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의 12월입니다. 기록적으로 내려가는 영하의 날씨는 겁이 날 정도로 춥고 매섭습니다. 일 년의 마지막이 이토록 추운 이유는 따뜻한 곳에 들어앉아 지나온 한 해를 되돌아보라는 뜻인 건 아닐까 생각하며 부쩍 늘어난 제 게으름에 그럴싸한 핑계를 붙여봅니다.
화천에서의 일 년은 참 순식간입니다. 계절 사이에 있던 수많은 일들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소요와 덕이, 주영이까지 세 마리의 곰을 구조하며 화천의 사육곰 농장을 없앴고 늙은 곰 유식이의 마지막을 함께하며 인간의 돌봄을 받는 곰에게 줄 수 있는 편안한 삶과 죽음을 고민했습니다. 합사훈련을 시도하며 손이 벌벌 떨렸던 순간과 합이 잘 맞는 곰들이 만나 밀치고 뒹굴고 깨무는 그들만의 놀이를 볼 때 벅차올랐던 순간이 생생합니다. 몸에 딱 맞는 고무대야가 아니라 곰숲의 널찍한 수영장에서 물장구 치는 모습을 볼 땐 온몸을 적신 땀도 한 풀 식어가는 듯했고 신나게 놀고 낮잠을 자다가도 리콜을 알리는 신호가 울리면 부지런한 걸음으로 사육장에 돌아오는 칠롱이의 모습을 보며 인간과 곰 사이의 약속이 하나둘 쌓이고 있음을 실감했습니다. 낙엽 소리 울리며 곰숲을 거닐던 곰들의 곰다운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고 가을을 제대로 누리기도 전에 떠나보내야 했던 봄바를 생각하면 씁쓸하고 울적해지는 기분은 여전합니다. 날이 추워지자 조금씩 느려지는 곰의 행동에 겨울을 실감했고 푹 자고 일어난 곰들의 내년 모습을 상상하며 '아, 벌써 한 해가 다 가는구나' 싶었습니다.
봄에는 머위잎을, 여름에는 아카시아 나무를, 가을에는 단풍잎을, 겨울에는 볏짚을 주며 곰들도 우리와 함께 사계절을 느끼길 바랐습니다. 곰들에게 이번 한 해는 어땠을까요. 대답을 듣지 못할 질문인 걸 알아도 우리는 곰들에게 궁금한 것이 늘 많습니다.
돌이켜보면 지나온 날들엔 아쉬움과 후회, 자책이 많습니다. 우리가 좀 더 현명하고 용감했더라면 화천의 곰들에게 지금보다 더 나은 것들을 줄 수 있지 않았을까요. 더 많은 곰에게 더 나은 삶을 줄 수 있지 않았을까요. 한 해를 마무리하며 후회와 아쉬움만 남는 것은 일종의 '연말병'이겠지요. 연말병이 걸린 와중에도 한 가지 자신 있게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화천에서 부지런히 움직이고 땀 흘렸던, 머리를 싸매며 치열하게 고민할 때의 최우선은 언제나 곰이었습니다. 곰들이 더 편안하기를, 덜 아프기를, 더 즐겁기를, 덜 심심하기를 고민했고 의논했고 움직였습니다.
모기에 잔뜩 물려 몸을 벅벅 긁으면서도 '조금만 더'하며 곰들의 합사훈련을 지켜봤고 허리가 찢어질거 같다며 앓는 소리를 하다가도 매일 매일 고무대야에서 물을 퍼내고 채웠습니다. 바쁘다는 소리를 습관처럼 하면서도 복도와 곰숲을 낯설어하는 소요와 덕이를 대할 땐 누구보다 느긋하고 여유롭게 말을 건네며 사과와 땅콩으로 찬찬히 꾀어댔고 사육장을 청소하고 밥을 챙겨주는 지극히 평범한 일과조차 감당하기 버겁다 느끼다가도 바뀌는 계절마다 낫과 톱을 들고 곰들에게 줄 나뭇가지들을 베러 다녔습니다. 화천에서의 시간은 늘 곰들을 위해 흘러갑니다.
올 한 해도 곰들의 시간에 함께해주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후원금으로, 사과나 고구마 같은 먹을거리로, 시간과 체력으로 마음을 보태어 주신 덕에 올해도 곰들을 돌볼 수 있었습니다. 빠듯한 살림인지라 보내주는 마음 하나하나가 큰 힘이 됩니다. 그러니 내년에도 우리의 활동에 힘을 보태주시면 좋겠습니다. 망설이던 분이 계신다면 과감하게 정기후원을 시작해 주기를 부탁드립니다. 그 후원금과 마음은 반드시 곰들을 더 잘 살게 하는 데에 쓰일 겁니다.
서툰 글로 전했던 화천의 열두 달 소식을 어떻게 읽어와 주셨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전한 화천 소식을 통해 화천 곰 한 마리 한 마리마다 가지고 있는 개성과 오래 들여다보면 느낄 수밖에 없는 사랑스러움을, 그렇지만 이들은 분명 야생에 살아야 마땅한 동물이고 그렇기에 인간이 함부로 대상화하고 귀여워해서는 안 될 존재임을 느꼈었다면 참 기쁠 것 같습니다. 건강하고 다정한 새해를 맞이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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