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이황 선생은 둘째 아들이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아내를 잃었다. 아들은 경상도 의령의 외가에서 키웠는데 몸이 워낙 약했다. 결국 퇴계가 단양군수로 있던 때에 아들은 21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둘째 며느리 류씨는 자식도 없이 청상과부가 되고 말았다.
퇴계선생은 홀로된 며느리가 걱정이었다. '남편도 자식도 없는 젊은 며느리가 어떻게 긴 세월을 홀로 보낼까?' 퇴계 선생은 홀로 된 어린 며느리가 유교적 규범에 얽매여 남은 인생을 쓸쓸히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며느리에게는 너무 가혹하다고 느꼈고, 둘째 며느리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아리었다. 자신 역시 태어난지 7개월 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홀어머니가 평생 7남매를 뒷바라지하느라 당신을 희생하며 살아오신 것을 보았기에, 더욱 측은했는지도 모른다.
애처로운 며느리에 대한 퇴계의 근심은 점점 깊어갔다. 게다가 당시에는 ‘보쌈’이라는 일종의 약탈혼도 종종 있던 시대였다. 홀로 된 여인을 강제로 보(褓)에 싸서 납치해 아내로 삼던 풍습이었는데, 퇴계는 혹시라도 며느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자기 집이나 사돈집 양쪽이 다 난처해질 것 같아서 밤이 늦도록 며느리가 기거하는 후원 별당을 돌면서 순찰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밤! 집안을 둘러보던 퇴계선생은 며느리의 방으로부터 '소곤소곤' 이야기하는 소리가 새어 나오는 것을 듣게 되었다.
순간 퇴계선생은 얼어 붙는 것 같았다. 점잖은 선비로서는 차마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며느리의 방을 엿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젊은 며느리가 술상을 차려 놓고 짚으로 만든 선비모양의 인형과 마주앉아 있는 것이었다. 인형은 바로 남편의 모습이었다. 인형 앞에 잔에 술을 가득 채운 며느리는 말했다. "여보, 한 잔 잡수세요." 그리고는 인형을 향해 한참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흐느끼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남편 인형을 만들어 대화를 나누는 며느리..., 한밤중에 잠을 못 이루고 흐느끼는 며느리..., 그날 밤, 퇴계 선생은 가슴이 아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윤리는 무엇이고 도덕은 무엇이냐? 젊은 저 아이를 수절시켜야 하다니..., 저 아이를 윤리 도덕의 관습으로 묶어 수절시키는 것은 너무도 가혹하다. 인간의 고통을 몰라주는 이 짓이야말로 윤리도 아니고 도덕도 아니다. 여기에 인간이 구속되어서는 안 된다. 저 아이를 자유롭게 풀어주어야 한다.'
며칠 뒤 퇴계는 사돈에게 직접 말할 수는 없었지만 며느리를 친정에 보냈다. ‘아가, 그 동안 남편 잃고 마음이 많이 어렵고 힘들었을 텐데, 친정에 가서 푹 좀 쉬려무나.’ 그것은 사돈에게 좋은 신랑감을 물색해 새 삶을 살게 해주라는 시아버지의 묵시와 배려였다. 이렇게 퇴계선생은 사돈과 절연하고 며느리를 보냈다. 물론 양 집안간 사돈의 인연이 끝나는 일이라서 한편 서운하기도 했지만,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할 리가 없었다.
퇴계와 둘째 며느리의 만남
여러 해가 흐른 뒤, 퇴계선생은 한양으로 올라가다가 조용하고 평화스러운 동네를 지나가게 되었다. 하룻밤 묵는 신세를 져야 해서 문을 두드렸다. “한양으로 가는 과객(過客)인데 실례가 안 된다면 여기서 하룻밤 묵어갈 수 있겠습니까?” “예, 노인께서 이 밤에 어디서 오셨는지 모르지만 아래채 방이 하나 비어 있으니 주무시고 가십시오. 저 아랫방에 이부자리를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식사도 못 하셨겠군요. 먼 길 오시느라 시장하실 텐데, 제 아내를 시켜 저녁상을 차려 드릴 테니 찬은 변변찮지만 식사하시고 주무십시오.”
인심이 후한 젊은 남정네가 친절하게 하룻밤 묵어가라고 방을 내주었다. 고마운 마음으로 여장을 풀고 잠시 쉬고 있는데, 저녁상이 들어왔다. 시장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음식 하나하나가 그렇게 맛이 있을 수가 없었다. 간이 입에 아주 딱 맞아 너무 맛있게 먹었다. 다음날 아침, 식사를 하고 가라고 해서 또 밥상을 받았는데, 신기하게도 전날 저녁처럼 밥상 위의 반찬들이 퇴계가 평소에 좋아하는 반찬들이었다.
‘참 이상한 일이로다. 우연히 들른 집 음식이 어찌 이리도 내 입맛에 잘 맞을까? 혹시 며느리가 이 집에 사는 것은 아닐까?'’ 밥상을 물리고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그 집을 나서려는데, 젊은 남정네는 가시는 길에 신으라며 자기 안사람이 만들었다는 버선 한 켤레를 가져다주었다. “아니, 낯모르는 과객에게 버선까지 지어주다니 너무 고맙소이다. 이 은혜는 평생 잊지 못하리이다.”
버선을 신어보니 너무 편안하고 발에 꼭 맞았다. ‘아! 며느리가 이 집에 와서 사는구나.’ 퇴계선생은 확신을 하게 되었다.. 집안을 보나 주인의 마음씨를 보나 내 며느리가 고생은 하지 않고 살겠구나. 만나보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짐작만 하며 대문을 나서는데, 한 여인이 구석에 숨어 퇴계선생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었다. 담 모퉁이에 서서 장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숙여 공손히 배웅하는 여인이 있었다. 한눈에 둘째 며느리임을 알 수 있었다. 퇴계 선생도 그 자리에 석상처럼 멈추어 서서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며느리를 한참 바라보았다.
이 일을 놓고 유가의 한 편에서는 오늘날까지 퇴계선생을 비판하고 있다. "선비의 법도를 지키지 못한 사람이다. 윤리를 무시한 사람이다." 하지만 또 다른 한 편에서는 정반대로 퇴계선생을 칭송하고 있다. "퇴계선생이야말로 윤리와 도덕을 올바로 지킬 줄 아는 분이시다. 윤리를 깨뜨리면서까지 윤리를 지키셨다" 며...,
#아랫방 #이황 #퇴계선생
.
#지혜의숲 채널 운영자(성필원)는 무계획적인 사상가를 뜻하는 'kabbu'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며, 스스로를 학문과 성공의 지혜를 결합시킨 최초의 세속 철학자로 칭한다. 기존의 인식과 완전히 다른 의미있는 삶의 철학을 추구하면서 그 결과물을 글과 강연을 통해 발표하고 있다. 『양처럼 살 것인가 늑대처럼 살 것인가』와『생존』, 『정보브로커』,『인간농장』등 다수의 저서를 펴냈으며, 『내 안의 백만장자』와 『행동하라! 그러면 부자가 되리라!』를 직접 번역해 책으로 내기도 했다. 페이스북의 20만명 ‘힘이되는 좋은글’ 같은 다양한 사이트들도 운영중이다.
#좋은글 #앎 #인문학 #역사 #좋은생각 #자기계발 #오디오북 #힐링 #명언 #아이디어 #처세 #문학 #심리학 #건강 #발차기 #운동 #예술 #철학 #인생수업 #비즈니스 #성공학 #인간경영 #자기개발 #위인전 #인간농장 #짧고좋은글
Негізгі бет 퇴계 이황과 둘째 며느리 류씨
Пікірле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