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간에는 최면과 선문답의 공통점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최면에 걸린다는 것은 외부에서 들려오는 다른 사람의 암시(이야기)를 나의 내면소통으로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외부에서 주입되는 스토리텔링을 나의 ‘생성모델’로 그대로 받아들일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내면에서 작동 중인 생성모델의 스토리텔링을 잠시 멈추거나 약화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최면에서 말하는 ‘유도(induction)’입니다.
‘암시에 잘 걸리는(suggestible)’ 사람은 평소 자의식의 스토리텔링이 덜 고정되어 더 유연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최면에 걸린다는 것은 외부에서 주입되는 타인의 스토리텔링이 그대로 나의 내부상태에 있는 생성모델의 스토리텔링으로 작용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최면은 내부상태의 능동적 추론 모델의 주체인 에이전트가 교체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에이전트의 교체'가 순간적으로 일어나기 위해서는 기존의 에이전트(자아로서 작동하는 내부상태 최상단의 스토리텔러)를 무력화시키고 이를 대체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최면술사들은 순간적으로 맥락에서 확 벗어나는 자극을 사용합니다.
즉 예측오류의 범위를 훨씬 더 벗어나는 상황을 순간적으로 만들어서 기존의 추론시스템을 무력화시키는 것이지요.
간화선의 선문답 전통에서도 기존의 '자아'를 버리기 위해서 이와 유사한 방법을 사용합니다.
선사들은 제자들과 선문답을 나눌 때 갑자기 고함을 치거나 때리는 등의 비언어적 소통을 통해서 ‘갑작스레 맥락 벗어나기’를 합니다.
얼핏 보기에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러한 언행 덕분에 제자들은 순간적으로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바로 이 ‘말도 안 되는’ 언행이 ‘말이 안 되기’ 때문에 제자들의 내부상태에서 늘 작동하던 생성질서가 뒤흔들리게 되고, 기존의 생성질서인 ‘자의식’이 잠시 자리를 비우는 순간이 생겨나는 것이지요.
이 때 제자는 자아의 텅 빈 자리를 보면서 배경자아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되며, 기존의 고정된 스토리텔링 방식에서 벗어나 ‘텅 비어 있음’으로서의 ‘참나’를 문득 만날 기회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내면소통 훈련이나 플라시보, 최면이나 선문답은 그 목적과 방식은 달라도 내부상태의 생성질서로 이뤄지는 스토리텔링을 잠시 멈춤으로써 기존의 자아에 강력한 변화를 가져온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입니다.
특히 최면이나 선문답은 기존의 생성질서를 잠시 멈춰 세움으로써 의식에 새로운 생성질서를 심어주는 기회를 만들어 줍니다.
마음근력 향상을 위한 내면소통 훈련에서도 기존의 생성질서를 잠시나마 무너뜨리는 것은 새로운 생성질서를 수립해가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출처: 내면소통 375-380)
흔히 ‘암시’로 번역되는 ‘suggestion’이라는 단어에는 ‘제안’이라는 뜻도 있다.
습관적이고 자동적인 기존의 내면소통 내용을 바꾸고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하도록 ‘제안’하는 것이 곧 ‘암시’다. 이러한 암시의 효과가 강력히 나타나는 것이 곧 ‘최면’이다.
최면의 효과는 앞에서 살펴본 마코프 블랭킷 모델과 능동적 추론 이론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자의식은 마코프 블랭킷 모델의 내부상태에서 작동하는 ‘스토리텔러’로서 자신이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경험에 대해 끊임없이 멘털 코멘터리를 부여한다.
또 스스로 하고자 하는 모든 행위에 앞서 의도를 만들어내는 생성모델이다.
지속적이고도 자동적으로 흘러가는 스토리텔링을 보다 효율적으로 생산하기 위해서 우리의 자의식은 습관적으로 작동하는 다양한 생성모델에 의존한다. 이
러한 생성모델의 집합체가 곧 자아로서의 ‘나’라는 관념이 된다.
최면의 과정을 능동적 추론 이론의 관점에서 살펴보자.
최면 기법 중에 잘 알려진 것이 악수하는 척하다가 순간적으로 최면 상태로 유도하는 것이다.
처음에 최면술사는 피험자와 편하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피험자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면서 웃는 얼굴로 악수를 청한다.
피험자는 악수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이제 무슨 일이 생겨날지도 잘 알고 있다.
그의 내부상태에서는 다음과 같은 스토리텔링이 자동적으로 진행된다.
“저 사람이 내게 손을 내밀면서 다가온다. 악수하려는 것이 분명하다. 곧 악수가 시작되는구나. 나도 이제 내 손을 들어 그의 손을 가볍게 맞잡고 몇 차례 흔들면서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미소 지으면서 인사를 할 것이다.”
이 순간 피험자 내부의 스토리텔링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에 대해 자동적으로 확신하게 된다.
의식적인 차원에서뿐 아니라 감각상태와 행위상태에서의 모든 층위의 능동적 추론 과정 역시 자동으로 척척 진행된다.
‘악수하기’가 너무도 익숙하고 많이 해본 행위여서 예측오류에 대한 대비는 거의 없는 상태다.
피험자도 미소를 지으면서 손을 내미는 순간, 최면술사는 피험자와 악수하는 척하다가 손이 맞닿기 직전에 재빨리 피험자의 손목을 부드럽게 잡고 피험자의 얼굴 앞으로 들어 올려 피험자로 하여금 자기 손바닥을 보게 한다.
피험자로서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고 경험하지도 못했던 일이 순식간에 벌어진 것이다.
피험자의 내부상태는 순간 혼란에 빠진다.
갑자기 내가 내 손바닥을 보고 있다니!
이것이 무슨 상황인지 얼른 해석이 안 되기 때문에 감각상태나 행위상태도 혼란에 빠지고 멘털 코멘터리나 스토리텔링도 멈춰버린다.
엄청난 예측오류와 서프라이즈가 발생했으나 그에 따른 오류 정정의 메커니즘이나 자유에너지 최소화의 기능이 얼른 작동하지 않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기존의 생성모델은 순간적으로 쓸모없는 것이 되었고 폐기될 수밖에 없는데도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생성모델은 얼른 생겨나지 않는다.
기존의 자의식은 잠시 스토리텔링을 멈추게 된다.
이렇게 기존의 생성모델은 폐기되었으나 아직 새로운 생성모델이 생겨나기 직전인 이 순간이 자의식이 외부로부터 주입되는 스토리텔링을 그대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는 때다.
이때 최면술사가 암시를 주면 피험자는 그러한 암시를 그대로 자신의 스토리텔링으로 처리하여 내려보낸다.
최면술사의 “잠들어(sleep)”라는 한마디가 들려오면 피험자는 그대로 최면 상태에 빠지게 된다.
‘나는 자고 있다’라는 내면소통을 하는 상황이 곧 최면이다.
수면 중에 뇌는 감각상태로부터 올라오는 상향 감각정보에 대한 해석은 최소화하고, 대신 하향으로 자유로운 해석과 스토리텔링을 내려보내게 된다.
즉 꿈꾸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꿈꾸는 동안 내부상태는 감각상태가 전해주는 감각정보에 대한 예측오류의 수정이라는 작업을 적극적으로 수행하지 않게 된다.
이제 피험자는 최면술사의 말대로 세상을 보게 된다.
감각상태에서 올라온 다양한 감각정보를 해석하는 스토리텔링을 최면술사의 암시대로 하게 되는 것이다.
최면술사가 너무 덥다고 하면 실제로 더위를 느끼면서 땀을 흘리고, 너무 춥다고 하면 몸을 오들오들 떨게 된다.
벨트를 던져주면서 뱀이라고 하면 진짜 뱀으로 본다.
평소라면 벨트를 보고 잠시 ‘이게 뱀인가?’라고 생각하더라도 계속 올라오는 시각정보가 해석이 잘못되었음을 알려주고(움직이지 않는다, 모양도 뱀 같지 않다 등) 그에 따라 예측오류의 수정이 자동으로 즉각 일어난다.
그러나 최면 상태에서는 계속 올라오는 감각정보에 의한 예측오류 수정은 일어나지 않고 오히려 최면술사의 스토리텔링에 의한 감각정보의 해석을 그대로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감각상태뿐 아니라 행위상태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 달리기를 하고 있다고 말해주면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달리기 시작하고, 이제 잠든다고 말해주면 누워서 자기 시작한다.
감각상태와 행위상태를 통제하던 내부상태의 생성모델이 외부에서 들려오는 최면술사의 스토리텔링에 자기 자리를 내어주게 되는 것이다.
최면은 우리의 생각, 행동, 경험 등이 모두 자신의 내부상태에서 생성되는 이야기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내부상태의 스토리텔러인 생성모델을 약화시키는 것 혹은 감각상태와 행위상태의 주체(agency)를 바꾼다는 것은 늘 작동 중이던 자의식을 잠시 멈추는 것을 뜻한다.
갑자기 상황에 전혀 맞지 않는 행동이나 말을 듣게 되면 기존에 작동하던 생성모델은 잠시 멈추게 된다.
내부상태의 스토리텔러가 잠시 사라지는 순간이므로 이때가 상대방의 암시를 무방비로 그대로 받아들이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또 이러한 상태는 기존에 늘 작동하던 자의식이 잠시 멈추는 순간이므로 기존의 ‘나’를 되돌아보고 자의식을 재정립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내면소통 훈련 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나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생성되는 멘털 코멘터리를 스스로 알아차리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지속적으로 스토리텔링을 한다.
이 세상이 나에게 주는 수많은 암시에 의해 나의 생각, 행동, 경험 등은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문화, 이념, 교육 그리고 다양한 매체와 장르를 통해 주어지는 수많은 암시와 스토리텔링에 최면이 걸린 채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곧 전도몽상에 빠져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최면과 암시로부터 깨어나는 것이 ‘알아차림’이다.
나의 내부에서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것처럼 느껴지는 나의 생각이나 경험이 사실은 외부로부터 주입된 온갖 스토리텔링의 결과임을 분명히 알아차리는 것이 내면소통 훈련의 기본 목표다.
내 머릿속을 지배하는, 자동으로 흘러가는, 외부에서 유입된 이야기와 멘털 코멘터리에서 벗어나는 것이 내면소통 훈련의 목적이다.
외부에서 유입된 많은 이야기들은 마치 내 생각인 양 느껴진다.
부정적 스토리텔링은 편도체를 활성화하여 불안이나 분노 등의 부정적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것에 집착하게 해서 고통과 불행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한다.
일상생활에서 내 머릿속에 자동으로 흘러드는 온갖 생각과 행동을 만들어내는 이야기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힘이 알아차림의 능력이고 마음근력의 기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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Негізгі бет 최면 - 자의식의 일시적 정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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