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습님은 밤에 사육신들에 시신을 거두었으며 돌아와서 머리을 풀어해치고 정신나간 사람처름 대성통곡을 하였답니다
@user-lc3uj7xd4e
Жыл бұрын
매월당 김시습은 역시상 가장 존경하며 매력적인 인물입니다.
@user-lf4ij9pq4h
2 жыл бұрын
신동시인 김시습 고결하고 정제되고 결박하게 담대하게 살다가셨네요 존경스럽네요
@user-cx4eu3wx2r
2 жыл бұрын
욕심은 정말 부질없는 것임을 깨닫고 있다 닮고싶은 사람이다
@cklee-7788
2 жыл бұрын
잘보았습니다. 구독하고 갑니다.
@eunjujang9998
Жыл бұрын
부여 무량사에 갔다가...김시습의 두타행 수행을 찾아 보고 있습니다. 좋은 자료와 인터뷰 고맙습니다.❤
@user-oz2uf9me2q
2 жыл бұрын
김시습할아버지는 우리강릉김씨의 얼굴입니다.
@user-yx7gu5fm1x
Жыл бұрын
오! 김알지의 후손이시네요!
@user-hc6xk6of4r
2 жыл бұрын
♥강릉 김씨 김시습...
@삼성라이온즈대구
Жыл бұрын
강릉 김씨의 시조는 경주 김씨 김주원
@user-xo4ik2mz8v
22 күн бұрын
어느성씨가중한것이않이고진정으로나라을걱정하은것이중요한것이죠😊😊
@user-xo4ik2mz8v
22 күн бұрын
어느성씨가중한것이않이고진정으로나라을걱정하은것이중요한것이죠😊😊
@user-gk8co9iq8y
2 жыл бұрын
관음송은 단종의 맘을 그대로 보여주니 벗이 되어주며 같이 아파했을꺼 같네요
@user-wo4ty2qv1o
2 жыл бұрын
강원도 철원 복계산 기시면 김시습 매월당 있습니다
@무궁화-b1q
2 жыл бұрын
문종이 지혜가 있었다면 어린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말고 동생에게 부탁했으면 어떠했을까 싶네요~~
@user-kd3kt5ih9e
2 жыл бұрын
박이창이 벽에 그린 산수화를 가리키며. "네가 저것을 두고 시을 지을수 있느냐?" 고묻자. 곧 대답하여 "작은 정자 뱃집에 그 누가 있는지?
@user-pj7le9oe1o
3 жыл бұрын
천재 김시습?!? 우리가 학교에서 배워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기억하는 김시습 앞엔 '천재'라는 말이 꼭 들어갔습니다^^ 다섯살 때 세종 대왕이 소문을 듣고 궁으로 불러 시를 짓게하고, 비단을 하사하자 목에 걸고 끌고 갔다는 전설 등등~ 그런데 비단을 목에 걸고 끌고갔다는 전설은 후대에 김시습을 신비화시키기 위해 지어낸 가짜뉴스라는 게 정설입니다, 여기에도 '가짜뉴스'가? ^^ 금오신화는 경주 금오산에 김시습이 기거할 당시 한문소설을 써서 그 소설들을 금오신화라 부른데서 유래하였다는데요, 이 영상에는 직접 거론되진 않았으나 '남염부주지' 작품엔 주인공 박생은 김시습을 지칭하고, 소설 속 주인공을 통해 꿈 속에서 "염라대왕이 박생에게 염라대왕 직을 양위하는" 내용이 핵심적으로 기술되어 있는 바, '김시습 자신이 (세조를 몰아내고) 직접 왕이 되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다는, 현실 참여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현했다고 볼 여지도 있겠고, 철원 구은사에 모셔진 위패들이나 철원지역에서 전해오는 이야기들로 볼 때 김시습이 구체적으로 단종 복위를 구상했던 것도 같고, 단종이 죽임을 당한 이후엔 '소설 속에서나마 세조를 몰아내는 울분을 표현'했던 듯 추정됩니다 ^^ 세조의 찬탈을 지켜본 후, 김시습이 불교를 통합하여 이조를 몰아내고 다시 불교국가로 되돌리는 역성혁명 구상을 해보았던 건 아닐까, 그런 속셈을 숨기고서 암중모색하면서 사찰들을 돌아다니면서 불교계의 민심을 살피는 '암행시찰' 했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거기까진 무리한 추론이라 본다면(?) 꿈을 방편으로 하는 소설을 지어 세조를 쿠데타로 축출해 버리고 싶은 울분과 속내를 표현했던 듯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실적으론 가능성이 없으니까, 소설을 빙자해 울분을 표현하고 (역명은) 깨끗이 포기하고서 후대 역사적 평가에 맡긴 처신도 천재답다고 보이네요^^
@Judsking3922
Жыл бұрын
설잠스님ᆢ이십년쯤 매월당김시습의 흔적을 찾아서 무량사와 경주에서 스님의 영정을 친견한적이 있다.
@정동수-o7s
2 жыл бұрын
김종서는 세종께서 세상떠났을때 멀리 낙향했어야 했는데!
@youtubejhs5150
2 жыл бұрын
겨울비처럼 슬픈 노래를~이순간 부를까~
@user-hc6xk6of4r
2 жыл бұрын
♥할아버지 태종 이방원의 피를 이어받은 수양대군....이방원도 단종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했을 것이다...
@user-gz9xp1fe9r
3 күн бұрын
그피가 연산군 으로 흘러갔네요
@user-hu5be2vu4g
Жыл бұрын
김시습이 쓴 한문소설 용궁부연록은 개성의 박연폭포를 배경으로 쓴 글인데
@user-gm9ho3kk5k
2 жыл бұрын
조의제문으로 무오사화가 일어나 수많은 선비가 죽임을 당했다.그러나 몇백년후 똑같은 상황이 후김 즉 청나라에서 일어났다.청세자가 중원을 원정할 때 충분히 조카 세조를 없애고 자신이 왕이 될 수 있음에도 제 2인자로서 조력하였다.그런 도덕정치로 청나라는 오늘날의 거대 중국의 모태가 되었다. 깊이 생각해 볼 대목이다.우리는 최고가 중요한게 아니라 차선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조선의 역사를 보건데.. 매월당은 천재가 맞습니다. 이런 자유영혼을 가진 분이 조선 조정에 들었다면 허균과 같은 비극적 삶이 되었을 확률이 높습니다.
@user-rf9mv7du5s
2 жыл бұрын
세조 (1455~…) 1453..계유정난. ○ 철원 복계산 ☞ 김시습 조상치 박계손
@user-rf9mv7du5s
2 жыл бұрын
○ 철원 ☞ 궁예 김시습 임꺽정
@BianJinyan
2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user-vp8ol6wl2s
Жыл бұрын
덕유산에도 김시습에 흔적이있다
@user-ji5ec3hl1x
Жыл бұрын
왜그리 가슴이 아픈역사인가ㆍㆍㆍ조선시대는ㆍㆍ세종임금빼고 존경할수 있는 역사가 없음은 슬픔이다ㆍ
@user-oz9zu3fy4b
Жыл бұрын
맞아요!
@신기조-j1j
Жыл бұрын
평소존경하는어른매월당김시습아련히생각해봅니다
@hyun8317
9 ай бұрын
참 안타갑습니다
@흑기사-t8y
Жыл бұрын
이씨 조선이라! 씁쓸하네요!
@user-hg1jr5sp6d
2 жыл бұрын
인의예지신!
@user-oz9zu3fy4b
Жыл бұрын
잔인한 피의 군주 수양대군의 권력찬탈로 인해 죄없이 억울하게 고통스럽게 죽어간 그때 그시절 학문이 깊은 선비들이 많았을겁니다 😡 사육신처럼 목숨을 바치진 않았지만 암울한 그 시절을 한탄하며 세상을 등지고 이리저리 흘러다녔다는 생육신분들도 정말 훌륭하셨어요. 수양대군이 제대로 천벌을 받은것이 아주 당연한 것입니다 😡
Пікірлер: 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