되고 문명화 된건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게 고맙고 밉고 하는거랑은 다른 문제입니다.
@김중배-q3i
3 жыл бұрын
@@quixc 용서와 화해가 있어기에 국교가 성사되여 지금께 그런데로 잘지내 왔는데 정치 외교도 못하는 우몽들이 나라 꼬라지 하수로 만들어 가니한심하네요///
@quixc
3 жыл бұрын
@@김중배-q3i 외교를 못해서가 아니라 한미일 삼각동맹을 깨기 위한 북한의 뜻에 협조하기 때문입니다. 즉 외교적 판단미스가 아닌 의도적이라는데에 심각성이 더합니다. 여기에 휘둘린 많은 국민들이 반일을 외치며 친일파 토착왜구 라는 말로 같은 국민들에게 서슴치 않고 프레임 씌우며 증오하며 나라가 독선적인 파시즘이 만연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것이 종북주의와 결합된 반일역사학계 학자들의 수십년에 걸친 노력의 결과죠. 즉. 국민세뇌에 성공합니다. 그래서 일제시대에 조선이 발전했다. 라는 역사적 팩트에도 이것을 인정하지못하고 부들부들 떨면서 너 친일파지 하면서 부정하는겁니다
@SW_jjangjjang
3 жыл бұрын
일본보다 조선 양반이 더 나빴는데..맨날 일본나쁘다그러는게 이해를 못해겠네요..소수의 양반만 살기 좋았지 대부분의 상놈 노비들은 죽지 못해 사는 삶이었죠.. 솔직히 제가 조선의 상놈이었다면 친일을 햌ㅅ겠죠?? 조선은 진짜 무능과 부패 백성은 나몰라라 아주 썩어빠진 나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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