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예는 자신의 세력이 전혀 없기때문에 호족들을 감당해낼수는 없었을것이다 아울러 이들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미륵이 필요했을것이고 법이 필요했을것이다 그와중에 호족들의 반발로 실패한 왕이 되지않았을까 개인적인 생각을 제시해본다
@user-yz4bn5ig3c
5 жыл бұрын
덕분에 요즘 생각이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user-se7or1sb2r
5 жыл бұрын
훌륭합니다~^^ 기존에 무비판적으로 받아드렸던 지식에 대하여 다양한 다른 관점으로 합리적일수도 있는 생각을 할수있도록 도와주네요^^
@user-zk3ms8zp5c
5 жыл бұрын
오와^^궁예 영상 2부 올라 왔네요^^너무 재밌어요^^청화수님 덕분에 역사를 조금씩 알아가는 재미에 푹 빠져있답니다**(청화수님 감사합니다**)
@bgk3558
3 жыл бұрын
역사는 승자의 것이니 가장 많이 왜곡된 것 중 하나가 궁예와 견훤인 것 같습니다. 이성계가 고려 왕실을 왜곡했듯이...
@user-xh8ce4lo6i
5 жыл бұрын
틈틈히 청화수 강의를 들으며 역사에대한 새로운 지식을 얻고 있습니다. 감사 합니다. 김재구 드림
@toheartz
5 жыл бұрын
와 한동안 못봤는데 구독자수가 많이 늘었네요! 유튜브 구독자수는 점점 갈수록 폭발적으로 늘어난다던데 올해안에 10만 구독 달성하세요!
@dummycat3022
3 жыл бұрын
놀랍네요.. 이제까지 역사라는게 알려준대로만 그런가보다했지 이렇게 디테일하게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마지막 스님들의 이야기도 매우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user-dq7ty8jx3r
5 жыл бұрын
청화수님 이번 궁예편 늦었지만 정말 재밌게 보았습니다..예전에 TV에서 다큐멘터리식으로 궁예가 철원에 궁성을 쌓았다는 내용을 다룬적이 있었습니다..궁성은 철저하게 불교식이면서도 외각성은 토성으로 지었다고 하네요..그리고 현재까지도 철원사람들은 궁예가 폭군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대게 인자한 왕으로 그를 추모하는 사당까지 있다고 하네요..한말씀 더 드리자면 궁예가 지은 철원왕성은 몽고침략으로 불타버렸고 그이전에는 몇몇 고려황제들조차도 철원으로 도읍을 옮기려는 시도는 했지만 실패했죠..
@user-cf5xj3iz8l
5 жыл бұрын
진짜 넘 잼나요 ㅎ ㅎ
@jeffcha54
2 жыл бұрын
청화수님의 역사관이 내가듣고 보았던것중 가장 합리적 입니다. 존경 합니다.
@user-td2tp3ym4l
5 жыл бұрын
항상 잘 듣고있습니다 발해편도 해주세요! 헿
@mse2577
5 жыл бұрын
새로운 해석 감사합니다
@user-zy7yl3cz6o
3 жыл бұрын
정말 재밌게 듣고 있습니다~
@kimhongki2753
3 жыл бұрын
참 흥미롭게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user-dl4tc8cr6s
5 жыл бұрын
역사이야기 너무 재밌어요
@user-fs2yj6vi3s
4 жыл бұрын
좋은영상 감사합니다.
@chulpark1370
5 жыл бұрын
왕건집안이 대대로 해상무역하든집안인데 아무생각없이 궁예를 자신의세력권에 들이진않았을거같네요. 철처한 장사꾼의 계산도 있었을거 같네요. 세상물정잘모르든궁예가 그수를넘을순없었을듯요 .재산이많아야 밑에 따르는 무리도 많아질거아닌지생각됩니다.
@regina5448
5 жыл бұрын
구독합니다!유익한시간였습니다^^
@jamesyoo6917
2 жыл бұрын
항상 재밋게 듣고있습니다 😄 여럿 궁예 관련 영상을 보면서 청화수님것이 제일 👍공감 가고 예리하고 날카로운 분석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갠적으로 궁예는 청화수님도 말씀하셨지만 개털로 태어나 신라 왕족이라는 확인 할수없는 그럴싸한 전설하나 만들어 당시 국가붕괴 일보직전인 혼돈의 시대에 평등을 주장하며 어떻게 보면 자기를 거둬준 주인들 등쳐가면 성장했던 권력욕 만빵이였던 인물라고 봅니다 다만 그가 왕이 되였을때 이쪽도 저쪽도 아닌 새로운 재국을 꿈꿨던건 아니였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기만의 율법도 만들고 관심법으로 이쪽저쪽도 아닌 자기에게만 집중하도록 하기위해서 말입니다 개성이나 강릉도 아닌 중간인 철원을 도읍으로 삼은것을 보면 그가 생각하던 뭔가가 있지 안았을까 생각됩니다 보리이삭을 베어먹다 농민들에게 맞아죽었다... 정말 이렇게 죽었겠나 싶지만 철권을 휘둘렸던 강력한 왕이였던자가 어떤 보호도 없이 혼자 훔쳐먹다 맞아죽었다는 얘기는 모두에게 버림 받았다 라는 비유 아닐까.... 싶습니다
@hyesukka1048
5 жыл бұрын
올리신 전체 영상을 몇 번째 정주행 중입니다. 영상 하나 들으면서 창을 여러개 열어 계속 무음으로 영상을 돌리기도 하고요. 사고력을 확장하는 역사읽기 취지를 매우 공감하며 즐겁게 듣고 있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힘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user-kx9ly4is6s
5 жыл бұрын
견훤도 다뤄주세요 ㅠㅠ
@user-cy6et7cp8n
3 жыл бұрын
궁예를 선군으로 기록된 기록도 있다 그런걸 보면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 왕건의 쿠테타로 모든 기록이 고쳐졌을 가능성이 있는것이다 그 중 다 없애지 못한 궁예가 선군이었다는 기록이 조금 남아있는게 아닐까? 싶다
@user-fs7zz1bm6i
3 жыл бұрын
청화수님, 직업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학문의 깊이가 정말 깊군요. 앞으로도 좋은 내용 많이 기대하겠습니다.
@sdda1985
5 жыл бұрын
청화수님.임진왜란이나 조선수군도 다뤄주실수 있나요?ㅎㅎ
@goahead.nextgen
3 жыл бұрын
성철스님 말씀에 다시한번 깨닫고 갑니다. 정말 대단한 분이네요~ 그리고 궁예가 법을 중요시하고 실천하며 중생을 하나의 부처처럼 대했다면 진정한 서민의 대통령이네요. 그래서 권력자들은 싫어하게 되고 역사에서 못된놈으로 그리게 된게 아닐까. (비록 호족들이 워낙 강한시대인 만큼 천민출신 궁예는 지지기반이 약했던 거네요. 청화수 채널 구독합니다)
@user-xh9nj7vv7z
3 жыл бұрын
매번 잘 보고 갑니다 기분좋은 하루 즐겁게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
@sumtingwong5451
7 ай бұрын
20년 전에 철원 명성산 당시 이름 울음산 등산 갔다가 지역 어른신과 커피 대접하며 들었는데, 울음산 명칭이 궁예의 눈물을 슬퍼한다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궁예는 왕건에 맞써 4년간 항쟁을 했고 그리고 패배했다고 했으며 그 궁예를 그리워 한다고 했습니다. 또 인근 강씨봉(명지산 귀목고개 이어진)과 논남리는 궁예의 왕비 강씨 일가가 피신해 살았다고 해서 강씨봉인데, 실제로는 궁예를 피해 숨어 산 것이 아니라 왕건을 피해 고려시대 내내 피해 살았다고 합니다. 고례시대 지어진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내용과 현지 주민들 사이에 내려오는 구전과는 완전 다른 이야기입니다.
@jih3629
5 жыл бұрын
본내용과는 상관없지만 광고나오는 우x마켓 랜덤박스 절대 사지마세요 시청자분들.
@JAMES.U
4 жыл бұрын
넵
@user-qe3fi5vs9c
4 жыл бұрын
넵
@user-co2jy6de8m
5 жыл бұрын
역사 새롭게 알게되네요 잼있어요
@user-oq9vn1wv6o
5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user-qq2ln7wb1z
5 жыл бұрын
영상 잘 봤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와 프랑스 혁명을 다뤄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user-qk7jc3gn7b
5 жыл бұрын
청화수님 다루시는 영역이 고대사부터 세계사까지 망라되어 있는데 어디서 어떻게 공부하면 그정도 학식과 정보가 습득될수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너무 부러워서 문의드립니다
@user-co7nc8fc8b
5 жыл бұрын
고맙습니다 시계가 넓어지는 것 같습니다
@user-th5cl2lp4i
5 жыл бұрын
정말 재밌습니다 ^^
@user-rc7ef6ri5l
5 жыл бұрын
그래서 태조왕건에서는 겉으로는 왕건과 바람을 피지 않았는가라고 꼬투리를 잡았지만 왕비의 아버지와 아지태가 궁예를 실각 시키고 태자를 왕위에 세우려 했다는 스토리로 풀어냈죠
@user-kb2wq9tz3o
5 жыл бұрын
너무 잘 들엇습니다 ㅎㅎ 강감찬편도 잇나요?!!
@jimnoelarchitect_6688
4 жыл бұрын
와 좋아요 . 구독했어요
@TheMikecho
5 жыл бұрын
애청중입니다. 장보고 에 대해서 다뤄주십시요. 왕 을 세울 정도로 힘 이 있던그가 너무 허무하게 무너져 버린 것 에 뭔가 이유가 있을까요?
@user-lg9vo7zl4u
2 жыл бұрын
여러 종류의 좋은 해설이네요..역사는 항상 승리자에의해 쓰여 졌을 테니까요..
@ack3145
5 жыл бұрын
궁예예기 듣다가 구원부분에서 감동먹어서 나무아미타불하고 갑니다. 좋은 콘텐트.
@user-yi1xk8xx5g
5 жыл бұрын
영화 보는것도 아닌데 유튜브 이렇게 한컨테츠 오래보는거 처음이네요ㅋㅋ바이킹도 잘봤어요ㅋㅋㅋ
@user-vt6yy1bh6o
4 жыл бұрын
자신이 부처라는것을 깨달아야 다른이도 부처로 느껴지겠죠~나는 존귀한 존재라는것을 먼저 알아야 될것 같아요ᆢ
@user-vc6pl2oc7w
5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user-gs7ip6my2v
Жыл бұрын
날도 좋아 나른한데 전에한번 봤지만 길어서 좋아서 라디오처럼 틀어놨는데 맘이 참 좋네요 철학도 있고 ㅎㅎ 요즘은 뜸하시네요?ㅠㅠ
@chunghwasoo
Жыл бұрын
예 곧 또 올릴 수 있도록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곧 찾아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곧 찾아뵙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user-ji9pu7mg9g
9 күн бұрын
와... 진짜...정말 최고입니다!!!!!
@user-hu9gl1hj5k
3 жыл бұрын
새로운 관점 감사합니다
@user-gk2ez9uj1j
4 жыл бұрын
궁예를 보는 새로운 시선. 재밌게 잘 들었습니다 ~ 옛날 이야기 듣는 거 같아요. 구독 했으니 자주 들을게요 ^^
시대가 더 전이다보니 조선보다 오히려 파악이 어려운 부분도 있어서 이런 설이 많은것 같아요. 전 근데 호족간 파벌싸움이 맞다봅니다.
@S.J.523
5 жыл бұрын
흥선대원군 생각나네
@user-fs7zz1bm6i
3 жыл бұрын
언제 기회가 되면 신라에 왜군이 수차례 대규모로 침입했던 얘기에 대하여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user-ts7hl5lm1u
4 жыл бұрын
역사를 신선한 관점에서 쉽게 풀어주십니다.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과연 삼국시대 건국의 순서가 신라계 김부식이 쓴대로, 신라, 고구려, 백제가 맞다고 보십니까? 혹시 지증왕 시절에야 신라는 국가로 자랐다고 보아, 고구려, 백제, 신라의 순서로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
@jonathankim9968
4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cooldent777
5 жыл бұрын
새로운 시선 참 좋습니다. 모두가 예 라고 할때가 가장 위험한 세상이죠
@user-ef5sc7mo6e
3 жыл бұрын
내용있어요~~♡
@user-rr8xf4qv3d
2 жыл бұрын
옳고 그름의 문제라기 보다는 누가 살아남아 승자가 되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Kangyonghee12345
Жыл бұрын
신하: 애취애취 궁예: 감기걸렸니 몸관리 잘하지그랬어
@j.c.s7762
4 жыл бұрын
통일신라 200년 시대에는 초기에만 안정적이었지 계속해서 왕위 쟁탈전 일어남 지방에는 세금만 뽑아먹고 왜구나 여진족들이 약탈해가도 내정 개판이라 정부에서 도와주러 안갔습니다 장보고라는 해상세력이 조정과 맘먹는 힘을 가졌었다는것 부터가 오래 못갈 운명이었죠 200년중에 150년은 개판이었을거라 봅니다
@user-wj2nn5cx2r
3 жыл бұрын
통일신라때 여진족이 어디있어 그땐 발해가 건재하고 있을때인데
@user-xe2ql2ft2c
5 ай бұрын
왜구가 어딨어요 호족들이 운영하는 신라구가 일본가서 약탈 해왔죠 ㅋㅋㅋ 그거 똑같이 보고 배운게 여말 해적집단
@chulpark1370
5 жыл бұрын
아무튼 궁예는 특출한 인물이었음에는 틀림없는거같네요,
@user-mg3dz6yi8w
Жыл бұрын
생각의 깊이 폭을 넓혀주는 청화수님
@user-nm2ne7qy5k
5 жыл бұрын
구원이야기 듣고 나머지 궁예는 아무래도 상관없어졌네요.
@ddgrm
Жыл бұрын
성철스님 말씀은 플라톤의 이데아랑 많은 부분이 닮았네요. 역시 진리는 하나로 통한다는건가
@user-ie7ox3pr7v
2 жыл бұрын
청화수님 논문 발표를 하시는게 어떨까요?
@stan_ms
3 жыл бұрын
화수형 영조 사도세자 얘기 해주세요
@hunjoosuk8446
5 жыл бұрын
대봑 재미있어요
@user-ct5wr8ir3o
3 жыл бұрын
역사가 진실을 이야기 하느냐 하면 그렇진 않습니다. 역사의 기록도 마찬가지로 사실이 적혀있다 라고 절대적 믿음을 가지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기록외에 절대적 검증이 필요합니다.)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자 중에 안좋은 이야기가 안적힌 곳이 있었던가... 반대로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자에 대해 좋은 점을 이야기 하지 않은적이 있었던가.. 이런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승리했다?
@realmirk
3 жыл бұрын
훗날 왕건의 아들이 호족집단 대상으로 피의 숙청을 단행한거 보면 궁예가 멍청한 짓을 한건 아니지만 너무 급하게 일을 단행했다 생각합니다 명태조 주원장같이 통일후까지 기다렸어야 도읍지 옮기는거야 요즘 정치인들도 자기 지역구로 먹고사는데 충분히 이해할 대목이죠 왕건도 결국 송악으로 옮기구요
@doneking
3 жыл бұрын
드라마에서 궁예가 곡식 훔쳐먹다가 백성에게 맞아죽었다는 대목이 있어서 참 의심스러웠는데 이런 내용이 있었군요
@okkim1811
2 жыл бұрын
이건 고려사에 써있어요. 고려사 읽을수록 화나요
@philossophia1936
5 жыл бұрын
알렉산드로서는 33살에 사망할때까지 대제국을 만들었고, 항우도 34살에 중원의 반을 차지했었는데 궁예라고 어린나이에 못할 건 없죠. 우리나라에 소년장수나 소년천재가 없던 것도 아니고...
@user-rv3dy4ux2p
4 жыл бұрын
특히 항우랑은 비슷한 면이 항우도 숙부 항백때부터겠지만 군벌에서 시작했으니까요(알렉산드로스 3세는 쿠데타 의심이 큰 왕위계승이니) 궁예도 기훤에게 귀부한 군벌이엿다가 통수치고 양길에 귀부했다가 세력 더 커지자 독립한 엄밀히 따지면 일본의 사찰 다이묘 그러니까 승려 군벌(=종교 군벌)이니까요
@user-sj7nw9sv3u
5 жыл бұрын
신라시대 부터 고려시대 까지 승려 원적에 무승으로 승적에 올라 절을 지키던 승려가 있었습니다 또한 그들의 도적과의 전투에는 나라에서조차 전사처리를 하였고 그전통이 알게 모르게 조선 시대까지 흘러 들어갔으며 임진왜란때 의병중 승병이 가장 뒤어난 조직적인 집단적 군사조직처럼 움직일수있는 의병중 하나였습니다 스려는 일단 집단을 이루어 같이 거주하며 모든 생필품을 스스로 해결할정도로 아주 체계화 되어 있는 조직적인 집단이였으며 유교가 번창하고 불교가 탄압 받던 시절에도 그전통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중국의 소림사만이 무승이 있었던것이 아니며 한국의 사찰마다 있던 재물을 보호하던 무승또한 많이 약해지긴 하였으나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내려온건 사실인듯 합니다
@user-cp4id8nx6o
5 жыл бұрын
궁에 ᆢ기록은승자의것이었죠 궁예왕 다시평가받아야합니다 감사합니다. 재밌었습니다
@user-if7nk5ln6z
4 жыл бұрын
포섭..포섭..아자개..그..담..견훤..
@user-hm1ff7nf5d
5 жыл бұрын
옴마니반메훔~마구니가꼈어~
@user-mw3dq4xp1b
2 жыл бұрын
역사는 오직 승자의 것이다.
@user-mo7df5vy1u
Жыл бұрын
웬만한 역사학자보다 낫습니다.
@user-pq9cc3ok7n
3 жыл бұрын
잘 들었습니다. 일목대왕의 철퇴, 단재선생의 소설 일독 바랍니다.
@user-iv5sh9pz9p
4 жыл бұрын
나는 폭군이 아니니라 왕건을 철퇴로 죽이거라!!
@user-yc3qn7wd7q
4 жыл бұрын
기침했다고 죽였사옵니다 정말이옵니다 억울해서 지금도 이가 갈리옵니다 콜록
@user-xw8db1bj2t
2 жыл бұрын
ㅋㅋㅋ
@skylovel10
4 жыл бұрын
그때 당시에 호족들이 기득권 지키고 보존하기 위해 누구보다 호족 출신인 왕건을 세운거죠. 왕건 능력이야. 말이 필요 없죠. 궁예 폭군이 씌운 이유가 역사의 패배자라고 그런겁니다. 왕건이 정권을 잡았어도.. 궁예세력 완전히 정리하기까지 약 10년넘게 걸렸어요.
@user-rv3dy4ux2p
4 жыл бұрын
왕순식 아니 김순식은 힘으로도 못 찍어 눌려서 회유하고 공주와 그 주변 일대는 빡쳐서 아에 백제로 투항하는 등 곱게 가진 않긴하죠ㅋㅋ
@user-cj3vz5ur3n
5 жыл бұрын
왕건이 구데타 한거야
@user-te5kz9di2q
4 жыл бұрын
매수와 유어비어로 공예를 추방시킴.
@user-bg8xy6hj7d
2 жыл бұрын
역사는 승자의 주관적인 편협하고 아만으로 가득한 변별력으로 대상을 분별하고 평가를 하고 기록을 하는것이 동서고금의 변화지 않는 진리이다
@user-uh7zm7oe6h
3 жыл бұрын
한가지 이해 안가는건 패서 대 철원이라면 반정때 중심이 패서멤버가 아닌 복지겸 있는지가 미스테리
@user-xk7ws6rz3r
3 жыл бұрын
불교의 교리는 깊히가 있고 진리라는 생각이 드네요. 성철스님은 정말~ 위대한 성인입니다.^^
@loveme7606
4 жыл бұрын
역사는 승리한 자의 의에 쓰여지는 것...
@user-yz4gq1px2o
4 жыл бұрын
알고 싶은 폭군... 대무신왕 다음 왕인 봉상왕요...^^
@user-xl8xx8gd7o
4 жыл бұрын
4번 아우가 형보다 나아서 양보한 미륵이형 ㅋㅋ
@user-xl8xx8gd7o
3 жыл бұрын
@@kyooyongkim6595 내가 미륵이니라
@makiseify
5 жыл бұрын
궁예배우가 김두한 배우와 같다는것도
@user-yc3qn7wd7q
4 жыл бұрын
기침했다고 죽였사옵니다
@user-nb4ub5gt3v
5 жыл бұрын
이순신장군에 대해서 그리고 환단고기가 사실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다뤄주세요
@user-mj5tz5de6v
3 жыл бұрын
대한민국의 정치가 거짓으 로 점철된게 어제오늘이 아닌줄은 익히 알고있다고 는 생각했지만 거짓의 역사 기원이 설마하니 조선도 아니고 훨씬더 그이전 부터 시작되었 줄은 정말이지 꿈 에도 몰랐 습니다. 우리의 후세들이 언제까지나 거짓 으로 가공된 역사를 배우는 바보가 되어야 하는지 아득 하기만 합니다..
@ychj2189
5 жыл бұрын
왕건: 어 부인...?부인: 답정너!왕건: 응기잇! 왕이 되어버렸!
@user-rd5jb5pi2t
Жыл бұрын
ㅎㅎㅎㅎㅎ
@user-qs7ny4fw2j
4 жыл бұрын
전 궁예가 한니발과 비슷한 면모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전투와 전술면에서 뛰어났지만 정치적인 부분과 외교적인 태도에서는 왕건보다 한수 아래이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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