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는 1부 1처제입니다. 그렇지만 임금은 1부 다처제 즉 여러 여자를 아내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화에서 왕비가 많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user-lc4it1ll3k
Жыл бұрын
저점잇는분성함아세요
@coolcorea6217
3 жыл бұрын
광고가 적당히 있어야지...넘 심하군
@user-lz3dz5db4g
3 жыл бұрын
시바 결국 올린 게 창왕이었냐
@user-ww8si1uw4q
3 жыл бұрын
첩에자식은.벼슬에오르지도.못하는대.첩들은.왜.엄청두는거야.정치하는대.정신사납게
@gilbertjeong5599
3 жыл бұрын
고려시대는 조선시대처럼 적서차별이 안심했을겁니다
@user-pj7le9oe1o
2 жыл бұрын
후대에 역사 드라마 찍기 좋게 해주려고~ 조상들이 미리 각본 짠 거 아닐까요?^^
@freshever5719
2 жыл бұрын
@@gilbertjeong5599 적서차별은 태종이 실시했죠. 새엄마랑 틀어지게되면서.
@user-yj8ef3th2c
2 жыл бұрын
야여
@blisswinner1803
2 жыл бұрын
그냥 일부일처가 최고네
@user-gs7qy9ht6j
2 жыл бұрын
코 점 빼야지요
@user-jh8ip4ni7b
2 жыл бұрын
영선옹주가 왜? 기생출신 ? 옹주가
@leadiana77
7 ай бұрын
고려 말~ 조선 초 사이에는 내명부 체제가 완전히 정해지지 않아 후궁에게도 옹주, 궁주 등의 호칭을 사용했어요. 또한 옹주는 조선 중기 이전까지 만해도 왕세자빈이 아닌 임금의 며느리를 일컫는 말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원경왕후 민씨가 태조 때 사가에 있었을 때에는 정녕옹주(靜寧翁主)라는 칭호를 받았으며, 원경왕후의 며느리인 소헌왕후 심씨도 사가에 있었을 때는 경숙옹주(敬淑翁主)라는 칭호를 받았습니다.
@user-tv6wn3nt4w
2 жыл бұрын
똥치개들의 전쟁이 살벌하다
@user-rb4ym3gm5z
Ай бұрын
예나지금이나 남자라는인간들은 지휘고하를막론하고왕재수들
@user-to4fc1dl9b
3 жыл бұрын
ㅃ1ㅈㅂ
@user-kd6ci1oo6x
3 жыл бұрын
싫다 싫다 그래도 남자 손끝에 길들여지니 지들끼리 박 터지게 싸우네 ㅉㅉ
@freshever5719
2 жыл бұрын
왕비였고 재물도 많은데 처참하진 않았을거 같네요. 임란 전까지의 여인들은 자유로웠잖아요. 저 왕대비가 조선을 인정해준 그 대비?
@leadiana77
7 ай бұрын
근비 이씨가 한 거 아니에요. 공민왕의 제 4비 정비 안씨가 공양왕의 폐위와 이성계의 즉위 교서를 선포하고 어보를 이성계에게 넘겨주면서 고려는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된 것입니다. 조선 건국 이후에 정비 안씨는 의화궁주로 살아가다 태종이 사망한 6년 뒤 1428년에 죽어요.
@kyunghunkim5601
2 жыл бұрын
응 창왕도 폐위되고 죽음
@bjsqwe
2 жыл бұрын
고려시대에는 여자가 드샜나봐??? 감히 여자주제에 남편에게 반기를 드네??? 그러게 맘에 안드는 구석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다 죽였어야지 내가 우왕이였으면 상대가 먼저 선수치기 전에 내가 먼저 근비의 집안부터 야금야금 박살내서 찍소리도 못하게 만들었을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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