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강 이승훈 선생은 1907년에 도산 안창호의 ‘교육진흥론’이란 강연을 듣고 “교육으로 백성을 일깨우지 않으면 독립도 있을 수 없다”는 말에 자신만을 위해 살았던 삶을 회개하고 평양북도 남부 해안에 있는 정주시에 자신의 전 재산을 사용해 오산학교를 설립합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산정현교회에서 한석진 목사의 설교를 들은 이승훈 선생은 그 때부터 예수를 믿기로 결단하고, 학교에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7명의 학생으로 시작한 오산학교는 평민 정신, 민족 사랑,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일심협력하여 나라를 남에게 빼앗기지 않는 백성이 나오길 바라며 새로운 학문과 애국사상을 일깨우는데 주력합니다. 하지만 오산학교는 독립운동의 본거지로 오해 받으며 폐교 위기도 있었습니다. 남강 이승훈 장로는 1911년 105인사건 관련자로 4년간 감옥에 갇히고, 3.1 독립운동 때에는 기독교계 대표로 33인에 가담하며 독립선언식이 끝난 후 일본 경찰에 검거됐습니다. 하지만 감옥에서도 그는 하나님의 믿음을 지키며 살았고, 옥중에 9년간 오산학교에서는 신채호, 이광수, 유영모 선생의 가르침속에서 주기철 목사와 한경직 목사, 함석헌 선생 등 한국 기독교를 이끄는 인재들을 배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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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강 이승훈의 생애 | 민족운동의 지도자 | 교육으로 백성을 일깨운 오산학교 설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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