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도성은 태조 5년인1396년에 축성되었으며, 성벽은 백악·낙산·남산·인왕산의 능선을 따라 축조되었다. 성곽에는 동쪽 흥인지문, 서쪽 돈의문, 남쪽 숭례문, 북쪽 숙청문의 사대문과 북동쪽 홍화문, 남동쪽 광희문, 북서쪽 창의문, 남서쪽 소덕문의 사소문을 냈다. 이 가운데 흥인지문만은 옹성을 쌓았고 숙청문은 암문으로 하여 문루를 세우지 않았다. 공사는 이렇게 끝났으나 남대문은 1396년, 동대문 옹성은 1399년 완성되었다.
북악의 산줄기에서 동쪽으로 좌청룡을 이루어 내려오다가 산줄기의 끝에 있는 바위라 하여 말(末)바위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조선시대에 말을 이용한 문무백관이 시를 읊고 녹음을 만끽하며 가장 많이 쉬던 자리라 하여 말(馬)바위라는 설도 있다.
소나무 숲길을 따라 말바위에 오르면 주변의 서울성곽과 서울의 도심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명당자리로 우리 역사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시진핑 주석이 이미지화한 왕기란 무엇일까를 엿보는 것이다. 북악산의 큰 소나무[松]와 바위[岩]이다. 삼청공원에서 시작한 북악산 둘레길을 조금 오르다 보면 말바위 부근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송암(松岩)'을 볼 수 있다. 땅기운의 절정이다(사진 참고). 시진핑 주석이 이미지화했던 것이다. 많은 사람이 북악산을 오르면서 간과하는 것이 바로 이곳이다.
숙정문은 북한산 동쪽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으며 서울 성곽의 북대문으로 ‘엄숙하게 다스린다’는 뜻으로 이름이 지어졌다. 태조 5년(1396)에 완공되었는데 처음에는 지금 위치보다 약간 서쪽에 있었으나 연산군 10년(1504)에 성곽을 보수하면서 옮겨졌다고 한다. 숙정문은 본래 사람들의 출입을 위해 지은 것이 아니라 서울성곽 동서남북에 4대 문의 격식을 갖추기 위하여, 그리고 비상시 사용할 목적으로 평소에는 닫아두었기 때문에 숙정문을 통과하는 큰길은 나있지 않다. 1976년 북안산 일대의 성곽을 복원하면서 문루를 짓고 ‘숙정문’이란 편액을 달았다.
북악산 기슭의 촛대바위는 북악산 성곽둘레길 숙정문을 지나 곡장 가는 길에 있다.촛대바위는 1920년대 일제강점기때 일제가 민족정기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지맥을 끊기위해 쇠말뚝을 박았던 곳이다.북악산 정상에서 보면 높이13m의 절벽이다.촛대바위에서는 주변의 소나무 숲과 어우러져 경복궁을 비롯한 서울 도심을 한눈에 바라볼수 있다.
곡장이란 성곽의 시설 중 하나로 주요 지점이나 시설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성벽의 일부분을 둥글게 돌출시킨 것을 말한다. 곡장은 한양도성과 북악산 그리고 서울도심이 함께 보이는 북악산 최고 전망대이다. 북악산의 정상인 백악마루보다 시야가 트여서 부암동, 평창동, 북한산이 파노라마 풍경으로 펼쳐진다. 정면으로는 경복궁과 세종대로, 남산이 보이고 오른쪽으론 굽이진 한양도성이 마치 한 마리의 용처럼 북악산에서 인왕산으로 질주한다.
청운대는 북악산에서 2번째로 하늘과 가까운 곳으로 해발 293m이다. 청운대란 이름은 옛날 부터 있던 것이 아닌 북악산 한양도성이 개방되면서 붙여진 이름인데, 북악산 한양도성 구간 중 가장 조망이 좋은 곳으로 추앙을 받는다. 하여 이곳에서는 성북동과 북악산 자락, 서울 도심, 서울 동북부지역까지 훤히 눈안에 들어온다. 북한 124군부대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를 기습하기 위해 서울에 침투, 자하문 일대에서 경찰과 접전을 벌이다가 북악산 및 인왕산 지역으로 도주하였으며 그 당시 교전으로 수령 200년 된 소나무에 15발의 총격전의 흔적이 남겨졌는데, 이 소나무를 일컬어 ‘1·21사태 소나무’라고 한다.
북악산은 서울 북쪽에 솟아 그 진산을 이루어온 산으로 고려 숙종 때 북악산 아래는 남쪽의 수도인 남경의 궁궐이 있었던 자리였으며 당시에는 북악산을 면악이라 기록하여 전한다. 기반암은 화강암으로, 인왕산·낙산·남산 등과 더불어 서울 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산이다. 이들 산지 능선을 연결한 옛 서울의 성곽은 이 산을 기점으로 축조되었다. 산 능선에는 옛 성벽이 원형대로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고, 서쪽 산기슭과 인왕산과의 사이의 안부에는 서울 4소문의 하나인 창의문이 남아 있으며 부암동 뒤쪽에는 백석동천 계곡이 있다.
창의문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동에 있는 문이며 2015년 12월 2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북문 또는 자하문으로도 불린다. 1396년(태조 5) 서울 성곽을 쌓을 때 세운 사소문의 하나로 창건되어 창의문이란 문명을 얻었다. 1623년 인조반정때는 능양군을 비롯한 의군들이 이 문을 부수고 궁 안에 들어가 반정에 성공한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우진각 기와지붕으로 서울 사소문 중에서 유일하게 완전히 남아 있는 문이다.
Негізгі бет 북악산 한양도성 Mt. Bukak Hangyangdoseong Capital City W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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