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육군사관학교 졸업, 일본군 대위 출신의 독립군 사령관 김경천
그는 1920년대 ‘백마 탄 김장군’이란 별명으로 조선민중들의 영웅이었다.
소비에트 당국에 압수되었던 친필일기 「경천아일록」은 1920년대 초반 연해주에서 치열한 조국광복전쟁을 치룬 김경천의 전투일지이자 고뇌에 찬 지식인의 증언이다.
그런 식민지 조선의 희망이었던 김경천은 왜 전설로만 남았는가? 역사 속에 묻힌 할아버지의 과거를 찾는 증손녀를 따라 독립전쟁 영웅의 비장한 삶을 돌아본다.
- 백 년의 유랑, 카자흐스탄의 독립군 사령관 후손들
1937년 강제이주로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카자흐스탄으로 옮겨와 지금까지 거주하고 있는 김경천의 후손들. 김올가씨는 카작인들과 슬라브인들 사이에 이방인처럼 존재하고 있는 고려인들과 자신의 정체성을 알기 위해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최근 발굴된 할아버지의 한글 일기 「경천아일록」에서 김올가씨는 할아버지의 고뇌를 느낀다. 할아버지는 왜 그런 어려운 길을 갔을까?
돌아가신 지 8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찾지 못한 할아버지의 무덤과 유해를 찾기 위해 김올가씨는 긴 여정에 오른다.
- 김경천은 누구인가?
“2천만 전 민족을 통틀어 보아도 나만큼 국가를 위한 학문을 배운 자가 없다.”
무관 집안에서 태어나 나폴레옹을 동경하여 군인이 되고자 했던 김경천. 그는 관비유학생이 되어 일본으로 유학한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지만 재학 중 한일강제병합으로 나라가 망해버린다. 지키고자 했던 나라가 망한 것에 크게 상심한 김경천은 일본의 군사지식을 배워 만주로 탈출하여 항일무장투쟁을 하기로 결심한다.
- 마침내 전선에 서다
1919년 6월, 일본육사 3년 후배 지청천장군과 함께 만주로 망명한 김경천은 신흥무관학교를 찾아가 교관이 된다. 이후 당시 가장 치열한 항일무장투쟁이 벌어지고 있던 러시아 연해주로 이동한다. 그곳에서 일본의 사주로 한인촌을 약탈하는 중국 마적을 소탕한다. 이만전투 등 여러 전투에서 승리하여 군신 김장군이라 불린다.
- 시베리아의 전설로 사라진 전사
김경천은 소비에트군과 한반도로 진군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소비에트 혁명 후 러시아는 한인독립군을 지원하지 않았고 김경천의 계획은 좌절됐다. 1936년 스탈린 시기에 김경천은 간첩죄로 체포된다. 3년 뒤 석방됐으나 인민의 적이라는 이유로 다시 체포된 김경천은 1941년 북부철도 노동수용소에서 강제노역을 하던 중 영양실조로 쓰러진다.
일본군이 되어 민족을 배신한 다른 한국인 출신 장교들과 달리 김경천은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군 장교가 되지만 한평생의 부귀가 보장된 삶을 버리고 고난에 찬 항일무장 투쟁에 나섰다. 80년이 지난 지금 독립투쟁의 영웅 김경천은 시베리아 벌판의 고혼이 됐고 그 후손들은 고난의 삶을 살고 있다.
신역사스페셜 125회 - 백마 탄 김장군, 김경천! 시베리아의 전설이 되다 (2012.12.6.
방송) history.kbs.co.kr/
Негізгі бет KBS 역사스페셜 - 백마 탄 김장군, 김경천! 시베리아의 전설이 되다 / KBS 20121206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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