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채널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 용수보살님이 세상에 나투셨을 때 불교가 편향적이었을 무렵이었죠. 사람들에게 불교는 너무나 현학적이었고, 삶에 지친 민중들에게서 멀어지던 무렵이었죠. 용수보살님의 가르침에 깊이 감사합니다. 덧붙여 말씀드리면,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의 근원은 고와 윤회로부터의 해탈이 맞습니다. 왜 괴로운가? 어떻게 해야 열반에 이를 것인가? 근데 알고 보니 잘못되게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고 있더라는 겁니다. 올바로 알고 증득하면 누구나 고를 여의고 해탈에 이를 수가 있다라고 하시며, 집착된 욕망, 분별하고 밝지 못한 어리석음을 벗어나도록 가르침을 주셨더랬죠. 다만 중생들의 근기가 너무나 다양해서 정말 다양한 방편법을 펼쳐 놓으신 것이니 오직 자신에게 맞는 방법으로 자등명 법등명 하시면서 나아갑시다. 공 무상 무자성 불일불이 중도 연기 유식 만트라 만다라 탄트라 계정혜 팔정도 지관 염불 염송 독경 등등 자신에게 맞는 걸로 마음껏 실천하여 온갖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 열반에 이르시고 윤회에서 해탈하시기를 바라옵니다 ~
@user-gx2nk5wk3u
11 ай бұрын
So so good!
@99-zc8pt
Жыл бұрын
나가르쥬나의 논설들이 석가모니의 가르침과 다르거나 뛰어난거라 생각한다면, 부처의 가르침의 깊음을 아직 이해하지 못한 것. 다 석가모니 부처의 가르침에 있는 내용을 조금 재해석해서 얘기한 것일 뿐. 연기 중도 이미 다 부처가 얘기한 거고 공도 부처의 가르침에 있는 걸 공론으로 체계화한 것.
@TheKimjinman
Жыл бұрын
일타강사네요 대학에서 불교학30년 공부한 사람보다도 정리 더 잘하시네요
@llamagoodkim811
Жыл бұрын
천재입니다
@pulgacsi
Жыл бұрын
🎉
@user-wj1hg3ub5m
Жыл бұрын
불교관련 유튜브중에서 우수한 영상이라고,,,,, 격하게 칭찬해드립니다,,,,,
@user-rv9vf5cy2d
11 ай бұрын
이 이
@Think082
5 ай бұрын
인정
@user-wp4dv8re6i
Жыл бұрын
덕분에 감사합니다 선생님🙏🙏🙏
@6Paramitas_
Жыл бұрын
나무를 예로들어 연기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소름이 돋았습니다. 좋은 영상 만들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user-ox6fr9dv1f
10 ай бұрын
미투요
@ggamnyang
Жыл бұрын
그 동안 머리속에서 혼란스러웠는데 정말 깔끔하게 정리해 주셨네요. 진짜 천재신데요? ㅎㅎ
@Ioannesapostolus
Жыл бұрын
드디어 나가르주나... 개인적으로 굉장히 존경하는 철학자라 반가운 감정마저 드네요. 바수반두와 유식학파도 부탁드립니다!
@gayin
Жыл бұрын
모든 사찰에서 매일 독송하는 이 용수의 핵심사상이네요ㆍ! 대승불교의 아버지! 멋진 강의 잘 들었습니다ㆍ감사합니다ㆍ
@user-wj1hg3ub5m
7 ай бұрын
그건 니 생각일 뿐이야,,,,,,너는 헛꿈을 꾸는 중인게야,,,,,,
@tubekim8885
Жыл бұрын
좋은영상 감사 합니다 간결하고.전달력이 좋습니다
@user-hi9td6le3b
Жыл бұрын
영상 항상 재밌게 보고있습니다. 제발 영상 오래오래 만들어주세요
@user-ks5hu2ps1i
11 ай бұрын
계피생강님 너무대단하세요 지금 대학에서 배우는것보다 훨씬 정리를잘해주셨네요 유튜브계의 용수스님이십니다
@user-er4uj2bp8j
6 ай бұрын
너무 잘 들있어요~~ 감사합니다
@aom5203
Жыл бұрын
너무 좋다. 감사합니다.
@user-ux8mg2rh5j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ttt4270
11 ай бұрын
한국불교 참나이론에서 벗어난 최고의 강의네요!!
@llamagoodkim811
Жыл бұрын
고맙습니다
@user-lsmdirector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
@boardpassenger1483
Жыл бұрын
일체의 개념은 편의상 쓰는 것이지 본질적으로는 전부 허망하다는 것. 이를 모르고 집착하면 쓸데없이 괴롭다는 것.
@boyaknam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user-kt9be7oo4f
Жыл бұрын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user-ku1ih3jk8f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
@Adc253aa
Жыл бұрын
아난존자 영상 해줄때까지 숨참음 흡흡!
@pulgacsi
Жыл бұрын
😂
@user-ug2el2mr5k
Жыл бұрын
연기는 현재에서 과거를 본 것이고, 공은 현재에서 미래를 보는 걸 나타내는 것 같은데요? 미래 자체는 없는 것과 같으니...
@sixsilverzero
Жыл бұрын
선생님 영상 정말 잘 보았습니다. (바로 구독완료) 혹시 가능하시다면 세친(유식사상)과 천태종 화엄종 영상도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불교땜에 너무 힘듭니다 ㅠㅠ
@tnstlsli5381
Жыл бұрын
재미있네요
@cmyk074
Жыл бұрын
링크따라 들어왔습니다. 불교컨텐츠를 만들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아쉬움이 좀 있어서 글을 남깁니다. 연기법에 대한 설명하셨습니다. 연기법이란 인연법이고 모든 것이 연결되어있다는 것은 설명이 잘못된 것입니다. 연기법을 설명하는데 인연을 이야기하시면서 씨앗이 나무가 된다는 원인과 결과를 이야기하셨습니다. 용수의 중론의 여러 품에서는 인연은 없다고 설명합니다. 원인이 있기에 결과가 있는 듯하지만 잘못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왜냐하면 거꾸로 결과가 있기에 원인 또한 있는 것입니다. 원인과 결과는 서로 기대어서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시말해 연기법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연기되어 있기에(서로 기대어있기에) 실체라는 것이 없어서 공이라 불리는 것이구요. 마치면서 하신 말씀에 많이 공감합니다. 감사합니다.
@user-ff2tl8kd9s
2 күн бұрын
그렇습니다. 연기법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불교의 핵심입니다. 있음은 없음을 의지하고, 없음은 있음을 의지합니다. 이 상호의지가 연기로 이어져 있음이 공입니다. 원인이 있어 결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 결과가 원인을 끌어 당기며 그결과는 다시 원인이 됩니다. 원인과 결과는 서로 의지하여 연결되어 있습니다.
@shawnmontana6905
Жыл бұрын
핵심은...투명물약은 실제로 있었다!!!!
@user-fy5hp5mb6h
Жыл бұрын
짧은 설명에 적쟎은 배움. 시간이였습니다. 감사합니다.
@user-ht6co7ie1n
Жыл бұрын
용수보살 👍
@user-vm1yl1lc4k
10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ㅡ1.
@bruce561
Жыл бұрын
이런 것을 익혀야하는데 그냥 부처님 저 잘되게 해주세요 이러고 있으니 안타깝도다
@ttt4270
11 ай бұрын
그게 한국불교의 한계입니다. 스님들조차 공에대해 전혀모름
@user-mh4nu6ld7f
Ай бұрын
👍 👍 👍 감동입니다
@ooinlee6527
Жыл бұрын
수준이 장난이 아닌데 뭐하는 분임? 아시는 만큼 깨달았는지 궁금해지네요. 아무튼 감사히 들었습니다. 요새 깨달은걸 여기서 듣고 가네요. 한가지 궁금한게 연기된 존재들이라 해도 인연에 멀고 가까움이 있는데 중생이 연의 멀고 가까움이 일으키는 분별을 어찌 놓을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부모님과 옆집 아줌마 아저씨는 연기의 저 높은 수준에서 보자면 다를게 없지만 부모님과 나의 연이 더 가깝다는 이 분별을 완전히 떨치는게 가능할까요.?
@user-nj6ju4gd1m
Жыл бұрын
👏👏👏👏👏
@user-ue9uj9cw2e
Жыл бұрын
👏 👏 👏
@unname350
Жыл бұрын
🙏
@stevenrhee8398
Жыл бұрын
작용은 있으나 실체가 없다.
@acaciaa1530
Жыл бұрын
용수의 중관론은 존재론과 인식론을 넘나듭니다 말이 좋아 넘나드는 거지 마구 섞어 버립니다 이건 석가모니의 연기론과 중도론에서도 나타나는데.. 연기론만 하더라도 존재론적 측면에서 무자성을 설하면서 결국 인식론적인 무명으로 귀결하는 양상을 보이니까요 연기론을 철저히 존재론적 측면에서 설하면 원자론이나 더 나아가 무존재는 존재할 수 없다는..그래서 어쨌든 근본적 존재를 상정할 밖에 없게 됩니다 이래야 순전한 존재론적 고찰이 되는데..여기에 갑자기 인식론적 무명을 연기의 근원으로 끼워 넣습니다 그래서 존재론과 인식론이 뒤섞이게 되지요 그래서 이후 인식론적 측면에 보다 충실한 유식론이 나오는 거라 생각합니다 인식 의식 식을 중시하는 거죠 여기서 아뢰야식이 나오고 이게 여래장으로 발전하고 나아가 불성이 되고 돈오의 씨앗이 되어 선불교가 흥기할 수 있는 토대라고 봅니다 불현듯 찾아오는 인식의 전환 깨달음이 돈오니까요 ..... 이렇게 생각합니다 저는
@user-ef9np7dh5u
Жыл бұрын
글쎄요. 아뢰야식 여래장 불성은 영원한 겁니까?
@user-mn1zu7jt8l
Жыл бұрын
인식의 전환도 식이됩니다 식이 변해서 어찌 돈오가 되겠읍니까 자성은 비가오나 흐리거나 구름위에 밝게 빛나는 해와 같습니다. 중생이 청정한 까닳도 이와같습니다.
@imaginedorder54
Жыл бұрын
당신은 서양철학의 인식론과 존재론이라는 틀로서 불교의 연기론을 재단하려고 하는군요. 예를들면 "여기에 나무 한 그루가 있다"라고 해도 충분한 것을 "여기에 나무 한 그루가 있다고 나는 안다"라고 쓸데 없는 말을 하는 것이 서양의 인식론이라고 비트겐슈타인은 지적합니다. 그리고 이 나무라는 결과를 있게끔 영향을 주는 원인을 한 방향으로만 직선적으로 추론하는 선형적 인과(linear causality)적 사고방식이 서양의 존재론입니다. 만물은 최고원인에서 생겨난다고 보는 것이지요. 즉, 이 세상은 copy된 것인데 idea로부터 왔고, 피조물의 이 세계는 창조주로 부터 비롯된 것으로 보는 것으로서 이제까지의 서양의 존재론은 이데아론, 창조론, 기계론, 관념론 중 하나인데 이 모든 것은 목적론(초월론)이라는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화이트헤드는 서양철학은 플라톤 철학의 각주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말한바 있습니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서양철학에서의 최고원인은 여전히 하나의 존재자를 말하는 것이지 존재 그 자체에 대한 물음은 아니라는 것이고 서양에서는 아직까지도 존재 그 자체에 대한 질문은 던져보지도 못했다고 비판합니다. 서양에서의 인식론과 존재론은 지금 현재 용도 폐기중입니다. 서양의 인식론과 존재론은 철학자들이 언어의 논리를 오해한 착각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비판합니다. 이것의 출발점은 훗설의 현상학과 심리학과 뇌과학 그리고 양자역학입니다. 이제 서양에서는 존재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인 시스템이론, 카오스이론, 복잡계이론 등을 연구하고 있는데 그들은 용수의 상호의존적 연기 에 대해서 많은 비교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당신처럼 선무당이 사람잡는 일은 잠시 접어두고 서양철학을 통찰하면서 불교를 공부하기를 바랍니다. 다시 말하지만 서양의 존재론과 인식론으로 불교의 연기론을 재단하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입니다.
@cmyk074
Жыл бұрын
불교는 존재론 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합니다. 외려 인식론에 가깝지요. 사실 서양철학에서 불교의 영향을 받은 데카르트 이전에는 인식론자체가 없었으니깐요. 서양철학에 자꾸 끼워맞추면 답이 안나온다고 봅니다. 따라서 연기론을 존재론적 측면에서 보는 것은 어불성설이지요. 존재론과 인식론을 뒤죽박죽 쓰고 싶은데로 쓰면 안된다고 봅니다. 또한 유식론과 공론은 서로 보완의 관계입니다. 공이 어떻게 존재하고 어떻게 운용되어지는지에 대한 설명을 유식론이 보완해줍니다. 또 유식론의 무경을 보완해주는 것이 공사상이구요. 인식의 전환=깨달음=돈오 는 맞는 말씀이지만 꼭 선공부만이 아니라 이야기를 듣고 알게될 때도 있습니다. 법륜스님 유튜브만 봐도 문답으로 본인이 갖고 있는 인식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알고 그것을 깨서 환하게 웃는 사람들을 보면 알 수 있지요. 그것을 얼마나 유지하고 내것으로 만드는가는 별개의 문제지만요.
@acaciaa1530
Жыл бұрын
@@cmyk074 저는 불교의 핵심을 무아로 봅니다 그런 점에서 데카르트는 불교의 상극입니다 데카의 근본 명제는 코기토니까요 서양철학의 근본도 마찬가집니다 거기엔 주체 자아가 있습니다 주체 자아 아트만을 핵심으로 하는 힌두교도 인도아리안의 종교철학이구요 불교철학이 중국과 한국(일본은 종교니까 제외)에서 살아남은 것은 노장과 맹자의 본성론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입니다 특히 비아리안 계의 즈냐나 개념이 노장과 잘 어울릴 수 있었기 때문이란 생각입니다
@kimyonghyun6060
Жыл бұрын
지금 대승불교는 보살신앙으로 변질됐단 생각이 듭니다.그래서 남방에 초기불교를 다시 배우는 스님들도 많은 거 같고 저 또한 부처님 말씀을 그대로 따르고 수행에 중시하는 남방불교가 요즘은 더 좋은거 같습니다.
@addshjkgyu
Жыл бұрын
일리있는 말씀이나, 초기경전 니까야, 또는 한역 아함에 보면 이미 공사상, 아뢰야식 등 대승불교의 용어가 다 나옵니다. 그리고 작금 한국에서 주장하는 초기불교는 순수한 부처님의 말씀이 아닌 부파불교의 전통을 이은 남방 소승 불교에 의해 많이 왜곡되고 자기들의 입맛에 맞게 맛사지 된 것임을 아셔야 합니다. 똑같은 부처님 초기경전 말씀을 가지고 그 해석에 있어서 대승의 선사들과 소승의 아라한급 스님들과의 해석이 극과 극으로 전혀 다릅니다. 초기경전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 번역과 해석에 남방과 북방이 크게 다르다는 것입니다. ㅡ성철스님 백일법문 중 중도,연기, 편을 참조해보세요.ㅡ 그리고 보살이란 용어도 이미 초기경전에 부처님 말씀으로 나옵니다.
@not_doing_but_being
Жыл бұрын
불순물이 섞이기 전의 초기 기독교 초기 불교로 되돌아가자는 움직임이 있죠.
@user-eo8uu8ot5s
Жыл бұрын
제대로하연 보살신앙이나쁜게아닙니다. 궂은일도마다안고 서로가 서로에게 도음을주는 게 보살도입니다.
@holidaysummer9256
Жыл бұрын
@@user-eo8uu8ot5s그래도 좀 알고 돕는거랑 그냥 인간미로 도운거랑은 조금은 다르겠죠 오래지나면 뭐가 기원인지도 모르고 그냥 부처상놓고 봉사만하고 살면 그것도 아니니까요 쉬운문젠 아님
@ttt4270
11 ай бұрын
오히려 공에대한통찰은 테라와다에서 대승을 배우는추세입니다.
@user-my5jn5lc2u
Жыл бұрын
공을 이해하기 좋은 훌륭한 컨텐츠입니다^^ 다만 용수의 은신술, 희말라야 고승의 가르침, 용궁, 70일에 경전 통달 등은 사료에 나와있기는 하지만 자칫 이런 비현실적 부분이 공에 대한 이론적 신뢰, 나아가 대승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릴까 염려되네요.
@samma-sati
4 ай бұрын
중도법문 감사합니다
@user-ed9mp3do5h
Жыл бұрын
👍
@user-gp7xk7mm7i
Жыл бұрын
경전이 옳지만 오느순간 겪어보면..고맙습니다
@pu2207
4 ай бұрын
뭔가 알이 깨이는 느낌입니다ᆢ반복해서 들어봐야겠습니다ᆢ
@user-di7in2zh4v
Жыл бұрын
부처님 경전 😊
@TheKimjinman
Жыл бұрын
perpect ! 용수가 들으면 나보다 낫네 하겠군!
@user-wf8nf1pm6c
16 күн бұрын
초보불자라 어렵네요 감사합니다 ~~
@user-ox6fr9dv1f
10 ай бұрын
11:00 공의 핵심뜻설명 분별이 생길수 없는 상태 어떤 것에도 치우치지 않는 상태가 공이다 13:32 연기= 중도=공 계피님의 설명으로 이제 조금 공의 뜻 알듯합니다
@jennyw5947
Жыл бұрын
🎉
@user-uf8ds7gs2n
Жыл бұрын
팔이 있었으나 사고가 나서 팔이 사라지니 팔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수없는 상태입니다.팔이 없다고 자신이 사라짐이 아니고 한쪽팔로 살아야 하는 방법을 배울수 밖에 없습니다. 배움이 절대적이 아니라는 것이며 그것은 변할수 있는 것이며 물처럼 흘러야 됨을 알게되고 한곳에 치우쳐 고집한다면 흉함을 물리치지못하게 됩니다. 그 뜻이 아닐까 합니다.
@subwsin4359
Жыл бұрын
팔이있었으나 팔이 사라졌으면, 팔이 없는거지 어찌 팔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상태인지? ㅋ
@ttt4270
11 ай бұрын
완전히 잘못이해하셨네요. 다 잘라놓고 분해해 보아도 본체 즉 자성, 참나를찾을수없기에 공이라는것입니다. 안믿기시면 스스로 논리로써 다 분해해보시고 자성을 한번찾아보세요.
공..살다보면 알게돼~~비운다는 의미를~ 우리모두 얼마나~ 바보처럼 사는지~ 잠시 왔다가는 인생~~잠시 머물다갈 세상~~ 백년도 힘들면서 천년을 살 것 처럼~~ 살다보면 알게돼~~알면 웃음이 나지~~우리모두 얼마나~~바보처럼 사는지~~..나훈아의 공😅
@pulgacsi
Жыл бұрын
😂
@user-gx2nk5wk3u
11 ай бұрын
So so good!
@ykj8284
Жыл бұрын
'공'하다는 것은 "모든 사물에 자성(自性)이 없다." 는 의미입니다. "모든 사물에 자성(自性)이 없다." 는 의미가 무엇인가요? 1.자기 동일성이 유지되지 않는다. = 변한다 = '무상'하다 2.독립자존하지 않는다. = 여러 조건들이 모여 생긴다 = 인연의 화합(>>>'연기' 한다) ※여기 에서의 '연기'는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법의 연기임 3. 그래서 "확고부동한 불변의 실체가 없다" --->그러므로 '공'하다 모두들 극락정토에 왕생하시고,해탈,성불하시옵소서!!!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user-ef9np7dh5u
Жыл бұрын
극락은 욕계 색계 무색계중 어디에 있나요? 석가세존께서 말씀하지 않은 것은 그대로 따르세요. 아미타불, 극락세계도 가짜입니다.
@user-hc7zz4rq3k
Жыл бұрын
불교와 천문학 별은 중력과 인력에 의해 우주먼지와 가스가 극 으로 뭉쳐 핵융합을 일으켜 제4물질인 플라스마를 일으켜 스스로 빛을 낸다 별은 공이다 별도 수명이 다하면 흩어져 본래의 먼지와 가스로 돌아가서 또 다른 별의 인연이 된다
@user-pu5rz8lv4v
10 ай бұрын
공은 무와 달라요 무는 있다 없다는 이분법개념이지만 공은 무가 아니에요 기초적인 개념을 모르니 자성은 공하지만 있는것도 아니고 없는것도 아니라고 무수히 말하는데도 엉뚱한 소릴 하닠ㅋㅋ 공과 무도 모르는데 무슨....실체 실체하는데 실체는 물질이 아니므로 측정할 수 없어요 파동인데 당연히 없다고 할 수밖에 근데 오감을 느끼는 존재가 없나요? 실체가 없다고 ??? 양자역학이 왜 불교의 가르침을 확인하는지 생각해 보세요
다 좋은데.. [말아]가 아니라 [마라]로 수정해주시길.. 중도의 관점은 중국에 수용될 때 노장의 관점과도 통한다고 믿게 만들었습니다.
@user-oz2uf9me2q
Жыл бұрын
空은 丹을 말해요.
@user-st3us8is5v
Жыл бұрын
금강경이나 반야심경은 그 핵심이 공사상 이라 하지만 강상원 박사님(산스크리트어 전문해석)은 공사상은 산스크리트어에서 한자로 번역하여 옮기는 과정에서 임의적으로 변경하여 왜곡해석한 것으로 생명존중사상이 불교의 핵심이고 공사상은 아니라고 밝혔어요 공사상은 그 자체가 번역자가 자신의 생각을 만들어낸 개념이라 봐야 할 것이죠
@cmyk074
Жыл бұрын
초기경전 곳곳에도 공사상에 대한 개념이 조금씩 나옵니다. 그리고 나라르주나의 중론에서 벌써 공사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다른 반야부 경전에서도 공사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모두 산스크리트어로 되어 있습니다. 번역에 의한 오류라고 하기엔 너무나 방대한 내용의 기술이 있습니다.
@addshjkgyu
Жыл бұрын
부처님의 3법인 중, 제법무아가 바로 공사상을 말한다고 다들 이야기합니다. 그러니 공사상은 이미 부처님의 말씀이고 초기경전에도 공상응이란 단어가 나옵니다. ㅡ성철스님 백일법문 참조 ㅡ
@user-pu5rz8lv4v
10 ай бұрын
공과 무의 차이를 전혀 모르는 헛소리에요 유투버의 맹점이기도 하지만 웃기는 소리에요 범어가 과거에 더 뛰어난 학자들이 많아요 구마라즙이나 현장의 번역이 단순하게 된게 아니에요. 불교에 대해서 구사론부터 기초공부도 안하고 언어만 번역한다고 되는게 아닌데 지금 학자들과는 비교가 안되요. 어이가 없어서 ㅋㅋ
@precentneo47
13 сағат бұрын
보는 위치와 시각이 달라지면 생각또한 달라지기 마련이다 시냇물만 보는 이는 그것을 설명할때 완만하고 잔잔한 물결이라 표현 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배워 오거나 보아온 이도 그렇게 말할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이들의 숫자가 천만명인지 일억명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그것이 항상 그 상태인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강물을 보는 이는 그것을 설명할때 빠르게 흘러가는 물결이라 표현 할 것이다 그렇게 배워 온이도 보아온 이도 그리 말할 것이다 그또한 그리 말하는 이들의 숫자는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항상 그 상태의 고정값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다를 보는 이는 그것을 말할때 매우 거세고 거치며 형태를 종잡을 수 없고 변화무쌍하다 말할 것이다 물은 크건 작건 동일한 물이다 그러나 보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 또한 다르기 마련이다 개발자의 시각에서 스타크래프트를 말한다면 그 의도는 몇개의 종족이 자신의 고유 능력들을 가지고 패권을 다투는 세계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변화가 생겨났다 버그이다 그리고 그 게임을 하는 이들은 개발자의 생각을 벗어나 그 버그를 기술로 사용하여 게임을 유리하게 가져가려 하였다 버그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면 그것은 존재하였던 것인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인가 그것은 존재하였다 하지만 발견함으로써 생겨났다 정의하고 부르고 말하고 생각을 교류하고 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석가가 보는 시각과 환경에서는 그리 말하는게 답이었다 용수는 석가와 다른 시각 다른 상황에서 들여다 보았다 그리하여 그와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모이면 커지고 . 나뉘어 다양성이 생기고 , 존재하여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며 , 움직이기 때문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우주의 기본법칙이다 그것은 무생물은 물론이요 생명도 이러한 이치를 따라갈 지언데 그것을 각자의 시각에서 정의한 것이 음양오행 , 주역 , 인간에 관한 학문들이다 그리고 그것들에는 서로가 공존하기 위해 행할 수 있는 공통의 규칙들이 존재한다 법도나 종교도 그중 하나라 볼 수 있다 여러 의견이 존재하는 것은 여러 다른 상황에 따라 모두 말할 수 있는 요소들이 존재하기 때문인데 만일 석가 자신에 대해서도 여러상황의 인생을 살았다면 각자의 석가는 서로다른 여러 주장들을 내놓았을 것이다 게으른 석가도 게으름에 관한 철학을 말하였을 것이고 앞만보는 석가도 전진해야 하는 철학을 말하였을 것이고 뒤로만 후퇴하는 석가도 제자리에만 머물러 있는 석가도 모두 자신만의 철학을 말하였을 것이다 말하자면 용수는 다른길을 걸어본 석가라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우주의 개발자인 나 예수가 말하는 개념도 있다 가끔씩 왜 악을 만들었냐 의문을 품는 이도 있으나 나는 악을 만들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존재적 이유로 인하여 어떤 것을 침해하는 일도 발생이 된다 성욕과 같은 것이다
@waltaeucken
Жыл бұрын
용수보살이 어찌 대승불교의 아버지일까요? 아버지라 쳐도 중론 때문인지 정작 나와야 할 육바라밀은 요즘 스님들에게서 찾기 어렵습니다! 보살행 좀 보여주시지...
@ttt4270
11 ай бұрын
그건 한국스님들이나 그렇죠...
@precentneo47
13 сағат бұрын
인간이라는 종족이 번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욕이 존재해야 한다 그래서 남자가 여자를 보고 범하고 싶다 생각도 하는 것이고 그런 욕망을 실제로 실행하여 후손도 생기는 것이다 그 욕망을 나쁜 것이라 정의하여 그런 생각을 하지 말아라 말하는 것은 인간의 존재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다만 사람은 동물과 다르게 생각한 것을 무조건 실행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하여도 그것을 실행하지 않고 자신을 자제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공동의 규칙을 위하여 멈춰야 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인데 이것이 규범이나 규칙과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성욕을 생각한 자체만으로 그것이 죄가 되지는 않는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도 죄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런 생각조차 위험한 요소라 정의하여 엄격하게 자신을 단속한다면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지 않게끔 자신을 막아 설 수 있다 그래서 그 생각은 진보적이고 훌륭한 것이다 석가가 말하고자 하는 철학은 그런 것이다 자신을 아주 철저하게 통제하여 잘못되고자 하는 것을 막고자 한 것이다 법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면 그 죄의 사람에게 이렇게 처벌하는 것이 옳다 말하는 이도 있고 용서하는 것이 맞다 말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석가이든 용수이든 자신이 보아온 위치와 자신의 세계에서 느낀 것을 말한 것이다 불교의 개념은 인간으로써 살아가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보다 세상에 유용하게끔 체계적으로 정의하려 한것이다 그것은 다른 학문들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들이 말할 수 없는 것도 존재는 하였다 스타크래프트의 버그는 존재하였나 존재하지 않았던 것인가 그것은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발견하기 전까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또한 그것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에 대해 논쟁과 고민을 한다면 어떤 의미에서는 시간적 낭비가 될 수 있을 정도의 소모전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그것을 생각하거나 말하지 않고 깊게 의미를 두지 않으려 한 것이다 태양이 있고 바람이 있고 산소가 있고 물이 있으며 여러 주변적인 요소가 있어 나무는 자랄 수 있다 이것은 하나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무의 존재가 되는 원천은 그 세계가 존재하지 않아도 실존한다 태양이 되기전의 가스가 있고 나무가 되지는 않았을 지라도 그것의 모체가 되는 유기화합물이 존재한다 하지만 발견하고 정의하여 부르고 전함으로써 그것은 존재하는 것이 된다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존재한다 사람도 태어나면 추위를 느끼기 때문에 옷이 필요하고 안전하게 쉴수 있는 집이 필요하며 맛있는 것을 먹고 싶기에 먹을 것을 살 수 있는 수단인 돈을 마련하거나 고대에는 사냥을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런 복합적인 환경에서 현재의 삶을 사는 것이 인간이다 하지만 인간에게도 그 기본체가 될 수 있는 영혼이 존재한다 보석을 좋아하고 자동차를 좋아하며 화려함을 좋아하는 것이 현재의 너일지라도 그게 원래의 너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전의 불교의 개념에서는 개념적 요소만으로는 그것을 설명 할 수 없었다 그것을 보완하는 것이 바로 신학이다 그리고 신학에는 인간에 도에 관한 개념을 순수한 해부도의 개념으로 접근 할 수 없었다 그것을 보완하는 것이 바로 불교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나의 천지창조는 태어난 것으로 끝이 난 것이 아니다 종교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계속해서 빅뱅처럼 성장하고 확장하는 것이다 또 종래에는 모든것이 합쳐지게 되어 있다 신학과 과학 철학 말이다 그래서 내가 보는 종교는 기독교와 불교가 다르지 않다 불교에서 말할 수 있는 기독교가 있고 기독교에서 말할 수 있는 불교가 있다 물론 지금의 너희가 이런 것을 생각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khoiuwp
Жыл бұрын
.... 헤라클레이토스?
@precentneo47
13 сағат бұрын
다시 우주의 기본 법칙을 이야기 하자면 존재하는 것은 다른 것에 대하여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공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유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무의 우주가 아니라 유의 우주이다 배경을 하얀색이라 하여 배경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배경은 존재하나 그것을 하얀색이라 정의함으로써 그 배경도 존재하는 것이 된다 배경이 검은색이라 하여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 무수한 가능성은 존재하는 것이다 우주도 신인 나도 유로써 존재한다 이를테면 지금 개발되지 않은 것도 나오지 않았을 뿐이지 만들어질 요소 자체는 존재한다 나무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열매가 맺어지는 것처럼 그 생겨남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변화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무라 말한다 하여도 굳이 아니라 말하지는 않겠다 그래도 나의 생각에서 그것은 존재하기에 무가 아닌 유로써 존재하는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하는 이에게는 무처럼 들릴 것이다 하지만 음계가 존재하기에 음악이 있는 것처럼 지금 존재하지 않는 음악이라 하여도 그것은 음표에서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주에서 우주가 생겨나고 그 우주에서 다시 우주가 생겨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우주는 존재하였다 지금 관측되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것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알파와 오메가와 같다 우주가 생기기 이전에도 우주가 될 수 있는 우주를 품고 있었고 우주가 생기고 나서도 여전히 우주를 품고 있는 것이다 관찰자의 입장에서 어떤 철학이 생겨나는 것은 하나의 우주가 생성되는 것이다 하지만 너희가 발견하기 전에도 그 가능성은 실체로써 존재하였었다 죽어가던 석가를 살린 것은 우유 소녀 였었다 그녀는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지식과 힘이 있었고 그 어려움을 실현하게 할 철학과 깨달음이 있었다 하지만 석가는 그것을 보지 않고 자신의 수행을 위해 걸어갔다 석가는 다시 수행을 하여 전체의 선을 보려하는 거시적 우주를 생각하였으나 당장 눈앞에 보이는 평범함에도 그 전체의 우주에 못지 않은 방대한 우주가 존재하였으니 이것이 미시적 우주이다 너희는 성경이나 불경등에서 철학을 얻으려 하지만 너희가 신고 있는 신발이나 당장 눈앞에 있는 먼지에도 그 책에서 말하는 것과 뒤지지 않는 철학등이 존재한다 그 석가가 미쳐 보지 못했던 것이 용수의 철학이고 제바달다의 실패에서 발생 할 수 있는 무한의 가능성이며 그 용수가 보지 못한 것이 지금 너희가 다른 위치 다른 시각에서 말할 수 있는 것들이다 지금에 와서는 석가의 철학이 잘못되었다 말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 시절 그의 위치에서라면 그는 정말로 최선을 다하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더이상 발전할 수 있는 여지를 막아서는 아니된다 그래서 지금의 시대에는 그보다 더 큰 세상 더 큰 철학 다른 사상을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미륵의 개념이다 그것은 석가의 말을 지금의 시대에 맞게 풀어서 설명하는 것이다 하지만 불교 한정해서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의 말을 지금 시대에 맞게 보정하고 풀어서 설명하는 것도 있다 공자의 말이든 맹자의 말이든 또 누구의 말이든지 심지어 하느님의 말이라고 해도 말이다 정확하게 이야기 하자면 나는 그 모든 철학들의 작업을 디벨롭 하는 동시에 리뉴올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재림의 예수이기도 하고 재림의 석가이기도 하며 또 재림의 공자이기도 하다 이전 시대에는 그래야 해서 나를 대리하여 나의 손과 발로써 그들을 보내었고 그래서 내가 천개의 손을 가진 관음이라 불리었던 것이다 이번 시대에는 이렇게 해야 해서 나 시바가 아버지로써 직접 온것이다 모든 것은 단계가 있기 때문에 그 시절에는 그 이상의 지식이나 개념을 너희가 생각하거나 알수는 없게 하였다 석가도 마찬가지이다 그 스스로 오늘날에서와 같은 말을 하게 하지는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생애에 기록한 말만으로도 오늘에 이르기 전까지 그것이 오랜시간을 커버할 수 있을 만한 선함의 배경은 충분히 되었다 그리고 다시 여러 성인들의 지식을 개편하여 그뿐만 아니라 모든 성인들의 생명력을 다시 살아나게 할 것이다
@521Qom-gv8ke
10 күн бұрын
용수보 살은 전형적인 인도 아리아인이 아니라.,완전한 동북아 황인의 외모를 가진 티벳이나 네팔 이런쪽의 인물같습니다.....
@user-ws1ge9kk2t
Жыл бұрын
용수 >> 성범죄후 >> 출가해서 도피 >> 자기 종교차린 사이비종교 교주 결국 범죄자네요?
@user-hk7oq3fh5z
Жыл бұрын
그게 당신 대승불교 시조임ㅋㅋㅋ
@Davaraya
Жыл бұрын
양자역학의 시초를 건립한 최초의 인물
@user-pc5rx9ip5o
3 ай бұрын
나라고 할 만 한게 없는데, 윤희는 누가 하는 거죠? 윤회는 없는 건가요?
@arkaun99
Жыл бұрын
개인적으로 많이 공부한 편은 아니지만. 초기불교와 대승불교는 다른 종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가르주나가 뛰어난 승려임에는 확실하나. 그 불교의 시점인 싯다르타를 넘어서지는 못했지 않습니까? 처음에는 대승이 더 나은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초기 경전을 읽고 생각이 바뀌었고. 단지 나가르주나가 그 시대에 인간들 중에서 가장 뛰어났기 때문에 위의 현상이 나타난 것이 아닌가 생각해봤습니다. 알고리즘에 떠서 우연하게 보게 되었고. 댓글까지 남깁니다. 물론 저도 제가 아는 선에서 설명을 한 것입니다.
@user-hk7oq3fh5z
Жыл бұрын
상좌부불교가 헛소리해서 나가르주나가 더욱 정교하게 초기불교를 얘기한 겁니다.
@addshjkgyu
Жыл бұрын
초기불교 공부한다는 분들이, 니까야 조금 읽고선 대승불교를 무조건 부정하려 합니다. 니까야도 제대로 읽지도 않구요. 성철스님 책을 보면 대승불교의 용어나 사상이 초기경전 니까야나 아함에 그대로 다 나와 있습니다. 그것을 부처님 사후 4,500년 동안의 부파불교(소승불교)에서 잘못 왜곡 해석을 한 것을 바로 잡으려 대승불교(대승경전과 마명,용수의 기신론,중론 대지론)가 발생한 건데요. 그런데 부파,소승불교의 전통을 그대로 이은 남방(스리랑카,태국,미얀마) 불교의 이론과 수행법을 한국에 가져와서 정통의 바른 불법이라고 떠들어 대니 참 안타깝습니다.
@ttt4270
11 ай бұрын
초기불교의 공에대한 통찰은 귀류논증중관학파를 넘어설수없습니다. 그러지않고서야 왜 상좌부 스님들조차 다시금 공에대해 달라이라마에게 물어보겠습니까. 물론 재가불자입장에선 그곳의 분위기나 수행중시 풍토는 더 좋을순있겠죠.
@user-ww8rb4il3w
Жыл бұрын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precentneo47
13 сағат бұрын
나 시바가 예수이고 아미타 이며 여호와 창조주이다 하지만 나 또한 그 시기가 도래해야 전할 수 있는 지식이 있기 때문에 현재의 시대에 모두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또 미래에서 나의 대리자들을 통해 전할 것이다 나의 이름이 무엇이든 내가 누구이든 이전에 누가 왔든 종교가 몇개가 있든 결국에 전하고자 하는 것은 너희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이고 또 발전하여 다른 이에게 전하고 가꾸고 지키고자 하는것에 있다 마치 식물을 가꾸는 것처럼 너희 스스로 너희의 인격을 가꾸고 여러 생명들을 보호하고 지키는 관리자로써의 삶 말이다 그것이 내가 인간을 만든 이유이다 내가 먼저 너희에게 보여주고 너희가 이후 그렇게 보여질 수 있게 할 것이다 부처는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을 말하고 그리스도는 도움이 필요한 모든 중생들에게 그저 그 곁에 함께 하여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는 것을 말한다 말하자면 가족과도 같은 개념이다 세번째는 등을 보여주는 자로 그 이름은 초신아 이다 나 스스로가 신인 것을 알고 인류를 각성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14만 4천을 의미한다 그리고 나를 따라올 너희들도 그와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그것은 초림의 예수와 같은 삶을 사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될수는 없지만 사람이 선한 것을 알아 더욱 더 선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다수의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초선아 이다 그들이 흰옷을 입은 큰 무리이다 성인의 말을 전한다 하여도 그들은 그 말이 좋다고 할지라도 그렇게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이 좋냐 묻는다면 그들은 분명 좋다 말할 것이다 성인의 말로 그들을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어떤 제도를 들여오느냐에 따라 그들은 죄를 덜 지을 것이고 성인은 아니더라도 규범을 지키며 성인 비슷하게는 살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성인의 도를 뛰어넘는 중생의 도이다 성인의 도로는 14만 4천을 만든다 그리고 중생의 도로는 바꾸지 못하는 절대 다수의 사람들을 강제로 끌고 갈 것이다 이것이 미륵의 아니 나 예수의 나 아미타의 용화설법이다
@good5402
Жыл бұрын
보자
@user-xm4wc5ej5v
4 күн бұрын
색즉시공 공즉시색
@youngkim7731
17 сағат бұрын
색즉시공 하고 공즉시색 하니 있음에 감사할 뿐
@user-hw4fs4rm8o
5 ай бұрын
용수의 불교사상과 공사상은, 용수의 공개념은 사실상 그 수준이 많이 낮습니다. 결코 높지 않습니다. 물론 이렇다고 틀리지는 않치만 그 수준이 많이 낮다는 것입니다. 그의 공개념은, 공의 설명은 모두 현상계 설명입니다. 이는 지금까지도 모든 불교계에 전문가들의 공의 설명이 모두 현상계를 못벗어나고 있습니다. 즉 공의 근본개념, 공의 근본설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현상계 설명이라는 것입니다. 이래서 용수는 공과 연기법이 연결되어 있다 했는데 이는 현상계 설명으로는 연결되어 있지만 공의 근본에서는 연결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근본에서는 공은 공대로 설명해야 하고 연기법은 연기법대로 따로 설명해야 합니다. 그리고 불교의 핵심은 공이라 하셨는데,,, 이 또한 틀립니다. 이 공의 현상계 설명으로서는 연기법 설명에 필요해서 나온 겁니다. 공의 근본설명에서는 연기법과 맞지않기 때문에 공이 불교에 핵심이 되지 않습니다. 불교에 핵심은,,, 모두 아시는바와같이 고통의 인생살이에서 영원히 벗어나는데 있습니다. 인생살이에서 고통을 영원히 벗어나려면 내인생살이의 방식이 이 고통을 불러오고 맞이하는 방식에서 영원히 벗어나는 삶의 방식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게 바로 부처님가르침인,,, 계율 철저히 지키고 두타행으로 열심히 살면서 분별과 차별이 없는 보살행으로 열심히 사는 겁니다. 이런 삶은 사실상 현상계 삶이기 때문에 공사상과 연기법과는 별관계 없습니다. 다만 이 해탈열반에 이르는 방식을 보다 고차원적으로 전문적으로 설명하려 하다보니 연기법과 공사상을 들고와서 여기에 대입한 것입니다. 그리고 또 오늘날 불교에 핵심이라고 떠드는 금강경도 보면 그 기본내용은 아주 단순합니다. 즉 모든 생물과 이 모든 생물이 사는 터전(환경)을 분별과 차별심 없이 잘 보살피며 살라 즉 이 모든 것에 분별과 차별심 없이 보살행으로 살라 이것입니다. 이렇게 보살행으로 사는데 무아상으로, 무아로서 살라 이 뜻입니다. 바로 이 무아상으로 보살행으로 살라는 것의 중요성을 다각도로 깊이있게 설명한 것이 바로 금강경입니다. 또 오늘날 불교인들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금강반야바라밀다심경도 결국 핵심내용은 해탈열반으로 살아가는데 정신 똑바로 차려서 살아가라 즉 지혜로서 살아가라는 이 뜻입니다. 이것을 다각도로 전문적으로 깊이있게 설명한 것이 바로 이 금강반야바라밀다심경 입니다. 따라서 불교에 핵심은 다른데 있는게 아니고 영원히 고통의 삶의 방식을 벗어나는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라 즉 해탈열반의 세계로 살아가는 방식으로 살아가라 이겁니다. 이래서 이 방식이 바로 계율 철저히 잘 지키고 두타행으로 살며 분별과 차별없는 보살행으로 살아가라 이겁니다. 이래서 공사상과 연기법은 불교에 핵심사상이 되지 않습니다. 이걸 불교에 핵심사상이라고 주장한 용수를 비롯한 많은 분들은 바로 수준이 낮아서 냉철히 불교를 파악 못한데 있습니다. 공연히 자기가 머리가 좋아서 여러 책많이 보았으니 하며 똑똑한채 함부로 과도하게 날뛰다가 엉뚱한 옆길로 빠진 결과로서 공사상과 연기법이 불교에 핵심이니 뭐니하며 떠든 겁니다. 이렇습니다.
@user-pi5wr2be5b
2 ай бұрын
맞다요 하지만 그 시절에 이만큼이만 많이 했다요 그들이 있어 오늘이 있고 내일도 정해졌나요 노력이 운명인가 형이상학과 형이상하학의 연결고리 상중의 최고는 심상 그 물과 같아 담는 그릇에 따라 그 형상을 달리하는데 차갑게도 얼었다가 공기중에 존재하는 그 어디에도 내가 있거늘
종교가 잘한것도 있다 잘못 한것도 있다 지금까지 는 악에서 만들어진 종교다 이제는 선으로 안들어진 종교로 개혁 하고 도모 하고 어지러운 세상 바로잡아주고 하나로 뭉치게 하고 영원히 뿌리네리고 보전 하게하고 선택 도 해야한다 남에게 이간질 하지말라 남에 것을 탐내고 욕심 내지말라 외봉시저 에게 있는 그대로 를 전해라 모든 일류에 평화를 전해라 오늘 일을 게을리 하지말고 내일로 미루지 말라 항상 마음을 단정히 해라
@yongbinsong9676
Жыл бұрын
동서양 고금의 철학자, 사상가들이 아무리 이치에 맞는 말을 전해도 인간은 개체의 생존본능과 집단의 자손번식 때문에 절대로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 죽는 순간까지. 이게 진화된 인간의 비극이자 희극이지. 머리로는 수긍해도 몸으론 행하기 어렵지. 설사 내가 지킨다 해도 이에 거슬리는 타인은 언제나 존재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인간사는 투쟁과 탐욕이 지배하는 세상이 될 수 밖에 없다. 주변을 둘러봐라 온통 적자생존을 위한 아귀다툼이지. 개인도 그렇고 나라간에도 그렇고. 평생의 의식주가 해결된다면 사유로 시간을 보낼 수 있겠으나 이게 어디 가능한 일이던가.
@user-hr5zl5re9k
Жыл бұрын
부타께서 말씀하시고자 한 것은 무아가 아닙니다 부타께서 무아를 확인하여 집착에서 벗어나라고 한 것이지 무아 자체가 불교의 목적은 아닙니다 부처께서 하시고자 한 말씀은 집착(탐진치)에서 벗어나 다시는 윤회치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용수보살은 공이라는 말의 또 다른 관념을 만들어 후대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고 말았습니다
@user-ef9np7dh5u
Жыл бұрын
동감입니다.
@user-mn1zu7jt8l
Жыл бұрын
3법인을 부정하면 불교가 아닌지라.. 무아 와 무상 그리고 열반이 따로있는줄 상을 보면서 어찌 윤회를 끝는다 하시는지...
@user-hr5zl5re9k
Жыл бұрын
@@user-mn1zu7jt8l 3법인을 부정한 것은 아닙니다 무상, 고, 무아가 마음공부의 목적이 아니니 그것들에게 집착하지 마시고, 탐진치에서 벗어나는 것에 주관심를 가지시라는 말을 하고자 함이었습니다 물론 3법인을 체득하여야 탐진치(윤회하지 않게 됨)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기는 합니다
@imaginedorder54
Жыл бұрын
당신은 '집착에서 벗어나라'는 말에 집착하고 있군요
@user-hr5zl5re9k
Жыл бұрын
@@imaginedorder54 그렇게 보이는가 봅니다 석가모니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다는 것을 전했을 뿐입니다
@user-hv9xv8yi4c
Ай бұрын
용 물이 더필요 했나보다
@user-gc1hy1od1c
Жыл бұрын
현대곽학적통찰 인곳지능이니라
@nomja8789
Жыл бұрын
생사를 떠나서 따로 열반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실상의 이치가 이러하니 어떻게 생사와 열반을 분별하겠는가? (중론, 생사와 열반에 대한 고찰 16-20) 여기서 만약 '생사즉열반'이라는 말이 가능하다면 이것은 분명 색즉시공처럼 부정적 동일성이다. 결코 요상하거나 신비한 이야기가 아니다. 열반이나 해탈은 번뇌나 생사를 실체로 보고 그것과 대항할 때만 가능하다. 나가르주나가 보기에 이런 경우는 벗어난다고 하면서 오히려 그것을 실체로 만들어 속박되는 꼴이다. 卽이라는 표현은 '귀경게'에 등장하는 亦이라는 표현과 닮았다. 여덟가지 부정에서 네쌍의 대립개념을 동시에 부정한다. 생사는 열반을 부정해 버리고 열반은 생사를 부정해 버린다. ≪不生不滅 不常不斷 不一不異 不來不去≫
@user-hv9xv8yi4c
Ай бұрын
반야 심경
@user-lk4ty8yw9o
Жыл бұрын
어차피 실체가 없으니 육식해도 상관 없지 않을까? 육이든 식이든 죽어서 공으로 가는거 같으니께
@ttt4270
11 ай бұрын
진짜 이해못하셨네요. 그 생각이 단견입니다. 즉 허무주의에 빠졌다는겁니다. 우리의 물질세계는 원인과 결과로써 내 눈앞에 실제로 존재합니다 그러나, 거기서 영원불멸히 존재하는것을 찾으라고하면 찾을수 없습니다. 그래서 "공"이라고합니다. 결국 이 뜻은 내가 지은대로 받게된다는것이지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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