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아미타불 스님 일기하처 만법은 하나로 돌아가는대 그짜는빼고요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고 이러케 해도되나요 만법은 하나로 돌아가는대 하나는 어디로가는고 이러케 화두 드러도 되나요 스님 답좀 주세요 나무아미타불
@TV-ny7xe
Жыл бұрын
예,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user-hv3ti6gs6o
Жыл бұрын
@@TV-ny7xe 감시합니다 스님 나무아미타불
@user-nq1qk9dn6j
Жыл бұрын
인연이 되어서 만났다가 인연이 다하면 끝 나면 공 이라고 합니까 공 의뜻이 어렵네요
@alltoone00
Жыл бұрын
불법이 어려운 이유는 중국의 도교 사상, 힌두교 등이 섞인 불법이 번역되어 들어오고, 수행법도 한정되어 수입된 탓도 있습니다. 스스로 깨달은 석가모니의 초기 설법을 참고하시면, 불교 이론을 이해하기가 상당히 쉽습니다. 아무리 금강경, 반야심경을 읽어도 응무소주 이생기심,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등 이해 안 되는 구절이 많습니다. 불교는 훌륭한 스님들의 말씀을 듣고서 이치를 깨닫는 문혜가 필요하고, 초에 불이 붙으면 내 습관, 업을 녹여서 없애는 시간과 수행의 과정도 필요합니다. 즉 문혜가 작은 깨달음이고, 고개를 돌려 내 마음을 관찰하고 집중해 나가는 수행의 과정이 필요하죠. 공에 집착한다고 해서 깨달음이 오는 스님들도 있었지만, 그러한 화두선은 일반인들에게 맞지 않다고 봅니다. 화두선은 수 많은 불교 수행법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생활, 내 성격 등에 맞는 수행법, 요가, 위빠사나 명상, 염불기도, 보시 등등 많거든요. 끊임없는 수행을 하다가 문득 깨달아 지지, 집착해서 깨달아 지지는 않는 게 불법 같습니다.
@alltoone00
Жыл бұрын
강의를 하면, 뭘 전달하려고 하는 지가 명확해야 하고, 그 핵심을 전달해야 하는데, 불교의 핵심은 연기와 중도라고 말씀하시는 듯 한데, 그 것에 대한 이야기는 풀어나가지 않고, 주제와 관련없는 말로 사람들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시키는 듯 하다. 내가 이해를 못한 것인가? 논리가 빈약하고, 뭘 이야기하려고 하는지 불명확하다. 첫째,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서는 인연 따라 생김을 명확히 알아야 한다. 이게 연기고, 허망하거나 허무주의(소극적이고 자기 주관적인 관점이다)와는 전혀 다른 연기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관찰법이다. 부정적인 관점과 다름을 명확히 설명해줘야 하는데 이게 전혀 없고, 둘째, 중용과 중도의 질문을 받았고 그 차이에 대한 설명을 하려는 듯 하다가 삼천포로 빠지고 결국 설명하지 않았다. 중용은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음이고, 중도는 팔정도를 의미한다. 팔정도는 계정혜 이고 , 어떤 성인의 말씀이든 그 말씀에 계정혜, 팔정도가 있다면 곧 그 말씀이 불법이다라는 설법도 있었다. 중도는 쾌락주의에도 치우치지 말고, 고행주의에도 치우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다. 제3의 길인 중도는 알아차리고 집중하라는 것이다. 자신을 컨트롤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내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를 알아차리고 집중하라는 의미다. 즉 명상하듯이 이 순간에 집중하고 알아차리는 노력을 하며 살아가라는 것이다. 이 스님을 비판하는 게 괴롭지만, 수준 낮은 분들의 과한 친절은 우리들 헤매는 중생을 더 헤매이게 하므로, 경계해야 한다. 내 이해력이 부족한 게 아닌가 하고, 나를 자책하지 말고, 뛰어난 훌륭한 스님들 말씀을 처음부터 끝까지 경청해 보고, 그 말씀이 내 마음에 어긋나 훌륭한 스님 말씀이 틀리게 보이면, 내 마음을 다시 돌아보고, 계정혜와 팔정도를 나침반으로 삼고, 다시 시작하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의가 꼭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듯이, 잘못 인도하는 가르침은 내 시간과 에너지를 너무 많이 낭비시킨다. 법정, 법륜 스님 같은 검증된 스님들 말씀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보고, 불교 이론의 틀을 잡아보는 걸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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