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야구 엄청 좋아하는데 거기서도 국민팀 요미우리의 4번타자가 한국인인건 상징성이 정말 엄청났지
@MK-qv1xo
Жыл бұрын
딱 2006년이 정점. WBC 그리고 1년 단기계약한 요미우리에서 40호 이상치며 맹활약하여 2007년 4년 24억엔 일본리그 통틀어 최고계약. 이후 2007년부터 내리막. 나도 이승엽 때문에 야구에 관심 가지고 도쿄돔도 가보고 그랬었나.
@user-uu9rk7lx9p
Жыл бұрын
2007년 손가락 부상이 껐죠~ 수술이후 내리막....부상만없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는타자
@Luxembourg926
Жыл бұрын
손가락 부상 있는 상태에서도 30홈런 쳤으니 잘했죠
@UK5179
Жыл бұрын
2007년에 손가락 부상이었는데도 홈런 20개 이상 친거면 진짜 대단함
@user-rn7rc8ym8m
Ай бұрын
이때 사실 한국야구 안보고 일본 야구 봤어요 그래서 당시 요미우리 1~9번은 알정도였죠 그때 정말 마음이 훈훈했어요~
@kaie5826
Жыл бұрын
돔런
@user-uc8br3il4u
Жыл бұрын
아름다운 홈런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수학의 포물선.일본선수시절 다르비슈한테도 홈런쳤죠.
@user-rf6fi2zh2c
Жыл бұрын
요즘 손흥민 중계마냥 스포츠 채널에서 이승엽 요미우리 중계 했었는데 ㅋㅋ 볼때마다 떨공삼을 너무 많이 당함 ㅠㅠ
@kb_tv49
Жыл бұрын
트라웃처럼 가볍게 치는거같은데 다 넘어감 뭔가 자기만의 타격기술이 있는건가...
@user-zkd1zkz12dld3
Жыл бұрын
엄기영 앵커만 봐도 옛날생각나는 이유가 뭘까요..
@user-xp1vp8tu1j
Жыл бұрын
그 당시 일본언론에서 하라 감독이 시미즈의 홈런과 이승엽의 홈런 후 반응 모습을 비교해서 공개한 것은 하라 감독이 당시 이승엽을 요미우리 4번타자로 기용하는 것에 대해 반대가 많았기 때문. 그래서 하라 감독도 부담이 있었는데, 이승엽이 저렇게 개막전부터 이틀 연속으로 홈런을 쳐대니 부담감을 덜 수 있었던 것임.
@taewonheo2642
Жыл бұрын
2006년 이승엽은 공포의타자
@user-eb5pb2nv8u
Жыл бұрын
저런 시절이 있었지 저게 벌써 17년전..
@user-nx8vy8cu3b
Жыл бұрын
팀은 꼴찌ㅋㅋ
@user-vy2je6wk5e
Жыл бұрын
막판 무릎부상아니었으면 우즈하고 홈런1위 경쟁 더 재밌었을텐데
@namkim8025
Жыл бұрын
33번 이 공포엿지
@whdeka77
Ай бұрын
0:01
@user-be1nh4of6v
Жыл бұрын
싸인. 안해주는 넘
@user-jn3pt8mk3k
Жыл бұрын
승사바
@user-kw3se9oh3f
Жыл бұрын
이 완벽한 선수를 겨우 사인에 대한 본인주장 하나로 부정하며 깎아내리는 목적이 뭘까? 그말이 맞든 틀린든 정말 치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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