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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TLT News
제목 : “모세는 왜 가나안에 못들어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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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내 손을 주께 높이 듭니다”
링크 : • [Vol.3] 묵상기도를 ...
#인바이블_말씀사역 #크리스천_신앙_성장을_위한_채널
몇 년 전 뉴욕에 집회를 갔을 때의 일입니다. 한 집사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족 중에 한 명이 병으로 죽었는데, 이것을 이해할 수 없다구요.
우리 가족들이 그렇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는데, 왜 그렇게 빨리 데려 가시냐구요.
또 오래 전에 이런 말을 하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뉴스를 봤는데, 어떤 분이 새벽기도를 가다가 교통사고로 죽었다구요.
그러면서 이렇게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보호해 주셔야 하는 거 아니냐구요. 하나님을 경외하면 장수의 복을 주신다고 하지 않았느냐구요.
여러분 혹시 누군가 여러분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장수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성경도 이 말에 동의합니다.
(잠 10:27) 여호와를 경외하면 장수하느니라 그러나 악인의 수명은 짧아지느니라
여러분, 성경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장수한다고 했습니다. 반면 악인은 수명이 짧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현실에서 종종 이 말씀과 정반대되는 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성경에서는 분명히 여호와를 경외하면 장수한다고 하는데, 왜 현실에는 정반대의 일이 일어날까요?
오늘은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가 죽음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갖기 원하는지에 대해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저는 오래 전에 성경을 읽다가 이해하기 힘든 말씀이 있었습니다. 어떤 말씀이냐?
민수기 20장에 보면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은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민 20:2-12). 당시 광야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에게 물을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모세에게 “바위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서 마시게 하라” 하십니다. 그런데 이때 모세가 어떻게 합니까? 바위에게 명령한 것이 아니라, 지팡이로 바위를 쳐서 물이 나오게 합니다. 결국 이 일로 인해 어떤 일이 납니까?
하나님은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민 20:12). 그렇지만 모세는 여전히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싶어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나중에 다시 하나님께 간절히 이렇게 간구합니다.
(신 3:25-26, 개정) [25] 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하되
[26]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여러분, 모세는 가나안 입성에 대해 다시 한번 하나님께 구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어떻게 하십니까? 말씀을 보니, 하나님이 모세에게 진노하시면서 매몰차게 거절하십니다.
저는 이걸 보면서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왜 그러냐면, 하나님은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너의 죄가 진홍빛처럼 붉을지라도 양털처럼 희게 해주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또 죄 가운데 살던 세리가 회개하자 예수님이 이 세리보고 “의롭다”고 하지 않았습니까?(눅 18:13-14)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은 모세에게는 어떻게 하십니까? 바위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고 했던 것을 지팡이로 쳐서 물을 내게 했다는 이유로, 단호하게 가나안 입성을 거절하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모세가 지은 죄가 진홍빛보다 더 진해서 하나님이 용서해주지 않으시는 걸까요? 아니면 이 죄가 세리보다 더 큰 죄라서 용서해 주지 않는 것일까요?
여러분, 저는 이게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망령되게 이런 생각까지도 했습니다.
‘아니, 단물만 빨아먹고 쓸데가 없으니까 버리시는 건가?’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이게 쉽게 납득이 되십니까?
그러나 저는 한 사건을 경험하면서 죽음에 대한 관점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건으로 이렇게 되었느냐?
한 지인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려고 하는데, 오셔서 영접 기도를 해달라구요. 그래서 병원으로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함께 영접 기도를 했습니다. 하지만 기도를 하는데 문뜩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사람도 살리는데, 나는 잘 죽으라고 기도하는구나’라고 말입니다. 이 생각이 들자 기도를 멈추고 다시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치유와 회복을 위해 다시 기도했습니다.
이후에 저는 그 장소를 떠났습니다. 그런데 병원을 나선지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가 회복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몇 달 후 그날 회복을 위해 기도한 것에 대해 후회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회복된 아버지가 다시 세상 속으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걸 보면서 ‘차라리 그때 영접 기도하고 돌아가셨더라면 부끄러운 구원이라도 받았을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죽음에 대한 관점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오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구원의 믿음이 있을 때, 그 믿음이 떨어지기 전에 하나님 곁으로 가는 것이 더 큰 축복이구나”라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그동안 풀리지 않던 모세의 문제가 풀렸습니다.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원래는 이것을 원하셨습니다. 그럼 하나님이 왜 이걸 막으셨느냐?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의 생각이 앞서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에 변형이 일어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모세를 막아 세운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세가 믿음이 가장 좋을 때, 상급이 가장 많을 때, 더 살 수 있는 충분한 기력이 남아 있었지만, 그를 데려 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런 모세를 오히려 천국에서 더 높이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걸 어떻게 알 수 있느냐?
우리는 마태복음 17장을 통해 이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기도할 때 누가 나타납니까? 바로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메신저로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온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어떻게 이보다 모세를 더 높일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또한 하나님은 모세의 가나안 입성의 간구를 잊지 않으시고, 수천 년이 지난 후에 모세로 하여금 가나안 땅을 밟게 하시므로 그의 간구가 응하게 하셨습니다.
저는 이것을 보면서 우리와 하나님의 죽음의 관점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오래 사는 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가장 믿음이 좋을 때, 하나님께 오는 것이 더 큰 축복이라구요.
그래서 하나님은 시편에서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시 116:15, 개정)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
우리가 생각하듯, 이 세상에서 장수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러나 더 큰 축복은 내가 믿음을 지키는 경건한 삶을 살다가 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가는 것이 더 큰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즉 오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믿음을 좋을 때 하나님께 가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앞에서 새벽기도 가다가 교통사고가 난 사건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당시 저도 이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 차리리 새벽기도를 안다녔다면, 이런 사고도 안 당했을 것 아닙니까?
오히려 믿음이 게을렀다면 이런 일을 안 당했을 것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께 예배하러 가다가 이렇게 죽은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도 중에 이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때 하나님이 이런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때가 내 딸이 나를 향해 가장 아름다운 믿을 가지고 있던 때였느니라. 그리고 그 딸이 견딜 수 없는 상황에 있었기에 내가 그 딸을 내 곁으로 데려 온 것이니라”라고 말입니다.
물론 이에 대해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기도 중에 온 감동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제가 죽음에 대한 관점이 바뀌면서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스데반의 죽음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우리 믿는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이런 하나님의 관점을 가지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장수도 하나님이 주신 복이지만, 내 믿음이 가장 좋을 때, 믿음이 떨어지지 않을 때 하나님 곁에 가는 것이 더 큰 축복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내 믿음이 떨어지기 전에, 내 믿음이 가장 좋을 때, 하나님 곁으로 가기 원합니다.
모세가 그랬던 것처럼, 스데반이 그랬던 것처럼, 내 믿음이 가장 좋을 때, 하나님 곁으로 가게 해주세요.”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아브라함처럼 장수의 축복을 누리십시오. 그리고 아브라함처럼 끝까지 믿음을 유지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이 가장 좋을 때, 우리가 하나님 곁으로 가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는 사도 바울처럼 이렇게 고백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딤후 4:6-8, 쉬운) [6] 나는 이미 하나님께 내 삶을 바쳤고, 이제는 이 땅을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웠고, 내가 달려가야 할 길도 끝냈으며, 믿음도 지켰습니다.
[8] 이제 내게는 영광의 면류관을 받는 일만 남았습니다
Негізгі бет [성경적 죽음의 관점] 모세를 통해 배우는 "하나님의 우리와 다른 죽음의 관점" // 인바이블 말씀사역 / 크리스천 신앙 성장을 위한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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