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격노하였다.
"바다에서 연전연패하더니 이제는 육지에서조차 패배했다는 것이냐? 역시 믿을 사람은 한 사람뿐이다.
와키자카 야스하루를 불러라! 그로 하여 이순신을 죽이고 조선의 바다를 장악해야겠다!"
와키자카뿐만 아니라 일본수군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구키 요시타카, 가토 요시아키도 소집되었다.
이번에는 정말 이순신을 잡겠다는 각오가 남달랐다.
와키자카는 용인전투에서 고작 1,600의 병력으로 8만에 이르는 조선군을 일방적으로 이긴 장수, 그의 자신감은 하늘을 찌를듯하였다. 구키 요시타카는 자타가 인정하는 일본 최고 해전 전문가로 과거 키즈가와구치 해전에서 단 6척의 철갑함으로 무라카미 600척을 박살 내버린 지장이며 용장이다.
뿐만 아니라 일본 모든 함대의 설계는 바로 이 구키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일본의 영웅들이 동시에 출격,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이순신을 잡겠다는 각오였다.
미리 말해두지만 해전에서는 구키를 따를 자가 없으니 무조건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
와키자카는 자존심이 상했다.
"아니! 천하의 나 와키자카가 구키 따위의 말이나 들으라고?
관백전하께서는 용인전투에서의 내 활약을 듣지 못하셨는가?"
한편 이순신도 일본수군이 모여들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선조 또한 전라도 관찰사 이광을 통해 다시 출정할 것을 명하였다..
(1592년)7월 4일(음력) 이순신은 먼저 여수에서 전라우수사 이억기와 합류하여 전투를 의논하였다.
7월 6일(음력)에는 드디어 3차출정을 단행하여 노량에서 원균과 합세하였다.
오~ 그런데 원균장군의 판옥선이 7척으로 늘어나 있었다. 1차 출정 때 딸랑 1척으로, 2차에는 3척으로 숟가락 얹힌 것에 비한다면 대단한 발전이었다. 갑자기 어떻게 된 것일까?
Негізгі бет [팩 한국사 304회] 한산도 대첩 이순신 vs 와키자카 야스하루 feat 돌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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