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크의 절규에 대한 해석도 다시 해야 하지 않을까요...? 오슬로의 자연을 꿰뚫은 큰 목소리의 절규는... 그만의 삶에 대한 애착의 표현이지요... 그 누구보다 살고 싶다는 절규이지요... 죽음의 유혹은 계속해서 귓가에 울려도 나는 살고 싶다는 절규를 대자연의 노을이란 풍경에서 느끼지 않았을까요.... 살고 싶다 ... 죽음이 나를 끌어당겨도 죽음에 대해서는 귀를 막고... 삶의 환희와 아름다움에 나는 절규한다... 살고 싶다... 뭉크의 절규입니다... 강력한 삶의 의지... 그조차도 몰랐던 심리 표현이지요... 뭉크의 절규는 죽음에 대한 절규이자 삶에 대한 강력한 집착에 가까운 의지의 절규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같은 장소에서 계속 그림을 그릴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 누구보다도 살고 싶으니까요... 삶에 대한 절절한 고백인 셈입니다... 우리나라 시인이자 문학가인 이상의 날개에서 "그래 날자..." 와 같은 맥락이라고 봅니다... ㅇWㅇ...응.....ㅎ 2024.2.22.목. 12:40 am
@RyouDaito
3 ай бұрын
예술은 해석에 따라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걸면 코걸이네
@user-tt7fl6yy6g
4 ай бұрын
죽음을 염두히고 있는 삶이 끔찍하다? 글쎄요..그건 각자의 생각마다 다르지않을까 합니다.
@user-xy6dk2ue3l
2 ай бұрын
광고가 너무많아집중이 안되네
@user-pw4ni1bk9x
3 ай бұрын
히틀러가 불태운 4,000점 속에 뭉크직풍이 불때위지지 않은게 미스테리군. 저 정도라면 1순위로 불태워질 작품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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