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 ca nun chiagne 너는 왜 울지 않고 / E. De Curtis(에르네스또 데 꾸르띠스)곡
가사
Comm’è bella ‘a muntagna stanotte,
오늘 밤 저 산은 무척 아름답구나
Bella accussi nun l’aggio vista maie!
그렇게 아름다운 것을 결코 보지 못했네!
N’anema pare rassegnata e stanca
그것은 마치 체념하고 피곤한 영혼 같으니
Sott’ ‘a cuperta ‘e chesta luna janca.
(그것은) 창백한 달로 덮여 있네.
Tu, ca nun chiagne,
울지 않는 그대는
e chiagnere mme faie,
나를 울게 하네,
Tu, stanotte, addò staie?
그대는, 오늘저녁에, 어디에 있는가?
Voglio a te!
나는 그대 곁에 있기 원하네!
Voglio a te!
네 곁에 있기 원하네!
Chist’uocchie te vonno
나의 눈은 너를
N’ata vota vedè!
다시 한번 보기 원하네!
Voglio a te!
나는 그대 곁에 있기 원하네!
Voglio a te!
네 곁에 있기 원하네!
Chist’uocchie te vonno
나의 눈은 너를
N’ata vota vedè!
다시 한번 보기 원하네!
프랑코 코렐리 (1921- 2003 년)는 1951년에서 1976년 사이에 전 세계의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캐리어를 가진 이탈리아 출신의 테너 . 특히 스핀또및 드라마틱한 테너 역할에서 그의 강한 목소리로 열광적으로 찬사를 받았다. , 감동적인 음표, 맑은 음색, 열정적인 노래 및 놀라운 공연으로 "테너의 왕자"라고 불리웠으며 청중은 그의 잘 생긴 외모와 카리스마 넘치는 무대에 매료되었다.
특히 오페라'투란도트'의 칼라프왕자역,
'토스카'의 카바라도씨역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의 집안은 음악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그의 직계부모만 그러하고 친할아버지가 성악가 였고 친형은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바리톤이 되기 위해 공부를 다시 시작했으며 삼촌 두명이 전문적인 가수였다.
그의 아버지는 배를 건조하는 사람이였고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코렐리는 직업을 갖기 위해 볼로냐 대학에서 해상공학을 전공했다. 그러면서도 틈틈히 음악과 성악을 공부하여 콩쿨에 나가보지만 탈락한다.
그래도 심사위원들이 성악공부는 계속해 보라고 독려하여 형처럼 대학을 그만두고 페자로 음악원에 들어가 성악공부에 매진한다.
그러나 이때부터 험난한 그의 발성탐구여정이 시작되는데 오히려 자신의 목소리가 전통적 방법의 레슨에 망가지고 있다고 판단한 그는 독학하기 시작했고 '성악교사들은 위험한 사람들'이니 '성악가에겐 질병'이니란 표현을 쓴것을 보면 기존의 성악선생들에 대한 불편함이 컸던것 같다. 꼬렐리는 독학하면서 당시 이름을 날리던 멜로끼 발성을 배운 학생으로부터 간접적으로 멜로끼 발성을 전수받았고 멜로끼로부터도 직접 몇번 레슨을 받기도 했다. 그밖에도 수많은 가수들의 앨범을 듣고 따라하고 연구하면서 자신만의 창법을 확립했고 결국 콩쿨에 나가 우승하는데 이때가 그의 나이 30세였다
그뒤로 오페라에 캐스팅 요청을 받고 녹음도 하게 되면서 우리가 아는 레전드의 탄생이었다.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꼬렐리를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늦은 나이에 데뷔했고 데뷔할 때는 목소리가 좀흔들리는 편이였으나 단 한순간도 더 나아지는 것을 멈추지 않은 위대한 테너'
꼬렐리는 천부적인 실력과 남자다운 외모와는 다르게 무대공포증이 아주 심했다고 한다
무대 오르기 직전에 보면 스태프가 그를 강제로 무대로 밀어버리거나 그의 아내가 계속 달래가면서 할 수 있다며 한참을 응원해 주어야 겨우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고 하며 지휘자에게 요구하는 디테일한 사항도 상당히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무대에 오를때마다 항상 전 공연을 녹음해서 공연을 마치고 난 뒤 지치고 힘들어도 매번 챙겨들었는데 소리가 잘 나왔으면 기뻐서 잠을 못자고 소리가 안좋으면 우울해서 잠을 못이뤘다고 한다.극도로 예민하고 심한 무대공포증으로 55세라는 전성기를 구가할 나이에 Torre del Lago에서 1976년 푸치니오페라 라보엠에서 Rodolfo역 공연을 마지막으로 은퇴하였다.
무대에서 은퇴 한 후 Corelli는 뉴욕시에서 인기있는 성악교수가 되었으며, 평생 동안 성악교수를 경멸 한 한 남자에게는 다소 아이러니하다. 그는 1980 년과 1981 년에 콘서트를 위해 잠시 은퇴를 교수활동을 쉬었다. 2003년 초 뇌졸중을 앓았고 82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밀라노의 Cimitero Monumentale 에 묻혔다.
Негізгі бет Ойын-сауық Franco Corelli(프랑꼬 꼬렐리)-Tu,ca nun chiagne(너는 왜 울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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