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rd. Stage
Requiem KV 626 (W. A. Mozart) Dr. R. Levin Completion
Introitus 1. Requiem aeternam
2. Kyrie
Sequenz 3. Dies irae
4. Tuba Mirum
5. Rex tremendae
6. Recordare
7. Confutatis
8. Lacrimosa / Amen
Offertorium 9. Domine Jesu
10. Hostias
Sanctus 11. Sanctus
12. Benedictus
Agnus Dei 13. Agnus Dei
Communio 14. Lux aeterna /Cum sanctis tuis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1756~1791)는 잘츠부르크의 바이올린 연주자이자 작곡가였던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의 아들로 태어나, 유년시절부터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유럽의 궁정을 다니며 전 유럽에 자신의 천재성을 보여주었다. 그는 스스로 “하나님 다음 에 아버지”라고 편지를 통해 고백한 바 있을 만큼 아버지의 그늘 아래 완전히 통제와 양육 사이 를 넘나드는 아버지의 보호와 가르침을 받는 삶을 살았다. 그런 그가 잘츠부르크에서 엉덩이를 걷어차이며 봉건적 하인의 위치를 박차고 빈으로 이주했고, 아버지가 반대하는 결혼까지 감행한 다. 여기서 그는 최초의 프리랜서 음악가의 길을 걸었는데, 이는 그를 양육과 교육, 통제와 조정 사이를 넘나들며 간섭해온 아버지와 구 시대의 궁정 음악가 질서를 박차고 나온 것이다. 모차르 트는 아버지로부터 아버지 세대와 이전 세대의 음악을 배우고 연주 여행을 통해 당대의 대가들을 접촉하면서 배운 음악들로 국제적인 양식을 획득하였으나, 끊임없이 강렬하고 표현의 폭이 넓은 파격적인 음악들로 시대를 뛰어넘으려고 하였다.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이 이루어지기까지 쌓이던 유럽의 시대정신은 시민의식을 깨우는 계몽주의와, 기존의 아름다움과 질서를 흔드는 강렬한 표현 방식인 숭고(Sublime)였다. 그는 계몽주의 결사체인 프리메이슨에 가입하여 이 결사가 탄압 을 받을 때에 조차 새로운 지부를 창설하려고 했던 열혈 단원이었고, 시대의 음악이 우아함 (galant)과 고전적 균형미를 추구할 때 그것을 깨뜨리는 수많은 시도를 했던 은밀한 혁명가였다.사회학자 노베르트 엘리아스는 그가 잘 나가던 빈에서의 인기를 잃어버리게 된 계기가 귀족을 조 롱하는 “피가로의 결혼”으로 황제를 정점으로 한 귀족들과 부르주아들의 기분을 상하게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 때 대규모 흥행을 이끌었던 그의 예약제 음악회(Academy)는 예약자가 한 명 밖에 없어 취소했고 다시 열리지 않았으며, 그의 경제적 상황은 악화되기만 했다. 대략 1787년 이후 그의 음악은 빈 청중이 듣기에 어렵고 난해한 음악이 되어갔다. 오스트리아 밖에서의 환호와 인기는 그의 삶에 별로 보탬이 되지 않았다. 그의 삶의 마지막 해인 1791년에 그의 마지막 걸 작들이 쏟아졌지만 이를 위한 과로는 그의 삶을 그 해로 단축시켰다. 특히 1791년 중반으로 추정 되는 익명의 레퀴엠 의뢰는 그해 9월 이후에 모차르트의 생의 촛불을 꺼뜨리는 결정적 계기가 되 었다. 그는 이 작품이 자기 자신을 위한 레퀴엠이 될 것이라는 강박에 시달렸고, 이로 인해 건강 까지 급격하게 쇠약해졌다. 이 작품의 강력한 표현은 모차르트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논란까지 빚을 정도로 파격적인 것이었으며, 여기에 사용된 대위법은 그가 빈의 슈비텐 남작의 일요일 정 오마다 회합하면 접했던 바흐 헨델의 유산과 여러 역사적인 맥락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가 어릴 때 유럽을 다니며 접했던 음악들로 국제적인 양식의 융합을 이루었듯이, 그의 이 미완성 유작에는 앞으로 유럽에서 하이든과 베토벤 이후로 전개될 숭고의 강렬한 표현 방법과 음악사의 역사적인 유산이 융합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35세의 이른 죽음 앞에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쓴 그의 레퀴엠에는 죽음이라는 인간 존재의 마지막 장 앞에 선 인간의 절망과 좌절이 나타나 있는데, 죽음 이후의 안식에 대한 탄원조차 투쟁적인 성부들의 충돌로 나타내고 있다. 첫 곡 “입당송(introitus)”의 합창 주제는 다른 레퀴엠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강렬한 어조로 평안(Requiem)과 영원한 빛(Lux perpetua)을 간구하고 있으며 “심판의 날(Dies Irae)”의 격정은 시대를 100년은 초월한 듯한 강렬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시대를 뛰어넘는 강렬한 표현의 와중에도 그는 각 섹션의 마무리를 바흐, 헨델 양식의 푸가로 마무리하고 각 섹션의 조성을 일관되게 설계하는 등, 균형과 조화, 역사적 정통성을 잊지 않았다. 오늘 연주되는 레퀴엠의 판본은 이 미완성의 작품을 완성하여 익명의 의뢰를 완성한 그의 제자 쥐스마이어(Xaver Süßmayr, 1766~1803)의 여러 비판 받는 요소들을 보완한 레빈 박사의(R. Levin) 완성본이다. 이 레빈의 판본에서는 부속가(Sequenz) 마지막 곡인 눈물의 날(Lacimosa)의 다음에 나오는 아멘 푸가를 배치했는데, 이는 유럽에서 1960년대에 발견된 모차르트의 27마디 미완성 아멘 푸가 앞부분을 완성시킨 것이다. 그리고 레빈은 호산나 푸가와 베네딕투스의 조성적 오류를 바로 잡아 다시 고쳤다. 아뉴스데이의 연결부분도 조금 더 세련되게 수정했고, 번잡스럽게 들리는 오케스트라를 조금 더 간결하게 고쳤는데 이로 인해 모차르트 초기음악 양식과 비슷하게 들리는 부분이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망자와 남겨진 자들의 위로를 위한 음악이 아니다. 그의 삶과 이 음악에 쓰여진 투쟁의 면모들은, 천재라고 알려진 모차르트가 과거 바로크 음악의 영광을 바탕으로 고전 시대 중기에 이 시대를 뛰어넘기 위해 그의 삶의 마지막 장면에서 손톱에 피가 맺히도록 노력한 투쟁의 기록이다. 이것은 시대의 경제적, 신분적 속박, 아버지의 사랑과 간섭으로부터 독립하여 주체적인 삶을 살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다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천재의 인간적 투쟁의 흔적이다. 그가 제자 쥐스마이어에게 다시 가사만 바꾸어 재배치하라고 알려진 마지막 푸가의 공허하고 강렬한 라단조 화음이 울려 퍼질 때, 우리는 죽음 앞에서 끝까지 투쟁했던 한 인간의 피맺히는 외침이 강렬한 환희로 다가오는 것을 느낄 것이다. 그것은 시대를 초월하고자 노력했던 한 인간의 숭고한 울림에 공명하는 것이다.
Негізгі бет Requiem KV 626 (W. A. Mozart) Dr. R. Levin Completion
Пікірле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