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잔의 사과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신비로운 어떤 것이다. 그것은 존재의 뿌리에 얽혀있어서 감각의 원천이지만 손으로 만져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세잔의 이 말은 존재자를 존재자로 현전하게 하는 하이데거의 존재(Sein)를 떠올리게 한다. 모든 존재는 존재자의 존재로서 존재자를 보여지게 하지만 자신은 언제나 이미 그것을 초월해 있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존재자들의 관계에 있다. 이런 존재론적-현상학적 사유는 메를로퐁티에게 옮겨져서 지각의 의미와 무의미를 통찰하게 했다. 후설의 지향성이 하이데거의 세계내존재와 만나면서 그의 지각은 더욱더 풍성해졌다. 여기에 몸과 살이 더해져서? 몸의 현상학? 살(la chair)로 만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것은 물론 만지는 자의 살이지만 존재자의 존재가 자신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사과 하나에서도 우리는 존재의 심연을 느낀다. 세계의 존재는 언제나 자신을 보여주면서 감춘다. 이것은 마치 니체가 서문에서 진리를 여성의 면사포에 비유할 때를 연상시킨다. "여성은 언제나 자신을 보여주면서 감춘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신비를 잃은 여성은 자신의 존재의 무게를 잃은 것이다. 존재자의 부피는 언제나 그 깊이를 감추면서 드러낸다. 그래서 모든 존재자의 존재를 표현하는 것은 끝없는 시도를 요청한다. 예술가에게만 아니라 철학자에게도, 심지어 우리 모두에게도? - 예도
@hyungdongkim8959
Жыл бұрын
훌륭한 강의 감사드립니다!
@ykaproject2526
2 жыл бұрын
추천합니다~
@user-bh3xs7pv8n
Жыл бұрын
앗 퐁티의 예술은 되게 포이에시스 같네요!!ㅎㅎ 감사합니다
@TV-uw9lz
Жыл бұрын
오늘은 온전한 정신의 활동이네요! 김작가님^^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이 되어야 날기 시작한다! 그 끝엔 아마도 갈리아의 수닭이 기다리겠지요! ㅎ
@user-nv8yu9eg3o
Жыл бұрын
눈과 정신 책을 보다 어려워서 강의 들었습니다 이해가 많이됩니다. 몸으로 그리는 화가..
@TV-uw9lz
Жыл бұрын
네, 방갑습니다. 선생님^^ 언제부턴가 종종 뵙게 되니 좋네요! 즐거운 하루 보내셔요!
@tnt7075
Жыл бұрын
선생님 그러면 퐁티가 말한 ‘세계에 참여하는 예슬가’는 실천을 중요시하는 포스트 모더니즘 예술가들을 가리킨다면 비약이 될까요?
@TV-uw9lz
Жыл бұрын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단어를 빼면 비약이 아니겠네요. 메를로퐁티 시대엔 저 단어조차도 없었으니까요. 그렇다고 메를로퐁티가 포스트모던적 사유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Пікірлер: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