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우가 확실히 당대 탑티어는 맞는듯요....손권이 뒷통수 안쳤으면 사실상 밀고 올라가진 못하더라도 양양성 먹고 성공적으로 북벌 마치는 수순이었으니...
@jhl4887
10 ай бұрын
@@rebornlee9602 정사기준 누구도 이루지 못한 북벌에 가장 근접한 장수지요
@user-kq4lh8nw6q
10 ай бұрын
@@user-gd3kg1ii9q 동의. 단, 사마의라면 우금만 잡고 빠졌을듯. 관우 최대 단점이 정세분석이라.
@kingmaker0101
10 ай бұрын
한중대전이 217~219년입니다. 관우의 출병은 219년이구요.촉나라는 국력을 다해서 겨우겨우 위나라와 싸우고 있어서 군사적 압박을 덜기 위해서 관우한테 양양을 치라고 한겁니다. 관우 패망을 보면 한중대전이 끝나고 서황이 대규모 지원군을 계속 보내서 지게된겁니다... 관우가 한중대전을 승리로 끝났으면 과감하게 포기하고 우금의 3만 위나라 포로를 데리고 형주로 귀환했어야 했는데 놀라운 승리로 번성와 양양이 떨어지기 일보직전이니 욕심을 내다가 패망한거 같습니다. 또한 맥성 위치가 강릉 바로 옆입니다. 관우가 양양에서 패하고 바로 촉으로 도망갔으면 살았을텐데 강릉을 다시 탈환 하려고 가까운 맥성에 가서 한달넘게 전투를 하다가 도망가다가 죽었습니다...
@mansubrotherman9680
10 ай бұрын
솔직히 이 말이 가장 정답같습니다, 한중을 어느정도 정비하기 위해서는 시선을 다른곳으로 돌려야 하는데. 관우가 그 역할을 해준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우금의 3만 포로만 데려와서 형주에서 다시 버로우 타면 될텐데 양양을 탈취할수 있다는 신기루가 보였던거 같습니다.
@kingmaker0101
10 ай бұрын
@@mansubrotherman9680 후퇴 보다 힘든게 이기고 있는데 철수 하는거죠..서황 지원군이 조금만 늦게 왔어도 번 양 두성을 다 먹는건데.. 저도 처음에 삼국지 보면서 위나라에서 수도를 옮길 지경인데 왜 지원군을 안보냈나 했는데 자료 찾아보니 한중대전이 끝나질 않아서 그런거더군요... 관우가 과감하게 형주로 철수 해서 다음 기회를 노렸으면 상용까지 튼튼하게 지켜서 한중 상용 형주 3군데로 위로 공략할 루트가 있어서 공명이 쓸쓸하게 오장원에서 울분에 차서 죽지 않았을텐데....
@user-qf6us8pr8o
10 ай бұрын
한중전 때문에 기존 형주+익주 전력을 너무 쏟은게 아닐까 싶네요. 형주랑 한중 두개 루트로 북벌하는건 좋은 구도이지만 형주 후방이 불안했던 상황이었죠. 익주 점령 후 오에게 형주를 돌려줘야 했고 관우 성품 상 오나라와 유하게 지낼리 없었을 분위기라는걸 봤을때 한중 형주 양방 북벌을 진행하면서도 관우가 인정할만한 장비 조운 중 한명만 백업으로 보냈어도 이사단이 안났을텐데. 결국 촉의 운명은 관우의 죽음과 함께 끝난거죠
@user-kq4lh8nw6q
10 ай бұрын
@@kingmaker0101 굉장히 설득력이 있는글입니다. 제가 생각한 부분과 일치한 것도 많고. 근데 제가 정사를 제대로 읽지 못해서 그런데 한중대전이 끝나고 양번전투가 일어나지 않나요? 물론 한중대전이 219년 7월에 끝나고 양번전투가 7월에 시작했다고 게임처럼 군사를 바로 옮길수 있는 작업은 할수 없겠지만 그 틈이 궁금하긴 하네요. 둘째 맥성에서 한달간 지체라고 하셨는데 혹시 그때 이미 도주로가 막힌거 아닌가요? 유비 이릉전투는 대참패하고 다시 추스려서 반격하려고 했다는 구절을 본적 있는거같은데.,.,.
@kingmaker0101
10 ай бұрын
@@user-kq4lh8nw6q 한중대전이 2년간 촉나라가 국운을 걸고 전쟁을 해서 겨우 이긴거고 나중엔 급하니까 형주 4군을 전부 오나라에 주고 뒤를 안전하게 하고 관우한테 양번을 치라는 위험한 시도 까지 한거 같습니다. 관우가 워낙 오나라를 무시해서 영토 양도도 제대로 안하고 오나라 관할 지역에서 강제로 전쟁 물자도 수탈 했다고 나와요. 한중 대전이 끝나고 내일부터 전쟁 안하기로 조약을 맺은것도 아니고 계속 방어를 했을거고 상용까지 먹어서 영토가 넓어져서 맹달이 관우의 지원을 거부한것도 소설에는 평소에 감정이 안 좋았다고 나오지만 전혀 아니고 진짜로 도와줄 여력이 전혀 없었다고 봐야 할거 같습니다. 양번패배후에 강릉성이 오나라에 털린걸 알고 바로 촉으로 상용이나 한중으로 철수 했으면 죽을 일이 없는데 강릉을 재 탈환 하려고 맥성에서 2달 가까이 전투를 하다가 완전히 퇴로가 막혀서 죽은거 같습니다. 관우 패배가 더 큰문제가 형주 수군을 완전히 잃어 버린겁니다.. 나중에 이릉에서 큰 댓가를 치루게 되죠... 오만함을 좀 죽이고 과감하게 촉으로 후퇴 헸으면 오나라와 외교등으로 강릉성등 형주 지역을 일부 돌려 받을 수도 있었을텐데 형주군대 근본을 완전히 소멸시켜서 촉나라의 큰 뜻은 사실상 끝난거죠....
@iilllllliilllliilllllliillii
10 ай бұрын
11. 그리고 유비의 실효지배에 대해서 많이 놓치는 부분이 있는데 상용은 교전없이 항복해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는점 (오히려 친 위나라적인 )
@user-gc2gb2nk3y
10 ай бұрын
결과론적으로는 관우의 북벌은 실패지만 실제로는 전쟁 초반 관우는 완벽하게 우금의 정규군을 대파하고 포로로 잡는 성과를 얻었으며 오나라의 뒤통수를 맞기 전까지 북벌은 성공이었습니다 다만 우금과 같이 잡은 많은 수의 포로의 군량을 위해 오나라의 군량을 털어버린 것이 결국 오나라의 뒤통수로 이어지고 결국엔 전쟁을 지게 된 것이죠 제갈량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한들 이러한 변수들을 모두 미리 알 수는 없었기에 의견을 논할 수 없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이 시기에 북벌을 하기에 촉나라의 내정이나 경제가 가장 좋은 시기었으며 이후 북벌은 다들 알다시피 모두 실패하고 촉나라의 멸망을 앞당기게 된 원인이 됩니다.
@user-gy9bt1oc5n
10 ай бұрын
오나라의 군량이 아니라 촉오 둘다 관리하는 군량
@user-bx8ks5xu7r
10 ай бұрын
위연 : 관우장군님만 아니었어도 자오곡 계획이 받아들여질 확률이 조금이라도 올라갔을겁니다. ㅠ
@user-gc2gb2nk3y
10 ай бұрын
@@user-gy9bt1oc5n 오나라의 군량 맞습니다 삼국지 정사와 연의 에서도 관우가 오나라의 군량을 약탈하자 이에 화가 난 손권이 여몽을 선두로 하여 형주를 공격하게 하였다고 적혀 있습니다. 나라가 다른데 어떻게 둘다 관리하는 군량이 있을 수가 있나요?
@user-gc2gb2nk3y
10 ай бұрын
@@user-bx8ks5xu7r 자오곡 계획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유는 자오곡을 실제로 가보시면 지금도 제대로 개척되지 않아 매우 좁고 험하며 높은 산길이라 군대와 군량이 다니기에 적합하지 않아 위연이 말한대로 신속하게 적군을 공격하기 어려운 이유가 가장 컸습니다. 삼국시대에 유비와 제갈량이 현재 사천 지역을 중심으로 촉나라를 건설한 이유가 주변 지역이 매우 험준하여 방어하기에 용이하다는 이유였으며 이는 반대로 공격하기도 매우 어렵다는 것입니다.
@user-gy9bt1oc5n
10 ай бұрын
@@user-gc2gb2nk3y 영릉군의 치소인 천릉현 옆의 상수를 기점으로 유비세력과 손권세력은 관문을 세워 상관을 설치했다. 여기서 군량을 가져왔는데 정사 보신거 맞음? 관우가 신도아니고 오나라 군량창고는 극비인데 어떻게알고 군량을 가져감? 치소는 그 군의 수도라고 보면 편한데 그 군의 수도 근처에 있는데 손권이 화낼일은 하나밖에 없음 그리고 영릉은 유비땅인데 손권이 화낼일이면 공동관리말고 없는데 아니면 손권이 쌩양아치라 본인 것 아닌데 본인것처럼 화냄?
@user-jl5xe3sm3x
10 ай бұрын
법정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알 수가 있었네요
@yaris0920
10 ай бұрын
구라치다 걸리면 어떻게 되는지 몸소 보여준 사례.. 애초에 적벽대전 승리 후 오나라 영토가 되어야 맞는데, 익주들어갈때까지만 빌린다하고 안돌려줬으니.. 사필귀정이라 생각됨
글쎄요....유비가 관우에게 형주를 맡긴건 믿을만한 장수이기도 하지만 한중을 장비가 아닌 위연한테 맡긴 것만 봐도 관우가 형주를 지킬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봐야합니다. 촉나라랑 수백킬로 떨어진 형주는 사실상 고립된 지역인데 관우 정도 되는 당대 거물급이 맡아야 위나 오가 형주 못 넘봅니다...당시 위나라, 오나라 책사들(유엽, 여몽 등)이 하는 이야기 들어보면 당시 촉나라 최고의 장수는 관우이고, 유일한 촉의 명장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형주에는 관우가 최선이었다는 뜻이며 유비의 용인술을 가볍게 볼 수 없죠. 그리고 황충이었으면 손권이 뒤통수 치지 않았을 것이라는건 지나친듯요...손제리였으면 어떻게든 형주 꿀꺽했을 겁니다. 유선 납치는 유비가 무엇을 잘못해서 벌인 게 아니죠.
@rebornlee9602
10 ай бұрын
@@developer-qe6mk 사실 승률은 그닥 중요하지 않습니다. 조조, 유비, 장합 등 역시 패배를 숱하게 겪었으나 이들이 명장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지요. 만약 관우가 병력이 더 많았는데 말아먹은거면 몰라도 관우는 일생의 전투 대부분을 열세인 상황이었거나 적당히 싸우고 퇴각하는 수준으로 싸워야 했습니다. 악진, 문빙, 이통 등에게 관우가 패한 것은 사실이나 이 시점에 주유는 남군공방전에서 관우에게 홀로 조인을 구원하기 위한 조조군의 병력을 막도록 하는 중책을 맡겼고(이통을 막지 못하고 관우가 퇴각하긴 했으나 남군먹었으므로 유비손권 엽한군이 전략적으로 승리한 것) 주유가 직접 자신이 관우 장비를 지휘할수만 있다면 천하통일이 가능하다고 했죠. 애초에 혼자서 적진에 들어가 안량 목 따옴, 이마에 화살 맞고도 안죽음, 살가르고 뼈를 깎아대는데 술마시면서 껄껄함, 어디서 배웠는지 수군 지휘능력도 탑티어 ,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당시 관우는 평범한 장수의 수준이 아니었고 당대평가가 무시무시한게 당연합니다. 다만 그에 걸맞는 전공이(장료의 합비전투 같은) 기록으로 남은게 없어서 늘 미스테리인 것이죠
@rebornlee9602
10 ай бұрын
@@developer-qe6mk 왕평은 요새화된 거점을 수비하는데 전투 대부분을 치뤘습니다. 강유가 수비방침을 바꾸기전까지 한중은 난공불락 요새였고요. 당연히 보급이 떨어진 위나라는 퇴각할 수밖에 없지요. 반대로 유비가 손권과 동맹을 맺기 전까지 그동안의 전투에서 몇번이나 이겼는지 한 번 생각해보시죠. 아무런 의미도 없는 승률을 언급하시는데 관우가 하비성 전투, 청니대치에서 패했다고 관우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청니대치 역시 악진,문빙 정도 되는 명장들이 동원되었고 관우 혼자서 적당히 싸우다가 퇴각한겁니다. 서로 병력 좀 소진하고 전투 이후 형주에 위협이 되지도 않았고요. 심각한 상황이었으면 유비는 익주에서 바로 관우 구원하러 형주로 귀환했겠죠. 관우에게는 이런 식의 패전기록이 많습니다. 패해도 딱히 큰 손실도 아니고 적들도 더이상 추격하지 않는 식의 패배인 것이죠. 오히려 적당히 싸우다가 싸움을 끝낸 수준인데 이걸 패배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수준이죠.
@user-ph8hv1hd9c
10 ай бұрын
그래도 양번전은 정사에서도 승리한걸로 나오지 않나요? 관우가 병력이 위나라에 비하면 우세한것도 아닌데, 심지어 상대방 장수는 위나라 최고무장 조인이었는데, 거기에 우금도 있었고 한명 누구였는지 기억 안나는데 1명 우수한 무장(아 방덕인가?)또 있었어요. 사실 손권이 뒷통수 안 쳤다면 양번 따고, 강릉까지 영토 안정화하고 바로 완까지 돌파했을수도 있습니다. 양번 전에는 물론 대부분 졌지만, 애초에 유비가 전력이 비슷하게 싸운적이 거의 없어서 어느정도 고려해줘야하는듯해요. 당시 명성으로 관우장비는 최고이긴 했고 그렇다는건 활약이 있었다는거죠
@tthwang3169
10 ай бұрын
우선 황충은 군단장 급이 아님
@iilllllliilllliilllllliillii
10 ай бұрын
4. 양번 이전에도 손권은 수차례 통수쳐서 유비를 공격한 선례가 많았던점
@iilllllliilllliilllllliillii
10 ай бұрын
16. 왜 관우는 상용성으로 가지 않고 형주로 향했는가? ( 정사를 읽었으면 모를수가 없음)
@iilllllliilllliilllllliillii
10 ай бұрын
19. 수십배에 달하는 한고조 연합군을 박살낸 괴력의 항우가 거점을 잃었을때 왜 포기했는지와 같음. ( 다른 땅에서 권토중래하자고 신하들이 권유했으나 거부함 ) 이건 관우가 상용으로 향하지 않고 형주를 돌파하려던 이유와 상통함.
@iilllllliilllliilllllliillii
10 ай бұрын
10. 당시 219년에 한중전과 양번전이 동시에 벌어진 전투로 장안의 주력 조조군과 완성의 조인군을 연관이 없다고 년도를 따로 때놓고 볼수가 없는점.
@user-id7gn2of6x
2 ай бұрын
애초에 제갈량, 유비는 관우보고 북진하라고 안했는데 지맘대로 꼴아박았다가 패망함
@kmk3645
3 ай бұрын
국민학교때 삼국지에빠졔있을때 관우의죽음을읽고 얼마나슬펐던지~ 나에게관우의죽음이 삼국지는 사실상 끝났다.
방통이 안죽고 형주를 제갈공명 조자룡 황충이 지키고 익주 한중을 유비 관우 장비 마초 방통이 지켰다면 어떻게 됬을까 궁금
@heart-of-people
10 ай бұрын
조조 위나라의 국력이 이미 크고 우수힌 인력이 많은데다 조조가 똑똑해서 위나라에 내분이 일어나지 않는한 쉽지 않음
@qu_pray
10 ай бұрын
음.. 공명은 보급과 행정업무 전반을 도맡기 때문에 수도와 중앙에 있는게 맞고, 형주에 간다면 방통, 관우가 맞는거 같은데. 한중 공방에서 유비,법정, 황충, 조자룡이 들어가서는 한중을 따오고, 위연, 장비해서 북방을 방비하고 한중 안정화가 완료되는대로 마초, 황권, 위연, 황충, 법정 등으로 해서 형주에서 동시에 북상하면 해볼만할듯 적어도 서부일대는 날아갈거 같은데.
@user-nt5xe3ce5b
9 ай бұрын
촉의 인재난. 촉지방은 방어는 좋으나 진격하기엔 힘든 지형이니 형주가 중요했는데.
@iilllllliilllliilllllliillii
10 ай бұрын
3. 상용성에서 유봉이 쫓겨났고 호족들이 조조에게 항복할정도로 실효지배 못했던점
@sdl4567
3 ай бұрын
관우가 호구였다기보다는 사마의가 오나라를 설득한게 진짜 신의한수였고 미방때문에 후음이랑 연계공격을 못한게 컸지.. 관우는 좀 재평가받을 필요가 있음 오죽하면 조조가 관우 무서워서 수도까지 옮기려했겠음
@user-ox1ot1ek7f
10 ай бұрын
해볼 만 하니까 유비도 오케이 한거지 ㅋㅋㅋ 당시 한중 전선 이겼고 형주 북부에 반란 있었고 오나라도 서주쪽 치고 올라오면 조조도 힘들었을 텐데 오나라가 형주에 눈이 멀어 합리적인 판단을 못해서 뒤통수 맞은 건데 당시 힘도 없던 제갈량이 뭔 수로 촉 2인자 관우를 막누 ㅋㅋㅋ
12. 형주에 대한 오해. 미방과 사인이 그냥 항복한것으로 착각하는데 놀랍게도 그건 상용성이고 사인이 죽을 각오로 교전했고 반준도 마찬가지였고 익양대치때 다른 지역 태수들도 마찬가지였음. 예상치못한 대군이 왔다고 바로 항복한건 아님.
@goomoon3491
10 ай бұрын
이건 재갈공명이 관우에게 오와 협력하라고 했는데, 오와 갈등 일으켜서 뒤를 맞은거임.
@sumanyang7913
10 ай бұрын
기회 나면 튀어나갈 관우를 애초에 왜 거기 배치 했겠음? 할수 있으면 하라는 거지 뭐.
@tthwang3169
10 ай бұрын
당시 제갈량은 유비 참군급이지 군단장 관우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위치가 아닌거 아님?
@captailor
8 ай бұрын
법정이면, 충분히 육손 이길듯...... 하다 못해 황권만 잘 썼어도.....
@user-kc3uo1eg4e
10 ай бұрын
나는 의견을 좀 달리합니다. 우선 제갈량이 책무상 유비에게 관우의 북벌 관련 의견을 제시할 위치에 있지 않아 말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주장은, 그 당시 시대의 실정과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조조나 원소의 수많은 책사, 참모들이 모두 다 군사 관련 직책에 있어서 그 때 그 때 군사적 업무에 대해 간언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심지어 조조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낭고의 상'이라고 하며 경계하고, 자신이 살아있을 때에는 결코 군권을 부여하지 않은 채 문학연이라는, 군과 동떨어진 직책에 묶어 두었던 사마의조차도,익주정벌 건의, 그리고 손권을 꼬드겨 관우의 후방을 습격하게끔 하자는 중대한 군사적 제안을 조조에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날처럼 정부 부처간의 경계와 그 업무의 전문성이 강하지 않았던 과거 왕조시대에는 직책과 관계없이, 고위 관료라면 국가의 중대사인 군사적인 일에 의견을 말하곤 했습니다. 임진왜란 시기에, 병조의 관리도 아니고, 평생 군사 관련 업무에 종사해 본 적 없었던 수많은 선비 출신 관료들이 얼마나 자주, 그리고 강하게 군사 전략콰 전술에 관해 의견을 말하고 있는 지는, 실록이나 징비록에 여실히 나타나 있는 바입니다. 내 생각에는, 이 문제는 직책같은 것에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 유비 정권 내부의 특수한 상황과 관계된 문제같습니다. 유비 진영의 대표적인 인물들은 익주 진출과정에서 모두가 크고 작은 공을 세웠습니다. 황충, 조운, 장비등 대표적인 무장 그룹, 그리고 제갈량과, 심지어 중도에 전사한 방통, 도중에 합류한 노장 엄안에 이르기까지. 유비진영의 스타들중 오로지 관우만이 여기서 제외되었지요. 유비가 처음 익주로 진격한 뒤 형주를 맡아 지키고 있던 제갈량이, 방통의 죽음으로 인해 급히 형주를 떠나게 되고, 그러면서 자신의 업무를 관우에게 맡겼기에. 관우는, 제갈량이 등장하기 전 명백한 유비진영의 2인자였고, 믿을만한 군사및 내정의 조언자가 부재했던 유비는 내*외의 많은 문제를 관우와 더불어 의논했습니다. 제갈량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런 관우이지만, 사실 그가 유비를 위해서 큰 군공을 세운 적은 별로 없었습니다. 관우하면 떠오르는, 화웅을 벤 일이나 호로관에서의 여포와의 대전은 연의의 창작이고, 실제 역사와 일치하는, 안량을 죽인 일이라던가, '오관에서 참육장'했다는 등의 행적은, 조조에게 항복하여 조조군의 일원으로서 한 일이거나, 조조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기에, 유비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공적은 아니었습니다. 유비진영의 대표적인 무장이면서도 커다란 군공을 세우지 못헀던 관우는, 익주 점령이 완료되면서, 유비 진영내에서의 서열이나 위상이 비슷하거나 자신보다 아래였던 많은 동료들이 자신의 이력을 앞서는 큰 공을 세웠다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고, 자신도 유비를 위해 무언가 크게 자랑할 만한 공을 세워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더구나 그는, 제갈량과 주고받은 서신에서도 보이듯 자신을 장비, 조운, 마초보다 더 뛰어난 무장이라고 자부하고 있었던 듯하기에, 이와 같은 결심 내지 서두름에 관한 추측은, 전혀 근거없는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한 관우의 마음을 가장 잘 알고 이해하는 사람은 의형제인 유비와 제갈량이었을 것입니다. 유비야 오랜동안 의형제들과 "같은 침상에서 자고, 같은 식탁에서 식사한" 사이이니 모를 리가 없었을 것이고, 제갈량도 관우와의 서신교환 에피소드가 말해주듯, 관우의 책임감과 자부심, 아니 오만함 넘치는 성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나의 생각으로는, 관우의 성격을 잘 아는 이 두 사람이, 관우의 단독 북벌에 대해서는 어쩌면 의견을 달리했을 가능성이 높을 것같습니다. 제갈량은 필시 반대의견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유비를 처음 만났을 때 진술한 '천하삼분지계'속에서, "형주와 익주를 점거한 뒤, 중원에 '변고'가 생기면 좋은 무장으로 하여금 형주에서 출발하여 무한삼진을 거쳐 중원지역으로 진출케 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당시는 조조가 중원에서 튼튼한 토대를 구축해 가던, 변고 없는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관우의 북벌이 성공하지 못할 공산이 크다고 보았을 것입니다. 유비가 관우의 북벌의 결말을 어떻게 예측했을 지, 사실은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 끝이 형주의 상실과 관우의 죽음일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아마도 그는 관우가 대충 저러다 말든가, 아니면 나쁘게 끝나더라도 원정실패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여기에 두 가지 변수가 작용하면서, 사태는 최악으로 치닫죠. 바로 오나라가 동맹관계를 깨고 조조와 손을 잡고 관우를 공격한 것과, 미방, 부사인, 유봉, 맹달등이 평소의 관우와의 불화로 인해 곤경에 처한 관우를 돕지 않은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변수에 대해 유비나 제갈량이 미리 알거나 예측하고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당시 유비진영은 형주를 분할하여 통치하기로 손권측과 협상을 마친 직후였기 때문에, 유비와 제갈량은 손권의 배신은 예측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또 미방등과의 불화나, 서로 자식들을 결혼시키자는 손권의 제의를 관우가 무례하게 거절했던 사건등은, 관우측에서 유비나 제갈량에게 일일히 알리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외교문제를 야기하고, 문책을 받을 만한 일이니까요. 그렇다면, 최악의 사태는 예측 못했다 해도,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보지는 않았을 것같은 유비는 어째서 관우의 북벌을 중지시키지 않았는가? 나는 그가, 관우에게 공을 세울 기회를 또다시 차단하는 일을 결단하지 못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것은, 일개 무장의 행동을 통제하는 군주로서의 마믐이라기 보다는, 관우의 성격을 잘 알고 그의 마음을 헤아린 상태에서, 의헝제이자 오랜동안 2인자였던 그에게 또다시 공을 세울 기회를 허락치 않는 것에 대한 주저가 섞인 형으로서의 심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와 관우, 장비의 사이가 국가의 근본적인 전략을 뒤흔들 정도의 것이었다는 점은, 관우 사후의 전개를 보면 명백하지요. 관우의 단독북벌믈 유비보다 좀 더 냉정하게, 좀 더 부정적으로 분석했을 제갈량 역시, 바로 이러한 유비의 마음을 파악하고, 촉나라라고 하는, 능력과 조직 중심의 조조진영과는 다른, '유비를 따르는 사람들', 특히 '유, 관, 장 삼형제를 중심으로 한 관계망속에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특징이 강한 곳에서, 관우의 북벌을 승인한 유비에게 중지시키자는 말을 하기 어려웠던 것, 또는 설령 했다 해도 유비가 바로 채택하지는 않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합니다. 더군다나 현대의 학자들의 견해중에는, 유비가 너무나 급속도로 자신의 진영안에서 위상이 커져가는 제갈량을 견제하기 위해, 기존의 2인자였던 관우와의 묘한 '상호견제'를 부추겼다는 의견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명석한 제갈량으로서는 더더욱 말을 조심스럽게 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jm851
3 ай бұрын
제갈량은 신이 아니었기에, 관우 북벌 말릴 이유가 전혀 없었죠. 그리고 관우가 북벌 성공했다 할지라도, 조조가 가만 있었을까요? 반드시 군사 이끌고 맞닥뜨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user-if1bk9sg3v
7 ай бұрын
조금 이해가 가네요. 다 결과론입니다만 장비까지는 아니더라도 형주 출신 황충을 형주 방어하라고 박아뒀음 그렇게까진 안됐을텐데 말입니다.
@iilllllliilllliilllllliillii
10 ай бұрын
6. 손권이 관우에게 사신을 보내기전에 이미 통수칠 군대를 움직이고 있던점
@heart-of-people
10 ай бұрын
삼국지 초한지는 책마다 내용이 다르고 뻥이 너무 많은 거 같아서….. 어디까지를 진짜로 보고 읽어야 하는지…..
@wolfwind1741
10 ай бұрын
저는 양번전쟁 직전부터 관우가 유비의 제어를 듣지 않았을 거라고 추측합니다 관우는 멀리 나온 장수는 임금의 말을 듣지 않을 수도 있다며 유비의 말을 듣지 않고 독자행동을 시작했고 이것을 세상에 드러내면 유비의 카리스마와 집단의 결속력에 치명타가 되므로 유비는 쉬쉬하며 덮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유봉이 관우를 돕지 않은 것도 설명이 되는 시나리오입니다 유봉은 유비와 관우 간의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을 것이고 관우가 자신을 부른 후 군대를 빼앗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사태를 방관했는데 유봉의 죽음의 명목적 구실이 됩니다 (사실은 유선의 후계구도의 안정 때문이었겠죠)
@laiftaim
10 ай бұрын
딱히 말렸다는 기록도, 지시에 따르지 않았다는 기록도 없지요. 말 그대로 개인의 추측에 불과합니다. 유봉이 관우를 안 도운 건 다른 이유들이 이미 충분히 있었으니 직접 찾아보길 바랍니다. 유비와 관우 간의 이상한 낌새가 아니고요...
@wolfwind1741
10 ай бұрын
@@laiftaim그러니까 이상하지 않습니까,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큰 전쟁으로 번질 수도 있는 대위 전쟁을 유비에게 지시도 받지 않고, 그렇다고 유비가 말리지도 않다니요 하다못해 유비가 허락한다는 내용이라도 남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공식적인 기록으로 절대 남길 수 없는 곤란한 내용이 오고간 정황이죠 유봉이 지원군을 안보낸 이유라고 하는 것도 모두 개인의 주장들 뿐일 따름이니 내 추측이나 근거 면에서 별반 다를게 없습니다
@rebornlee9602
10 ай бұрын
형주 자체가 촉나라에서 수백킬로미터 떨어진 곳입니다. 그냥 독자적인 지역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당시 최고 거물급이었던 관우에게 맡긴 것이고 유비가 가절을 내렸다는 것은 관우에게 독자적으로 북벌을 수행해도 좋다는 뜻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애초에 촉나라에서 형주를 제어할 수 없습니다. 관우의 독자적인 영지나 다름이 없고 관우의 북벌을 유비가 말릴 이유도 없습니다. 관우의 북벌이 시기적으로 매우 적절했기 때문입니다. 유비의 한중왕 등극에 호응해서 위나라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났고 관우의 연이은 승리로 조조는 수도를 옮기려는 사태까지 갔습니다. 다만 열악한 보급문제와 손권의 배신을 관우는 예상하지 못했지요. 그리고 손권의 배신이 아니라면 관우는 양양성을 점령하고 철수하는 선에서 성공적으로 북벌을 마무리하는 수순이었습니다.
@iilllllliilllliilllllliillii
10 ай бұрын
@@laiftaim사람들이 당시 상용성을 유비가 어떻게 얻었는지 전혀 모르더군요.
@iilllllliilllliilllllliillii
10 ай бұрын
@@wolfwind1741당시 상용태수가 누군지는 알고 있습니까? 유봉이 상용성을 버리고 온것인지 쫓겨난건지 기록은 보셨나요?
@iilllllliilllliilllllliillii
10 ай бұрын
1. 유봉과 맹달이 상용성 반란 가능성을 언급한점
@reelsuper4737
10 ай бұрын
근데 형주 점령과 적벽대전 등으로 관우를 오래 알아온 제갈량에게 그걸 안 물어봤다는게 더 이상하네요. 형주 익주는 법정의 근거지라 거기에 대해서는 법정에게 의지하는 것이 맞지만, 형주 관련한 일은 제갈량이 더 잘 알잖아요. 유비는 그 나이가 되었음에도 그걸 몰랐던 걸까요?
@user-wr1wo5jg8m
9 ай бұрын
이 전쟁은 도박적인 요소가 있었다고 봐야합니다.
@iilllllliilllliilllllliillii
10 ай бұрын
정사를 안읽으면 놓치는점이 많은데
@iilllllliilllliilllllliillii
10 ай бұрын
17. ' 상용성이 아직 안정화되지 않았다 ' 발언과 실제로 유봉이 상용 호족들한테 쫓겨난점 오히려 형주가 기반이라 형주로 퇴각했을시 형주쪽에서 내응할 가능성이라도 있는점
@user-zo6pe7hj8g
10 ай бұрын
애초에 그냥 오나라가 병크짓한거지. 솔직히 형주영토분쟁때문에 사이가 나빠지긴했었어도 관우가 북벌할때 조조가 합비전선에서 병력빼다가 배치시켰을 정도로 매서웠음. 그리고 애초에 형주를 다 먹은것도아니고 양양이랑 번성까지 뺏어야 온전하게 형주가 복속되는거라 북벌 누군가는 하긴했어야했음. 오나라는 220년에먹고 280년에 망할때까지 한번도 형주쪽으론 재대로 한적도 없고 양번 먹지도 못함. 그상황에서 관우도 그렇고 합비전선 전력빼주기까지했는데 형주를 치겠어라는 약간 안일한 생각까지 할만했음. 그걸 허를 찔러서 여몽이랑 육손이 관우를 죽이고 형주 갈취한건 그 당시에는 잘했다고 볼수도 있겠으나. 결론적으로 관우죽고 이릉대전으로 서로 갉아먹고(이때 손권은 명목상이겠지만 형주때문에 조위를 지지함) 그뒤로 다시 동맹 맺었긴하지만 서로 못믿어서 국경선에 전력 오지게 배치하면서 북벌도 둘다 재대로못하고 국력차이로 패망했으니 과연 관우가 병크인지 여몽육손손권이 병크인지 난 잘 모르겠음.
조조만 땡큐 ㅋㅋㅋㅋ 손권이 말년에 한 짓거리를 보면 정상적인 인간이 아님.... 일단 약한애들 둘이 손잡고 쎈놈 조지는게 상식인데...
@user-qf6us8pr8o
10 ай бұрын
유비 손책이 제대로 동맹맺고 관우가 양번 먹고, 유비가 한중끼고 장안 공격하고 손책이 합비 공격했으면 정말 역사가 바꼈을듯
@iilllllliilllliilllllliillii
10 ай бұрын
18. 관우의 주력군은 형주가 고향인데 상용으로 퇴각할시에 관우군의 사기가 무너질수 있다는점. 군대의 고향을 버릴정도로 심각하다는것인데 병사들이 동요가 극심할수밖에 없음. (실제로 퇴로가 막혔다는 소문이 돌고 오군이 배후에서 나타나자 탈주자들이 헤아릴수가 없었음. 심지어 군량도 바닥난 상태임)
@iilllllliilllliilllllliillii
10 ай бұрын
8. 제갈량은 관우와 기싸움할 위치도 관계도 아니었다는점과 9. 익주 형주연계는 제갈량의 계책이고 제갈량이 반대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음.
@geonyounghong4983
10 ай бұрын
형주상실 이후 촉이 통일할 방법은 없었다고 봅니다
@user-gy9bt1oc5n
10 ай бұрын
건안 24년(219년), 선주(先主)가 한중왕(漢中王)이 되자 관우를 전장군(前將軍), 가절월(假節鉞)로 삼았다. 이게 가절월 출병권임 그리고 관우 출병이 독단적 출병도 틀린말
@iilllllliilllliilllllliillii
10 ай бұрын
정사 안읽는애들이 많아서 그런겁니다
@JJH5680
10 ай бұрын
내용 좋습니다 근데 만약 제갈이 법정한데 서신 하나 보내줄 정도의 그런 능력은 될거라고 생각하는데 보낸건지 법정이 묵살한건지는 모르죠. 예상은 했다쳐도 관우의 몰락은 순식간이고 중국 대륙을 행군하는것은 익주에서 형주라도 빨리 가더라도 2달 걸림 수나라가 고구려 요동까지 1년가까이 걸렸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습니다. 요즘 40키로 행군 하루에 얼마 걸리는지 생각해보십쇼.
@user-oc7ng8hr4s
10 ай бұрын
오나라 가 통수 칠 거라 생각했는데 지키지 않으니 손절이 맞습니다
@mjkim9193
10 ай бұрын
장비 조운 이라도 보냈더라면...
@iilllllliilllliilllllliillii
10 ай бұрын
15. 상용성을 실효 지배했던게 진짜 유봉과 맹달이 맞는가? ( 정사의 상용 호족의 태도나 유봉이 쫓겨난걸 보아서는 전혀아님)
@Q.Emeraldas
10 ай бұрын
유비+제갈량이 오나라의 배신까지는 예상못했을듯. 표면적으로는 촉과 오는 동맹관계였고..(적벽대전 이후로) 설마 오가 위랑 손잡고 형주를 치리라고 생각못했을듯. 관우정도의 장군이라면 충분히 위는 막을수 있다고 생각했을거고. (초반 관우의 승리는 오가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을듯)
@jaehwanan7561
10 ай бұрын
제갈량이 익주빨리 정리하고 가려고 했는데 관우가 섣불리 움직인거 아닙니까?
@mhr8425
Ай бұрын
개인적인 생각으론 제갈량하고 관우하고 서로 기싸움하다가 망한느낌 ㅋㅋ
@user-xk7js6ns2q
10 ай бұрын
제갈량 입장에선 관우를 제거해야할 대상으로 보았을겁니다.
@BlueRose177
10 ай бұрын
그건 아닐겁니다 고작 관우하나 제거 하려고 형주를 포기한다는 것은 제갈량의 북벌루트 한중과 형주 두 군데서 위를 압박하는것을 포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갈량과 관우의 사이가 그 정도로 나쁘지 않았던것 같습니다
@tv-kt9ic
10 ай бұрын
제갈량 현타와서 한대하는거 개웃기네ㅋㅋㅋㅋ
@user-wh1lz4ve7t
5 ай бұрын
한실부흥의 북벌이 너무도 고단한 나머지 한 대 피우시는 제갈승상님 ㅋㅋㅋㅋㅋ
@grinchimr.8959
10 ай бұрын
제갈량은 삼고초려 때부터 유쪼다가 대업을 이루기는 힘들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고 관우의 거만함을 말릴 수 없음을 알고 있었음으로 말려도 소용없다는 걸 알았음.
@user-rg5gx4ix8d
10 ай бұрын
유 관 장 빼고 부하들 출신을 보면 서주출신 형주출신 익주출신 으음 복잡하네요
@rebornlee9602
10 ай бұрын
근데 말이 익주출신이지 익주 인사들도 전부 형주출신들이죠...진짜 익주 토착민들은 철저히 배제되었다는...
@jgtgt
10 ай бұрын
촉나라 장수는 거품 빼면 위연 미만잡 아님?
@user-mf2ei3pm1x
10 ай бұрын
말려도 소용없는거 알아서 겠죠 ㅋㅋ
@laiftaim
10 ай бұрын
제갈량을 행정 일만 시키고 배제, 법정 위주로 운영하다가 그런 실패를 겪었다는 것도 입증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그냥 추측에 불과합니다. 제갈량의 직분 명만 갖고 너무 넘겨짚는 감이 있네요. 유비가 평생 그토록 신뢰하던 제갈량을 행정 일만 시키고 중용하지 않았다는 건 영상의 내용만 갖곤 충분한 설명이 안 됩니다. 급격한 영토 확장과 인물들의 증가로 이게 최선이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다소 방만한 통치를 했다 싶네요. 관우의 능력이 대단하긴 하나 절대적인 것은 아닌데도 형주를 내내 맡기고 군사적 행동도 허용한 부분은 관우를 너무 믿고 의지하며 과대평가한 감이 없지 않습니다. 형주 맡아서 잘 지키고 있는데 뭐 딱히 문제 있겠어? 싶어 그냥 너무 믿고 위와 오의 협공에 무방비로 노출시켜버렸던 것. 제갈량이 대단하긴 하나 새로 얻은 익주 관리에나 쓰고 새로 얻은 법정 등 익주 출신 인물들로 운용한 게... 딱히 제갈량을 등한시했다기보단, 그냥 형주는 관우한테 위임하고 익주는 제갈량이 관리하게끔 하면 된다고 판단한 감이 있네요. 그러면 충분하고 그걸로 최선일 거다~ 다소 안일하게 판단하고 운영했으니까. 유비가 관우의 오만한 성품을 알면서도 너무 믿고 방치하다가 정말 뜻밖에도 그 사달이 나버린 것. 여몽과 육손 등이 대단했던 것도 크겠죠. 관우는 솔직히 제 무덤 제가 판 게 맞습니다. 동맹국인 오를 약탈하기까지 했으니... 정략결혼을 개의 아들 운운하며 모욕해서 깨버린 것도 있고, 그냥 안하무인 그 자체였다가 제대로 골로 간 것. 연의에서 제갈량을 너무 신격화해서 그렇지 그도 어쨌든 한낱 인간에 불과합니다. 관우가 그토록 허망하게 끝장이 날 거라고는 전혀 예상 못했겠죠. 네.
@user-qi6ng7ch6j
10 ай бұрын
봉효만살아있었더라면..공근만살아있었더라면..
@kaist880
10 ай бұрын
생각을 좀 더 다른시점에서 해보면 사마의가 장합에게 그러했듯 제거하고싶은 관우의 오만한 성향을 잘 알고있는 제갈량의 차도살인일수도~ 그냥 재미로 생각하는 개인견해입니다 ^^ (근데 아무리 오에게 돌려줘기로 구두약속한 땅이라고는 하지만 그러기엔 형주를 다 날려먹은것은 좀 손해가 크네요)
관우의 전략 수준은 삼국지 초기 제갈량 없었을 때 유비삼형제 도망가는게 일상이었던 것으로 볼 때 별볼일 없다고 볼 수 있다. 정세를 읽는 능력이나 정치력 전술능력이 안되는데 강적에게 홀로 공격하니 이길 수가 없지.
@user-kq4lh8nw6q
10 ай бұрын
맞습니다. 무슨 관우 오만함 오나라 통수 다른소린 전부 걔소리고 관우 아니 유관장 제갈량 이전세대 최대약점이 정세분석이에요
@user-pc9pv3up9n
10 ай бұрын
무리수라서 조조가 천도까지 생각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user-uh2lb8xk6n
10 ай бұрын
모두들 당연하게 간과하시는게 토사구팽의 가능성인듯 합니다. 연의와 다르게 유관장은 실제로는 의형제가 아니었죠. 유비는 본인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유선 계승 작업에 착수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만약 장비 관우를 의형제가 아닌 군공이 많은 공신으로 본다면, 이러한 가설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유비는 다음 황제에게 위협이 될 관우와 장비를 처리하려 했다. 관우와 장비가 모두 본국에서 죽는다면 이는 유비의 막후공작임이 의심받겠죠. 그러니 둘을 분리시키고, 관우는 차도살인으로, 장비는 암살로 처리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번성에 고립된 관우는 유비의 뜻을 어느 정도 알아차리고 폭주한 것일수도 있겠죠. 실제로 유봉은 맹달의 군 통수권까지 뺏어가면서 유비를 배반하지 않으려 했는데, 지원 안 갔다고 관우 사망 이후 유봉을 처리했죠. 또 위, 관우, 오 세 세력이 다투고 남은 형주를 어부지리로 취하려 했던 유비가 장비 관우 사망의 화살을 오에게 돌려서 오 공격의 명분을 만들었을 수 있겠고요. 결국 유비는 결국 제갈량을 필두로 한 형주파와 이엄 법정 등을 필두로 한 익주파가 서로 견제하는 양상을 만들려 했던게 아닐까 싶네요.
@user-ii7ow2it4l
10 ай бұрын
일단 왜 관우한테 형주 맡겼냐 그거부터가 문제다라고 하는분들도 계신데.... 당시 유비랑 관우의 관계는 단순한 군신관계라고만 설명하기에는 어려운 무언가가 있습니다. 유관장의 도원결의 전설처럼 회자되는 이유가 있죠. 유비가 관우나 장비 그리고 제갈양에게 가진 믿음은 가히 절대적인 신임이었습니다. 형주는 촉에게 너무나 중요한 위치였고 그만큼 군사력도 많이 들어가는 곳이다보니 아무나 거기에 데려다 놓을 수 없죠. 형주를 맡을 수 있는 사람은 유비말곤 관우 뿐이었습니다. 괜히 좀 어설픈 사람 잘못 쓰면 그게 나한테 돌아오는 칼이 될 수도 있는 위험부담이 있는것이구요. 당장 조선 위화도회군만해도 이성계가 돌아와서 왕먹잖아요. 삼국시대는 고대시대입니다. 만약 관우말고 다른 사람이 형주맡았다가 오랑 붙어먹고 촉밀고 들어올수도 있는 상황이 생길수도 있는것이죠. 유비입장에서 관우를 선택한건 베스트 답안일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관우가 요즘들어 군사적능력도 없는것 같이 거품만 있던 장군처럼 까는 분들이 늘어나는거같은데, 오만한성격은 분명 있었으나 그렇다고 군사적 능력이 없었다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그 조조도 관우 피해서 수도 옮기자고 난리떨었는데요. 당시 관우에 대한 평가가 지금까지 남아있는걸 보면 촉나라에 있었기때문에 누락된 전공이 꽤 있을거란 분석이 많습니다. 당대 천재들이 적국의 장수 관우를 그리 겁내고 올려칠 이유가 그닥 없기도하구요. 무엇보다 당시 관우 죽이려고 위나라 오나라에서 보낸 장군들 리스트 보세요. 그냥 관우레이드하려고 당대 초네임드거물들만 모아서 관우하나 잡으려고 별짓 다한겁니다.
@chki1929
10 ай бұрын
기행장군 양양이라는 유투브보면 정말자세하게 그지역찾아가서 설명해줌 삼국 별열개짜리프로그램임
@user-wh6rd2hq4e
10 ай бұрын
그시대에 말 말고 통신수단이 안된다 그리고 제갈ㅈ량은 행정가다
@user-rg6ns4wb2w
10 ай бұрын
모두가 영혼없는 공무원들 이었다는 말씀인가요? 한중토벌 후 위연을 책임자로 두었고, 상용에는 맹달과 유봉이 있었으므로 예비병력이 충분히 있었읍니다 특히 의형제 장비는 관우의 견제없이 임시 형주자사로 딱 이었을 듯 합니다 번성 공략후 폭주하는 관우를 유비 자신도 통제할 자신이 없었지 않을까요?
@batuu2601
10 ай бұрын
진의록의 처 두씨를 조조한테서 빼앗아 오기위해서 북벌을 감행 했을듯
@user-zs1op6ow4v
10 ай бұрын
관우는 말려서도 말을 안 들었음 참고하세요 도불장군
@jkim949
10 ай бұрын
제갈량이 똑똑했다면 오군이 강릉?을 칠것을 알았을것이고 몰랐다면 능력이 마량보다도 아래였을것으로 보임. 제갈량이 마속을 죽인이유도 아마 마량과 연관이 있지 않았을까? 관우의 군사는 마량이였고 대부분 마량의 지략으로 전투했을것으로 보임. 제갈량 입장에서는 관우도 마량도 마속도 맘에 안들었을수 있다고 보여짐. 제갈량 성격도 소시오성격이 아니였을까? 나 아니면 안돼, 다른넘은 죽던지 말던지 그런성격. 유비가 관우의 복수를 나설때에도 제갈량은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막지를 못했다? 그냥 막는척하면 보내주었다 저승으로? 왜냐면 제갈량은 소시오패스일 가능성이...ㅋ 자기말 안들으면 다 죽임. 마속도 죽임...전투에서 한번 졌다고 유능한 전략가를 바로 죽여버리는 성격. 제갈량은 위연의 계책도 묵살, 내계책 아니면 안됨... 만약 위연의 계책이 성공했다면 제갈량은 뭐가됨?. 그래서 제갈량이 죽기전에 위연을 제거하고 철수 하라고 했을듯... 북벌은 제갈량 본인이 아니면 안된다고.
@user-tu5pi8cw3v
10 ай бұрын
이건 걍 병신이네
@외노자-l9k
10 ай бұрын
뭐야 연의야?
@user-yf7xg7rw8b
10 ай бұрын
알고보면 무능력한 삼형제
@user-ud5td4yo8k
10 ай бұрын
제갈량이나 관우나 뻥 튀기된 인물.. 삼국지가 유방의 후손인 유비를 중심으로 지어져서 그렇지.. 유비도 관우도 장비도 제갈량도 그닥 뛰어난 인물은 아닌거 같음..
@rukiki2778
10 ай бұрын
왜냐면 삼국지연의는 명나라때 만든 소설책이니까. ㅋㅋ 찐역사로 생각하면 안됨.
@user-vy6hd4nu1k
10 ай бұрын
유비가 홀로 장기간 대군과 전투를 어렵게 이기고 있지만 뒤 쪽에 형주가 비어 약점이 발생했다는 것을제갈량이 몰랐다는 것은 아주 이상해요 특히 조자룡을 시켜 형주성을 지키고 관우의 뒤를 지원해 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관우가 없어져야 제갈량이 2인자가 되니 눈 감은 것 같아요
@bbbbbbbhhjkbbg
10 ай бұрын
근거없는 뇌절 아닌가요?
@user-vy6hd4nu1k
10 ай бұрын
@@bbbbbbbhhjkbbg 유비가 죽을 무렵 제갈량은 똑똑하고 영리하나 내 아들은 미련하고 부족하니 제갈량이 왕위를 승계하는 것이 어떠냐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는 좋은 면에서 대화나 농담이 아닌 서로에 대한 수싸움으로 전해 오고 있읍니다
@iilllllliilllliilllllliillii
10 ай бұрын
@@user-vy6hd4nu1k 탁고대신 유언건은 기싸움 같은걸로 그렇게 해석될 여지는 있는데 제갈량이 관우를 질투해서 일부로 죽게 내버려뒀다라는 추측은 정신병입니다
@iilllllliilllliilllllliillii
10 ай бұрын
@@user-vy6hd4nu1k제갈량이 무능한건 맞지만 저능하지는 않습니다 익주가 방어하기 쉬운것은 맞으나 장기전으로 소모전을 하면 촉의 멸망은 확정이고 형주없이는 위나라를 공격하기 어렵습니다 질투 한번에 형주 뺏기면 촉의 공격루트는 옹양주밖에 없는데 방어만 하고 살면 되는거 아니냐 하실수있는데 방어만 하면 총력전에서 소모전을 견딜수가 없구요 익주에 처박혀있으면 양주의 기병을 위나라가 흡수해버립니다 위나라가 양주를 못먹게하려면 쉴새없이 북벌해야하고 북벌 성공 가능성은 0.2%도 되지 않습니다. 형주가 있으면 성공 가능성은 30%로 늘어납니다. 질투한번 해결하려고 고작 멸망당할 나라의 승상이 되겠습니까?
@user-vy6hd4nu1k
10 ай бұрын
상식적으로 전략을 알면 각 전선에서 어덯게 전개되고 있는지 알 수 있는데 형주를 비우고 홀로 계속 전투중인데 후방에서 편안하게 있으면서 지원이 전무하다는 것은 아주 많이 이상하죠 상식이 안 통하는 것이 더 문제같은데
@user-em5ls5uf8i
10 ай бұрын
평소에 아니꼽던 놈 알아서 죽으러 가는데 왜 말려요 ㅋㅋㅋ
@user-nt5xe3ce5b
9 ай бұрын
관우는 오만했고 유비외에는 제갈량 말도 잘 안듣던 맨. 명장이라 하기엔 전술 지휘 능력도 별. 용맹하긴 했어도. 애당초 형주 자체를 다스릴 인물은 아니었다는. 유비가 형주에 있고 지휘를 했어야 하는데. 관우가 빠르게 형주를 잃고 죽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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