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역사라서 매우 미화해서 표현한 부분이 적지 않으나.. 조선이 망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잘 보여주는 사건인 듯..
@꽁꽁-v8f
2 жыл бұрын
배우신 분 ㅇㅈ합니다
@kj3244
2 жыл бұрын
당시 조선의 병사들이 고맙고 경이로운 마음이 드는 것과 별개로 저걸 이겼다고 표현하는 것은 명백한 정신승리 맞습니다. 최태성씨는 그걸 정신승리라고 하는 것은 당시 군인들에게 실례라고 하지만 그런 식으로 정신승리 하는 게 더 실례 아닐까요?
@godt1239
2 жыл бұрын
미국의 조선 무역 실패의 댓가는 조선군이 독박 쓴거같은 씁쓸한 느낌이 ㅠㅠ
@P_mang
2 жыл бұрын
문제는 그 패배에서 교훈을 못 뽑아낸거지
@godt1239
11 ай бұрын
그리고 36년간의 강제 식민지 ㅠㅠ
@이정찬-y4h
5 ай бұрын
정신승리 일부역사 공부한이들이 저런정신승리다 죽은 선열들도 저런승리일까 꼭 다시는 저런
@P_mang
2 жыл бұрын
저때 개항 당했어야 했는데
@tonikwater6980
2 жыл бұрын
부대기를 빼앗기면 전투로 다시 찾아오는 거 말고는 명예를 되찾았다고 할수 없죠. 그리고 이런 전쟁사를 연구하는 프로에서 우리나라였다고 특별취급을 하는것은 공정하지 않고 배울점을 흩어버리는 거라고 생각되네요.
@ququdas
2 жыл бұрын
우리 역사인데 우리 미디어에서 비교적 자세히 안다뤘던 2차례 양요에 대해 심도있는 분석 감사히 잘 봤습니다. 역사는 후대에 평가는 할 수 있겠지만 시대적 상황을 고려치 않고 지금의 눈으로 해석하고 평가하는 우를 범하진 맙시다
@gamalbedel9000
2 жыл бұрын
근데 애초에 역사가 그 나라의 시선으로 기록된 자료라서 조금 서로 달름
@SIMON-mk2iu
2 жыл бұрын
그쵸 개항안해서 일제식민지 된건 아니라고 봐요 약간 영향은 있겠지만
@이희진-n7r
2 жыл бұрын
차라리 저 때 개항을 했으면 어땠을까
@dennythedavinchi3832
2 жыл бұрын
영국이 누구편들어줬을까가 핵심이었겠죠. 그들에게 러시아 남하를 막기위해 조선과 일본 중 힘을 한쪽으로 밀어줘야하는데 일본이 아무래도 인구가 많고 메이지유신에 의한 체제개혁이 된 반면 조선은 이씨왕조를 뒤엎는 혁명도 없었을거고 그러니 더 신선한 일본에게 좋은 군함선 주고 조선에는 어쩔수없이 상선 정도 파는 선에서 끝났을 겁니다.
@evinK-e1g
2 жыл бұрын
잘못하면 눈뜨고 코베이고 입베이고 귀베이고 정신 차려보니 빚더미에 앉기 쉽상입니다 근대화 한다고 개항했다가 말아먹은 나라가 한 둘도 아닌데...
@WeeklyMuskNews
2 жыл бұрын
개항이 다가 아님 결국 우리도 일본에의해서 개항했음 1876년에..그리고 나라 팔리는 1910년까지 그 텀이 무려 34년임. 일본은? 개항 그리고 메이지유신 이후 근대화를 강화도조약까지 기준으로하면 텀이 25년이라는거임. 결국 조선과 일본의 차이는 기득권이든 누구든 스스로 나라를 개혁할 의지가 있냐 없냐의 차이가 제일 큼. 물론 일본의 개혁은 조슈와 사쓰마 기득권이 주가되어 이룬거지만 아무튼 그들은 싹 다 바꿨음 근데 조선은? 양반하고 왕 왕비가 대체 개항이후 나라 공식적으로 망할때까지 34년동안 뭐했음?
@user-hunwoo
Жыл бұрын
어차피 저때는 시기상 이미늦음 조선체제로는 레짐체인지부터 글러먹었고.조체서용으로 성리학 사상에 서양기술 받아들였으면 청나라 꼴날테고.이미 신미양요때 일본은 정부 정치인들 절반이 서양에 유학다녀 왔음.조선왕실 영국.일본마냥 꼭두각시 인형으로 만들고 근대화할려면 대충 기존 기득권 유교꼰대들 다쓸어버리고 양반 신분제 없에고.근대적으로 국민보통교육.도시개발.화폐개혁.전신.철도.유학생파견등 인력양성.정부조직 개편.군현대화.근대기업설립 등등 사회적으로 완전히 탈바꿈해야 하는데.당시 재정워기라 툭하면 민란나고 대원군은 서양혐오론자고.당시 조선은 걍 답이없었음.
@jinsoojun1298
2 жыл бұрын
정신승리 이제 고만하고 전쟁에서 이기는 나라가 되자
@유혼을
12 күн бұрын
500년전 임진왜란에서 해전 한번 이긴거 가지고 사골까지 우려먹는 나라입니다 ㅋㅋ 전쟁에서는 패배했는데 말입니다..
@아두은인
2 жыл бұрын
일본에 의해 개항되기 보다는 미국에 의해 개항되는 것이 현명한 일이나.,,결국 돌고돌아서 결국 이 길로 들어온것
@Luminary03
2 жыл бұрын
사람의 목숨이 오가고 생명의 위협에서 오는 공포심은 말로 글로 표현 못 합니다. 저 당시 처음 보는 커다란 배에서 그 엄청난 포격과 내 총 보다 두 배는 더 긴 상대방 총의 사거리를 뻔히 보면서 당시 싸우셨던 분들이 과연 '아 쟤들과 싸우면 난 죽겠구나' 이 정도 인지도 못 하셨을까요? 솔직히 저였다면 배에서 포 몇 방 쏘고 주변에 동료가 몇 명 죽어나가는 거 봤으면 바로 튀었을 겁니다. 그런데 저 분들은 그 공포에 맞서 싸웠죠.. 저는 이 점을 정말 대단히 높게 평가하고 존경합니다.
@dwill318
2 жыл бұрын
일본이랑이나 그렇게 싸우지.
@춘원이광수-y9s
2 жыл бұрын
중국군이 쳐들어오면 오일만에 항복하겠지 ㅋㅋ
@sww929
2 жыл бұрын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이 병력 갈아넣고 자결한 건 멍청한 거라고 낄낄대더니 조선군이 똑같은 짓한 건 숭고한 거고 감사해야 한다? 개역겹네 저 당시에 똥고집 부린 덕분에 그 다음 세대가 싸워볼 의지조차 가져보지 못하고 나라 내줬는데
@rnjscks
3 ай бұрын
일본과의 헙병이후 국민들 삶은 더 윤택해진 당시현실....근대화가 이뤄지고 국가가 발전하고 교육이란걸 처음 받아본 국민들....얼마나 새세상 이었을까...
@최민수-r9b
Ай бұрын
남에 나라 쳐들어가려고 병력 갈아 넣는 거랑 자기 나라 지키려는 것과는 다르지. 그리고 조선 지도층이 븅신인거지 지금 북한처럼ㅋㅋ 북한이나 조선이나 자기체재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군대이고 정권이었으니깐 백성들은 자기 나라 자기 가족 지키려고 싸운건데 숭고하고 감사한 것 맞잖아. 니가 더 역겨운걸? 니가 저 당시 태어났으면 청국에 사대 오지게 박았을거야.
@전두광장군
2 жыл бұрын
정신승리오지네 그냥 개털린거지 무슨... 350명 갈아넣고 3명 다이시킨게 참... 것도 2명은 사고라며?ㅋㅋㅋ 저허접군대에게 죽은1명마저없었으면 이건 쪽팔려서라도 교과서에 안싣을듯..
@유혼을
7 ай бұрын
인정하고 인정박습니다
@Limgyuwung1
2 жыл бұрын
200년은 차이나는 기술 차이 말도 안되는 화력차이에 총알 받이 된 병사들만 불쌍하지 뭐
@spinehong
2 жыл бұрын
미국과의 교역이라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친 전투.. 지킬 가치가 없는 양반들의 기득권을 지켜주기 위해 철저히 희생당한 양민들...
@춘원이광수-y9s
2 жыл бұрын
일본이 그래서 근대화 시켜주었습니다
@SIMON-mk2iu
2 жыл бұрын
@@춘원이광수-y9s 차라리 안왔으면 동학동민군이 양반부터 왕까지 다 죽였을텐데
@angelocho2499
2 жыл бұрын
핵을 뺀 재래식 무기에서 우리가 북한을 앞선다고는 하지만 어쩌면 김정은이를 위해 목숨 내놓을 정도로 세뇌가 된 군인이 대다수일 북한군을 얕잡아 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BeroBeroBeroNaro
2 жыл бұрын
신미양요 당시의 무관들과 휘하 군졸들의 기개와 정신을 높이는게 민족적 측면에서 본다면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심하게 이야기하자면, 세계대전기의 일본처럼 선제 공격만 안했을 뿐 사이판과 이오지마 전투 또는 전 국민의 옥쇄 처럼 군과 국민 개개인의 희생을 통한 기득권의 체제 유지 목적 이외에 일반 시민에게 무슨 득이 있나 싶습니다. 물론 당시 조선정부의 세계정세에 대한 무지함과 상하를 구분치 않고 국민 모두가 서구에 대한 두려움이 있긴 했겠지만, 일본의 사례와 같이 개항 후 학살이나 큰약탈을 당하기라도 했는가? 라며 생각하면 개개인의 희생이 아쉽기만 합니다. 군생활 성실히 마치고, 예비군 가는 입장에서는 내가 지킬 유무형의 가치보다 아직 제 목숨이 더 소중하다고 느낍니다.
@soonrongyom328
2 жыл бұрын
일본만 남북전쟁의 수혜를 입은 특이사례 입니다 그리고 다시 곰곰히 본인 글을 읽어보세요 주권포기를 주장하고 있으십니다
나라를 지키기보다 자기목숨이 우선이라고 적으셨네요... 뉘앙스가 자기목숨이라고 적고 자신의 이익이라고 읽혀지니까 주권포기라고 의미하겠죠.
@jiwonmoon9083
Жыл бұрын
남박사님 혼자 하는게 수준이나 퀄이 200배 높을텐대
@kimiso855
2 жыл бұрын
조선이 개화할 절호의 찬스를 놓친 사건들이죠.
@광해군-u2h
Жыл бұрын
언제나 잘보고 있습니다
@이동연-c6d
2 жыл бұрын
근데 병인양요에 대해서는 조금 아쉬웠던 역사가 있는데 바로 흥선대원군이 병인양요의 윈인인 병인박해를 벌이기 전에 프랑스와 교섭해서 서양과 손을 잡기 직전까지 갔었는데 당시 흥선대원군은 러시아의 남진을 막기위해 프랑스 신부들과 교섭해서 프랑스에게 기독교(천주교) 포교를 승인을 하는 조건으로 프랑스와 연결을 주선해서 러시아의 남진을 저지하려고 했죠. 그러나 당시 여흥민씨를 왕비로 간택한것에 불만을 품은 안동김씨 & 풍양조씨 세력이 태평천국난을 빌미로 대원군을 압박했고 거기다 러시아의 남진도 끝났고 대왕대비도 합세하여 그를 압박하니 결국 대원군도 자신의 정치적인 입지를 지키려고 결국 병인박해를 벌이고 말았죠. 만약 러시아가 조선까지 남진을 벌이거나 흥선대원군이 불만을 가진 안동김씨나 풍안조씨를 회유를 위해 두 가문 중 한 사람을 후궁으로 맞아들였다면 역사는 달라졌을겁니다. 참 아쉽네요.ㅜㅜ ㅠㅠ
@북경팬더
2 жыл бұрын
조선이 승리한건 맞는데 져도 되는 전투를 따박따박 승리하고..반면에 일본은 패배 인정하고 통상요구 받아들임. 결국엔 누가 승리한건지…
@rlagusghek68
2 жыл бұрын
남보람 박사님 자주 보고싶습니다 임용한 박사님과 호흡도 궁금합니다
@chanokim6470
2 жыл бұрын
근데 저렇게 목숨걸고 개항막았으면 뭐하나... 이미 조선은 개뫅장이었는데 그냥 시대에 내몰린사람들의 개죽음으로밖에안보임
@soonchangkewon2282
2 жыл бұрын
흥미진진하게 보았습니다
@이동연-c6d
2 жыл бұрын
병인양요때 프랑스가 야포까지 동원해서 싹쓸이 했었어야 했는데 아쉽네요… ㅜㅜ ㅠㅠ
@daug_jang
2 жыл бұрын
39:39 수기(帥旗)는 장수, 혹은 원수를 뜻하는 수(帥)인데 미국인들은 마치 BT와 비슷하여 BT flag라고 불렀습니다.
@77keiryo
2 жыл бұрын
일본과 다르게 쉽게 개항당하는 나라가 아니라고요?? 일본은 쇄국을 해도 부분적으로 서구와 교역을 유지해 서구세력의 힘을 알았기에 바로 꼬리내린거고 조선은 세상돌아가는걸 몰라서 그런건데... 꿈보다 해몽이 좋구먼...
@godt1239
2 жыл бұрын
허상뿐인 해몽의 댓가는 36년 식민지
@rnjscks
3 ай бұрын
식민사관을 욕하며 민족사관을 외치는 ....식민지 당할만했고 망할만했고 지금도 망할만 함.....
@muker9314
2 жыл бұрын
상처뿐인 승리군요
@유정덕-u4x
2 жыл бұрын
이 사건과 비견되는 일이 바로 1863년에 있었던 영국과 사츠마의 전투가 있져... 이건 일본이 전쟁한게 아니라 일개번인 사츠마가 전쟁을 일으킨건데? 영국의 최신식 철갑증기선 7천이 쳐들어왔는데 오히려 일본은 5명 사상 영국군은 13명 사망 증기선 1척 대파 2척 중파 당했던 사츠마가 이긴 전투였습니다. 걍 일본과 조선의 차이는 임진왜란 이후 꾸준히 벌어졌다고 봐야져
@user-hunwoo
Жыл бұрын
뭐 당시 싸스마 군은 일본내에서도 강했으니까요.
@pym1024
11 ай бұрын
와~ 영국 증기선이 타격을 입을 정도면 일본은 서양의 기술들을 꽤나 보유했겠네요
@giro3204
2 жыл бұрын
이런 회차에 임박사님이 없는게 너무 아쉽네요 왜 안불렀는지 알것 같기도 하고
@뉴인소프트와이드펜
2 жыл бұрын
호국영령들에게 묵념합니다~ㅠㅠ
@피기통판기특이송현선
2 жыл бұрын
오랜만에 보니까 재밌네요
@rchacha100
2 жыл бұрын
병인양요로 프랑스인들이 만든 양인에 대한 이미지가 조선 조정의 태도를 굳힌 치명타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spinehong
2 жыл бұрын
미군은 구한말 썩어빠진 양반 독재 국가의 상민과 노비들에겐 해방군이나 다를 바 없는데, 병사들이 자기 목숨을 버려 스스로 해방의 기회를 날려버린 안타까운 죽음. 일본은 페리제독에게 강제 개항당한 것이 근대 국가 발전의 큰 계기가 되었지.
@soonrongyom328
2 жыл бұрын
지방 토호를 그대로 놔둬 편하게 지배한 필리핀 , 친미정권을 비호하다 공산화된 쿠바 각 두 미국 식민지를 보아 음… 별로 발전에 도움은 안됬을것 같습니다
@caitlyn2501
2 жыл бұрын
볼트액션으로 무장한 미국vs 삼지창과 화승총에 활로 무장한 조선군 뻔한결과지
@wolfman33333
2 жыл бұрын
저걸 치열하다고 말할수 있냐 그냥 학살이지
@pym1024
11 ай бұрын
치열보다는 처절에 가깝죠
@jinsoojun1298
2 жыл бұрын
흥선대원군이 당시 조선군을 죽게 만든거지 쇄국정책으로 나라를 근대화 못사키고 지 가족들만 배불리 쳐먹길 바랬다
@user-zx7vs5rt4d
2 жыл бұрын
이러고 윤요호사건때도 똑같은 무기로 개기다가 또 뚜드러 맞음 진짜 정신승리의 끝판왕 국가 조선 징비록 신경도 안쓸때부터 답 없는 국가였음
@godt1239
2 жыл бұрын
R.I.P ☠조선☠ ㅠㅠ
@soonrongyom328
2 жыл бұрын
왜냐면 병인양요 신미양요 연타를 맞은 농업국가 조선 경제력의 한계입니다. 지금의 공업 IT하이브리드 한국이 아닙니다
@이모텝-b2j
4 ай бұрын
이번 편은 국내, 특히 조선 전쟁사를 다루는데 임용한 박사가 왜 안나왔나 했는데 보다보니 이유를 알겠네 ㅋㅋ
근시안적이라도 전략은 있었고 어디까지나 조선 기준이지만 철저히 준비한 결과가 저것입니다. 진짜 전략도 준비도 없는 게 뭔지 보고 싶으면 몇년 후 민씨 정권때 일어난 운요호 사건을 보면 됩니다.
@dfg6923
2 жыл бұрын
진거나 다름 없는데 무슨 정신승리도 아니고 일본애들이랑 다를게 무엇인지 이번 회는 아니네요 특히 박사라는 타이틀 달고 그런이야기 하실 수 있는지...
@김주호
Жыл бұрын
그렇게 사람 갈아 넣어서 싸우고 결국 나라는 망햇지. 차나리 개항하고 근해화에 힘썼으면 어땠을까. 대원군 하나의 고집뿐이였지. 忠보다 하찬은 게 없다.
@고구려-x1h
2 жыл бұрын
물론 외적의 침공에 맞서 조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바쳐 맞서싸운 그 정신 자체를 폄하하거나 하면 안되겠죠. 하지만 문제는 더이상 한중일 뿐만 아니라 약육강식의 세계화의 문이 열리는 시기 우리가 양이를 이기고 계속 이겨낼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에 결과적으로 봤을 때 우리의 생존을 위한 선택을 해야 할 때 잘못된 외교를 하게 되는 시발점이 됬다는 거죠. 한중일 세나라가 다 처음엔 쇄국정책을 펼쳐 서양세력과 충돌을 일으켰지만 서구열강과 한바탕 부딪힌 뒤 세나라가 앞으로 가야할 길에 대한 선택과 그에 따른 결과가 달랐다는걸 우린 알고 있죠. 조선은 병인년과 신미년에 프랑스와 미국이란 두 대표적인 서구열강의 충돌을 겪고 일시적인 것이 아닌 근본적으로 양이들을 이길 수 있다는 착각, 정신승리에 빠져 척화비를 세우며 쇄국정책을 밀고나갔다는게 문제죠.
@사과주세요
2 жыл бұрын
맞서는건 좋은데 서구 기술좀 배우지
@evinK-e1g
2 жыл бұрын
많이 배웠음 근데 처음부터 출발이 늦었고 추가로 외세의 군사적 개입을 허락해서 실패한거지...
@wwewewaeawdasdw
2 жыл бұрын
좀더 객관적으로 설명해줬으면 ... ..한국인착해요 ㅡ..이거뭡니까
@유혼을
7 ай бұрын
인정하고 인정박습니다
@heyjude5187
2 жыл бұрын
한국인 착해요 에서 걸렀다. 소설쓰던 짓거리가 몸에 익어 거짓말 왜곡이 자동이네.
@H푸른하늘-k4s
2 жыл бұрын
신미양요.그때 미국을 통해서 개항을 했더라면.서양 입장에서 조선은 ?아쉬운 점이 많네.우물안의 개구리 되지맙시다.
@이민복-s4f
2 жыл бұрын
전투에서 지고 전쟁에서 이겼다 ㅡ 이보다 더 크게 보면 일본처럼 개방이 되어서 더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노친 것. 일본은 알아서 기어서 전투에서는 지고 전략에서는 이겼다고 볼 수있음.
@dennythedavinchi3832
2 жыл бұрын
이런 얘기해서 뭣하지만 개방을해서 고종께서 암살 안되고 식민지 겪지 않았다면 정도의 차이야 있겠지만 태국처럼 왕도 있었을거고 기존의 지배체제 무너졌을 가능성은 없었다봐야합니다. 우리가 그런 식민지란 고생도 있었으니까 또다른 시작을 할 기회도 얻어진거고요.
@김동규-x8p
2 жыл бұрын
@@dennythedavinchi3832 위안부 할머니들이 불쌍하지 않냐
@파줏한량
2 жыл бұрын
당시 우리 대포는 각도 조절도 안되는 포였고 삼베와 목화로 만든 방탄복이 불타면서 빨리 죽여 달라고 까지 했다는데 임란과 병자호란을 겪고도 준비안한 놈들이 문제죠
@juyunyoon4107
2 жыл бұрын
지난 일이라 아무 소용 없겠지만 미국의 전락적 목표가 이루어 져서 개항을 하고 몇년이라도 빨리 근대화의 길에 들어 섰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봅니다. 물론 성리학 꼰대들한테 어림도 없는 얘기겠지만..
@power123557
2 жыл бұрын
인삼로 깍두기를 만들어 먹는데 ??? 말참잘만드시네
@coreantiger5210
Жыл бұрын
인삼으로 깍두기 🤣🤣👍🏻
@diemcarpe8592
2 жыл бұрын
싸울의지가 충문하였으나 , 싸울 무기가 미천한 것을.... 이 때 이미 조선은 망했다
@호루스호구
2 жыл бұрын
큰별쌤과 임용한 박사님과의 만남을 기다려봅니다
@전도사-j6x
2 жыл бұрын
이때 미국이 조선에서 제일 사가고 싶어하거나, 비싼 무역품목은 뭐였을까
@유혼을
7 ай бұрын
도자기 말고 없을듯;
@김동규-x8p
2 жыл бұрын
감사는 하는데 개항을 했으면 어이없이 조선에서 청일전쟁은 안일어났일수도 있었는데 아쉽긴 하네요
@acaklj
2 жыл бұрын
당시 싸운 조선군들에겐 미안하지만 당시 조선 조정과 사대부들 꼬라지를 보면 아무리봐도 정신승리다.
@김동규-x8p
2 жыл бұрын
개항하고 일본이 강해지고 있는데 조선의 양반들은 놀고 있었지
@어어이-d2l
2 жыл бұрын
일제 반자이 돌격이랑 다를게 없음
@soonrongyom328
2 жыл бұрын
다르지요 부족한 무기의 한계를 알고 수성전을 치른거랑 부족한 무기를 정신력으로 매꾸려 총검을 들고 몸을 기관총 앞에 노출시킨게 같다고요 ?
@어어이-d2l
2 жыл бұрын
@@soonrongyom328 한계를 알았는데 동학 때 게틀링 앞으로 또 뛰어들어가나요 한계는 한일병합때나 알게된거 아닐까요?
@soonrongyom328
2 жыл бұрын
@@어어이-d2l 동학도가 조선군이었나요? 그리고 그 게를링 조선군 것이고 조선군이 쏜겁니다. 어어이님이 원하는 근대화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어어이-d2l
2 жыл бұрын
@@soonrongyom328 전투 지휘는 일본군이 했죠 그전 관군이 동학과 전투할때는 게틀링 기관총에 야포에 소총가지고 싸웠는데도 관군은 동학군한테도 발렸구요
@soonrongyom328
2 жыл бұрын
@@어어이-d2l 논점 이탈하시는데 일제 반자이 돌격 안했다는데 일본군 지휘를 받았으니 문제다? 이런말을 하고 싶은건가요 국가 시스템이 늙어버렸고 일본에 휘둘리던것도 맞으나 일종의 조일 연합군인데 어느쪽이던 통합지휘는 당연해 보입니다. 지금의 한미연합사 처럼요 또한 당시에는 요즘처럼 동학에 대한 평이 후하지 않았습니다. 장성 황룡촌 전투에서의 관군의 패전을 말하는것이라면 신식무기를 과신하여 숫적열세와 저지대의 불리함을 무시한 결과입니다 비슷한 사례가 '이산들와나', '디엔비엔푸' 라고 있죠 그리고 위에선 관군을 낮추고 동학군을 낮추더니 다시 관군을 낮추내요 그냥 조선인은 열등인종이라고 그냥 쓰세요 왜 그랬는지를 봐야지 그 당시를 살던사람도 우리와 같은 희노애락의 인간이며 열악한 환경에서 고민하고 낸 결과입니다 무슨 이게 조선인은 어쩔수 없어라고 말하던 일본인들도 아니고 조선놈은 패야 말을 들어랑 뭐가 다릅니까?
@유정덕-u4x
2 жыл бұрын
운요호 사건이 젤 어이없음 운요호는 신미양요때 미국의 철갑선같은것도 아니였고 배수량도 240톤짜리 증기목선에다 병력도 60명이였는데 이런 허접한 놈들한테 강화도가 개털림... 조선이란 나라가 이렇게 허접한 나라였는지 걍 한심함 저때 개털리지 않고 오히려 역관광 했으면 일본한테 시간 벌수 있엇을텐데
어떤 군대가 목숨을 걸고 싸우면 설령 대승을 거두었더라도 그 곳에 군대와 국가 체계가 나름 잡혀있다는 것을 입증했다는 것 아닌가 싶어요. 그러니 미군도 막연히 들어갈 수 없었던거고...
@evinK-e1g
2 жыл бұрын
애초에 1000명에 배 5척을 파견한거라 처음부터 대충 통상만 맺는게 목표였는데 결국 실패해서 미국도 더이상 이곳에서 싸우는게 의미 없다고 생각해 걍 나간겁니다
@soonrongyom328
2 жыл бұрын
@@evinK-e1g 싸울만 했으면 미군이 개화도 시켜주고 영어도 가르쳐주고 했겠네요? 일본 흑선 개항의 특이 사례가 답이라고 생각하시는데 애초에 왜 서구인들이 개항을 시키고 포교하는지 생각좀 하셨으면 합니다 개항후 서구인들의 식민지가 되지않은곳은 태국과 일본이 유일합니다 태국은 영프의 세력의 휴전선 이었고 일본은 개항 후 미국 남북전쟁이 터집니다 개항에 답이었다고 생각하는건 남아시아의 수많은 피식민국을 욕보이는 것입니다
@김동규-x8p
2 жыл бұрын
@@soonrongyom328 우리가 해방되고도 조선시대 마인드 였으면 지금도 소달구지 끌고있고 상투쓰고 한복입고 다녔겠지
@김동규-x8p
2 жыл бұрын
@@soonrongyom328 이걸 생각해 봐야지 서구인들의 무기기술과 양복입고 다니는 시대 금속배를 만들고 엔진으로 배를 갈수있게 만들고 그걸 배울생각을 하지도 않앟던게 가장 큰이유가 아닐까
@soonrongyom328
2 жыл бұрын
@@김동규-x8p 좀 알아보세요 한양의 전기는 동경보다 빨랐고 교토보다 느렸습니다 해방되고 해군에서 바로 비행기 조립했습니다 마인드 만족됩니까?
@남자탁용삼
2 жыл бұрын
조선이 서양문물을 받았다면 식민지배 안받았을텐데 😤😠
@쑤나-c6f
2 жыл бұрын
프랑스충격으로 안받았죠 ㅠ 하필 프랑스가 와서 ㅠ
@centurionkwk
2 жыл бұрын
흠...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청의 양무운동이 바로 그런 컨셉이지요. 사회와 문화와 가치관은 그대로 두고 기술만. 그러나 그런 건 불가능해요. 산업화와 기술축적은 사회변혁이 전제로 깔려있는 거니까요. 동도서기니 양무운동이니 우리나라 조선에서도 똑같은 흐름이 있었지만 다 헛소리에 불과했지요. 조선이란 나라는 사회변혁을 받아들일 생각 전혀 없었자나요. 거기서 이미 끝.
@soonrongyom328
2 жыл бұрын
대부분의 식민지배는 서구 백인들이 한것이고 같은 동양인을 식민지배한 일본이 특이 케이스 입니다 또한 그렇게 프랑스문물을 배우고 도움을 받던 베트남이 식민지가 되었죠
@미새-b1b
2 жыл бұрын
존테일 응원합니다. 계속 보고싶어영
@kryptoman_mask
2 жыл бұрын
미군 3명 밖에 안죽었을 정도로 대패했잖아요. ㅎㅎ 그리고 미국이 탐사라고 하면서 전쟁 취급도 안했어요.
@user-hunwoo
Жыл бұрын
미국은 전재이라고 하긴 했습니다.Our little war with the heathen.인디언이랑 싸운것도 미국에서는 전쟁이죠.
@kevindevaojoo8882
2 жыл бұрын
중국인 혈통이 요즘 대세인가 보네 화교 3세들
@shsh09608
2 жыл бұрын
34:00 역시 임박사님 없으니까 슬슬 위험한 말 하시네
@shsh09608
2 жыл бұрын
41:58 이 사람 좀 위험한데,,,
@김은민-t2y
2 жыл бұрын
그게 바로 정신승리 ㅋㅋ 지금 국뽕들은 미국과 붙어도 육군은 한국이 이긴다는 미친 망상자들이 많죠!저런 사람들이 교육하면 큰일 납니다
@shsh09608
2 жыл бұрын
@@김은민-t2y 국뽕 프레임보단 "전시 중 의미 없는 자살 (예: 가미카제," 에 대해 찬양하는 뉘앙스가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김종엽-m8t
3 ай бұрын
전술적으론 패배였으나 전략목표는 지겼으므로 방어에 성공한 전투임
@유혼을
12 күн бұрын
정신승리 소름돋노? 일본이 신미양요 전투를 분석해서 침략할때 요긴하게 썻다더라 ㅋㅋ
@아..대한미인국추모성
2 жыл бұрын
대한민국 짜짜짜짝짝
@rockbig3533
2 жыл бұрын
저는 저때 만약 한국이 미국에 의해 강제로 개항이 되었더라면 일본처럼 되지 않았을까 또는 일본의 식민지가 과연 되었을까 라는 궁금증이 있습니다.
@김동규-x8p
2 жыл бұрын
적어도 조금이라도 근대화가 되지 않았을까
@rockbig3533
2 жыл бұрын
@@김동규-x8p 결과가 어떻게 흘러 갔든간에 단정할 수 있는건 공업 기술도입은 되었을꺼라고 생각이 드는게 일본도 미국에 의해 강제 개항이 되었을때 본격적으로 공업 기술도입이 되었으니깐요....
@김동규-x8p
2 жыл бұрын
@@rockbig3533 근데 조선의 사대주의 양반들은 자기 밥그릇만 관리하고 있고 답답함
@WeeklyMuskNews
2 жыл бұрын
그건 니들이 일본역사에대해서 표면적으로만 아는거야 멍청이들아 ㅋㅋㅋㅋㅋㅋㅋ 일본이 미국말들어서 개화했다? 웃기는소리 아무리 강제로 개화했어도 일본은 여전히 보수적인 봉건적 막부체제 유지하다 죠슈 사쓰마가 서로 싸우는 과정에서 서양과 싸우다가 자신들이 개처발리는거 반성하고 거기서 스스로 깨달았기때문에 적극적으로 근대화 한거다 그리고 일본도 근대화하는 과정에서 막부애들하고 동란으로 오지게 싸워서 피로 근대화 이룬거야 결국 자기들이 피로 갈아엎은거지 근데 조선은 그게 안됐고 끝까지 조선왕조하고 기존 유교체제 고집하고 개화파 세력들 찍어 눌렀잖아 그래서 결국 망했지? 제발 역사를 표면적으로만 보지좀마라 ㅉ 니들말만 들으면 미국이 1부터 10까지 하나하나 다 개입해서 일본 근대화시켜준줄 알겠다 ㅋㅋㅋㅋㅋㅋㅋ
@golice
2 жыл бұрын
조선이 일본의 밥이 된 이유는 고종이 러시아의 품에 들어갔기 때문 당시 초강대국 영국은 러시아와 전세계를 두고 열전을 벌이고 있었는데 만약 조선이 미국에 항복하고 개항한다음 영국과 손을 잡았다면 일본에 먹히는 일을 막을수도 있었을거임
@kcs8772
2 жыл бұрын
당시 조선군에게 사병들도 만약 항복하면 강력한 페널티가 주어졌나요? 뭐 사회주의 국가들처럼은 아니래도 뭐랄까 정신적인 비난같은 부담뿐 아닌 실질적인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친지들까지도 일상생활이 힘들정도의 큰 불이익이 주어진다거나 여하튼 자살을 하게끔하는 엄중한 사회분위기가 있었던건지?? 장수들은 몰라도 일반병들이 진짜 충성심만으로 집단 자살을 한다거나 하진 않았을것 같은데.. 아님 자신들이 상상도못한 너무 엄청난 화력세례 및 공격을 당해 혼이 나가거나 서양군인들에게 만일 잡히면 상상할수없는 비참한 꼴을 당한다는 어마무시한 공포감이 있었던건지.. 미군 3명 사망자중 진짜 전사자는 딱 1명이죠? 1명은 오발사, 1명은 실족사였으니 참..
@user-hunwoo
Жыл бұрын
정확히는 신미양요때 총 미군 사망자는 4명임 광성보돌격중에 대니스해러한 일병이 화승총에 죽고 성벽 처음넘은 맥키중위는 창찔리고 총맞아서 사망.
@유정덕-u4x
2 жыл бұрын
그리고 미국이 침공한 이유가 다른 아닌 인삼때문이라는데 이게 맞나여.. 미국에서 자라는 인삼 청나라에 팔아먹을려고 그 경쟁국가인 조선을조질려고 침략한거라는데? ㅋㅋㅋㅋㅋ
@evinK-e1g
2 жыл бұрын
뭐 그냥 애드립 같은거죠
@김은민-t2y
2 жыл бұрын
산삼은 지금 미국에 널려 있습니다 ㅋ
@송현석-c7d
2 жыл бұрын
이때 서구열강과 교역을 했다면 일제36년은 없었을것아니가 우둔한인간들 앞날을 모르고..쯔쯔쯔
@coluslll
2 жыл бұрын
에효 전쟁이란게 남의 나라 놈들을 순국선열로 만들어주고 우리는 이겨야 하는 건데...낙후된 조선에서 16세기 총과 17세기 대포로 19세기 무기와 배를 타고 온 적과 싸우다니..
@dennythedavinchi3832
2 жыл бұрын
그저 아편전쟁이나 흑선 개항 만큼의 치욕은 모면했다봐야.
@evinK-e1g
2 жыл бұрын
@@dennythedavinchi3832 강화도의 조선군이 거의 몰살당하고 강화도 불탈동안 미국군 1000명중 단 3명 사망함
@dennythedavinchi3832
2 жыл бұрын
@@evinK-e1g 몰살에 대한 자료 제시 부탁.
@evinK-e1g
2 жыл бұрын
@@dennythedavinchi3832 광성보 전투 당시 조선군은 500명중 243명 가량이 전사, 100명 가량이 익사, 24명이 부상을 입은 반면 미국은 800명중 3명 사망과 10명 부상으로 끝났습니다 출처는 조선쪽은 소성진중일지에 최소 100명 이상이 사망했으나 미국이 화장 등 시신을 훼손한다는 기록과 미국측은 미국의 공식 보고서, 사진가인 펠리체 베아토의 사진들과 참전군인인 윌리엄 그리피스가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가 자료입니다
@teto7559
2 жыл бұрын
@@dennythedavinchi3832 아편전쟁은 확실히 치욕이 맞는데 일본의 흑선사건은 오히려 일본인들에게 영광이자 자랑인데? 그 개항을 통해 미개했던 전근대 무사정권 갈아엎고 선진화 된 근대국가로 거듭났을 뿐만 아니라 전쟁을 통해 9대 서구열강 반열에 끼고 이후에는 2~3 위 하다가 2차대전 패망 후에도 선진국으로 전세계 2~3 위 달리니까
@postrockful
2 жыл бұрын
존테일님, 언능 새 방송 만들어 주세요~
@맡인
5 ай бұрын
전원전사를 불사하는 병사들을 가지고도 망해버린 나라란...
@gurajjang3319
2 жыл бұрын
정신승리 맞는데 ㅎ 목적 달성은 못 하게 했으나 조선의 약점을 여실하게 보여줘서 서양이 조선을 만만하게 생각하게 해주고 수교를 포기함으로서 일본에 뒤쳐지게 된 결정적 사건인데 희생당한 조선군은 안타깝게 생각해야 되는건 맞지만 딱 청나라가 아편전쟁때 했었던 정신승리 국뽕 사관 아쉽네
@dennythedavinchi3832
2 жыл бұрын
일단 그건 현재 생각으로 당시사람 입장에서 너무 이후 미래를 멀리 본거고. 저 당시는 지들 체제 정책을 달성하고 외세에 막아낸거에 만족하고 끝났다봐야.
@soonrongyom328
2 жыл бұрын
약점이 보이고 만만했으면 가볍게 점령을 했겠죠 아프리카처럼요 점령하기엔 쉽지않은 계륵이니 물러난거죠 미국 남북전쟁이 안일어났으면 일본은 필리핀 같은 미국 식민지가 되었겠죠 일본이 예외 케이스입니다 개항을 먼저해도 프랑스 식민지가 된 베트남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유혼을
12 күн бұрын
@@dennythedavinchi3832 그렇게 정신승리만 해대니까 36년간동안 일본의 노예로 빌어먹은거지..
@byungsong2819
2 жыл бұрын
지금은 미국 꼬봉 역할 제대로 하고있는데뭐 ㅎㅎㅎ
@유혼을
7 ай бұрын
그래서 중국밑으로 기어가서 티베트족이나 위구르족처럼 장기척출당하라고???
@고구려-x1h
2 жыл бұрын
유투브 패전사에 있는 신미양요의 광성보 전투 = kzitem.info/news/bejne/samhyIOGg3tmq2k
@뭉게구름-e7y
2 жыл бұрын
최선생님 얘기중에 갑자기 중요한데서 속삭이니까 뭔 말인지 모르겠어요 리플레이해야되고, 어떤곳에서는 너무 세게 얘기하고, 그냥 일정하게 얘기해주세요 재미있게 보고있어요
@正能量-h3x
9 ай бұрын
미국이 조선을 이겨본적이 없어요
@유혼을
12 күн бұрын
15분만에 조선군 전멸했는데 ㅋㅋㅋㅋㅋ 미친놈인가?
@유정덕-u4x
2 жыл бұрын
조선이 어떻게 이긴 전투임 ㅋㅋㅋㅋ 말이 되는 소리 해야지 요즘 국뽕 유튜버들때문에 짜증나는데 객관적으로 봐야져....
@장못
2 жыл бұрын
국력을 강하게 하기위해선 다른나라와 무역(접촉)을 해야하는데 척화비를 세우고 서양세력과 척을지니 국력이 약해질수밖에
@정선영-f4k
2 жыл бұрын
차라리 이때 개항을 하고 일본보다 빨리 서구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였다면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이철욱-f4s
2 жыл бұрын
@킴존 일본식민지보다는 나았을듯
@김동규-x8p
2 жыл бұрын
@킴존 그래도 조금이라도 근대화는 됐겠죠 그러면 아무리 일본이라도 쉽게 못들어옴
@정선영-f4k
2 жыл бұрын
@@이철욱-f4s 저도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golice
2 жыл бұрын
@킴존 아마 최소한 서양식 무기로 무장한 국군이 최소한 일본군에 어느정도 저항을 해보긴했겠지 ㅋㅋㅋ
@정선영-f4k
2 жыл бұрын
@킴존 맞아요.필리핀이 미국의 식민지여서 그리고 미국은 기독교국가라서 일본처럼 그렇게 심하게 식민지주민들을 탄압하지 않았을겁니다.필리핀은 미국 식민지라서 착취가 아닌 미국이 최소한 기간산업에 투자는 했다고 그러더라구요.
@보고보고-x3q
2 жыл бұрын
전투는 졌지만 전쟁은 이겼다. - 결론 -
@김은민-t2y
2 жыл бұрын
그 이긴것도 정신 승리가 아닐런지 ....
@보고보고-x3q
2 жыл бұрын
@@김은민-t2y 지리적 차이로 일본보다 개항이 늦은 것 + 정조의 문체반정(조선에 당시 수입된 모든 서양서적 불태우고 수입금지시킴)이 아쉽죠. 뭐
@보고보고-x3q
2 жыл бұрын
@@김은민-t2y 정조때문에 일본 식민지가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왜 해군함정에 정조 이름을 달겠다는 것이지 이해가 안됨. 노무현 정조 드립을 하지 않나. 도대체 북학 서적 출판 96년간 막은 것이랑 성리학 주자서적 재출판하고 명말청초 서적까지 전부 금지 시킨 것이 무슨 개혁인지.
@golice
2 жыл бұрын
@@김은민-t2y 아프간에서 미군이 철수했다고 탈레반이 승리했다고 정신승리하는거랑 비슷하지 ㅋㅋㅋㅋ 20년간 전 국토가 박살이 나고 탈레반은 와해되서 파키스탄으로 도망쳐 망명한 주제에 ㅋㅋㅋ
@user-hunwoo
Жыл бұрын
@@보고보고-x3q ?패관문학은 소품체 소설 불태운거 아니였나요?
@강혁-u4g
2 жыл бұрын
전략적으로 승리했겠지. 그 이후에 척화비 세우고 일본처럼 흑선내항 이후에 군제개혁이나 신식무기 도입, 무진전쟁과 같은 자정작용을 하기는커녕 척화비 세우다가 동태눈까리로 세상 바라보고 아무것도 안 하다가 운요호로 개쳐맞고 결국에는 나라 뺏겼지.
@ganekim
2 жыл бұрын
너희들은 일본 욕할 자격이 없다. 그래서 결국 일본에 식민지 받았다는 결론이다. 이것도 자랑스럽다고 생각하겠지. 야 허준 너 제정신이냐?
@강나루서재
2 жыл бұрын
바사님들 나왔는데 학원강사는 신뢰도가 떨어지네
@nettorre6610
9 ай бұрын
역사를 연구한다는 사람들이 TV에 좀 나오더니 드라마를 쓰고 있군요.. 역사를 미화, 윤색하는 건 역사왜곡이나 마찬가지죠..쳐들어오는 적군이 무서워 진지를 이탈해 도망갔는데 이걸 퇴각이라 하고, 있지도 않은 변명같지도 않은 변명까지 만들어 주는군요.. 28:07 초지진 화약더미가 폭발하는 바람에 대피, 퇴각했다고요? 이런 기록이 어디에 있나요? 미해병대 중대장 틸튼대위의 조선원정 보고문에 보면 초지진의 조선군 수비병은 함포사격을 피해 숲으로 들판으로 달아났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상륙군이 편안하게 상륙한 후 미해병대가 들판과 마을을 누비며 도망간 조선군을추격했으며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미군상륙 방어전에서 초지진은 핵심 요충지였습니다. 초지진 바로 옆 400미터 갯벌로 상륙할 때 미군이 가장 취약할 때였고 침공을 막고자 했다면 이때가 최적기였는데 초지진 첨사 이렴을 비롯한 조선 수비군은 국토수호의 사명을 저버리고 진지를 이탈해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했습니다. 이런 걸 어떻게 미화합니까? 신미양요 징비록을 써야지.. 31:45 미해병대가 주력이라고 언급했는데 잘못 알고 있거나 대충 때려보는 뇌피셜입니다. 당시 쳐들어 온 군대는 미해군 아시아함대입니다. 당시 열강들의 해군 함대에는 해군보병(Naval infantry)이 있었습니다. 강화도에 상륙한 미군 651명 중 109명의 해병대를 제외한 나머지가 해군보병이었습니다. 이들은 제복이나 개인화기로도 구분이 됩니다. 해병대는 지금도 그렇지만 해군기지 경비나 함내 경비를 서고 전투에서는 척후활동을 하거나 특공대 역할, 측면 지원 등을 수행했습니다. 주력부대는 해군보병이고 소수의 해병대는지원부대였습니다. 29:45 덕진진 수비병들이 화기의 유효사거리가 짧아서 모두 퇴각했다는 얘기는 한 편의 코메디군요.. 무슨 사후 검토보고서에 그런 얘기가 나오나요? 개콘 대본에나 나올 법한 얘기입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세상에 이런 오합지졸이 없지요..진지를 방어하는 수비병이 소총의 유효사거리가 짧다고 다 도망을 갑니까?..ㅎㅎ 미해병대 중대장 틸튼대위는 보고서에 덕진진의 대부분의 포(불랑기포)가 장전된 상태였다고 했습니다. 이게 퇴각,철수한 모습인가요? 32:55 조선군의 전사자 수가 350명이라고요.. 몇가지 설이 있는데 가장 많은 숫자를 택했군요 숫자가 클수록 드라마틱하겠죠.. 253명이라는 설도 있구요 조선왕조실록 공식 기록의 전사자 수는 53명입니다. 틸튼 대위도 253명을 언급하긴 했지만 자기가 직접 본 조선군 시체는 50여 구라고 했습니다.
@꽃거지-x6s
2 жыл бұрын
국뽕 오지네 ㅋㅋ
@빡깡막쇠-m9f
2 жыл бұрын
보면 볼수록 무능하고 부끄러운 조선역사
@vanillacaelum5075
2 жыл бұрын
헬조선
@itrytoit
2 жыл бұрын
조선시대나 현시대나 특정 세력?집단의 기득권을 유지?수호?하기 위해서 다수가 피해본다?!
@김동규-x8p
2 жыл бұрын
@@humanplusscience4449 중국이 망했다고 착각하는데 서양인들의 의해서 청나라 군대가 어느정도 바뀐건 생각안하지 그러니 청일전쟁때 금속 군함이 30척이 넘었지 근대 서태후억 부정부패로 진거지 조선도 개항했으면 달라졌을거라고 생각안하지
@김동규-x8p
2 жыл бұрын
@@humanplusscience4449 조선시대 양반 후손이냐
@grlee5048
2 жыл бұрын
아메리카 미국땅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메릴랜드(머리땅)에 단군의 신단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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