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황사 달마고도길을 그번주 걷고 왔습니다 스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생겼습니다 유튜브를 보고 늦게 알게된 금강스님의 법문은 심금을 울리는 법문입니다 감사드립니다
@yolee7457
3 жыл бұрын
금강스님_()_ 해남 미황사가 이렇듯 아름다운 절~ 꼭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금강스님의 수고로움에 뿜어내는 대자연의 조화가 어우러져 마치 한폭의 그림으로 보여집니다. 금강스님 언제나 건강하시고 법문 감사드립니다. 나무 아미타불 나무 아미타불 나무 아미타불_()_
@진실화-x1z
3 жыл бұрын
금강스님 안녕하세요 아름다운 미황사 또 가고싶어요 해설과 법문 금강스님 고맙습니다 🌻🌻🌻🦋🦋🦋
@kyungmipark3019
3 жыл бұрын
금강스님 봬러 꼭 가겠습니다. 나무관세음보살
@금강-g1w
4 жыл бұрын
나무 영산불멸 학수쌍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_()()()_
@驫如願以償
Жыл бұрын
2009 - KBS목포 곽현희 아나운서 곽현희 아나운서의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이종배-g2z
6 жыл бұрын
땅끝 아름다운 절 미황사 금강주지스님 그립습니다^^
@驫如願以償
Жыл бұрын
사주품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묘한 보배가 비처럼 내려도 욕심 많은 자는 만족하지 않구나(天雨妙珍寶 欲者無厭足).” 그러면서 “비록 황금을 쌓아 산과 같게 한들, 어느 한사람도 만족하게 할 수 없다 (若有得金積 猶如大雪山 一一無有足).” 끝없는 욕심으로 독차지 하려는 중생심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마땅히 알라. 욕심이란 괴로울 뿐 즐거움 없나니 (欲苦無有樂 慧者應當知) (중략) ... 오욕을 즐거워하지 않고 애욕과 욕심 끊어 집착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부처님의 제자이니라 (得天妙五欲 不以此五樂 斷愛不著欲 等正覺弟子).” ‘불자’라면 욕심이 괴로운 것인 줄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내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한데 과도한 욕심으로 자타가 고통 받는 것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소욕지족의 가르침이 금욕적인 생활을 강요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실상은 균형 잡힌 경제행위를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출가자의 영리활동은 배제되지만 축적을 염두에 둔 재가자의 경제활동을 저속한 것으로 치부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근면하게 재물 축적하는 것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재물과 이익을 법답게 얻어 빚지지 않으면, 안온을 얻고 보시를 행하여 기쁨을 얻나니 이 둘은 다 함께 이익을 가져 오네. (如法得財利 不負得安隱 施與得歡喜 二俱皆獲利).” 합당한 재물의 축적과 나눔에 따른 평온의 이익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재물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얻는 방법과 사용에 따라 고통과 안온으로 나눠질 뿐입니다.
@驫如願以償
Жыл бұрын
우리 몸에는 몸 안의 수(受-느낌), 상(想-생각), 행(行-의지), 식(識-판별)이 드나드는 6개의 문이 있는데 바로 안(眼;눈으로 보고) 이(耳:귀로 듣고) 비(鼻:코로 냄새를 맡고) 설(舌:혀로 맛을 느끼며) 신(身:피부의 감촉) 의(意:마음의 작용)의 경계이며 이것을 6근(根)이라고 한다. 수(受-느낌), 상(想-생각), 행(行-의지), 식(識-판별)이 머무는 곳의 6가지 경계를 색성향미촉법 이라고 하며 이를 6경(境) 이라고 한다. 따라서 우리 몸을 기준으로 몸 자체에 6근이 달려 있고, 몸 밖의 삼천대천세계에 6경이 있게 된다. 그리고 몸 안의 세계(경계)에는 6경에 해당하는 장소가 있는데 이것을 6식(識)이라고 하여 눈으로 판별하는 식을 안식(眼識:색의 경계)이라고 하고, 귀로 판별하는 식을 이식(耳識:소리의 경계)이라고 하고, 코로 판별하는 식을 비식(鼻識:향의 경계)라고 하고, 혀로 판별하는 식을 설식((舌識:미의 경계)이라고 하고, 몸의 감촉으로 판별하는 식(識)을 신식(身識:촉의 경계)이라고 하고, 마음으로 판별하는 식을 의식(意識:법 경계)이라고 한다. 이는 결국 몸 밖의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과 같다. 그러므로 우리 몸의 안(眼:눈으로 보고) 이(耳:귀로 듣고) 비(鼻:냄새를 맡고) 설(舌:맛을 느끼고) 신(身:몸으로 느끼고) 의(意:생각과 뜻)는 결국 몸 밖의 색성향미촉법 (色聲香味觸法) 과 몸 안의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과 연결되고, 대칭되는 경계를 파악할 수 있으며, 그렇게 되면 실제로 수상행식이 일어나는 내면의 세계에도 6곳의 장소(경계)가 존재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정리해보면 모든 것은 변하므로(諸行無常) 항상 하는 실체가 없고 그러하므로 공(空)이 되며,
@驫如願以償
Жыл бұрын
6근이 각각의 감각 대상인 6경을 만날 때, 각각의 감각 장소인 6근을 통해 각각의 인식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 인식을 6식이라 한다. 즉, 안식‧ 이식 ‧ 비식 ‧ 설식 ‧ 신식 ‧ 의식의 6식이다. 초기 불교에는 6식까지만 있는 것으로 봤다. 이상과 같이 6근이 6경을 만났을 때를 조건으로 해서 일어나는 것이 6식이다. 이와 같이 모든 존재 속의 인식작용이 18가지 범주로 나누어졌음을 알게 되는데, 이것을 모두 합쳐 18계라고 한다. 즉 6근 ‧ 6경 ‧ 6식을 합한 것이다. 좀 더 자세하게는 눈‧ 귀 ‧ 코 ‧ 혀 ‧ 몸뚱이(피부) ‧ 마음(뜻)의 여섯 가지 감각기관, 즉 6근과 그 대상인 물질 ‧ 소리 ‧냄새 ‧ 맛 ‧ 촉감 ‧ 사물 혹은 현상의 6경, 그리고 이 6근 ‧ 6경을 연으로 해서 생기는 여섯 가지 마음의 활동, 즉 6식을 합한 것이 18계이다. 5식은 안식 ‧ 이식 ‧ 비식 ‧ 설식 ‧ 신식을 말하며, 제6식인 의식과 구분해서 앞에 있는 다섯 가지 식이란 점에서 전5식이란 이름이 붙었으며, 의식은 전5식 다음의 제 여섯 번째 식이라는 의미에서 제6식이라 칭한다. 이처럼 5근이 5경을 만나 일어나는 식을 전5식이라 부르는데, 이 전5식은 매우 현재적 이어서 당장 느끼는 대로 생겨나는 인식이다. 이와 같이 식 가운데 안식 · 이식 · 비식 · 설식 · 신식 등 전5식은 안 ·이 · 비· 설 · 신 등 5근이라는 육체의 다섯 부분에 의지해 활동하는 심식들이다. 여섯 가지 식으로 초기불교가 심식에 대한 설명을 하였지만, 대승불교 유식에서는 8식설 즉 여덟 가지의 심식으로 정리하게 된다. 그 중에 기본적으로 6식이 그대로 유식에 받아들여지고, 여기에 제7식과 제8식을 포함해서 여덟 가지의 식으로 나누는 것이 정리된 유식의 특징 중의 한 가지다. 이렇게 해서 작게는 여덟 가지의 식으로 나눌 수 있으며, 크게는 전5식과 제6식을 하나로 묶고, 제7식과 제8식을 더하여 세 가지의 식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驫如願以償
Жыл бұрын
반야심경은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약칭이다.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密多時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요약된 해석) 관세음보살이 큰 지혜로 저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는 깊은 수행을 하실 때에, 인간을 비롯한 모든 존재를 이루고 있는 다섯 가지 구성요소인 물질적 현상과 느낌, 생각, 의지, 인식작용은 모두 고정된 실체가 없이 텅 빈 것임을 훤히 비추어 보시고 모든 괴로움과 불행에서 벗어나셨다. 구체적 해석)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은 반야심경(般若心經)에 제일 먼저 등장하는 부처님으로 자신 안에 혜안(慧眼)이 있어 진리(열반의 세계)를 타(他)에 의하지 않고 스스로 보는 깨달은 성인(聖人)을 말한다.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은 진리를 깨달아 성불(成佛)하신 부처님을 말하며 관음(觀音)보살, 관세음(觀世音)보살 등의 다른 이름이다. 진실 된 마음으로 보면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고 소리 없는 것을 듣게 된다. 보고 듣는 것은 스스로 존재하는 본래의 한 주체이니 눈이나 귀가 보고 듣는 것이 아님을 알면 곧 관자재보살이 되는 것이다. 행심반야바라밀다시 (行深般若波羅密多時)는 관자재보살이 깊은 수행의 완성을 할 때에 라는 말이다. "바라밀(波羅密)의 실천으로 반야를 행할 때 피안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해석된다. 이때의 바라밀은 6바라밀 (六波羅密)을 말하는데 보살이 열반에 이르기 위하여 실천해야하는 여섯 가지 덕목이다.
@驫如願以償
Жыл бұрын
불교에서는 존재의 인식방법을 외부세계에서 출발점을 삼지 않는다. 철저하게 존재의 근원인 ‘나’의 감각기관에서 출발하여 존재를 인식하는 것이 타 종교와의 차이점이다. 불교는 존재의 출발점인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 들어오는 허망한 ‘나’와 망상된 ‘세계’에 집착하지 않는다. 깨달음을 얻고 나면 6근은 ‘나’라고 착각하지 않고, 대상인 6경을 ‘세계’라고 집착하지 않는다. 그 모든 것이 인연 따라 생겨났다가 인연이 다하면 사라지는 허망한 것임을 가르친다. 특히 유식학은 대상인 물질 자체를 부정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대상보다 오히려 인간의 인식을 중시하고자 하는 입장이다. 인간의 인식작용이 무한하듯이 또한 물질적인 대상도 다양한 각도로 보여 질 수 있다. 물질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질을 바라보는 인식의 문제로 인간의 인식범위가 넓어진다면 물질에 대한 생각도 변하고 물질적인 풍요에 의하여 인간성을 상실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가치를 높이고, 삶을 풍요롭게 할 수도있다. 이를 위해서는 물질의 개발과 함께 인간의 내면적인 수행과 노력으로 바른 인식을 얻고자 노력해야하며 이를 통하여 바른 행위를 하게 되고, 그 행위를 통해서 행복을 달성하고자 하는 불교의 근본적인 가르침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驫如願以償
Жыл бұрын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바라밀의 지혜로 오온(五蘊)을 비춰보니 모든 것이 공(空)이며 그래서 일체고액에 묶이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이때의 오온(五蘊)이란 무엇인지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의 몸은 크게 정신과 육체로 구성되어 있는데, 정신은 다시 수(受-느낌), 상(想-생각), 행(行-의지), 식(識-판별)으로 나누고, 육체(색:色)는 다시 지(地-흙), 수(水-물), 화(火-불), 풍(風-바람)으로 나눈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몸을 불교에서는 오온(五蘊)이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온(蘊)’은 쌓을 온(蘊)자로서 쌓다. 저축하다, 저장하다 이다. 즉, 덩어리란 뜻이다. 그리하여 오온(五蘊)은 우리 몸을 이루는 다섯 가지의 덩어리로 곧, 색수상행식을 의미한다. 그리고 색(色-육체)을 이루는 요소인 지(地-흙), 수(水-물), 화(火-불), 풍(風-바람)을 불교에서는 4대(四大)라고 한다. 4대가 원래 주인이 없으니 수(受-느낌), 상(想-생각), 행(行-의지), 식(識-판별)은 공(空)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오온(五蘊)이란 이 사바 세상에서 잠시 빌려 입고 다시 돌려주고 떠나는 일종의 껍질과도 같은 것이 된다.
@驫如願以償
Жыл бұрын
간탐(慳貪) 내 것 아끼는 것을 간(慳)이라 하니 즉 우리말로 "인색"한 것이요, 남의 것 욕심내는 것을 탐(貪)이라 하니 즉 우리말로는 허욕(虛慾) 이다. 이를 나누어서 말하면 그렇지마는 "아끼는 것"도 탐심이 있기 때문에 아끼는 것이다. 그래서 한데 합하여 "간탐"이라고 하는 것이다. 보통 생각에도 자기의 것을 아끼는 것은 당연하지마는 남의 것을 탐내는 것은 부당하다고 한다. 그러나 "아끼는 것"도 어느 정도이지 분에 넘치는 일은 역시 탐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驫如願以償
Жыл бұрын
반야심경에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이란 경구가 있다. 안이비설신의는 인간이 가진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의미한다.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통해서 경험하고 느껴지는 것을 "색성향미촉법"이라 한다.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6근"으로 표현하고, 6근을 통해 인식되어진 대상을 "6경"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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