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위! 우리는 이 사람을 주미국 대한민국 명예 대사로 임명하고자 합니다.
*정책 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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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사람을 주미국 대한민국 명예 대사로 임명하고자 합니다.
이 사람은 100년 전 미국에서 활동한 동포입니다.
그는 1903년 미국으로 이동한 후, 1909년 2월 해외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역할을 자임한 대한인국민회 창립에 참여했으며 1913년부터 1918년까지 미주지역 총회장으로 세 차례 활동했습니다.
그는 조국을 빼앗긴 상황에서 미국에서 한인 동포들을 보호하고 대변하는 주미 한국 대사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대표적으로 그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이민국의 한국 통역관을 자처하며 여권 없이 미국에 입국하는 한인들의 신원 보증인이자 이민 수속 대변인으로 활동했습니다.
1912년부터 1920년까지 샌프란시스코에 입국하는 애국지사 200여 명, 유학생 500여 명, 한인 여성 70여 명이 그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여권이 없어 미국 입국이 거부된 한인 청년을 대상으로 입국을 가능하게 하고, 미국에 입국하는 한인 대부분의 이민국 서류 도착지가 이 사람의 주소일 정도로 한인들에게 그의 도움은 컸습니다.
1913년 6월 25일, 미국에서 한인 노동자가 백인 노동자에게 일본인 노동자로 취급되며 집단으로 배척당하는 등의 불이익을 받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일본 외교관은 한국인이 일본의 지배를 받으니, 미국의 한인들 관련 사건 역시 일본이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이 사람은 미국 국무부 장관에게
“지금 미국의 한인은 일본에 강제 합병되기 전 미국에 도착한 사람들로 일본인과는 무관하다.”라는 내용의 서한을 보내고 설득하였습니다.
"미합중국 국무장관 윌리엄 브라이언 귀하
최근 미주 한인 11명이 헤미트 지방에 일하러 갔다가 그곳 주민들에게 추방당했는데 이 사건에 일본 외교관이 간섭했습니다.
이에 우리는 일본 외교관의 간섭을 원하지 않아, 그 지방 주민들을 교섭하여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미국 법률 밑에 사는 한인들은 대부분 일제가 한국을 식민지화하기 이전에 한국을 떠난 사람들이고, 일본 식민지에 반대하며 해가 하늘에 떠 있는 한 일본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미주 한인을 일본인과 같이 대우하지 말아 주시며, 한국인에 관한 문제는 언제든지 한인 사회에 교섭해주십시오."
"한국인은 일본인이 아니라는 당신의 서한을 받았습니다. 미주 한인은 대부분 일제가 한국을 식민지하기 전에 한국을 떠난 사람들이고, 일제의 한국 지배를 인정하지 않으며, 일본 정부와 관계가 없고 일본 관리의 간섭을 받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앞으로 미주 한인에게 관계되는 일은 공적이든, 사적이든 일본 정부나 일본 관리를 통하지 말고 한인 사회와 교섭할 것입니다."
-1913년 7월 2일 미국 국무장관 브라이언 -
미국 국무장관을 대상으로 한 이 사람의 외교 활동을 통해 미주 한인들을 대상으로 통치권을 행사하려는 일본 대사관으로부터 한인들을 보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 사람이 이끄는 한인 독립운동 단체 ’대한인국민회‘는 미국에서 한국의 임시정부, 영사관으로 인정받아 공식 정부 기관으로써 위임받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미국에서 한인들 보호뿐만 아니라 조국(한국)의 독립을 위해 애쓰고, 조국의 역사와 문화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헌신했습니다.
1910년 11월 미국에서 ‘대한 소학교’ 설립,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글, 한국 역사, 지리 교육
1911년 8월 미국에서 월간지 『대도』 재발행, 주필로 활동
1913년 6월 23일 『신한민보』 재발행, 주필로 활동
- 『대도』와 『신한민보』에 지속적으로 애국정신과 단합을 강조하는 글을 작성해 미주 한인들의 애국정신을 고취
1915년 3월 1일 세계 최초로 한글 타자기를 발명해 한글 타자기로 『신한민보』 발행,
- 활자를 하나하나 손으로 찾아 조판하던 방식에서 174개의 활자를 통해 쉽게 인쇄할 수 있는 혁명적인 한글 타자기 발명
“국어는 한 나라 민족의 정신, 사상, 감정을 대표한 것이다.” - ‘이 사람’
"한국 알파벳이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들어지고 동양식 타이프 기계가 제작된 것은 이 세기의 위대한 진전"
- 미국 언론 '데일리 팔로 알토 타임스'
1918년 말 미국에서 대한독립선언서에 서명 및 독립운동 전개
1919년 『신한민보』에 「성공은 합력에 있음」이라는 제목의 애국 정신과 독립을 강조한 글을 실으며 한국의 독립 의지를 세계에 전파
1920년 8월 15일 한글 학교 설립
1921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교 담당 기관인 구미위원부 조직에 참여해 미주에서의 독립운동에 전력을 다함
1928년 6월 17일
이 사람의 나이 50세
자신의 삶 대부분을 미주 한인 동포를 위해 헌신한 이 사람의 마지막 유언
"우리 동포들은 다 평안한지요? 보고 싶어요!"
주미국 대한민국 대사는 아니지만,
나라를 빼앗긴 상황에서 대한민국 대사 역할을 한 이 사람
이대위 (1878∼1928)
여러분이 생각하는 대한민국 대사의 자격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 사람을 주미국 대한민국 명예 대사로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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