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에서도 한 고백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 6~7절
• 죽음 앞에선 그들의 고백 (요한계시록...
💻 꼭두새벽묵상 No. 1327
내 생활권이 처음으로 영주권과 접하게 된
것이 2002년이다.
처음으로 영주라는 곳과 인연이 될 당시에
영주는 그래도 사람 사는 동네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구 시가지로 가면 점포임대라는
종이가 붙어있는 가계가 부지기수이고
문을 닫고 장사를 안하는 점포가 대부분이다.
1층이 이러니 2층은 말할 나위도 없다.
강 건너편에 택지가 개발되었고 택지에
수많은 가계들이 즐비하게 들어서고
고층아파트와 멋있는 주택도 제법 들어섰다.
제법 신도시 같은 맛이 난다.
구 시가지와는 완전 딴 동네이다.
생각해보니 택지에 가계가 들어선 만큼
구 시가지는 비워진 것이다.
앞으로 인구가 두 배 이상 불어나지 않으면
지금 문 닫은 구 시가지 점포들이 장사를
하게 될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될 것 같다.
구 시가지에 건물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속상할까?
안그래도 인구가 줄어드는데 택지가
개발되면서 부터 본격적으로 구 시가지는
점점 공동화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내 건물도 아니라도 시내가 텅텅 빈 느낌이
나니 기분이 이상해지는데....
그곳에서 인적 드문 시내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은 얼마나 속이 상할까?
2002년도에 열심히 다녔던 헬스장도 지금은
문을 닫고 장사를 하지 않는다.
그냥 기본적으로 꼭 있어야 할 것들만 병원과
약국 은행 그리고 몇몇 옷가계만 남아있는
것이 구 시가지의 현재 모습이다.
사람들이 즐비하게 모이던 곳이 사람보기
힘든 도심이 되니....
황량하기 그지 없는데...
동료 제자들 하나 없는 밧모섬에 유배된
요한의 심정은 어땠을까?
다른 제자들이 순교당한 것을 알았을까?
몰랐을까? 성경학자가 아니라 잘은 모르지만
다음 이야기를 확실히 알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여기 시골에 와서 알게 된 것이
사람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소문은 굉장히
빠르다는 것이다.
교회이야기도 마을 사람이 빨리 알고
마을이야기도 내가 빨리 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 사는 이야기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매 한가지 인 것이다.
그러니 같이 예수님을 따라 다녔던 제자들이
순교당한 소식을 요한도 충분히 알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대부분이 핍박을 당하고 한 두명씩
죽어나가고 또 얼마의 사람은 옥에 갇히고
요한과 같이 유배당한 사람들도 있고....
그래도 초대 교인들의 마음은 지금
영주시내 구 시가지의 건물주보나는 훨씬
희망이 있었다는 것이다.
핍박가운데
순교자들이 즐비하게 생기는 가운데 있어도
수많은 순교자들의 마지막 고백은
한결같았는데....
바로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이 말이다.
우리는 쉽게 ‘나는 기독교인입니다’
‘나는 교회다녀요’ 이런 말을 잘하는데 이 말도
어떤 이들에게는 생명과 죽음을 가르는
고백이 되었던 것이다
사실 기독교 복음이 전 세계로 퍼지게 된
배경에는 순교자들의 거룩한 죽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갈수록 다원화 되어가고 신앙의 열정이
식어가는 이 시대에 초대교회 순교자들의
고백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이 말을 하게 된
그들의 신앙을 우리 역시 닮아가야 하는 것이다.
사도들이 전해준 복음으로 시작된 초대교회
공동체는 자신들이 처함 상황가운데서
예수를 주로 고백하며 끝까지 믿음을 지키다가
총독앞에 끌려와 재판을 받았고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고백하며
고문과 죽임을 당하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서로 배교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도록
서로 기도하고 권면했다고 한다.
심문과 재판을 받을 때 “나는 그리도인입니다”
라는 말로 자신의 양심과 신앙을 고백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 하였고
죽음을 당함으로 그들의 순결함을 지켰
나갔던 것이다.
순교자들의 대부분은 성령을 통하여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알았고
폴리캅은 화형을 당할 때 불꽃이 그를 사르지
못했으며 또 다른 사람은 암소에 들이 받히고도
아픔을 느끼지 못했으며 불에 탓어도 시신이
훼손되지 않았고 그들의 고백과 믿음을 통하여
이방인들에게조차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보게 했고
심지어 재판과정을 기록했던 사람도
그리스도인이 되어 순교를 당하고
그렇게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면서 이방인들도
놀랐고 남겨진 초대 교인들도 그들의 믿음을
굳건히 하게 되었던 것이다.
고통받는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도대체 어떤 처방전이 무엇이기에 사람들이
이렇게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고백하며
재판 과정을 기록하던 사람이 또 그리스도인이
되어 순교당하는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지금 고통받고 있는 성도들에게 천국에 대한
소망을 주시기 위해서 1절에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천사를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이다.
어제 말씀드린 충성된 증인 사실
5절의 말씀은 순교의 각오가 있어야 충성된
증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오늘 이제 7절의 말씀을 들여다 보면...
무슨 말씀인가?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재림에 관한 말씀이다.
이 땅의 역사는 예수님이 재림으로 막을
내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핍박받는 그 시대에
요한에게 보여주신 환상을 통해 장차 있을.
장차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놀라운 계시로
보여주신 것이다.
요한은 지금 로마의 핍박 가운데 있는
성도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밧모섬에서
외로이 이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을 회개와 충성된 증인의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그는 고독한 시간을
계시로 주신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씨름하는 것이다
오늘 새벽에 대구에 이대우 목사님이
쓰신 글을 보며 생각이 많아진다.
“골리앗이 칼을 들었다고 다윗도 칼을
들었다면 다윗은 졌을 수도 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똑같은 방식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다른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것이 믿음이고 그것이 승리하는 삶이다.”
세상 사람들이 칼을 들었다고 우리도 칼을
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성경을 들어야 하는 것이다
말씀을 들어야 세상의 가치를 따라
가지 않게 되는 것이다.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여기 예수님을 찌른다는 표현은 물리적으로
찌른다는 표현으로 볼수는 없고 예수님을
거부하고 조롱하며 멸시하는 행동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실제 성경 번역본 중에 70인역에는
“그를 찌른 자들도”
그들이 찔렀다가 아니라 그들이 조롱했다
이렇게 번역한 것이다.
예수님을 조롱했든 자들이 심판주로 오실
예수님을 보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니 지금 눈에 안 보인다고 지금 종말의
전조현상이 눈앞에 안보인다고 안일하면
안된다.
성경의 가르침은 구가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것이다 재림하신 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혜로운 성도는 이 때에 깨어
있는 것이다 종말을 대비하는 지혜로운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성경붙들고 기도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한치의 흐트러짐도 흔들림도 없는
그런 종말론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종말론을 가지고 미혹하는 이단에게
영혼이 털리지 않는 것이다
우리 교회가 지원하는 캄보디아 정순옥
선교사님과 그저께 통화를 하는데...
선교사님이 너무 놀랬다고 한다.
그 곳에 자기가 잘 아시는 분이 구원파로
넘어갔다고 한다.
신학교 교수도
몇 십년 목회를 한 목사도 이단에게
넘어가는 것이다.
성도는 언제 주님이 다시 온다는 종말의
시간표에 붙잡혀 사는 자가 되면 안된다.
종말의 필연성과 임박성을 인지하면서
그러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자기 현실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을 성도답게
최선을 다해 감당해 가는 것이 지혜로운
성도인 것이다
92년 12월 28일 예수님 재림한다고 그
렇게 떠들어 되던 이장림이라는 사람....,
그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미혹되었는가
신천지에서 144000명이 구원된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전부 자기 할 일은 안하고
그 144000명 안에 들려고
돈 다갔다 바치고 가정은 산산조각나고..
그러니 신천지 앞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시위를 하는 것 아닌가....
종말의 시간표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종말이 임박했다는 것을 인지하면서
깨어있어야지....
인터콥과 같은 수많은 단체들이
멀리 중동에 예루살렘 성전산에 있던
오말사원이 무녀졌다라는 소식이 들리면
종말의 시계는 더욱 급박하게 돌아갈
것이다
이런 이야기 하면서 인간의 교묘한 말로
종말의 시간표를 앞당기는 어리석은 말에
현혹되지 말고
오늘 하루도 자신의 현실속에서 주님이
맡겨주신 일을 성도 답게 잘 감당하는 것이
세상의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잘 지켜나가는
것이 인생의 마지막 때를 잘 마무리 하는 것이
예수님의 재림과 종말을 준비하는
기본자세인 것이다
영주 구도시가 공동화가 되어도 눈에보이는 세계가 풍지박살이 나도 소망의 말씀을 붙잡는 자는 넘어서는 것이다.
초대 교회 순교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분앞에 서기까지 세상이 든 골리앗의 칼을 들고 살 것이 아니라
말씀의 물맷돌을 들고 골리앗을 향해,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다윗이 되기를 바랍니다
Негізгі бет 죽음 앞에선 그들의 고백 (요한계시록 1장 6~7절)
Пікірлер: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