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는 것 자체로 국가비밀에 해당하는 극강의 인간병기들::전쟁이 아니면 절대로 볼 수 없는 남자들
#특수부대 #707특임대 #UDT
육군에는 특수전사령부가 존재합니다. ‘안되면 되게 하라’는 구호로 유명한 대한민국의 대표선수죠. 우리가 흔히 특전사라고 부르는 이들인데요. 아무래도 육해공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육군인만큼 그 특전사의 역사도 상당히 긴데요. 1945년 광복군 독수리 요원들이 미국 첩보부대 OSS와 함께 '독수리 작전'을 준비한 것이 특전사의 시작입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상하이에 첫 발을 내디딘 후 1945년 8월 15일까지 27년동안 중국 땅을 떠돌았는데요. 그러다 1942년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으로 승리가 기울자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빼앗긴 한국 땅을 되찾기 위해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1945년 한국은 미국과의 협의 아래 광복군에서 필요 인원을 차출하면 그들은 미국 정보국 OSS가 훈련시켰는데 주요 훈련은 암호해독, 독도법, 시설 폭파를 위한 사격 및 적진에 은밀히 침투하는 잠입술 등이었습니다. 그래서 훈련을 마친 이들은 비밀리에 한반도로 투입되어 '독수리 작전'을 펼칠 예정이었으나 8월 15일 일본에 핵폭탄 두 방이 떨어지면서 38명의 독수리 요원은 낙동강 오리알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한국전쟁을 맞이하며 그들 중 일부는 미 극동사령부직할 특수첩보부대 '켈로부대(KLO)'로 활약하게 되죠. 사실 켈로부대는 한국전쟁 당시 상당히 중요한 임무를 맡았습니다. 'KLO'라는 단어는 '주한 첩보연락처(Korean Liaison Office)'의 줄임말인데요. 광복 이후 남한에 주둔하던 미 육군은 방첩대를 운영했습니다. 1945년 9월 9일에 최초 방첩대원들이 한국에 들어왔는데 그들 대부분은 태평양 전쟁 당시 오키나와 전투에서 활약했던 인물들이었죠. 그리고 그들은 대북공작을 담당하다가 서울에서 활동하던 백의사, 정의사 등 여러 반공단체를 망라해 켈로부대를 만들었습니다. 1948년 미국에서 파견된 방첩대는 공식적으로 철수했지만 요원 대부분은 그대로 한국에 남아 켈로부대를 구성했는데요. 그러다 미 극동사령부 산하에 제8240부대를 창설해 첩보부대 및 유격부대를 통합해서 운영하다 전쟁이 끝난 1953년 9월에 전격 해체됩니다. 그러나 이들 중 군에 계속 남아있기를 원하던 인원들은 한국군 소속으로 변경된 8240부대 산하로 있다 일부는 육군 부대로 그리고 또 일부는 북파공작원을 전문적으로 양성하던 HID부대로 소속되기도 했죠. 그 중 육군부대로 간 켈로부대원들은 1957년 육군 특수부대 창설준비 요원이 되었고, 이듬해 1958년 일본 오키나와의 미 육군 특전부대 제1특전단에서 교육을 받고 돌아와 이들이 제1공수 특전여단을 창설했죠. 이것이 현재의 특전사입니다. 사실 켈로부대는 첩보활동을 벌였기때문에 상당수 인원이 북한에 침투했는데 북한에 머물던 요원들은 휴전과 동시에 한국과 미국정부 양쪽에서 모두 버림받았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한국전쟁에서도 이들은 엄청난 전과를 올렸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전과는 바로 인천상륙작전인데요. 맥아더 장군이 남한의 명운을 건 도박과도 같은 인천상륙작전을 계획하면서 인천 앞바다의 '팔미도'라는 섬을 장악해 등대를 켠 것이 바로 이들이죠. 이들이 없었다면 아마 인천상륙작전의 성공도 보장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켈로부대는 작전의 특성상 그들의 존재는 절대로 노출되서는 안됐기때문에 계급이나 군번도 없이 낙하산을 타고 적진 깊숙이 침투해 첩보활동을 벌였습니다. 여기에 더해 각종 파괴작전 등을 수행하면서 치명타를 가했는데 워낙 극비작전에 투입되었기때문에 그들의 존재는 어떤 역사책에도 기록되지 못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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