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로 무훈함(?)이 된 류조, 그녀의 함생을 알아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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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토, 일본 해군의 기함이자, 세계 최대의 전함이다. 하지만 함대결전 사상에 얽메여버린 일본은 야마토급이 활약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는 상황을 만들었다. 이렇듯 일본은 함대결전에 포함된 전력은 극도로 아끼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함대결전에 포함되지 않는 이른바 보조전력으로 취급받던 군함들은 매우 소모적으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이며, 미군에 비해 훨씬 공세적인 전술을 사용한다.
오늘 이야기 할 네이비썰은 무훈함이 된 결함병기, 류조급 경항공모함이다.
1942년 8월 24일, 솔로몬 해 근처, 일본의 기동부대는 과달카날에 전략적 목표 중 하나인 핸더슨 비행장 공습 임무를 받고, 임무를 수행중이었다. 하지만 이를 안 미국은 사라토가에서 공격대를 보내 항공모함 한척을 격침 시켰다. 이때 격침된 항공모함은 바로 류조급 항공모함, 류조였다. 한눈에 봐도 언밸런스 한 이 군함은 류조만이 가지는 아이덴티티이지만, 한눈에 봐도 문제가 있어 보이는 모습을 보인다. 사실 류조는 빼도박도 못하는 결함병기이다.
이런 결함병기가 탄생한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워싱턴 해군 조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21년 체결된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은주력함의 건조를 10년간 중지시키는 조약이었다. 그러나 주력함의 건조만 제재했지 보조함 전력에 대해서는 사실상 건들지 않았다. 이에 일본은 1만톤 이하 항공모함은 보조함으로써 제재를 받지 않는다는 헛점을 이용해 1만톤 이하의 항공모함을 설계하기 시작했고, 이에 1931년 4월 2일 류조가 진수된다. 류조급 항공모함의 기본적인 제원은 만재 배수량 12,735톤 / 전장 : 180m/전폭 : 20.3m/ 높이:15m/ 최대출력 : 65,000hp/ 최대속력 : 29kt/ 함재기 수 48기이다.
류조급의 특징은 한눈에 봐도 높아보이는 전고이다.흘수선에서 상부 갑판까지 15미터 이상 되는 높은 전고는 다른 군함과는 확연히 다른 류조의 특징이자, 취역하자마자 결함일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서핑보드를 타는 사람을 생각해보자. 서퍼들은 안정적으로 보드를 타야되는데, 이때 보드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자세를 낮춰 보드가 넘어지지 않고 균형을 유지한다 .배 또한 마찬가지로, 서퍼들이 자세를 낮추듯 가능하면 무게중심을 낮춰, 선체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류조는 함재기 격납고를 2층으로 만들기 위해 무리하게 격납고를 증설했고, 이 때문에 무게중심 또한 위로 올라가게 되어, 선체 안정성이 매우 떨어지게 된다.
사실 일본해군도 처음부터 류조를 이런식으로 설계할 생각은 없었다. 처음에는 조약에 저촉되지 않는 1만톤 이하의 항공모함을 대량으로 만들 생각이었고, 류조는 수상기 모함으로써 취역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1930년 체결된 런던 해군 조약에서 1만톤 이하의 항공모함도 규제 대상이 되어버렸다. 이때 당시 이미 류조의 선체는 완성되어있는 상태였고, 일본해군은 조약 때문에 선체에 최대한 많은 함재기를 탑재해야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결국 선체가 완성되었기에 폭을 늘린다는 선택은 불가능했고 결국 수직으로 격납고를 추가 설치해 2층으로 만들게 된다. 덕분에 정규항공모함에 필적하는 48기의 함재기를 탑재하는게 가능했지만, 그 때문에 배의 무게중심이 높다는 문제점은 모든 문제의 근원을 만들게 된다.
먼저 항해 안정성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바다는 육지와 달리 언제나 파도가 치고, 그 파도를 해쳐나가며 항해를 한다. 이때 얼마만큼의 파도에 대처할 수 있느냐를 능파성이라고 하는데, 당연하겠지만 류조는 능파성이 매우 떨어지는 배였다. 또한 급선회를 한다면 자칫 잘못하면 배가 중심을 잃고 옆으로 쓰러질 가능성도 높았다. 적 함재기의 공습에서 회피하기 위해서는 급선회가 필수인데 원래부터 안정성이 떨어지는 류조는 이런 급선회가 힘들었던것, 이는 실전에서도 들어나, 미 함재기의 공습에 무력하게 격침되는 원인을 제공한다.
또한 자체 대공화력도 매우 부족했다. 대공화기는 갑판에 설치하는데, 문제는 대공화기를 갑판에 설치하면 안 그래도 높은 무게중심이 더 높아지게 되는 원인이 된다. 이 때문에 류조는 자체 대공무기를 탑재하지 못하게 된다.
물론 이는 부가적인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부족한 대공화력은 함대 방공함등으로 방어가 가능하고, 부족한 항해 안정성은 극단적으로 말해, 항해에 더 신경을 쓰면 되는 일이었다. 항공모함은 항공모함인 만큼 함재기 운용을 잘 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류조는 함재기 운용마저 힘들었다. 다시 한번 류조를 봐보면, 다른 항공모함과 비교되는 큰 차이점이 하나 눈에 띌것이다. 바로 갑판 위에 함교가 없다는것이다. 항공모함에서 함교는 매우 중요한데, 갑판에서 계류중인 항공모함을 정리하고, 이착함 지시를 내려야되는 항공관제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류조는 이전에도 언급했듯이, 무게중심이 높기 때문에, 갑판에 함교를 설치 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함교 및 모든 항공관제를 갑판 아래에서 명령을 내렸는데, 이는 사실상에 업무를 하는 장교들 입장에서는 지옥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메인 연료탱크가 함 가장 아래쪽에 설치되어있었는데 여기에 들어있는 연료를 써버리면 안 그래도 위쪽으로 쏠린 무게중심이 더 위쪽으로 올라가 버리게 된다. 물론 선체에 연료와 연료탱크는 그 자체만으로 선체의 중심을 잡는 역할을 하긴 한다. 하지만 류조의 경우 이미 선체 안정성이 떨어져있기 때문에 메인탱크에 있는 연료를 사용할 수가 없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 때문에 류조는 연료를 모두 사용하는건 불가능했고, 함내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무조건 일정 수준 이상의 연료가 있어야 했다. 이 뜻은 그 만큼 항속거리는 짧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원래부터 수상기모함으로 사용하려던 선체를 억지로 항공모함으로 만든터라, 비행갑판은 좁고 파일럿들 입장에서 이착함이 쉽지 않았다.
이처럼 일본은 작은 선체에 과도한 무장을 요구했기에 기존 선체에 마개조를 한 덕분에 선체 안정성이 떨어지는 배들을 만들었다. 하지만 1934년 악천후에서 항해연습을 하다가 치도리급 3번함인 토모즈루함이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하게 되면서 일본 해군은 기존에 무게중심이 높은 함선들에 대해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개조를 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한다.
먼저 소형 벌지를 제거하고 대형 벌지로 교체해, 류조의 부족한 부력을 추가했고, 연료 저장탱크 중 일부를 해수 보전 장치를 설치, 흘수를 낮추면서 무게중심을 낮추고자 했다. 그 외에 짜잘한 부분까지 설계를 뜯어고치면서, 태어날때 부터 마개조 군함을 또 마개조하면서 겨우 실전에서 써 먹을만한 정도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체 안정성은 여전히 나빠서, 실전에서도 꽤나 아슬아슬한 항해를 계속했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류조는 후소급 전함과 마찬가지로 결함병기로써 명맥을 잇는 일본의 흔한 군함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류조는 다른 결함병기와는 다르게 1942년 격침되기 전까지 일본해군에 든든한 일꾼이었다.
그녀의 첫 실전은 중일 전쟁이었다. 1937년, 류조는 카가, 아카기와 함께 중국 동부해안에 상륙하는 일본군을 지원하기 위한 작전에 참여했다. 당시 아카기나 카가등이 수리 및 보급을 위해 일본으로 돌아갈때 제1 항공전대나 제2 항공전대로 편입되 행동하며 일본 상륙군이 필요할때 항공지원을 해주었다.
이후 1941년 4월 미국과 전쟁을 목전에 두고, 4항공전대로 배속되면서, 본격적인 전쟁을 준비하게 된다. 이때 당시 4항전 사령부는 작지만 탑재기 수가 많아 사용이 편리하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일본은 진주만 공습을 위해, 6척의 정규항공모함에 가능하면 많은 배테랑 파일럿들이 필요했기 때문에 각 항공전대에 흩어져있던 배테랑 파일럿들을 긁어모아 6척의 정규항모에 재비치 했다고 한다. 중일전쟁에 참여해서 그런지, 개전 전에 류조는 숙련파일럿들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류조의 함내 군기는 매우 엄했다라고 하며, 특히 파일럿들의 기량을 올리기 위해, 매일 훈련을 진행했다고 한다. 쉽게 말해 류조의 함내에서는 매주 월화수목금금금이었다는거다.
어느정도였냐면 류조는 이착함 훈련은 매일 진행했고, 야간 착함 훈련 또한 진행했다고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 야간착함은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려웠고, 매달 사상자가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류조는 「赤鬼、青鬼でさえ龍驤と聞いただけで後ずさりする」 (아카오니, 아오오니 마저도 류조라는 이름을 들으면 뒷걸음 친다.)라는 말이 나올정도였다고 한다.
이후 본격적으로 태평양 전쟁이 시작된 1941년 12월부터 정규항공모함을 제외하고 상륙지원 및 호위에 필요하며, 고속을 낼 수 있는 군함은 류조뿐이어서 일본군은 이리저리 류조를 굴려먹게된다.
특히 진주만 공습 이후 필리핀 점령전에 참가해, 필리핀을 점령하게 되고, 수마트라, 자바 공략에도 참여, 인도네시아 방면 공략을 성공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미드웨이 해전때는 북방함대에 알류신 열도를 공략해 앗츠섬과 키스카섬을 점령하며, 일제 최고의 영역판도를 달성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렇게 무훈을 쌓은 영광도 잠시 뿐, 1942년 서서히 몰락해가는 일본과 함께 류조의 운명도 함께했다. 태평양 해전때 가장 격전지였던 과달카날 전역에서 류조는 적 항공모함의 화력을 흡수하기 위한 미끼역할을 맞게 되고, 류조는 결국 렉싱턴급 2번함, 사라토가의 함재기 공습에 결국 침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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