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가 나 국딩 2학년 때인데, 아빠하고 TV권투중계 보고 있었는데 경기가 중단 되더니 관중들이 우루루 나가는게 아닌가??? 갑자기 동네에 사이렌 소리가 울리기 시작하고... 그러자 동네 5학년 형아는 전쟁 났다면서, 이제 학교 안간다면서 교과서 공책 등등 전부 찢어발겨 버렸으나 그 형아가 그토록 염원하던 전쟁은 당연히 안나고... 그 형아는 나중에 학교가서 선생님 한테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맞았음... 리웅평 상위 미그기 귀순으로 인한 남조선 비공식 인명피해: 부상 1명 (선생님 에게 맞아 치명상)
@vvkd4232
2 жыл бұрын
ㅋㅋㅋㅋㅋ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ㄲ
@user-sm6dz5qd7r
2 жыл бұрын
ㅋㅋㅋㅋㅋ
@user-qx1db4wk6p
2 жыл бұрын
동네 5학년 형아 한명만 있었겠소? ㅋㅋ
@user-wv3hb6pk5o
2 жыл бұрын
나는 구덕야구장에서 야구보든중이었습니다 심지어 제대한지 일년정도 지난시기라 심장이 쫄깃쫄깃 했죠
@woosiki
2 жыл бұрын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user-xu2wu4xz5c
11 ай бұрын
정말 똑똑한 사람임 저당시 비행기에 gps도 없을 시기 인뎅 900km넘는 속도로 100미터 이하 저 고도 비행으로 레이더를 회피하고 kbs주파수를 잡아 위치를 파악하고 남쪽으로 내려왓다는게 보통 머리가 아님 👍👏👏👏
@jungkim1693
10 ай бұрын
샤프하게 생기심 눈빛이 예사롭지 않으심..
@shpark1227
9 ай бұрын
나라9님 아덴만 영상에서 봤는데 여기서도 보네욬ㅋㅋ
@user-og5ff5ws7w
4 ай бұрын
몸값 비싼 북한군 귀순
@user-eu3jt5dq6n
Ай бұрын
태양을 오른쪽에 두고 서해 해안선 띠라 내려가면 남한에 도착함...
@user-xu2wu4xz5c
Ай бұрын
@@user-eu3jt5dq6n 목숨이 오가는 상황에서 그런 방법을 생각하고 행동을 한다는게 대단해용 그런 방법도 잇군요
@shkwon6556
2 жыл бұрын
이웅평 대령은 부모님 그리며 술 많이 드시다 간경변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간이식도 성공적으로 받으셨는데 재발하셨지요. 통일되는 그날, 영혼이나마 자유의 날개를 타고 고향으로 훨훨 날아가시기 바랍니다. 명복을 빕니다.
@ii0410
3 ай бұрын
@@user-fx1ym4ii7o국군 대령까지 가심
@zisuz9322
4 күн бұрын
언제 돌아가셨나요
@user-fs1tc8ow8p
3 күн бұрын
@@zisuz9322 2002년에 돌아가신걸로 알고있습니다..
@oldboy8844
2 жыл бұрын
50대 이상은 리웅평 모르는 사람이 없을듯,,,저때 어렸을적 서울살았는데 너무 놀랐다는 실제 공습경보 울려서,,,
@user-lf9vi3rd3f
2 жыл бұрын
ㄷ ㄷ
@beckham7591
Жыл бұрын
저도 초등학교2학년이었는데 기억이 생생합니다. 40대 후반도 알아요
@user-tm8ez9lt4x
2 жыл бұрын
와 진짜 훤칠하고 멋있으셨네. 근데 가족들 다 놔두고 혼자만 귀순할수 밖에 없었으니 평생 마음이 편칠 않았겠네요....
@user-qr4kf2ox5u
Ай бұрын
그래서 술로 지내우다 간경화로..
@user-sk4df1pk1w
Жыл бұрын
이분 마지막을 생각하면 너무 안타깝다... 이왕 남한에 잘왔으니 그대로 편하고 행복하게만 살다 가셨으면 좋았을텐데... 북에 남은 가족들 버린거라고 비난하는경우를 봤는데 당장 탈출하지않으면 죽을지도 모르는상황에서 다급하게 탈북한걸 비난할순없다고 생각해요 북한의 폭정에 의한 피해자였으니 모든걸 감안하고 명복을 빌어줍시다
@user-km3oj7qu9z
4 ай бұрын
비난하는 애들은 주사파 애들이죠 운동권놈들
@pixeladams123
2 жыл бұрын
진짜 귀순병사중에 최고로 스펙타클하게 오셨네
@yijim1551
2 жыл бұрын
스펙타클은 판문점귀순 아니냐?? 총알 맞고 피하고 우리군이 구출
@No_war_let_me_peace
2 жыл бұрын
@@yijim1551 그리고 음주운전 구속 ㅋㅋㅋ
@ighybrid
Жыл бұрын
기생충 이빠이 나왔다던데
@Jason2001.
9 күн бұрын
@@No_war_let_me_peace 진짜래요? ㅋㅋㅋㅋㅋㅋ
@_RED_FISH_
4 күн бұрын
@@Jason2001.놀랍게도 실화임 탈북자들 적응 못하고 북한에서 하던것처럼 막가파 많고 범죄 저지르고 도망온사람도 있음
@gabijohn5683
2 жыл бұрын
저 당시 비상착륙 현장에 아버지가 계셨음. 수원 10전투비행단에 복무하고 계셔서. 이웅평이 타고 있던 미그기가 똑바로 날지 않고, 기체가 좌우로 뒤뚱뒤뚱 거리면서 날아왔다고 함. 전투기가 기체를 흔들면서 비행한다는 건, 적에게 항복한다는 신호임. 당시 활주로에 있던 사병들이 처음에는 일반 비행기로 착각했다고 함. 그러다 바로 비상경보 울렸고 비상 착륙 인도한 거임.
@user-bs7zy6oq6v
2 жыл бұрын
오! 기체를 흔들면서 비행하는게 항복한다는 신호군요. 처음알았어요 ㅎㅎ 진작에 격추되지않겠나? 생각했는데 이런 사실이
@user-bu5sh5qp6h
Жыл бұрын
뱅크기동이라고 불리죠
@user-uw8wk7qn7l
Жыл бұрын
지식+1 증가 감사합니다
@user-he9zk5so7x
Жыл бұрын
아부지60년생?
@user-ed2dq3iw6h
Жыл бұрын
뻥치지마. 니 지금 고등학생인데 니 아버지가 어떻게 저기 있냐? ㅋ
@darklight03
2 жыл бұрын
와.. 돈을 진짜 많이 받으셨네 근데도 사업하거나 놀지 않고 군에서 일하신게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user-db8bl9xu9k
2 жыл бұрын
그랬으면, 사기당하거나 다 까먹었겠죠. 똑똑한거죠. 대령으로 예편했으니, 연금까지 제대로 받았을꺼고, 확실히 챙겨드셨네. 그쪽 부모님과 형제들은 아오지행이었겠네.
@Battlee
2 жыл бұрын
@@user-db8bl9xu9k 당시 북 최신 무기가 도둑맞은건데 ㅋㅋㅋ 농담아니고 아오지 절대 아니고 저분 3대 모두 사형입니다. ...
@user-oy3lb5ix8x
2 жыл бұрын
@@Battlee 더이상 잃을게 없었기 때문에 저런 돌발행동을 하지 않았을까요?
@Battlee
2 жыл бұрын
@@user-oy3lb5ix8x 영상보면 북에 가족있다 나오네요
@scms2828
Жыл бұрын
@@Battlee 부모는 처형 당하고 아들,누이들은 완전 통제 구역인가에 있다고 하네요...
@JIN-qg8mi
Жыл бұрын
이런말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ㅈㄴ멋있어요 전투기 몰고 탈출이라니
@user-nb8pw4gk6t
2 ай бұрын
여의도에서 환영식을 대대적으로 할 때, 비가 내리고 있었어요 이웅평대위께서 만세를 외치실때 가슴이 뭉클하고 벅차고 또 비맞는 모습이 너무나 가슴아팠어요. 42년이지난지금생각해도 왜그리 눈물이 쏟아졌는지 알수가없네요.
@grizzlyfired6553
2 жыл бұрын
당시 남한 공군은 꿈도 못꾸던 최고급 가죽 자켓에 기골이 장대한 훤칠한 멋쟁이가 항복의사 두손 들고 내린것도 아니고 비행기에서 성큼성큼 내려와 먼저 한국군 장교에게 악수 청하고..한국군 장교 하마터면 관등성명 댈뻔한 분위기.저사건이 83년 2월이고 난 7월달에 입대해서 83년 10월달에 버마 아웅산 테러 터지고 하마터면 재수없이 군대에서 실제상황 싸이렌 2번 들을뻔 했음. 진돗개발령 상황과 학교 시험때 답안지 못썼는데 시험지 가져가는 꿈은 정말 졸업후 제대후에도 수없이 많이 꿨는데 군대 가있는 꿈은 특히 최악.
@SUN-wo2ez
2 жыл бұрын
아녀요 이월은 아니고 프로야구 하다가 싸이렌 났으니 사월 오월쯤 인것 같아요 야구 라디오로 듣다가 화장실에서 났던 사건임 확실합니다
@user-fx1ym4ii7o
2 жыл бұрын
@@SUN-wo2ez 5~6월 일요일 이었지
@abcd-pe7tx
2 жыл бұрын
저때 남한 공군은 f4 팬텀을 운용중이었고 조종사는 g슈트를 착용했음. 가죽쟈켓 따위보다 훨씬 발전된 우월한 장비를 사용하고 있었음.
@user-yi5wo4ge1q
4 ай бұрын
그거 그냥 재연 영상이라는데
@user-rf7zz6fh9q
17 күн бұрын
프로야구때 싸이렌은 중공 여객기 항로 이탈 때 아니었나요?
@ghjkh482
2 жыл бұрын
에구 난 이세상에서 태여나지도 않을때네. 이런일도 있었구나. 근데 전투기에서 내리는 모습 넘 멋있다
탈북자한테 이웅평씨 가족들 다 몰살시켰다는 소식 듣고 매일 술로 괴로움 다래다 간암으로 사망... 엄청 괴로워 했다지요.
@user-ed2dq3iw6h
Жыл бұрын
쟤땜에 가족 몰살 ㅋㅋ
@jhye777
Жыл бұрын
@@user-ed2dq3iw6h 니땜에 이미 너희 부모님 억장 몰살 ㅋㅋ
@user-jj9mi6ti8t
11 ай бұрын
@@user-ed2dq3iw6h남은 가족을 두고 탈북을 한다고 했을 때 북에 있는 가족들이 잘못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하진 않았을 테고 꼭 남한에 와야 할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요? 두고 온 가족 생각에 힘들어했던 사람 얘기에 그렇게 비아냥 거리며 얘기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user-tc9ql8vp5s
7 ай бұрын
북한 입장에서보면 너무너무 심한 역적이라 혹 그 가족들이 3대가 아닌 5대이상 고통받고 있는건 아닌지 너무 걱정스럽네요.
@algerhoratio1621
2 жыл бұрын
최초이자 최후였죠,, 대단한 일입니다
@traveler07
3 ай бұрын
아닙니다. 조금만 관심갖고 찾아보시면 나오는데. 최초는 1950년 4월에 ll-10을 타고 넘어온 이건순 공군 중위로 1974년에 공군 대령으로 예편. 그 후 1955년에 Yak-18 훈련기로 함께 탈북한 북한 공군 이운용 상위와 이인선 소위(역시 대령까지 진급함). 1960년에 MiG-15를 타고 귀순했던 정낙현 소위(역시 공군 대령까지 감). 1970년에 MiG-15를 타고 넘어온 박순국 소좌(1976년 한국에서 사망 당시 중령이었으나 사후 대령으로 추서됨). 그다음이 이웅평 대령님이고. 마지막으로 1996년 MiG-19기를 타고 귀순한 이철수 대령님까지 계십니다. 공군쪽만 이렇게 되며 육군이나 해군쪽도 있고요.
@user-ns9qu9yo8g
2 жыл бұрын
대만도 중국전투기가 상당히 많이 귀순했는데, 빵터진 귀순이유도 있는게 왜 중국에서 대만으로 귀순했냐 물으니까 등려군 보고싶어서 귀순했다고 함 그래서 공군참모총장이 빵터져서 등려군을 이사람 귀순환영식에 초청했다고함
@hyeon8046
Жыл бұрын
대만으로 귀순이요? 귀순이 아니라 망명이겠죠. 님은 대만을 중국과 같은 나라로 보고 있네요. 귀순은 같은 나라에서 쓰는거고, 다른 나라로 가는게 망명이죠.
@user-pe2yc3ht1f
Жыл бұрын
@@hyeon8046 다른나라에서보면 우리나라랑 북한도 서로 다른나라임. 그리고 중국과 대만은 각각 타이완섬과 중국본토가 자기나라 영토라고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고수하고있음. 최근들어서 많이 바뀌긴 했지만 법에도 있는만큼 그 근본은 변하지 않음. 하나의 중국 원칙을 기본으로 깔고보면 대만입장에서는 귀순이 맞음.
@user-nu8gt6rw6p
Жыл бұрын
@@hyeon8046 장체스 마오쩌뚱 즉 민주 와 공상 두 사상이 싸우다 장체스가 져서 튄땅이 대만임... 한마디로 두민족은 같으나 사상이다른거면 귀순이 맞음.. 우리도 625때 낙동강밀렷으면 대만마냥 제주도만 한국이였을꺼임 섬이라고 귀순이 망명이됨?
@Sibasinu
Жыл бұрын
역시 월량대표아적심의 나라 대만, 낭만있네
@chickenfrieddish
10 ай бұрын
등려군은 못참지 ㅋㅋㅋㅋㅋㅋ
@user-yx1yg4xp3c
2 жыл бұрын
참.. 탈북자들의 가장 큰 고통.. 북에 남겨진 가족들..ㅠㅠ
@grimreaperkim9433
Жыл бұрын
대한민국 공군대령까지 올라간 것도 대단...
@user-by3fb5ut3i
2 жыл бұрын
애절하네. 고인이신데. 존경합니다
@user-dl1yw1sx9r
2 жыл бұрын
북한사람인데 피지컬이 장난아니네ㄷㄷ
@stevennbafan6611
2 жыл бұрын
저때는 북한이 우리나라 보다 잘살아서 잘먹고 잘컷거든
@sebastiancho9219
2 жыл бұрын
@@stevennbafan6611 저때는 우리보다 못 살때거덩 ..뭘 알고 씨부리자 ㅡ.ㅡ
@Pocari413
2 жыл бұрын
@@sebastiancho9219 이웅평 성장기라면 북한이 더 잘 살 때 맞는데
@ighybrid
2 жыл бұрын
180 ~182라던데 ㄷㄷ
@user-gm8tn6uc8n
2 жыл бұрын
듣기론 북쪽지방이 덩치가크고 키가 큰유전인데 못먹어서 그런것같은데 그래도 군인신분으로 일반인민들보단 잘먹었을듯요. 아는동생도 새터민인데 집이 중산층 정도는 되어서 밥은 굶지않았다네요 그래서 그런지 현북한사람들 치고 키170대는 넘드라구요.
@leeheesung5912
2 жыл бұрын
ㅜㅜ 행복하게 발 사셨으면 좋겠어요.. 아 돌아가셨구나.. 남은 가족들도 행복하시길
@user-pg6id3zf6f
2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user-ey2cv1fd4v
3 ай бұрын
일찍가신게 너무 맘아프네ㅠ 부디 극락왕생하시옵기를🙏🙏🙏
@100redrose6
2 жыл бұрын
이웅평 대위가 남한에서 대한민국 시민권자와 단란한 가정과 권위 능력 직위 계급에도 늘 술과 말 못할 심적 고통과 압박으로 적응못하고 현실감각에서 깨어나지 못한것이 북측에 남겨진 가족들의 생사와 죄책감때문에 간암으로 모든것을 스스로 내려놓음 결국 ~ 남겨진자와 살아남은자의 풀지못할 속쇄인것
@user-wl7nh9lj1e
2 жыл бұрын
크 멋있네요 자유를 향한 날개..
@user-fr7ec6mk4q
Жыл бұрын
이웅평씨를 제가 직접보았는데 신기했어요 형사분이 꼭 같이 있더라구요 신기했어요
@shoxtl0709
Жыл бұрын
저는 1996년 초등학교때 수원 살았었는데 오전에 학교에 있을때 공습경보가 울렸었는데 그 때도 미그기타고 북한군이 수원에 귀순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Hayan_Yeou
Жыл бұрын
라디오로 방위 맞춘건 현재는 퇴출 되고 있는 ADF를 이용한 방법입니다. ADF에 주파수를 맞추면 주파수가 나오는 방향을 계기가 가리켜요. 2차대전 당시 일본애들도 미국 라디오 전파잡고 간적도 있고 ADF로 라디오를 듣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물론 FM방송이 아니라 AM 방송입니다. 현재는 잘 안쓰이는 항법 방법이며 VOR/DME, GPS로 대체 됐습니다.
@wjdgus4432
Жыл бұрын
순수한 마음을 가진 귀순 용사네요 멋집니다
@user-lg1pb8wv7z
2 жыл бұрын
저 시절 15억이면 작살나네.... 북한 공군한테 15억 홍보했으면 줄줄이 올지도 모르는데 ㅋㅋㅋㅋ
@user-sd8dq9jj8s
2 күн бұрын
전투기에서 내려 인사할때 표정이 꼭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 반가워하는 표정이네요
@user-qx1db4wk6p
2 жыл бұрын
83학번인데 그 때 당시 서울의 사립공대 등록금이 50만원이었습니다 지금 사립공대 입학금이 420만원 정도이니까 ...
@TimeMaster33
2 жыл бұрын
당시에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서 살때인데 갑자기 공습경보 울려서 진짜 시껍했던 기억이...
@user-haha777
2 жыл бұрын
83년도 대학입학을 앞둔 어느 날 싸이렌소리가 생각나네요.국민여러분 실제상황입니다! 라고 반복해서 외치던 다급했던 경계경보
@user-zg5rp3vn3i
Жыл бұрын
자유에 오신걸 환영 합니다 대단 합니다
@SiA-oj2em
2 жыл бұрын
이웅평 대위가 말한 북에서는 북침 교육을 하고 있다고 했는데 자막은 북침을 남침으로 바꿔서 적었네요.. 남한이 먼저 공격했으면 북침 북한이 먼저 공격했으면 남침이 맞습니다
@user-qf3zg7dj4o
18 күн бұрын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힘내세요 ❤❤❤❤❤❤❤❤❤
@JejuCamperJoonbo
Жыл бұрын
우리나라 공군 멋지네요
@8rang_17
Жыл бұрын
가족들이랑 함께 왔으면 좋았을 텐데... 물론 불가능한 상황인 건 알지만 돈을 저만큼 받고.. 가정을 꾸리셨어도 북에 남겨진 가족 생각에 얼마나 슬프고 괴로우셨을 까 싶네요..
@user-nf6ow6ln7u
Жыл бұрын
그러게요
@user-sx6rv8ey4x
8 ай бұрын
이미 북에서 결혼해서 자식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jeehyelee3560
2 жыл бұрын
인생역전이라고 할 수 있는 반면 가족들 생각에 힘들었겠다. 키 180ㄷㄷ 추운지방 사람들이 더 키 큰 유전자이긴할텐데.. 북한사람들 잘 못 먹어서.. 남자평균키 165정도아닌가 어딜가든 눈에띄게 컸겠다
@Polar_bear1974
2 жыл бұрын
원래 남방계보다 북방계가 타고난 피지컬이 좋음. 요즘은 영양부족으로 다까먹는중...
@szk25
4 ай бұрын
도대체 같은 민족에 남북한 다해도 남북방 갈라봐야 의미가 없는데 무슨 피지컬 ㅋㅋ.. 영양공급 질좋고 본인이 운동하면 피지컬은 얼마든지 키우는거지 북방계 얘기하려면 무슨 몽골계 정도는 보고 얘기해야지
@user-no5hu9pn7k
15 күн бұрын
남방계북방계는 그런걸 따질때 쓰는게 아님.북한주민이라고 전부 북방계가아님.남한주민이라고 전부남방계가 아님.
@user-cr1fy8ne1u
2 жыл бұрын
저때 쓰던 F-5를 아직도 쓴다는 것도 놀라움
@shkwon6556
2 жыл бұрын
국민학교 4학년이었구나. 전쟁나는 줄 알고 꼬맹이 시절에 급 비장해졌던 느낌 아직도 생생.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싸워서 이겨야지 생각했다. 야구 중계하다 갑자기 사이렌 울리고 경기 급중단, 동네 아저씨들은 북괴 공군기가 아군 전방 공군기지 공습한 모양이다, 웅성웅성.
@user-rz4it6vl7m
2 жыл бұрын
내나이 29살때 내천에서 낚시하고 있을때 일어났던 날 이네요 그당시 머리끝이 하늘 높은줄 모르고 곤두섰었는데 조금 지난후 해제 됐지만 ㅎㅎㅎ
@user-jc7bo4iq3b
15 күн бұрын
애초에 북한에서 전투기조정사라는것자체가 엘리트중의 엘리트임. 똑똑한거죠
@user-yy4xq7lz5t
2 жыл бұрын
와 83년에 15억6천만원을 한방에 땡기다니 귀순해서 제대로 성공하셨네
@salib749
2 жыл бұрын
수원서 시내뻐스타고 가다가 격은 일이네요. 그때 깜짝 놀랐지요...
@user-bk8qj9ew9k
2 жыл бұрын
이웅평씨는 귀순전에 이북에서 우리가 보내준 라면봉지의 반품에 관한 글자를 보고 처음 탈북마음을 갖게된것이라고 당시 말하였읍니다
@user-ml6lg1wj8e
2 жыл бұрын
,,
@user-vb4mr6zr9c
2 жыл бұрын
좀오래 사셧으면 좋았을텐데 두 고온 가족들 생각에 술 때문에 일찍 가셔서 안됏어요 ㅋㅋ
@hjlee3838
2 жыл бұрын
@Note_Allen 그냥 그러러니 합시다. 저분들이 배울 땐 저게 바른 맞춤법이었습니다.
@MultiDanielan
2 жыл бұрын
@Note_Allen 따지기는.. 뭣이 중요한디ㅋㅋ
@gim56788
2 жыл бұрын
그거 말한적 없다고 하던데요
@dahmha9162
2 жыл бұрын
86년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군대를 가기 바로 전날 싸이렌이 울려서 동네 사람들에게 말해도 믿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처음 있는 일이라서 전혀 동요를 하지 않았던 기억이 나네요. 언제가 중요하지 않고 우리가 준비되지 않으면 언제든 나라의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사실
@user-ko3eu2ce2d
2 жыл бұрын
83년이맞습니다 내가전역이83년인데 이웅평대위월남후 제대했습니다
@frankismet
2 жыл бұрын
83년이 맞는듯요 이웅평대위 월남했을땐 성북구에 살았고 86년엔 목동에 살았는데.. 성북구에서 TV로 본기억이 확실히 남. 싸이렌까지는 기억이 안나도 하루종일 TV 특보로 틀어대서 그건 확실히 기억남.
@user-jc6uu2mh5o
2 жыл бұрын
구라..
@byungsupnoh414
2 жыл бұрын
85년에 전역함. 확실히 83년 논산훈련중 청소년축구 4강소식도 들었다
@McLee
2 жыл бұрын
83년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다시는 국민학교죠, 이웅평 귀순은 정말 엄청난 사건이었죠
@slicepark6940
2 жыл бұрын
4학년 방학때였나? 외가에 놀러갔었는데 이 뉴스보고...와 엄마 아버지 못 보는거 아닌가 했었는데 ㅎㅎ
이웅평씨는 암살의 공포, 북에 남긴 가족걱정으로 폭음하다가 간경화가 왔고 간이식 받아서 살아나나 싶었으나 결국 이른 나이에 돌아가셨습니다
@user-rp5dl5vi6x
2 жыл бұрын
와~대박 소름
@sjpark4237
2 жыл бұрын
고위급이나 똑똑한 탈북자들이 많이 와야 한다......
@user-fx1ym4ii7o
2 жыл бұрын
위험하지 어떤맘으로 탈북했는지.,
@user-fx1ym4ii7o
2 жыл бұрын
고위급 이나 똑똑한 탈북자는 대한민국의 안보상 더 위험하고 ,멍청한 척 하는 탈북자도 다 받아 주지 말아야 돼.앞으로 몇년 계획을 세워서 김정은이 일부러 풀어서 탈북자로 보내는것 일수도 있지...남한과 북한의 경계 초소가 동네 야산이나 개울건널 정도로 허술하진 않을텐데 어떻게 그리 쉽게 잘도 넘어들 오나?
@user-vr3oj5xi5d
2 жыл бұрын
북악스카이웨이 경계근무중 진돗개하나 발령되고 전 부대 개인호 투입하고 실탄 수류탄 지급되는등 백프로 전쟁난 줄 알았죠.엊그제 같네요ㅎㅎ
@gim56788
2 жыл бұрын
와.... 아 근데 다시 봐도 진짜 훤칠하다
@taeri101
4 ай бұрын
8:40 진실이 아닌 사상을 스스로 깨부수고 자유를 찾아 떠난 역사를 남긴 게 의롭다고 한 것 같아요!
정말 저때 기억납니다!! 깜짝 놀라서 거의 패닉상태였던 기억이.. 그리고 엄청난 스트레스로 거의 알콜에 의존하는 삶을 사시다가 요절하신걸로 기억됩니다.
@user-ym3nj9by7b
2 жыл бұрын
미그기 귀순 이웅평소령 요즘은 좋은 B형간염 치료제가 많아 B형간염 바이러스 보균자는 병이랄것도 없이 하찮은 정도여서 일찍 치료약 복용하면 간경화나 간암으로의 진행을 막는 치료가 잘 되므로 정기적인 검진과 함께 금주 과로를 조심하면 완전 정상인으로 천수를 다할수 있는 좋은 세상인데 간경화에서 진행된 간암으로 생체간 이식까지 받고도 일찍 유명을 달리한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BigOneFishingClub
2 жыл бұрын
밑에 댓글에 아재들 많던데 ..... 동사무소에서 훈련 상황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라고 반복해서 방송을 하는 바람에 할머니는 또 전쟁이 터진거라며 염병헐 놈들이 조용히 좀 살지 않고 또 지랄한다고 ㅋㅋㅋ 나도 쫄아서 아무 말도 못하고 엄청 무서웠던 기억이... 이대령이 남조선에서 살았던 삶은 또 인생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다고 허더군요 늘 간첩으로 부터의 테러와 남조선 당국의 감시로 부터 불안한 삶을 살아야만 했고 간경화까지 이어지는 바람에 많이 불행했다고 하더군요 아이들은 잘 컸는지 모르겠네요 .
@user-jy1ww6hs8y
2 жыл бұрын
영상에는 F5편대가 아닌 F4편대 입니다
@alpacino6641
Ай бұрын
군복무 일병때 이웅평이가 넘어 왔는데, 군장차고 사단 전군 전쟁태세 돌입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어느듯 40년이 되었네요
@user-wf8dk7vr7e
Ай бұрын
잘오셨습니다 환영합니다❤😂🎉😅😊
@user-tb8wz3yp8z
2 жыл бұрын
키크고 잘생겨서 인기짱이었는데 ㅎ
@user-hy5xu5sk5u
Жыл бұрын
지금껏 본 탈북한 사람들 중에 키가 젤 큰 느낌. 걷는것도 엄청 당당하고.
@JackTheTato
Жыл бұрын
전투기운용할 정도면 잘먹고 자라셨을듯 싶네요
@user-od1gv1vu2k
2 жыл бұрын
그전휴전직후에노금석소령이귀순했지요.피아간귀순할때 총가지고오면저들은 몇백원비행기몰고오면몇천원했어요.우리도 대북방송시에 마찬가지로 얼마얼마를포상금을준다고해습니다.
@bradgatz
2 жыл бұрын
아 그 때 북한인이냐고 놀렸던 리현진 누나가 리웅평 가족 일수도 있겠네. 잘사는 집이던데
@user-nk1hu4xr4b
2 жыл бұрын
초딩 때였는데 기억나네요
@hggffffdfhyesbvdxsswwwbbvc5773
Жыл бұрын
저 당시 북한 사람 신장으로 180. 대단한 집안이였나보네
@3gb6ol1w
2 жыл бұрын
이때 내가 중학생이었는대 수원 완전날리났음 이후 북한은 공군들에게 기름을 조마조마하게 주입을했다고하지 또다시 귀순하는것을막기위해
@user-lr1gg1qt6b
7 ай бұрын
저85년생입니다 초등학생,시절 선생님으로부터이 때의 이야기를 들었던적 있습니다. 전투기 조종사의 귀순!!! 실제 이사건이었었군요!!
@sksk-zq8nj
2 жыл бұрын
벌써 40년전이네 서울에서 직장 다닐때인데
@user-ed2dq3iw6h
Жыл бұрын
죽을 때 다 됬구만.
@user-ry3vo7qi5h
2 жыл бұрын
이웅평님 기자회견 자막 오류났네요. 북에서 남침교웍한다고한거..
@user-wr6cq1fw3x
2 жыл бұрын
이웅평공군대령~
@user-sx2cr2hd8r
2 жыл бұрын
전투기를 몰고왓기에 포상금으로 현재금액으로 160억 정도를 받앗다고 합니다. ak소총 가져온 병사는 1600만원정도 받았다고 하지요.
@jins8686
2 жыл бұрын
1600만원…. ㄷㄷ 저당시면 각그렌저 살돈아닌가요??
@xenic1331
Жыл бұрын
총알값도 주죠 ㅋㅋㅋ
@jdp8083
11 ай бұрын
83년도 저대 이등병이었던분덜 군 자대가자마자 전쟁나는줄아셨겠어요 ㅋㅋ 얼마나 후달렸을까 ㅋㅋ
@user-jd7sc6bl7m
2 жыл бұрын
나도 그대 서울에 이는데🚀🛩✈ 정말전쟁~~☄줄알고 부산에 언니한테 🤳전화하고😇한동안 🎁짐챙기고 하다가 끝😅😂🙏🙏
@@user-ed2dq3iw6h실제로 비상상황 나면 식량같은 물자가 제일 중요함 미친거보단 현실직시하고 빠른 행동 하신 현명한 분인거같은데??? 그냥 피난 가봐야 배만 곪지
@--6929
2 жыл бұрын
7:54 남침x 북침 자막틀리섰음
@user-pz8xb9xv2v
3 ай бұрын
몇화인가요
@user-dh6in1ov8v
Жыл бұрын
강원도 강릉에도 울렸습니다. 해변가에서
@user-mh2dz4fl2g
2 жыл бұрын
부모님 보고싶겠다
@user-hz9ez7ws3y
Жыл бұрын
아 그런데... 가족이 있으셨구나... 전투기까지 타고 남으로 날아버렸으니 신원 파악이랄것도 없이 누군지 알것이고 그 가족들은... ㅜㅜ 가족들에게 말하고 나올 시간도 없었으니 가족들은 아무 대비 못한채 정부에게 당했겠네요... 이런것때문에 이분도 오셔서 그렇게 술을...
@ij4244
2 жыл бұрын
그당시 민방위 본부 발령담당자가 큰 실수를 했다. 공습경보를 발령시 경기 서부라고 해야되는데 전국으로 발령했으니 큰 실수 ! Fact.
@bigangel8435
2 жыл бұрын
여보쇼 저렇게 긴급 상황시에는 녹음으로 정해진 메뉴얼이 있네요.
@hyunchulha3493
2 жыл бұрын
그때 ~"출격했던 비행단장 숙청 되었겠다 ` ~김일성 시대인데`
@analog4863
Жыл бұрын
83년도는 맞는것 같은데 2월달이 아니죠. 당신에 군복무중 였습니다. 공습경보 울려서 무장하고 대기 했었습니다. 전군이 전쟁 준비 상태로 대기했던것 같습니다.
@blue-cw6vv
7 ай бұрын
저희 어머니도 대학생때 부산에 놀러가신다고 가족들과 떨어져서 혼자 계셨는데 사이렌 울려서 너무 무서웠다고 매번 말씀하심.
당시 중고기체 가격 신품 50% 120만 달러, 달러당 795.5원이면 대충 10억 나오는데 15억 6000만원이면 진짜 풀로 준거네요. 전투기 신품일때 20억 정도하는데...
@user-zi9fd4mc3o
2 жыл бұрын
기계값만 받는게 아니고 군사비밀도 인계받았잖아요
@user-xm9mp1fx6k
2 жыл бұрын
@@user-zi9fd4mc3o 보로금 얼마전 개정전 최대액수가 1억이었어요. 저때는 더 낮았을거에요.
@user-vr1hz7qx4g
Жыл бұрын
적국에게서 10억 뺏고 우리나라에서 10억 이득이니 두배입니다
@xenic1331
Жыл бұрын
기총, 탄 등 장비 값도 줘야하죠. 정보 제공비도. 총들고 귀순하던 병사들 철책 부근에서 총버리고 온 경우 많은데 이 사실알고 농담삼아 후회했다하죠 ㅋㅋ
@user-xm9mp1fx6k
Жыл бұрын
@@xenic1331 제일 후회하는게 북한 신분증으로 알고있어요. 생각보다 많이 준다고 들었어요.
@bsmrailroad
2 жыл бұрын
썸네일 분홍색? 머리긴분 누구신가요? 이쁘네요
@user-vs3qn9me3m
2 жыл бұрын
동해안 여름휴가 다녀오다 전쟁터진줄
@gjo1542
Жыл бұрын
83년 2월 25일 (일요일)실제상황 입니다. 인천에 적기공습?
@user-gf8bd8wy8y
Жыл бұрын
나는 직장이 사천공항 근처였는데 20년쯤전인가 ? 불은별 선명한 초록색 미그29가 사천 공항으로 날아 들어가는 것도 봤다 미그29도 코브라 기동하더라
@user-fx1ym4ii7o
2 жыл бұрын
83년도 2월이 아니라.반팔 입었던 여름, 일요일 오후2시경 이다...가까운 유원지에 운동삼아 걸어 갔다와서 .늦은 점심 (칼국수) 먹으려던 중...실제 상황 이라며 싸이렌 울리며 뉴스 나오는 소리 듣고.휴일이라 쉬던 주변의 군인들이 전투복 챙겨 입고 각자의 부대로 복귀했던날 이다. 39년전 일이다....
@user-zb5qo8vg8r
Жыл бұрын
@@user-cf3hc9pu3k 중국 민항기는 83년 5월5일에 납치되서 대만으로 가려다 춘천에 착륙했구요 내가 이등병때인 83년 8월 7일 일요일날 활동화 빨아 옥상에서 쉬면서 말리고 있는데 실제 인천이 폭격 당하고 있다고 완전군장하고 대기하는데 나중에 방송에서 손천근씨가 미그 21 몰고 귀순했다 하더이다
아닌데...?? 83년8월 정도로 기억나는데... 그당시 일병 막 달려고 하던 때. 토요일인가...일요일인가.. 점심먹고 좀 지난 시간이었죠.. 중공민항기 때문에 실제 공습경보 울려서 비상났고 완전무장 대기, 휴가 외출병들 막 귀대하고 있었고... 이웅평 올 때는 안났던 거로 기억 함.. 벌써 39년이 지난 일이지만 당시 베낭끈 만지작거리면서 ' 아 일병도 못달아보고 죽는구나...'하는 생각 했던 적 있어서 기억은 생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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