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는 책마다 다르긴 한데 어떤책에선 촉+오 인구가 위의 절반이 안된다고 나오는 책도 있음 제갈공명이 거품이네 어쩌네 해도 저런 코딱지 만한 국력으로 위나라같은 대국에 비볐다는거 자체로도 인정해 줘야 함
@kislye4698
5 жыл бұрын
@@user-qp9sf1ss4k 한나라 당시 인구밀도가 중원, 하북에 80%가 몰려있었고 촉, 오 가 점령한땅의 70% 가 산악지형 혹은 밀림에다가 토착 원주민들까지 있어서 그 지방을 완전 통솔 하지 못했습니다. 촉나라 전체 추정 인구가 150만도 안되고 오나라도 200만이 안됬을 겁니다. 한서에 기록을 보면 촉오의 점령지였던 파촉 강동 남해 인구가 중국 전체 15%밖에 안됬습니다.
@wingadium-y7d
5 жыл бұрын
관도 대전에서 75만명이나 됬다는것도 허구일 가능성이 많음. 중국 역사관 특징이 군대의 수를 과장해서 표현한다는 것인데 학설에 의하면 원소 10만 조조 6만 정도였다고 함.
@MM-te3dy
5 жыл бұрын
관도대전에서 원소가 졌는데도 조조보다 전력은 좋았다고 하는데 이정도면 하북쪽에 인구가 몰렸을거라고 보는게 원소가 진거는 자식농사 망해서
@user-ne7xk3dd2z
5 жыл бұрын
@@user-qp9sf1ss4k 그건 통일국가 전성기 시대고 삼국지 시대는 후한말인데다 수년간 흉작이 지속고 황건적등 도적떼가 난립하던떄라 굶어 죽는 사람도 많고 도적등등으로 숨으면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죠. 즉 삼국지 시대의 위촉오의 기록된 인구수는 오랜 흉작과 민란 전쟁으로 급감한 인구수+혼란한 시기의 행정력이 미치지못하는 인구수로 인한 인구수라고 보면 되죠
@bradleybeal686
5 жыл бұрын
네 소설요
@qwerrtyy2
3 жыл бұрын
궁금한 사람들을 위한 정리: 1.위는 440만 인구 촉은 90만 오는 230만 2.위가 압도적으로 실질적으로 지배영토가 많다. 촉은 산악지대 오는 개발되기전이라 매우 불리하다 3. 위에는 존나게 인재가 넘친다. 마치대기업마냥 여건이 촉, 오에 비해 너무 좋다보니 비유를 대기업고 중소기업으로 볼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촉, 오는 개 후진 땅이라 간신배밖에 널려있기에 힘들다. 4. 인구도 많고, 땅이 매우 넓기에 위가 둘이 합친 곡식생산량보다 더 많다. 결론: 삼국지보면 위에 맞서는 촉을 보았을 때 위 그리고 오와 싸울때 많이 밀리지 않은 것을 고려했을 때 유비 관우 장비 제갈량은 존나 대단한 인물이다.
@El-bung-punch
5 ай бұрын
ㄹㅇ 촉은 그 군사력과 영토로 비빈거 대단
@user-jm8hw3ij6p
3 ай бұрын
제갈량 정사기준 뛰어난 행정가 진법 막사배치 병력포진 등등 실제로 뛰어났음 다만 구라뻥이 조금 과장되서 나옴 삼국지연의에서
@user-jm8hw3ij6p
3 ай бұрын
제갈량 생전에는 반기를 드는 사람 자체가 없는 이유 아닐까 생각해봄
@user-wv7qj4uc4u
6 жыл бұрын
애초에 관도대전에서 끝난 싸움이었는데 이걸 잘 각색해서 쫄깃쫄깃흥미진진한 지구급 역사소설로 재창조한 나관중의 쓉-상타취 필력을 부랄을 쥐어뜯으며 인정해줘야하는 수준
@mr-cy9pm
6 жыл бұрын
인-정합니다
@user-si4gm1lp3o
6 жыл бұрын
ㅋㅋㅋ 나관중 희대의 거짓말쟁이이자 이야기꾼임
@klimt8252
5 жыл бұрын
애초에관중이쓴 삼국지는 *소설* 이잖아요.
@user-hx9jl8ij3i
5 жыл бұрын
적은 영토로 대국을 정복하는것은 중국역사상 비일비재하고 관우가 패망하지 않고 유비전성기때 북벌로 몰아치면 혹시나 했을수 있음 그리고 이릉에서 지고도 국가의 기강이 서고 제갈량 중심으로 뭉친 촉나라와 달리 콩가루들인 원씨들은 차원이 다르지....
@usergwhsj1
5 жыл бұрын
애초에 연의가 없으면 정사 관심도 못받는건데 정사에 입각해 소설이 사기라느니 뭐니 삼국지 정사충소리 듣습니다
@hikerfrantz5829
4 жыл бұрын
인구가 많으려면 그만큼 농사를 지을 평지가 많아야함. 삼국지13 들어가서 맵한번 쓱 둘러보면 국력의 차이가 보임. 하북과 중원은 넘쳐나는게 평지. 반면에 촉은 저기서 과연 살아남을 수는있는건가 싶을 정도로 평지가 적음.
@user-rp3jt2ki2i
5 жыл бұрын
유방과 항우 때 처럼 한중왕이 되서 일발역전을 노렸던건데.. 조조가 항우처럼 자멸하는게 아닌 이상 이기기 힘들죠.. 유비군엔 유방처럼 한신이라는 거물급 인사가 없었고.. 조조는 항우처럼 지 스스로 무덤을 파는짓을 하지 않는 인물이었고.. 이미 예견된 미래였음
@user-xy5et2ex2w
5 жыл бұрын
원래 허도에서 헌제를 끼고 있었던 조조가 관도에서 원소 깨뜨린 이후로 중원은 위가 차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님. 근데 적벽에서 손권과 유비가 연합해서 조조 물리치고 한중에서 유비가 조조를 다시 물리치니 얻은 게 위나라의 불완전한 평화. 사실상 위의 국력은 촉과 오를 합쳐도 못따라올 만큼 차이가 컸음. 1:2:3 국력을 유지하던 삼국 시대에 그 국력으로 여섯 번이나 북벌을 실행해 위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제갈량이 진짜 대단하다고밖에....
@alwcre
6 жыл бұрын
너무 좋은 자료네요 삼국지 읽기전에 이런 자료부터 읽고 시작한다면 재미가 배는 커질듯하네요
@wonsukchung2979
6 жыл бұрын
사실 삼국지의 큰 의의는 손권의 강남개발이라고 생각함. 그전까지 강남은 강만 흐르는 늪지대나 다름 없었는데 손권이 강남을 개발하기 시작함. 강남개발이 완성된건 송나라대에 이르러서이지만 그 시작은 손권임
@TV-ht6pp
6 жыл бұрын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전란이 시작되고부터 강남이 개발이 시작되기 시작했고 이후 진나라를 거치면서 이주민이 급증하면서 강남이 집중 받게 되죠. 그 시발점은 손권정권이 맞다고 생각하네요.
@user-bc8dq2uc1w
4 жыл бұрын
제생각엔 강남 개발의 시작은 손권이 아니라 사마염이 진나라 세우고 나서 팔왕의난 일어나고 화북 뺏기면서 한족 영토가 강남지방으로 축소되버린 동진시대부터라고 봐야할거 같아요. 왜냐면 한족애들이 만약 화북이 그대로 자기네 영토였다면 굳이 강남을 개발 안했을겁니다. 뺏겨서 한족 애들이 죄다 강남으로 쫓겨나면서 어쩔수 없이 개발을 시작한거죠. 중요성이 그전에는 그냥 산월족 뛰노는 변방 우리로 치면 휴전선 같은 곳일 뿐이었으니까요.
@ukikaze9930
3 жыл бұрын
@@user-bc8dq2uc1w 강남개발 시초는 손권이 맞습니다. 개론서에도 나오는 정설이에요 이건. 손권이 기반을 닦았고 남북조시대에 황폐화된 화북의 생산력을 강남이 대체하기 시작한거죠. 그리고 그 역학관계가 아예 뒤집혀버린건 수나라때부터고
@Craig.H
2 жыл бұрын
이때도 강남이 짱이구나
@coun10
2 жыл бұрын
@@Craig.H 그건 아님
@feeldonghun
5 жыл бұрын
졸 대단한건 병사들이다. 저대륙을 걸어서 다닌 병사들 울나라 천리행군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할듯
@user-mm5ib6wn7m
4 жыл бұрын
저도 그게 항상 신기합니다.
@jbmax2567
3 жыл бұрын
보급도 수레끌어서 했을텐데 진짜 개빡셌을듯 ㅋㅋㅋ 위생은 말도 못할수준일거고
@ergo824
6 жыл бұрын
사스가 삼국지 11 OST 마저 완벽한 코에이 삼국지 사상 최고작
@KOR0522Petrus
6 жыл бұрын
이런영상 참좋아합니다 실제역사와 소설및미디어의역사의차이점을 잘 비교분석하여 영상을 만드시다니 존경스럽네요 구독과 좋아요누릅니다
@user-ld5pm6jq3z
6 жыл бұрын
진짜 오랜만 이네ㅎ
@TV-ht6pp
6 жыл бұрын
오랜만입니다 ^^ 앞으로 지속적으로 영상 올리도록하겠습니다.
@user-tq5jt1ef5y
5 жыл бұрын
최종승리자는 사마의의 아들들인 사마사,사마소형제가 통일의 기반을 닦아놓고 사마의의손자인 사마염이 서진을 건국한후 통일했으니까 결과적으로 승리자는 사마의라고 할수있겠어
@user-io9rx6ib7c
6 жыл бұрын
이런 전체적인 그림을 보니 삼국지의 정치 성향이 왜 그랬는지 이해되네요 ㅋㅋㅋㅋ 손제리가 유비통수치고 형주 먹은게 단한번에 이해되는 정보였음 감사합니다! ㅋㅋ
@taewoongkwon7643
6 жыл бұрын
더 이해해야할게 많아요. 손제리가 촉통수칠수밖에 없었던 이유중 오는 애초에 부족 연합체였다는것, 그리고 산월이라는 이민족으로부터 계속해서 위협을 받았다는것... 확실하게 영토를 얻을 수 있는곳으로 갈 수밖에 없음...
@ghwnsha
11 ай бұрын
형주는 원래 오나라 땅인데 뭔 얼어죽을 통수래 ㅉㅉ 통수는 유비가 통수친거야 ㅂㅅ아
@kthanid9100
6 жыл бұрын
제갈량은 저런 괴물에게 8년 동안 피터지는 싸움을 걸어서 상대를 ㅎㄷㄷㄷ하게 만들었다는게 공포지...
@ghwnsha
11 ай бұрын
피터지긴 개풀 ㅉㅉ 혼자 깝친거지 실제론 전혀 타격준것도없는데 ㅉㅉ 혼자 깝치다 퇴각만 반복했단다
@user-qc5yt7ff3b
8 ай бұрын
나관중의 삼국지연의가 진짜라고 믿는 병신들이 아직도 있네 ㅋㅋㅋ
@contiguous1
6 жыл бұрын
전체를 10으로 놓고 봤을 때 위: 6 / 오: 3 / 촉 : 1 입니다.
@TV-ht6pp
6 жыл бұрын
적절하네요 ㅎㅎ
@user-fj7ws9nr4v
5 жыл бұрын
7:2:1 정도 아닐까요? 위 3000만 오 1000만 촉 600만명 정도
@user-rs2cg4zl3h
5 жыл бұрын
@@user-fj7ws9nr4v 맞는듯 위가7은되야 적당함
@gate5984
4 жыл бұрын
저당시 인구 측정은 정확하지는 않으나 촉은 대략 800만 정도 오는 1000~1200만 정도 위는 2700~3200만 정도로 본다는 내용을 본듯. 저당시에는 인구 쪽수가 사실상의 국력이라서.. 상비군을 인구의 3~5%정도 비율로 보는데. 촉은 전체 군의 수가 많아야 30만수준 오는 50만수준 위는 100만이 넘음 다만 위의 경우는 북방의 흉노 오환 선비 등 이민족도 대치를 해야해서 공격군은 그렇게 많이 꾸릴수가 없었던거.
유방 때와 유비 때의 결정적인 차이점이 항우 때는 혈연관계도 없고 단지 맹약관계 였던 제후들을 규합한 거지만, 조조 때는 친인척들에다 중앙의 직속 장수들이 나가 서 지키고 있어 이반 가능성이 없었습니다.
@user-sanaekochiya
5 жыл бұрын
그리고 항우는 계속해서 후방에서 반란군이나 독립세력이 일어나는 상태였지만 조조는 이미 지방 할거세력을 모두 평정하고 유비,손권만 남겨두 고 있어서 단순비교 대상이 전혀 아닙니다.
@robelia152
5 жыл бұрын
저 상황에서 위나라와 비빈 제갈량은 도대체..그저 빛...
@TV-ht6pp
5 жыл бұрын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 제갈량은 대단했던 것 같네요
@user-jm8hw3ij6p
3 жыл бұрын
서기 234년 오장원에서 제갈량 사망 서기 264년 촉한 멸망 제갈량 사후 촉나라 30년 유지됨 그나마 왕평 같은 유능한 장수가 남아 있었음
@user-oy3fd9om1m
6 жыл бұрын
잘 보았어요 ㅎ
@user-vc6zc2gd4w
6 жыл бұрын
잘 보았어요. ^^ 굿
@TV-ht6pp
6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
@pandalol4583
6 жыл бұрын
위나라 입장에서는 당시 촉,오 보다 북방의 이민족들이 더 골칫거리였죠.
@user-wj2nn5cx2r
5 жыл бұрын
삼국지 후반부 보면 형주지역 촉나라 병사수가 삼국지 초기 하북지역에서 동원된 군사수가 비슷한고 보면 실제론 예상치보단 2배정도 있을듯
@sungwoolee9203
5 жыл бұрын
그 대단한 국력의 위나라 가지고 오나라 쳐들어가서 발리기만 한 조비의 대단함에 무릎을 탁 치고 갑니다.
@SamuelSmith1221
4 жыл бұрын
북쪽 사람들이 수전에 약하다보니..ㅋㅋㅋ
@user-rq7fd6vy8j
4 жыл бұрын
이런 글 남기는사람들 진짜 멍청한사람들인듯
@talkertalker0
4 жыл бұрын
솔직히 원정은 수성보다 더 힘들듯. 보급도 그렇고 체력이나 현지적응도 그렇고
@user-xs9xq7lx6l
4 жыл бұрын
무뇌...
@user-tv7um3gd8m
5 жыл бұрын
어릴땐 겁나 치열하다 생각하고 봤는데 지금 다시보니까 그냥 제갈량이 유비코인 존버타다 한강가는 만화;
@unsuccessfu1
5 жыл бұрын
제갈량 그사람 혹시 만화에 나온것처럼 조조군 공채 떨어져서 특채로 간건지도 몰라
@ukikaze9930
4 жыл бұрын
연의에서 사실 가장 많이 너프당한 인물중에 하나가 유비라서.. 연의에서 유비는 걍 사람 말 잘듣고 성격좋게 그려지는 지라 요즘시점에서 보면 걍 바보같은 인물상인데 정사에서 유비는 관우장비급까진 아니어도 무예도 상당한 인물이었고 지휘에 있어서도 굉장히 평가가 후합니다. 사실 조조랑 손권이랑은 다르게 진짜 아무런 기반하나 없이 시작해서 지방정권이라고는 해도 건국까지 했으니 대단한인물이긴 하죠
@user-pv4rs9sz2l
3 жыл бұрын
@@ukikaze9930 ㅇㅈ 유비가 진짜 돗자리 장수하던 개 그지 깽깽이에서 시작해서 여기저기 떠돌면서 부랑자 신세하다가 적벽대전이후 파촉 점령하고 한중에서 조조까지 털었는데.. 조조는 워낙 빠르게 성장해서 그렇지... 유비에게 한신급 대장군 한명만 있었어도 충분히 이겼다.. 관우 장비 위연 마초 등등 전부 s급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역사적으로 보면 a급도 못쳐줌..실제로 대장군 노릇절대 못했뜸.. 제갈량은 뭐 소하나 장량같은 행보관급이랑 비슷하고. 실제 사마의한테 털린것만 봐도.. 명장보다는 군사라는 느낌이 강하지.
@user-gk8ju3dt4s
3 жыл бұрын
@@user-pv4rs9sz2l 제갈량이 얼마나 명재상인데 그리고 장비는 장합털었고 마초는 조조털었고 위연은 북벌에 제일 믿음직해서 위나라의 명장 곽회를 털었거든요.
@user-wp5tp5kb4j
3 жыл бұрын
@@user-pv4rs9sz2l s급 참모였던 법정이 일찍 죽은게 아쉽죠 법정의 머리로 유비가 싸워 조조도 이겼으니 이릉에서 법정이 있었다면 지더라도 병력을 어느정도 보존하며 퇴각하는게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마초도 1차북벌때 까지 살았다면 서량쪽 호응을 얻기 더 쉬워서 관중 먹었을 수도 있고 유지가 가능했나는 모를 일이지만
@jongseokheo9414
5 жыл бұрын
강력한 위나라.. 그래서저때 손권이 고구려에 동맹하여 위를 공격하자는 제안을 했다는 외교 기록이 남아있죠.
@kugu666
6 жыл бұрын
형주가 유비 손에 있던 시절이 국력순 위-촉-오 의 시절이였겠네요.. 이 영상을 보니 어째서 곧바로 형주로 지원군을 파견하지못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dgl3283
4 ай бұрын
그때도 위오촉이였음 ㅋㅋ
@ED-gf9qj
6 жыл бұрын
오랜만이네영 ㅎㅎ
@TV-ht6pp
6 жыл бұрын
오랜만입니다! 앞으로 꾸준하게 영상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mason7645
6 жыл бұрын
홍승표님 혹시 첫번째 브금 제목이 뭔지 알수 있을까요..
@Forestarena
6 жыл бұрын
위는 강력했고 오는 실속있었으며 촉은 명분이 있었다
@Haji-dl8uh
4 жыл бұрын
이거네~ 걍 이거다
@HJ-je7iv
4 жыл бұрын
위는 조비가 있었고 오는 손권이 있었고 촉은 유선이 있었다.
@yunjukim1042
4 жыл бұрын
@@HJ-je7iv 암군들
@user-oc1jz4sf6e
4 жыл бұрын
@@HJ-je7iv X신 삼대장~~
@human5820
3 жыл бұрын
@@HJ-je7iv 와.....쌉인정
@user-xy5et2ex2w
5 жыл бұрын
애초에 유비나 손권은 천하삼분의 대상이 아니었지 조조, 원소, 원술, 여포, 유표, 유장, 장로, 마등 등 그 당시 내로라하는 군벌들이 많았으니... 근데 손책이 강동에서 터를 잘 닦은 덕에 손권이 성장할 수 있었지. 조조가 관도에서 원소 압살하고 사실상 중원통일이었는데 적벽에서 ㅈ되게 망하고 유비는 회생의 기회를 얻어 바로 익주를 get한 거지.. 조조는 한중을 유비한테 뺏긴 게 너무 아쉬웠을 거고 또 형주도 손권이 낚아채간 게 그것대로 또 아쉬웠을 듯.... 제갈량이 거품이 아니라 항상 1:2:3 국력을 유지하던 촉.오.위의 대립에서 위를 견제하는 것 만으로도 엄청 대단...
@user-vt3iw7uv7g
4 жыл бұрын
먼소리야 걍 나 잘안다 이소리로 밖에 안들리네
@bestminer9419
9 ай бұрын
촉의 실질적 통치 영역으로 볼때 영토는 굉장히 작아보이지만, 저 당시에 제갈량마지막 북벌에 10만이 넘는 정예군을 동원했다는 점을 볼때, 파촉과 한중의 영토는 영토 대비 가성비가 매우 뛰어난 지역임 당시에 브레인들 사이에 구상되었던 천하삼분지계나 천하이분지계는 절대 불가능한 전략이 아님 제갈량이 구상했던 천하삼분지계를 예로 들면 수비에 용이하면서 중앙집권이 용이한 파촉과 한중 지방과 사방팔통인 형주지역 두개 주를 차지하고 형주와 익주에서 동시에 북벌을 감행하면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룰 수도 있었음 문제는 저 시나리오도 위나라가 내분에 빠져 있어야 가능한 시나리오는게 함정 ㅋㅋㅋㅋㅋㅋ 고래서 천하통일은 위나라가 내분으로 자멸하지 않는 이상 시간이 지날수록 위나라의 차지는 따놓은 당상임 이걸 제갈량 강유가 그토록 초조하게 무리한 북벌을 추진한것일수도
@user-bp5nt6bx5k
4 жыл бұрын
그냥 주의 갯수=인구라고 생각하면 될듯합니다. 지금 미국도 그렇지만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일수록 작은 사이즈의 행정구역이 빽빽하게 밀집해있어요. 미국 동부에는 경기도만한 크기의 주도 수두룩합니다. 근데 중서부로 넘어가면 주 하나가 프랑스보다 큰건 예사죠.
@user-qs7mc6zg1p
5 жыл бұрын
그래서 나중에는 제갈량이 먼저 위나라를 계속 쳐들어 가죠. 제갈량은 알고 있었습니다. 이대로 시간이 흘러 한세대가 넘어가면 국력차이가 너무 심해서 싸움 조차 되질 않는다는 것을 말이죠. 그리고 실제로 한세대가 넘어 가니깐 위나라가 인구수와 생산량 모든 것을 압도 합니다. 애초에 촉나라가 국토의 위치나 면적 인구수 너무 불리 했습니다. 유명 장수들과 제갈량이 있어서 오나라에 맞써서 싸우고 오래 버틴 거죠. 하기야 그 맛에 삼국지를 보는 거지만요.
@marcopolo7712
5 жыл бұрын
각종 프로나 책에서나온걸 지뇌피셜인거마냥 끄적이는거 개꼴불견ㅋㅋ
@user-iq9wf4zp3z
6 жыл бұрын
실제로 천하가 아홉이면 여섯은 위 둘은 오 나머지 하나가 촉이라고 할정도로 차이가 났죠 촉입장에선 관우가 형주를 뺏긴게 크나큰 손실
@david-gq7qz
6 жыл бұрын
실제 지배영역은 삼국이 비슷한게 맞고 산간지역이 많은 지형지물로 인해 농토와 인구 등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고 평야가 드넓은 위나라가 다른 두 국에 비해 국력이 탄탄하다라고 정정하시는게 맞아보네요
@qudtlszz-n5v
6 жыл бұрын
솔직히 촉나라에서 알만한 애들은 왠만하면 익주출신이 아닌 유관장 부터 시작해서 첨부터 유비를따라갔던 중원쪽 출신과 형주쪽에서 얻은 인재들임 후반에 활약한 강유도 원래 위나라 출신이고 그나마 익주출신인데 아는애가 장완 비의 법정정도?
@TV-ht6pp
6 жыл бұрын
정말 핵심을 찌르셨네요. 사실 촉나라 그나마 전성기 시절이 올 수 있었던게 중원과 형주출신 인재들 덕이었죠.
@apt35303
6 жыл бұрын
장완도 형남 출신이고 비의도 강하 출신이고 법정과 맹달도 부풍 사람이구요 이엄도 남양사람이고 왕평, 강유, 하후패는 위나라 항장이죠. 익주 출신은 단명하거나 크게 활약하지 못한 부분이 많아서 그런 것도 있습니다. 황권, 방희, 등지, 장익, 마충, 장억, 이회 등이 대표적인 익주 토박이인데 아무래도 위에 열거된 인물들에 비하면 임팩트가 떨어지긴 하니까요.
@qudtlszz-n5v
6 жыл бұрын
apt35303 아 제가 잘못 알고 있었네요 근데 진짜 익주에는 인재가 없긴 없나봐요
@apt35303
6 жыл бұрын
여러 이유로 오래가지 못한 사람들도 있긴 합니다. 양홍과 뇌굉은 30대 초반에 죽어서 제갈량이 3일간 곡을 했다고 할 정도로 유능했던 인재들이었으나 단명했고 장군 보광은 주로 변방에서 활약했으며 기존 유장 휘하에서 종사했던 장임같은 경우는 충성을 지키다가 유비에게 출사하지 않고 처형당했죠. 요립의 학문은 제갈량이 친히 방통에 버금간다고 칭찬했지만 실수를 저질러 좌천당해 죽고 비시는 유비가 황제에 오르는 것을 반대하다가 좌천당해 한직으로 돌다 제갈량 사후 다시 중용받습니다. 팽양은 재주가 있었지만 좌천당한 상태에서 마초에게 모반으로 몰릴만한 실언을 했다가 사형당합니다. 그래도 하급 관리를 내는데 유용했던 한나라의 재흥을 지지하는 유학자들은 유비에게 많이 출사한 덕에 나라가 유지되었다고 봅니다. 진밀, 윤묵, 초주, 이선, 내민, 맹광, 두미, 주군, 두경, 상랑 등이 대표적이죠.
@user-qh7ff3dg6c
6 жыл бұрын
apt35303 황권은 이릉 전투에 패배하고 위나라에 항복한걸로 아는데 아닌가요?? 등지도 오나라 동맹성공하고 다른 성과가 없고 이회는 마초 등용 외에는 본적이 없는듯..
@user-dw3ck2sb7g
6 жыл бұрын
국력상 위를 상대하려면 촉과 오지역이 똘똘 뭉쳐도 겨우 비빌까 말까한 상화이었던게 ㅍㅌ..
@1cyclohexane
6 жыл бұрын
제가 보기에 삼국을 한반도로 대입하면 위 = 경기, 충청, 전라 강원, 황해, 오 = 평안도, 촉 = 함경도 이렇게 보는 게 더 맞을 거 같습니다. 당시는 농업국가이니 춥고 척박한 북한보다 황해 강원 이남의 생산력이 더 좋았으니까요.. 오는 북한에서 그나마 생산력 좋은 평양을 중심으로 한 평안도, 촉은 동해안 밖에 없는 함경도가 더 맞다고 봅니다.
@user-sanaekochiya
5 жыл бұрын
만약 항우가 내분이나 수하 장수,제후들이 계속 이반하지 않았다면 한신도 제갈량의 전철을 밟았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오히려 천하가 둘로 나눠져서 삼국지 무렵엔 한실 이 아니라 초실부흥을 외쳤을지도 모르죠
@user-br9xn5rn5c
6 жыл бұрын
사실 삼국지에서 가장 중요하고 큰 전투는 적벽대전이 아닌 관도전투임 조조가 그 전쟁을 이김으로 인해서 패권 자체가 조조한테로 넘어갔다고 볼수밖에 없음 사실 관도 이전까지는 조조가 원소에게 병력에서 밀렸는데 그 전투 이후로 형세를 가져온게 큼
@user-rd8pv3ds5n
6 жыл бұрын
특히 인재의 경우 촉은 이릉대전으로 오는 이궁의 변으로 날려 먹었죠.
@au6000
6 жыл бұрын
최민수 인정 거의 장수들 죽고, 황권은 ㅇ위로 튀고
@TV-ht6pp
6 жыл бұрын
그나마 있던 인재들 마져도 씨가 말라버렸다고 할 수 있겟네요.
@Red_field6446
5 жыл бұрын
유비,손권,조조가 엄청 싸워났는데 결국 사마씨가 통일해버림(대진국)
@umr887
5 жыл бұрын
이래서 서로 형주를 먹을려고 했구만... 예전에는 형주 지역이 뭐길래 저렇게 싸우지 했는데 형주를 빼고난 오나라 지역을 보니.. 어마 어마 했네요
@100BAEDOSA
5 жыл бұрын
수나라 당나라가 크고 부강한 나라이다보니 고구려는 수많은 전쟁을 이겨도 딱 한번 크게 짐으로써 패망한거다 과거나 현실이나 사람이 큰 재산이다
@son9291
5 жыл бұрын
위 나라 기주지역 인구가 오랑 맞먹는다는 소리도 들었는데 원래 하북쪽에 인구가 몰려있어서
@vikamikhail
6 жыл бұрын
삼11 브금에 지리고 갑니다 참고로 오나라는 호족 연합정권이라 병력 징발도 쉽지 않았을 뿐더러 장강 이남의 이민족들 때문의 상당수의 병력을 묶어둬야했다는 것도 커다란 약점이죠
Chris Potter 말은 맞지만 요즘보면 모든분들 일본판삼국지 께임플레이 하더라구요 ~~ 실제상 중국판삼국 께임 더현실성이고 더재미잇는데 플레이하시는분 없으니아쉽네요 ㅡ.ㅡ
@haslan9849
6 жыл бұрын
삼분지계가 버티는 용이지 천하를 촉오가 통일할 수는 없지요....알면서도 버티기에 들어갔을뿐....관도대전에서 이미 천하패권이 정해져 버려서
@chicc237
6 жыл бұрын
김동원 거기에 유방의 경우 사실상 항우의 본대가 떠난 관중지방을 꽁으로 먹었죠..
@Kimpinecone
6 жыл бұрын
위는 너무 쎄... 후반부 가니깐 결국 압도적으로 털었잖아
@cjswndchl
6 жыл бұрын
김동원 조조vs원소 싸운게 천하의 패권을두고싸운거지
@thegangyu5905
5 жыл бұрын
관우가 번성을 치러가지 않고. 위 , 오가 양옆에서 형주를 공격해 왔어도 관우는 죽지 않았으려나요? ( 삼알못이라 잘 모르겠습니다. )
@floatingwhale33
5 жыл бұрын
대의명분마저 황제를 옹립한 조조에게 있었죠. 조비도 정식으로 제위 선양을 받아 황제가 되었고. 압박을 가했어도 강제 찬탈은 아니었음. 반면 유비는 조칙을 받아 임명된 것도 아니고 스스로 왕을 참칭하더니 나중에 조비가 제위를 받자 자신도 황제를 자처함. 물론 조위의 정통성을 부정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는 없었겠지만.
@user-uz4yu3tm1i
6 жыл бұрын
삼국지의 결착은 조조와 원소가 패권을 다투면서 하북지방을 먹었을때 게임 끝이라고 봅니다. 아무리 유비 손권이 연합한다해도 어찌할수 있었던게 아니죠
@user-zk6fh8lo4f
6 жыл бұрын
사실 중원은 평지가 많아서 한번 쑥 밀면 수백킬로 뚫리는건 한순간이죠. 딱 조조는 이런식으로 먹을 수 잇는 땅은 다 먹고 치기 애매한 지형에서 촉,오가 어거지로 뻐티기 한거 뿐이 안됏슴 ㅋㅋㅋ 막무가내로 뚫기엔 애매하고 촉,오도 함 버텨보자 하면서 질거 알면서 끝까지 gg 안치고 우주방어하고 ㅋㅋㅋ
@TV-ht6pp
6 жыл бұрын
그래서 관도대전에서의 승리가 사실상 통일이라고 보는 학설도 꽤 존재하죠 ㅎㅎ
@user-dv7xu1cx8y
6 жыл бұрын
촉나라 간신들도 한 건 한거 같음... 제갈량이 원정가서 겨우 승기 잡고 올라가는데 간신들이 무슨 역모를 꾸민다고 하고...
촉나라도 적벽대전에서 만약 조조를 죽였다면, 번성에서 관우가 위/오 연합에 승리했다면 같은 if가 몇가지 존재하는 것 같아요. 오는 뭐..
@_Leviosa
5 жыл бұрын
제갈량이 아니었으면 삼국지가 소설로 나오지도 않았을듯. 제갈량이 그나마 버텼으니 이후에 나관중이 흥미를 끈거겠지
@jogudec3
5 жыл бұрын
제갈량 1차 북벌 시도 때 마속이 가정 지켜내고 그 곳을 거점으로 장안공략까지만 성공했다면 진짜 역사가 어떻게 변했을지는 모르는거임 장안 부근에 옹,양주 이 두개 주에서 생산되는 말과 인구,곡식만 조달되도 촉이 위 상대로 장안 바로 다음 수도낙양을 바라보기때문에 위 입장에서는 위협을 엄청나게 느끼게 될 수 밖에 없음 한나라 유방도 북벌을 감행할 때 원동력이 되었던 지방이 바로 옹주,양주임 물론 촉이 옹,양주를 먹었더라도 당장 위 전체을 다 먹는건 무리수지만 장안을 먹고 활성화 시킨 후 국력 제대로 갖춰서 한방러쉬 가서 낙양 공략하고 차츰차츰 땅 키워가는 방법도 있었음 아무튼 확실한 건 장안 쪽을 먹었어야 미래가 보이는 촉이 북벌을 실패함으로써 더 클 수가 없어서 망국의 길로 가게 됨
@dukhuunryu.4670
6 жыл бұрын
캬 이해하기쉬운 좋은 영상이네
@user-bm4xh5rz1p
5 жыл бұрын
초한지를 주재로 동영상 만드시는개 어때요?
@user-sy2du3wh3i
6 жыл бұрын
조조의 인재등용 정책이나 초반에 한황제를 데리고 있었던기반 등 그냥 위나라가 뭐든 너무 압도했죠 그리고 중원땅 차지하면 천하통일은 한거나 진배없죠 고로 우리의 갓조조 성님이 최고십니다
@user-zk6fh8lo4f
6 жыл бұрын
아님. 원래 형주는 2차대전까지도 일제가 중국 정복할 때 주요 함락거점이엿슴. 왜냐면 형주는 중원의 사방으로 갈 수 잇어서 교통의 요지엿슴. 그래서 옛부터 사람이며 물자며 다 풍부햇슴 형주만 차지하고 잇음 북국과 한판 승부는 가능
@user-sy2du3wh3i
6 жыл бұрын
공무원 정보 감사합니다 형주가 있으면 확실히 허창까지 뚫을 수 있겠네요 확실히 비장의 수 정도는 될듯
@user-xi4ch5eb8i
6 жыл бұрын
공무원 그게 수양제의 대운하덕에 당송시대 발전 이야기 하는거 않봤습니까? 대운하 이후 실크로드의 수입을 압도 하니 수도도 그쪽으로 다지었어요 그전까진 그다지
@apt35303
6 жыл бұрын
파촉은 사천분지 정도밖에 농토가 없었지만 형주는 동정호 평원, 무릉 평원, 강릉평원까지 있고 양양과 남양 일대는 인구밀도가 당시 가장 높은 곳중 하나였죠. 형주만 쥐고 있었어도 육전 장수진이 월등했던 촉한이 북벌하기 더 좋지않았을까.
@kapoooism
6 жыл бұрын
파촉은 한고조 유방이 항우를 치기 전에 차지하던 땅이라 그 자체로 의미가 있음. 촉한이 장수진이 월등했다는 건 허구이고, 관우같은 장수가 위나라에 널렸다고 보면 됨. 단지.. 위나라에 눈엣가시가 관우인 이유는 관우가 대단했다기보다 눈에 띄었기 때문.. 제갈량이 대단해보이는 것도 허구, 일단 제갈량은 위나라를 칠 때 공격에 유리하고 방어에 불리한 진창성조차 함락을 못 시킴. 유방때는 장한이 지키던 진창성을 교두보로 진격을 시작했음. 비교가 되도 너무 됨..
@user-bg4qt2ru8i
6 жыл бұрын
오 이제 올리셨네
@TV-ht6pp
6 жыл бұрын
기다리셨군요 ㅠㅠ 늦어서 죄송합니다.
@sdda1985
3 жыл бұрын
역으로 우리역사의 고구려는 땅이 넓었음에도 땅이 척박해서 인구수 부족과 중국과 인접한 방어라인이 너무 넓어서 결국 멸망했다는 ...
@kephas7772
6 жыл бұрын
그래서 실질적인 삼국의 판도를 가른 전투는 관도대전이라 하지요... 그 이후에도 중원의 패권국이 통일을 하는걸 봐서도 지리적인 위치상 남쪽으로 가는 경우 쫓겨난거라 볼 수 있지요... 중국에서 명나라에 의해 북원이 몽골로 쫓겨간것이 몇 안되는 예일듯 합니다.
@user-jx7rh1ci9v
3 жыл бұрын
이릉 이후 촉은 형주 잃고 진짜 툭 치면 바로 멸망할정도로 힘든데 공명 선생님이 그걸 1년만에 원상복구 시켰다는게 더 놀라움
@user-ig7ky7qs3z
6 жыл бұрын
삼국지책을 다봐도 계속보고싶은 재미있는 삼국지
@user-ud3po1bk7g
6 жыл бұрын
삼국지는 연의가 널리 퍼져 있다가 얼마 전부터 정사 위주의 위 진이 재평가를 받는 추세죠. 상대적으로 오가 아직 저평가를 받는데, 상해 등이 경제 뿐 아니러 정치에서도 부각되면 다음은 오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질 겁니다. 사실 지금 위가 재평가받는 이유 중 하나는 집권세력이 북방이고 남쪽을 견제하는 의도도 있다고 봅니다.
@ufusl1072
6 жыл бұрын
조조가 진짜 대단하긴 대단했구나
@PiGlaw2
6 жыл бұрын
그냥 내용 외적인 면에서 얘기를 해 보자면... 삼국지11의 BGM이 얼마나 훌륭했는지 새삼 느끼게 되네요 너무 좋음 삼11 BGM 다른 시리즈 거의 씹어먹는 듯 ㄷㄷ
중국 역사 이래 통일왕조의 수도는 전부 화북지역이었죠(시안-서주, 진, 한, 수, 당) (카이펑-북송) (베이징-원, 명, 청, 현재 중국) 게다가 문명 발생지도 화북인 황하 일대이니 상고 때부터 화북은 대륙의 중심이었습니다
@user-kq5pj9py9c
2 жыл бұрын
呵呵
@wonjoonjo6673
2 жыл бұрын
위나라의 장점중 하나는 촉이나 오보다 핵심 중신들의 수명이 길었다는 점도 있져 촉의 경우 주군인 유비와 유선을 제외하면 핵심 인재들이 50대 전후에 죽고, 오의 경우도 육손을 제외한 나머지 핵심인재들이 50대에 죽은데 비해 위나라는 핵심 중신들의 수명이 60대는 커녕 70대 80대까지 간 케이스도 많아서... 단적으로 삼공 최고위 포지션인 태위의 경우 추증된 순욱을 제외하면 전부 70대까지 거뜬히 살았죠. 촉의 경우도 유비가 입촉당시에 형주에서 많은 인재들이 따라 왔지만 1. 이릉대전에서 대부분 소모되고 2. 남아있는 사람들도 수명이 길지 않았다(강유도 60대지만 엄밀히말하면 위나라 항장 출신...) 차이도 있는것 같습니다. 오도 가뜩이나 핵심중신들 수명이 짧았는데 이궁의 변으로 갈아먹은게 있어서 후기 인재풀이 항상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user-iu6pc5vi4d
5 жыл бұрын
1차북벌이 처음이자 마지막성공 확률이 높았지만 마속이 다 까먹고 제갈량 화병으로 결핵걸려 죽죠 4번 더 북벌한것도 정말 높게 평가해야합니다.
@murimjjang
5 жыл бұрын
유목민은 국력영향을 안받는지도 의문입니다. 명나라 인구가 후금인구의 80배쯤 됐던거로 알고있는데 어찌 이겼나 궁금하네요.
하지만 최후의 승자가 늘 국력순으로 결정 되는 것은 아니었지요. 처음으로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제의 진나라 역시 전국시대에는 변방에 불과했고 신라역시 뒤늦게 출발한 약소국에 불과 했습니다. 한고조 유방은 유비가 차지한 촉한 땅에서 시작한 것이었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당시 기준으로는 쓸모도 없는 습지를 영지로 시작했지요.
@kuneekunee
6 жыл бұрын
갓노래 덕분에 흥하고 갑니다
@foodlike7175
6 жыл бұрын
촉한을 점거한 유비쪽은 아무래도 과거 진시황의 예를 생각한듯합니다. 비교적 옥토가 많은 촉한땅이 생산성은 좋았을테고, 먹고 살기반이 있으면 인구도 생각보다는 많았을꺼구요. 위나라쪽은 거듭된 내전으로 많은 유민이 빠져나가고, 오나 촉으로 갔다고 보면 동원할 군사력은 서로 너무큰 차이가 나지 않았을듯합니다. 당장 세대를 거듭한 뒤의 통일의수습이 그런듯합니다. 내전과 인구 이동, 과거부터의 예를 들면 더 좋은 컨텐츠 될듯합니다~^^ 복합적인 생각을 하게 됬네요. 감사합니다~!!
@TV-ht6pp
6 жыл бұрын
댓글 감사합니다. ^^
@user-gx9xk7og9y
5 жыл бұрын
위는 땅만넓을뿐만아니라 땅이 기름지고 평지가많으니위가 이익일수박레
@김남기
6 жыл бұрын
사람들이 많이들 착각하네... 위나라가 우세한 군사력으로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던이유, 또 하나는 제갈량이 언급했던 삼분지계의 이론 때문입니다. 위나라가 촉이나 오를 한번에 압살할 정도는 아니었기에 공격을 하자면 한곳을 집중해서 쳐야하는데 이는 불가능했죠. 예를 들면 촉을 치기위해 군사를 동원하면 오가 뒷통수 쳤을것이며 다른 이방족들 또한 가만있지는 않았을테니까요.
@TV-ht6pp
6 жыл бұрын
그렇죠. 사실 위나라는 촉나라 오나라를 제외하고 서라도 서북쪽과 북쪽, 동북쪽 세력들도 신경써야하니깐요.
@user-im8ck4so8b
6 жыл бұрын
딱히있나 고구려는 요동세력만으로 상대할수있고 흉노쯤말고는 없을거같은데
@TV-ht6pp
6 жыл бұрын
5호16국시대만 해도 이미 5호 다섯 오랑케라는 뜻인데, 견제해야할 세력은 많았죠. 이미 진이 들어선 이후 5호 16국 시대로 접어든 것만 보아도 북방세력이 만만한 세력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죠.
@hanbangsabjill
6 жыл бұрын
고구려도 그렇고(뒤통수 못치게 관구검 시켜서 선빵 때린 일은 유명하죠-고구려 동천왕 때-) 당시 북방민족은 선비족이었죠 제갈량이 북벌을 할 때 가비능이라는 사람이 북쪽에서 호응했다 하는데 이 가비능이 선비족이었습니다
@user-dg4oe7cl3o
6 жыл бұрын
흉노쯤....?
@pristine787
6 жыл бұрын
아.. 음악을들으니 추억이..
@TV-ht6pp
6 жыл бұрын
음악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ㅎㅎ
@seoteveweiser
4 жыл бұрын
이래저래 병사들은 맨날 발에 물집이 남아 날일이 없고 언제 전쟁 발생할지 모르는 양민들은 하루 하루가 초조하고 살얼음판이었을듯 싶네여 ㅠㅠㅠ 뭔가 씁쓸합니다
@user-fq6yc3kr3n
6 жыл бұрын
조조가 얼마나 위나라 기반을 닦았는 지 알 수 있는 대목이네요. 중원 재패를 통해 이미 통일 기반을 닦았고 황제까지 끼고 있었으니 그야말로 통일하기 제일 좋은 국가였네요. (죽써서 사마씨 가문이 먹었지만 ㅋㅋㅋ)
@TV-ht6pp
6 жыл бұрын
그렇습니다. 그래서 조조가 하북을 평정한 시점을 통일로보는 학자들의 견해도 있습니다. ㅎㅎ 참 삼국지의 결말이 아니러니 하죠.
@user-if2fg4bz8u
5 жыл бұрын
촉나라에 얼마없는 인재들을 유비가 이릉에서 다 해드셨지ㅋ
@user-ep6sq4mz2x
4 жыл бұрын
turtle756 유비 화 존나 내는데
@user-od3yl5oe6r
4 жыл бұрын
관우 사망,형주영토 다잃음, 조자룡과 제갈량에게 촉 수비를 맡기고 이릉 쳐들어가는 중 장비 살해당함. 길게 이릉으로 침투하여 주둔지를 건설한 후 오나라 대도독 육손에게 불공격으로 전멸당함. 영안(백제성)으로 유비가 대피 후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사망..
@ukikaze9930
4 жыл бұрын
정확히는 2진급 유망주를 다 날려먹었죠.. 1진급 장수진은 위나라 견제때문에 거의 다 두고 갔습니다. 이릉대전은 진게 문제지 오와는 한번 싸우긴 해야하는 상황이었죠. 연의라는 다르게 실제로는 이미 촉오 국경이 확정되어있었고 형주를 촉땅으로 오와합의가 끝난 상태였습니다. 그걸 오가 위랑 동맹맥고 뒤통수를 친거고 관우까지 죽였는데 이걸 그냥 두는걸 옳다고 하긴 좀
@clavicl5eo695
4 жыл бұрын
@@ukikaze9930 우리가 ㅈ은 아니다 하고 적어도 위협 정도는 했어야 하는 상황인지라... ㅠ
@ediya4499
3 жыл бұрын
당시 상황은 유비가 오를 안칠수가 없었음 건국공신 둘이나 죽고 형주 뺏겨서 호구 취급 받고 그런 상황에 북벌 계속 하다가 또 오가 옆에서 오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어서 오히려 안 쳤으면 더욱 나라가 처참하게 멸망해서 지금의 유비가 없었을 수도 있음
@user-ux7hu7yr4j
6 жыл бұрын
근데 ㄹㅇ 촉이 오나라랑 손잡으면 위나라로서는 쳐들어갈 곳이 한중 딱한곳 밖에 없네 진짜 방어에는 최적화되어있는듯
@sljoon723
6 жыл бұрын
홍승표님 혹시 건국중학교 3학년이신가요?
@lllililllllilllllil
6 жыл бұрын
위가 저당시 매우 강성한건 사실이나 천하삼분지계 론에 따라 함부로 공략이 힘들었습니다 촉 멸망 후, 오가 약 10여년간 더 버틴 것도 북방 선비족의 가비능에 의해서 였기 때문입니다
@user-mi9cm2sl2l
6 жыл бұрын
자막에 비해 영상이 너무 길어요 5분으로 줄일 수 있을듯
@LEECHAEMIN915
5 жыл бұрын
히익! 으아닛! 이럴수가 촉이 젤 작네? 와우! 대박
@user-ok1gm2iw5n
6 жыл бұрын
미래는 언제나 평화와 혁신의 상징이 된다. 시대적 발상. 그래서 그 전에 있어던 시대적 이슈들은 버리도록 교육받고 죽도록 잔인하도록 마음이 착해야 한다 사마의 사마일가는 언제부터가 그전에 영웅들의 실수를 눈여겨 보고. 이것은 철학적으로 해석 통찰하기 시작하다. 그리고 진정한 미래를 위해서 새 시대를 열것이라는 희망으로 철학은 쌓는다
@2b14uSS
3 жыл бұрын
토탈 100이면 위 75 오 18 촉 7 정도가 정설. 위vs오 세력비 4배 이상 5배 이하, 오vs촉 세력비 3배 이상 4배 이하, 위vs촉 세력비 10배 이상. 유비의 군사적 재능이 그만큼 대단했던 것. 전문 경영인 신세 벗어나 벤처기업 오너 되자마자 적벽에서 조조 깨고 형남 휩쓸고 익주 삼키고 한중에서 조조 또 깨고.
@ghwnsha
11 ай бұрын
웅 유비가 이긴건 하후연이야
@ghwnsha
11 ай бұрын
그나마 유일하게 가능성이 있었던 1차 북벌때 본대로 양주지역을 우회하며 시선을 끌어주고 과감하게 자오곡계책을 실행했으면 그나마 장안과 양주지역을 먹을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있었을텐데. 제갈량의 유유부단한 조심스런 성격 때문에 북벌은 커녕 국력만 갈아버린꼴이 되었지. 국력에서 압도적으로 밀리는데 정공법으로 싸우는거 자체가 군재능력이 허접하다는것이지.
@awyayweayasasd5880
5 жыл бұрын
나관중은 희대의 천재다 사실상 조조가 하북일대 먹은 순간부터 겜은 끝난건데 희대의 필력으로 이미 끝난쌈을 이렇게 부풀린거 보면 진짜 노벨문학상감이다
@ukikaze9930
3 жыл бұрын
이런말 하는 놈들 특) 중국사 공부 1도 안해봄. 위촉 국력차보다 훨씬 압도적인 국력차 뒤집은 사례가 중국사엔 한두개가 아님
@zzamtiger1018
3 жыл бұрын
@@ukikaze9930 지가 말한 사례가 뭔지 말도 없고 그게 삼국지 전인지 후인지도 구별못하면서 뭔 중국사 공부운운 하냐
원소가 전풍이랑 저수 말을 들어 관도대전을 일으키지 않았으면 조조가 저렇게 강해지지는 않았을꺼 같은뎅 그리고 오나라는 손책이 일찍 죽은게 너무 아쉬워요 ㅠㅠ 근데 촉 위에 비하면 오나라는 별로 한게 없네용.. 재주가 좋은 사람들도 많은데 찐따.오나라 근데 진궁이 조조를 죽였으면 저자리를.누가 차지 했을까 원술? 여포? 원소? 제작진님에 의견이 궁금합니당 앙촉띠
@user-gr9uk2mp4t
6 жыл бұрын
최우혁 ////어차피 전쟁은 일어났었을것입니다. 그리고 원소가 멸망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고구려 연개소문이나 후백제 견훤등등처럼 후계자를 제대로 정하지않아서였구요.
@ryank794
6 жыл бұрын
사실상 이길수없던싸움인게 위나라 영토는 거의 모든것을 갖추고 있었음. 옹량주의 우수한 기마부대 생산력, 사예 중원지역의 우수한 인재풀, 기주 청주 서주의 우수한 생산력과 인구등 사실상 모든방면에서 우수한 땅을 가지고있는데 거기다 협천자까지해서 대의명분도 얻고... 거기에 비해 촉오는 지형의 이점을 살려 수성은 유리했으나 오히려 공세로 전환했을때 그 유리하던 지형이 반대로 장애물이 되죠. 특히 촉의 경우, 제갈량의 북벌사례들만 봐도 그들의 가장 큰 문제는 위군의 명장들이 아닌 보급이 정말 문제였죠. 실제로 퇴각사유들 모두 보급문제가 전부였죠.
@grom-89
6 жыл бұрын
유방이 존나 대단 햇구만 ㅋㅋㅋ 저 촉땅을 기반으로 항우랑 싸워이기다니 ㄷㄷ
@GAENODAP
6 жыл бұрын
그점에 대해선 유비를 폄하하기 힘든게 분명 유방이랑 같은 기반인 촉땅에서 시작했으나 진나라의 시황, 유방, 그리고 왕망에게서 한을 다시 되찾은 광무제... 모두 같은기반의땅에서 같은 전술을 사용하여 천하통일을 이룩합니다. 촉한땅에서 척박한 산맥을 넘어 급습하는 전략이 세번까진 통했을지 몰라도 삼국시대땐 이미 "누구나"아는 전략이 되어버렸죠. 군사역사학 전문가들은 그런점도 유비를 어렵게하는 부분이었을거라 말하더랍니다.
@grom-89
6 жыл бұрын
김재호 오우 마니 알아감니다 ㅋㅋ
@jeongminkim364
6 жыл бұрын
거기다 상대했던 인간도 문제죠. 전투는 잘했지만 너무 많은 학살을 저지르고 인재를 경시한 항우, 이상론에 빠져 되려 혼란을 일으킨 왕망과 비교하면 조조는 능력은 확실한 멍멍이라서.
@swoo6636
6 жыл бұрын
그래서 나온게 제갈량 1차 북벌에서의 기산루트 인건데 그대로 무산되면서 이후 위의 방어선 구축이 굉장히 쉬워져버렸습니다. 이후에 행해진 북벌은 내정강화를 위한 북벌, 즉 내부단결을 위해선 외부의 적을 만들란 얘기에 상응하는 식의 북벌로 전락해버린 셈이 크죠... 실제 전쟁 중인 나라의 내정이 쇠락하지 않고 크게 부유해지는 아이러니한 현상을 만들어낸 제갈량은... 엄청나다고 봅니다.
@TV-ht6pp
6 жыл бұрын
정말 수준 높은 댓글들이 많군요!
@user-pg5sn5ez4x
6 жыл бұрын
솔직히 관도대전하고 원가후계들이 척살된후부터 조조가 다른 호족들에 비해서 압도적이였다고 봅니다. 원소가 괸도에서 패하고 병사후 원상과 원희가 패권을 다투고 하북에서 집안싸움을 하는 와중에도 조조는 그들의 세력이 두려워 북진하여 처치했죠. 흑산적세력 장연과 같이 원소말고도 꺼려지는 상대도 있었구요. 관도대전이후, 비록 안정되지는 않았지만 연주, 사예주, 예주를 통치하던 조조에게 기주, 병주, 유주, 청주를 바쳤고 이름뿐이지만 황제를 낀 조조를 견제할 수 있었던 제후는 원소밖에 없었을만큼 관도대전의 결과가 삼국지의 틀에 변동에 많이 기여했다고 봅니다
@Kimpinecone
6 жыл бұрын
이릉대전 당시 촉의 2세대 장수들이 엄청 많이 죽어서 인재 공백기도 있음...
@user-uj4ke5bc4b
6 жыл бұрын
브금 삼국지 11 ㅋㅋㅋㅋㅋㅋㅋ
@starfish9937
5 жыл бұрын
저 좁은 땅덩어리에서 태어난 나라에 동량들을 이릉전투에서 전멸시킨 유비는 대단한 인물이었군요
@thomaskim7548
6 жыл бұрын
조조가 애초에 황제를 붙잡은게 잘한 것이고 후에 저런 위나라....촉오보다 내부 사마의한테 밀려서 이름이 바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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