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절하네 유배형 당하면 기본적으로 활동 범위가 제한되는데 보부상은 양반이라서 자유롭게 조선 8도를 돌아다녔나 내가 살다살다 한양 외 유배지 논리는 처음 본다 ㄹㅇ 그랬으면 세금도 못 걷어서 나라 파산했다 그 논리면 전국에 교도소가 있는 미국도 수용소냐
@user-ke6sx8ne6b
Жыл бұрын
조상을 모독하지 말거라. 광인 마적단과 조선을 비교하냐?
@user-ws6cu3sp1u
Ай бұрын
솔직히 말해서 조선은 지금의 북한 보다도 훨씬 더 지옥같은 나라였습니다 그래도 북한은 최소한의 법치의 형식이라도 갖추기라도 하지만 전형적인 고대노예제국가로서 서기50년 경의 중국후한보다도 훨씬 수준이 낮았던 조선은 법치의 법자도 모르고 야만적인 통치를 하던 나라였기에 노비도 마음대로 때려죽여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않았고 노비세습제가 1885년까지 유지되었기에 (노비제도 자체가 폐지된 것은 1894년 노비가 실질적으로 사라진 것은 1950년대) 후기가 되면 면세계층인 노비숫자가 차고 넘쳐서 재정이 파탄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징세수입으로 관료들의 봉급을 제대로 지불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덕분에 관료가 백성을 직접 등처먹는 현실인데 나중에는 등처먹을 백성이 없어서 같은 양반끼리 등처먹는 상황이 됩니다 그래서 일어난 것이 바로 1862년에 일어난 진주민란인데 퇴직한 전직 관료가 현직관료의 과도한 수탈을 참지 못하고 난을 주도한 것입니다
@user-ee5qg5kj8i
3 жыл бұрын
나도 진도섬에서 태어나고본니 고조할아버지 3형제가 각각 한명씩 다른섬에다 퍼놓아서....
@user-bw5de5ut5e
3 жыл бұрын
마지막에 처럼 오랜시간이나 엄청먼 타지가는거 진짜 큰잘못이나 진짜 정권에 찍힌거 빼고는 거이다 멀리 교도소 가는 개념이 아니라 그냥 근신정도라고 하던대;;;심지어 한양에서만 살짝 벛어난 자기 친가나 외가로 가서 한달정도 쉬다가 다시 복직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고 심지어 그냥 넘어가기 머하고 그렇다고 큰벌주기 머한 경우도 그냥 유배시키고 얼마후에 복직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user-gu5hr5yw3f
Ай бұрын
유배보냈다가 복권시켜주면 충성이 하늘을 찌르니까....공산당법과 똑같음...
@yanginkyu
Жыл бұрын
저때도돈있는것들은 편해~~~~뿌리가 깊네
@Michigankikiko
3 жыл бұрын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것이 가장 힘든데 ㅎ 국왕 근처에 있다가 동냥이라니 ㅎㅎ 포르쉐타다 자전거도아닌 리어카 끄는거네 ㅎㅎ
@user-me2xj6pn5w
3 жыл бұрын
전에 일등연예인이 순위가내려왔다고 고민고민하는게 이해할만해요
@user-rh4fz1pl9d
3 жыл бұрын
@@user-me2xj6pn5w 그거하고는 영 다른거죠 유배란 기한이 없다는 위 사례처럼 빽도 없으면 죽을때까지 유배라는 한마디로 반대로 권력을 잡고있는 집안에 하나 유배가면 그지역 유지들이 모셔가는
@user-me2xj6pn5w
3 жыл бұрын
@@user-rh4fz1pl9d 자살한연예인들 지금까지추모한다는 말을들어서 한자올렸어요
@user-ws6cu3sp1u
3 жыл бұрын
돈이 많은 양반들은 유배를 가도 현지에서 첩거느리거나 관기와 사흘이 멀다하고 빠구리하고 노비부리고 가족들과 자주 편지연락하고 아주 호화판 생활을 하고 잘먹고 잘살았습니다 (그 대표적 인물이 바로 정약용) 다만 그 고을을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야하니까 답답하긴 했겠죠 경우에 따라 10~30년 가까이 유배를 산 경우도 있고 죽을때까지 유배를 산 사람들도 있습니다
@user-kc2zu3vq1k
Жыл бұрын
@@user-ws6cu3sp1u 정약용이란늠이 그런늠이었소 나쁜늠
@user-oe8cc9lf6f
9 ай бұрын
잡범들은 가두었는데 그레도 오두막집이라도 그안에 살면서 기간을 보냈다는것은 엄청배려했다는거를 느낀다
@partisanmoon9187
8 ай бұрын
눈물난다
@matize6373
3 жыл бұрын
압송관은 무슨죄고! ㅋㅋㅋ
@user-pv8uc2ut4v
3 жыл бұрын
옛날이나 지금이나 돈있어야 편한건 똑같네
@brucelee2583
3 жыл бұрын
유배인들은 당대 최우수 엘리트들로서 수많은 유배가사를 남겼지요.
@user-sv2ey6yb9l
Жыл бұрын
조선시대 벼슬아치 노릇도 못 해먹을짓
@user-pn4lt3oi7o
Ай бұрын
그래
@bluerockaz
3 жыл бұрын
어색한 아ㅡㅡㅡ라는 놀라는 듯한 반응은 어찌 없앨 수 없나
@bourianelee5818
2 жыл бұрын
제 말이 바로. 필요없는 반응을 넣어 좋은 다큐의 질을 떨어뜨리네요.
@user-gw2zu5do2r
Жыл бұрын
태형, 장형, 도형, 유형, 사형 다섯 형벌을 소개하는 영상을 보면 유형을 받은 죄인에게 장형을 먼저 집행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영상을 보면 원래 대명률 규정은 그런지 몰라도 조선에서는 유배형을 받은 죄인에게 따로 장형을 집행하지는 않은 것 같네요. 관료 중에 유배형을 받는 사람이 많아서 대부분은 영상에 나온대로 귀양길에 올랐겠지만 조정에 찍혀서 삼엄한 감시하에 사극의 장면과 비슷하게 끌려가는 사람도 있지 않았을까요?
@user-ro2nq4kw7f
Ай бұрын
조선 자체가 멜서스트랩(땅은 그대로인데 인구는 증가해서 일할수록 더 가난해짐 이걸 타파하려면 무역이나 전쟁 공업인데 훈구파가 사림선비들한테 밀려나면서 무역 공업 다 x가 되버림) 이것때문에 월급 자체를 아전급한테는 10원도 돈이 없어서 못줌 한마디로 감시시키고 싶어도 돈도 밥도 못주니 감시 시킬수가 있나 ㅋㅋㅋ 사또들조차도 연봉잉 쌀한가마 땡이고 나머지는 수탈해서 먹든가 굶어죽던가 하는 쓰레기나라가
@taehoLee-xu5xf
3 жыл бұрын
삼천리 km 표기 잘못 되어 있네요
@user-yw4vg9vl5l
Жыл бұрын
연기 쩐다
@hjkim9677
Жыл бұрын
권력있고 돈있으면 사약만 안내려오면...유배가 아니고 팔도 유람이네...호랑이만 안만나면...
@pulgacsi
Жыл бұрын
👍
@SUN-zl4ud
Жыл бұрын
10리가 4Km이고, 천리는 400Km이니, 3천리는 12,000Km가 아니라, 1,200Km인 것임.
@caryshim
Ай бұрын
남북거리 3000리 1200키로 금수강산... 서울 부산 500키로 서울 개마고원 700키로 정도 될려나요.
@Rapido-tz6bn
Жыл бұрын
당시 무인도로 유배 보냈는데 사람 살기 좋아 무인도가 지금 유인도 되어 산다. 유배는 잠시 쉬었다 오라는 것이지 형벌도 이니다.
@user-hn7hn7ok9v
Жыл бұрын
문과급제 가 정치관여 당연하지 그러나 죽거나 유배 성상문 은 거혈형 으로 사라지다 다 역모 권력 이간질 정치는 지금 에도 마찬가지 형벌은 사라졌지만 ㅋㅋ
@user-eo2id9yj7z
Ай бұрын
삼천리가 12000키로? 택도없는 말입니다. 750키로 정도라고 알고있습니다.
@sans187
Ай бұрын
10리가 4킬로미터이니, 3000리는 1200킬로미터네요. 제목이 잘못됐음
@wowwow1174
Жыл бұрын
유배지는 지금 어느지역일까
@kmg-kh6bg
9 ай бұрын
예나 지금이나ㅜ
@user-ys7ks1wr8v
Жыл бұрын
시간이 아깝지 않고 역사공부도 하네요
@user-hn7dp4pu3g
3 жыл бұрын
미친 기록 보통은 처참 했다 ! !
@user-gw8wg9yo4w
3 жыл бұрын
동서고금 막론하고 관직숫자는 정해져있고 하고싶어하는 사람은 많으니 같은 나라안에서도 끊임없이 지도층들은 암투를 벌이게 되어있다.역사속에 수많은 내전,모략,음모가 거의다 이런 이유에서 벌어지지.민주주의 국가에 선거가 단순히 시민이 정치에 참여할수있어서 좋은 제도가 아니고 바로 이런 정해진 관직을 두고 벌이는 엘리트들에 투쟁이 쓸데없이 인재를 피로 소모시키는 결과를 보지않고 평화적으로 벌어지기 때문이다.엘리트중 15퍼센트만이 사형도 아닌 유배경험이 있다는건 그 시대치고 상당히 온건한거다.동시대 서양에선 귀족중 집안에 장남을 제외한 아들들은 성직에 몸을 담지않은한 거의다가 전쟁터에서 죽어나갔다.
@krosskim624
Жыл бұрын
맞는 말씀입니다.
@user-dp6xu4cy4r
9 ай бұрын
23년동안 유배지 생활이라..
@user-gg6lv6kz2n
10 ай бұрын
성주라...경북 성주...
@ht30
Жыл бұрын
관리하다가 왕 눈에 어긋나면 그냥 유배가는건데.. 어이쿠..
@actanonverba3921
3 жыл бұрын
소달구지 함거를 타는 경우는 처형장에 끌려갈때죠..... 유배는 말이나 도보로 갔다고 합니다...
@user-yv1pk4mx9u
Жыл бұрын
자세히조사해서다시보고해라
@chws1121
Жыл бұрын
수레에 실려가는 것은 사형수가 사형장에 끌려갈때 뿐이었습니다 ㅎㅎ
@beekangkang7150
Жыл бұрын
뇌물 이 오가는 세상, 예나 지금이나 돈 을 좋아 하는것, 요즈음 공무원, 검사, 판사, 관리 등 , 이것은 나라 가 망하는 지름길, 힘없는 일반 평민들 죽도록 고생, 아마 이것이 조선 의 멸망 의 원인중 하나일것
@user-eh9zj4nw1w
Жыл бұрын
22:13 저게 그렇게 별미라고 하지요.. 무슨 죄인이 먹는 밥처럼 묘사해놨는데 실제로 정말 맛있는 메뉴입니다. 당시의 전통식으로 담근 장 한종지는 지금하고는 비교할수없는 감칠맛이 있었어요. 간장게장 같은거 좋아하시는 분은 아마 전통식 장 한종지면 그냥 몇그릇 드실정도고. 덜 쓰른 보리밥도 가마솥으로 지은 밥이라서 지금 먹는 밥보다 훨씬 맛이 있습니다.
@user-fs5lm2wj5y
Жыл бұрын
하루에 33키로 이동했네... 대략 걸어서 8시간
@cho82me262
Жыл бұрын
도형의 도는 칼도 인가?
@sweetpotatoesyun5001
Ай бұрын
목에다 널판지 같은 것 쓰고 꼼짝 못하게 앉아 있도록 하는 형인 것 같습니다.
@user-ry1vz2sd2q
8 ай бұрын
조선은 돈이면 다 되네
@SKCCP
Ай бұрын
비리부패에 연관된 의원 & 고위 공직자들을 외진 산골 또는 작은섬으로 유배시키고 죽지 않을만큼 2틀에 한끼씩 먹게하고, 농사를 짓던 그물 던지고 물고기를 잡던, 인생 밑바닥을 맛보게 해야 합니다. 교도소 징역형보다 더 고되야 합니다.
@Jeong-eun
3 жыл бұрын
산에 들에 가면 일거리 없나 구걸을 하게 바다에 가서 고기라고 잡고 해물 조개라고 캐고
@user-dj9vg1ej2q
Жыл бұрын
그거도 하던사람이나 하지 글만읽은 양반이 조개잡고 고기잡아 넌 무인도 보냄 할수 잇것나? 고기가 널 데리고 놀겟다
@user-fj8is6yi7r
Жыл бұрын
비슷한 시기에 다른 나라는 어땠는지를 좀 따져보길.
@mountainhardwearr
3 жыл бұрын
시간탐험대 봐서 대충 아는 내용이네ㅋㅋ
@user-xx5vv4xi3q
3 жыл бұрын
옛날역사가 이지경이니 현대역사가개판이어꾼
@user-rn8kc3wl4v
Жыл бұрын
그때는 포퓰리즘은 약했는데 지금은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포퓰리즘도가세 그래서 더욱위선적 변모
@aloneishappiness
Жыл бұрын
당신 맞춤법부터 개판이다
@realmirk
Жыл бұрын
근데 젊은 유배인들은 잘해줘야 되지 않나요 나중에 복권될수도 있고
@user-ob3mo8px6f
Жыл бұрын
젤 멀리 유배간 예) 소현세자의 어린 세 아들들.... 즉 인조가 손자를 유배보낸건데, 제주도로 보내버려서 그중 둘은 풍토병으로 죽고 막내만 살았다고 합니다.
@user-yh1eo2jg7c
Жыл бұрын
주로 섬이나 함경도의 산수갑산이 유명했고 고위직이나 왕족은 위리안치 를 시켰다
@user-ix8nz7xo8m
Жыл бұрын
삼수갑산
@TheClassicalPondMJ
Ай бұрын
❤❤❤❤❤❤❤❤❤❤❤❤❤❤
@daddyfallinginpoem7714
Жыл бұрын
선비들은 유배가면 최소한 서당을 열어 글을 가르치면 밥벌이는 할 수 있지 않았나??
@user-cd9xw6ds8m
Жыл бұрын
우리 조상은 유배형 쳐맞고 정치 지겹다며 그냥 관직때려치고 유배지에 땅사고 가족데려와 눌러살면서 마음편하게 자손들도 열심히 많이 낳아서 지금은 집성촌됨ㅋㅋ
@user-ix7xr9ft9v
3 күн бұрын
삼천리가 만이천키로??? 천이백키로 아닙니까???
@user-bj4pl6pp9j
Ай бұрын
3000리=3000x0.4km=1200km입니다
@sfk1031
Жыл бұрын
황당하고 하찮게 유배되었지. 줄타기에 실패해서 유배되고 뒷담화 하다가 쳐발리고 안경썼다고 쳐발리고 다양한 이유로 쳐발렸지.
@user-my9rq3to5k
2 жыл бұрын
ㅋㅋㅋ 첨 알았네.이럴줄 알았다.세상사 딸랑이지
@user-zn1kq3og6w
Жыл бұрын
좁은 국토 한반도를 제대로 써보지 못한 지금의 한국민들. 조선시대 국토는 지금 남한의 두배 이상입니다.
@user-bt9sd7gz5x
5 ай бұрын
요즘으로 해석하면 정치적인 적을 제거하는 목적이었지요 당시에는 민주주의란게 없었으나 이긴자가 권력을 잡고 정치하려다 보니 반대파는 철저히 응징하는 방법의 하나이지요 그리 생각해 보면 유배자의 뼈아픈 맘이 어떻했을까요 세상이 민주주의로 잘 바꿨다, 다행중 다행이다. 하긴 지금도 정권을 잃은자에게는 무슨 죄를 물어서라도 처벌하고 있다. 사람사는 곳이란게 다 이런건가 인간이란게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는 함께할수 없는것인가? 원래부터 인간은 파벌을 만들어야만 살수 있는 것인가
이렇게 유배가는 양반이 얼마나 되겠나 고문도 공개적으로 하는 조선에서, 자정도 유배길은 복받은거지 대부분은 인권도 없이 갔을텐데
@user-qo3bp9ti5l
Жыл бұрын
광해군은 유배생활 동안 아랫것들이 윗목을 차지하고 자신은 아랫목에서 지냈으며 나중엔 종들조차 어이 영감이라고 부르며 막 대했죠. 왕이었던 사람도 그러할진대 일반인이너 낮은 벼슬아치나 돈 없는 자들은 진짜 지옥같은 생활이었겠죠. 조선시대 통털어 수천명은 유배를 갔을텐데 그나마 유배지에서 대접받고 산 사람운 소수겠죠. 예를 들자면 선조대의 정철이나 순조대의 정약용 등 몃명이나 될까요.
@lhommefatal7177
Жыл бұрын
중국 후한시대에는 수도 낙양에서 만삼천리 떨어진 교주 일남(현재 베트남 중부 후에/다낭 일대)까지도 유배를 갔는데, 거기 비하면 조선의 유배는 애들 장난이지 ㅋ
@user-cy9vj6yb5p
Жыл бұрын
현시대는 배달원100프로가 유배지 다가봤는데....
@judasho12
Жыл бұрын
ㅋㅋㅋ
@hanyi4047
Жыл бұрын
조선 초기가 아닌 중후기 외척이 강하거나 왕권이 약할 때 유배살이가 괜찮았나보네;;
@usa6539
Жыл бұрын
김정은왕국은 수용소가는데 가족 모두가 한국는 교도소 가고
@woohyunlee1
6 ай бұрын
허구헌날 당쟁만 했으니... 15%면 생각보다 적네. 하긴 나머지는 서로 다 죽였으니...
@monbiotmiric284
Жыл бұрын
가난하고 정치적 뒷배가 없는 양반은 끔찍한 시련이었지만 부유하고 세력 있는 양반은 유람이었다. 간신 송강 정철을 보면 알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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