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은 사과의 말/길상호
나는 심장으로부터 너무 멀리 와버린 사람, 몇 가닥 혈관만 남은 가지 끝에서 익기도 전에 물러버린 행성입니다. 당신의 맥박을 찾아 가끔 링거 줄에 맺혔다 떨어지는 유성의 힘으로 하루를 돌리고 나면 곪은 상처만 하나 더 돋았습니다. 도려낸 살점을 블랙홀에서 날아온 새들의 먹이로 건네주는 저녁, 발그레한 꽃잎의 기억은 노을 속으로 떨어져 쌓입니다. 한 겹 더 얇아진 중력으로는 이제 어떤 꿀벌도 부를 수 없습니다. 귓가에서 윙윙거리던 별들도 닿을 수 없는 거리까지 멀어지고, 벌레들이 그려 넣던 미로까지 막혀버리면 궤도를 지우고 잠들겠지요. 바람이 흔들 때마다 운석으로 남은 씨앗을 덜그덕대며 당신에게 닿아 있던 꼭지를 비틀 겁니다. 붉은 심장을 저버린 사람, 이제 당신의 별자리에서 저를 지워주세요.
-우리의 죄는 야옹(문학동네)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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