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사 진짜 응답하라 시리즈 중 제일 좋아함 응사 볼 때 칠봉이 넓은 어깨에 설레고 잘생긴 얼굴에 설레고 다정한 말에 설렜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함
@user-nt4yq6kf4j
8 ай бұрын
전 개인적으로 응칠이랑 응사랑 응팔 좋아하는데 그중에 응사가 제일 좋았던거같아요 떡밥이랑 배우들의 케미도 좋았고 그냥 하숙집의 색감?? 이런게 좋았음 그리고 02년생으로써 겪지않은 시대니깐 뭔가 신기했고 재밌게 봤던거같구
@SeoEunTan
8 ай бұрын
요즘 같은 세상에 하숙으로 같이 살라고 하면, 잘파세대는 절대 불가능임.. 개성이 강한 걸 넘어서 다른 개성은 인정하기 어려운 혐오의 시대에 자라난 세대라서 더욱 그럴듯 그래서 요즘 젊은애들이 8090컨텐츠에 열광하는 이유가 자신들은 절대 경험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선망이 있어서 그런듯
@user-gi6zj4dp8z
8 ай бұрын
말하는 투 겁나 꼰티나네 진짜ㅋㅋㅋㅋ니네 세대가 만든 세상이야 병아ㅋㅋ 지 엄마 같은 소리하네
@user-bq9pe7gm2n
8 ай бұрын
응사 분위기가 진짜 좋음
@userdkssudgktpdy
8 ай бұрын
여름분위기 너무 좋음... 사실 촬영은 겨울에 했지만ㅎㅎ
@ju-v9f
8 ай бұрын
항상 재미있는 영상 감사드립니다
@nessenty
8 ай бұрын
94년도에 하숙비가 50만원이면 지금물가로 한달에 120만원 수준인데 후덜덜..
@nolboo18
8 ай бұрын
채널 내용이 뇌피셜 수준입니다. 그 금액 아닙니다.
@stayy5
7 ай бұрын
신촌은 모르겠는데 서울대 신림동은 92~93년 기준 18만원~25만원 선이었습니다. 한 방에 둘이 살면 싸고 독방이면 25만원 정도. 밥 주고 빨래 해 주고. 어차피 밖에서 먹을 때가 많아서 음식 재료비가 그리 많이 들진 않았을 거예요. 하숙촌이랑 학교가 멀어서 한번 나가면 잘 때만 들어오게 됨. 하숙생 다섯 명 있으면 대략 두세명만 밥 먹을까 말까 했다고 보면 되니까요.
@user-dg6je2qn7i
8 ай бұрын
1993-1995년은 현대 대중음악이나 사회문화적으로 풍요롭고도 자신의 개성이 강렬한 시기였던 것 같고 인간애가 끈끈함이 아직까지 잃지 않았던 것 같아요
@user-km1fe5pv1d
8 ай бұрын
윤진이랑 삼천포 둘이 제일 잘 어울렸음😊
@드럼이최고야
8 ай бұрын
전 쓰레기커플보다 삼천포 커플을 더 응원했어욬ㅋ
@10_sipran49
8 ай бұрын
씨우다가 정튼다의 정석
@seung-jeyang3746
8 ай бұрын
삼천포가 윤진이 엄마 위해서 자기가 계획한 자전거 여행 포기하고 같이 있어 준 장면은 수십번 봐도 감동임
90년대 정말 그립네요 지금보다 더 그리운건 어린시절이기도 하고 지금보다 더 포근한 분위기 때문이겠죠? 덕질하니까 생각나네요 중학교때 같은반 친구중에 신화창조가 있었는데 ㅎㅎ
@user-ot9xp4mw2p
7 ай бұрын
진짜 시험기간에도 보는 드라마..
@yj810104
8 ай бұрын
이젠 응사 시리즈 준비중이신 빠퀴님 감사합니다. 응팔보단 저는 응사 세대라서... 멜빵바지 주로 입고 다녓죠 중학교까지는 사복이라서 멜빵바지 많이 입고들 다녓습니다.
@user-hk8sd3xg9g
8 ай бұрын
빠키님 응칠도 해주실거죠?
@user-rf4ok8xu9s
8 ай бұрын
내 인생드라마
@user-wo2wx6yw4c
8 ай бұрын
나중에 2050~60년대나 혹은 2077년쯤에 복고드라마가 만들어 진다면 2010~2020년대를 어떻게 표현할지 궁금하네요ㅎㅎ 사람들이 직접 노동을 해서 인간미.사람냄새 넘치던 시대로 표현할까요??
@user-dj3fz1ff2v
8 ай бұрын
응칠도 해주세요!
@RuCornABLCJ_cat_mom
8 ай бұрын
전 겪은적은없지만 응사를 젤 잼나게 보았습니다ㅋㅋ
@색채도그
8 ай бұрын
빠퀴님 덕에 안보던 드라마도 흥미가 생깁니당
@GonggamHeatsal_TV
5 ай бұрын
응답하라 시리즈 더 안 나오나요 ㅎㅎㅎ 응답하라 시리즈 너무 잼 있어요 😮
@미어캣
8 ай бұрын
삐삐제조사는 이후 진동벨 제조로 전환했습니다.
@user-km1fe5pv1d
8 ай бұрын
난 응칠 응팔도 좋았지만 응사가 제일 기악에 남음
@user-tx4sw9so6j
8 ай бұрын
기부니 조크든여~
@star-dx8ud
8 ай бұрын
응답하라1988은 사건 서울 올림픽하셨으니까 응답하라모든 시리즈에 사건있던거 다 모아서 해주세요.
@user-bt2yt3xz2d
8 ай бұрын
보는데 조회수가 계속 올라갘ㅋ😂
@inparkwetrust
8 ай бұрын
윤진이가 찍은 사진에 전두환 머가리나온거 보고 쌍욕 걸걸하세 내밷는 거 보고 먹고있던 라면 다뿜었다 ㅋㅋㅋㅋㅋ
@user-xo6wq8wr3x
8 ай бұрын
잘봤어요 90년대 너무 그립습니다 삐삐인 호출기와 인터넷이 상용화되지 않은 PC통신 시대인데요 그런데로 이때가 그립습니다
@user-wo2wx6yw4c
8 ай бұрын
만약에 2050~60년대쯤에 2010년대~ 2020년대초를 배경으로 한 복고드라마가 만들어진다면 어떨까요? 아마도 그땐 강인공지능.완몰가.역노화.초전도체 조차 없던 미개했던 시절로 평가될듯 하겠네요... ai로봇.노동해방.기본소득 없이 사람이 모든걸 악으로 깡으로 버티며 해결했던 상남자시대. 역노화 없이 때되면 늙어죽고 암걸리면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던 공포의 시대. 핵융합.배양육.스마트팜도 없어 모든 물가.재화가 희소했던 보릿고개 시대. 완몰가 없이도 잘살았던 진정 인간들끼리 직접 노는 정이 뭔지를 잘 보여줬던 인간미의 시대. 민간우주여행은 꿈도못꾸고 기껏해야 해외여행으로 만족했던 순수의 시대 이렇게 그려지지 않을까요?
@jonin_cunren
8 ай бұрын
서울말은 정말 쉬운것 같아요~ 서울말은 끝을 올리기만 하면 된다면 서↑
@user-ps7sv2cp7l
8 ай бұрын
90년대초 오이소주가 유행해서 영등포에서 엄청먹었죠 그리고 97년취업해서 치킨먹으니 서비스로 삐삐를줬죠 ㅎ 그때로 돌아갈수 있다면
@user-ve6kr7bf2r
8 ай бұрын
응칠도 다뤄주세요
@user-dl1yo7gk1h
8 ай бұрын
응사 정주행이나 해야겠다
@user-qc9ut7ry2z
8 ай бұрын
나중에 2000년대 문화로하는 주제도 해줄수있나요??...
@Slr851
8 ай бұрын
아니에요ㅠ 응칠도 재밌어요ㅠㅠ
@user-is7qe9vk9o
8 ай бұрын
굳
@user-jw3mj6mu7w
8 ай бұрын
아니 ㅅㅂ 이렇게 짧으면 안되지 빠퀴씨!! 당장 2편제작해
@user-lq3tk1vr5g
8 ай бұрын
꼬막 무침 맛있겠다
@god-goat
8 ай бұрын
저희 부모님이 2001년 부터 하숙집 운영하셨는데 하숙했던 형이나 누나들이 응사보면 비슷했다고 ㅋㅋㅋㅋㅋㅋㅋ
@0O0j
8 ай бұрын
윤진이 히키코모리치곤 너무 예쁜거 아니냐 ㅠ
@skeldks1
8 ай бұрын
당시 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서태지 어머니께서 겨울엔 활동쉬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고 이유가 겨울 그 추운날에 집근처에서 밤새기다리는 팬 여학생들이 너무 안쓰러웠다고...한파에도 집근처에서 죽치고 기다리고...
@soonpark1010
8 ай бұрын
어? 내 10분 어디갔지?
@user-tx4sw9so6j
8 ай бұрын
삼천포가 삼천포라서 삼천포였다니..
@user-hb2hf8xw7x
7 ай бұрын
우리나라는 시대분위기나 인생관 자체가 아날로그와 디지털시대로 나누기보다 IMF전과 후로 나뉘어야 할만큼 그때를 기준으로 정이나 인성보다 돈이 제일 중요시 평가하는 사회로 급변했죠.
@user-bo6cj2cl7o
8 ай бұрын
나는 하숙집 하면 주인 아줌마의 갑질과 쓸데없는 오지랖 그리고 하숙생들끼리 돌아가면서 붙어먹던 정글의 숲만 기억에 남네요 ㅋㅋㅋㅋ
@feel_so_shower
8 ай бұрын
서울사투리 있었고, snl에 나오는 그 억양 맞음
@mambablack5879
8 ай бұрын
8:54 고마쎄리마 주디를 주 잡아 째뿌까는 어디서 삐딱하게 아니고 입을 잡아서 주욱 찢어 놓는다는 뜻입니다 어디서 삐딱하게는 어디서 삐대하구로? 이거입니다
@user-dl1yo7gk1h
8 ай бұрын
응사 라니!!!! 나정이 절대 못잊어ㅗ
@M.S.S.83
7 ай бұрын
서울 사투리가 아니라 경기도 사투리 일겁니다 제가 국딩시절 경기도에서 이사온 할머니가 계셨는데 말투가 딱 저랬거든요 그리고 이수근이 강변가요제 나왔을때 말투 다들 들어서 유명할거에요 이수근이 경기도 양평 출신이죠
아는 사람만 아는 것이지만 서테지가 저렇게 활동이 가능했던 이유가 작은 할아버지가 일제시대 날리던 음악가에 고려교향단 악장에 이화여대 교수에 연세대 교수였습니다 물론 그 시절이었으니 정치, 음악계의 인맥도 엄청났지요 그 동안 금지되던 것을 풀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첫 곡이었던 난 알아요도 완벽하게 리듬 박자까지 따라한 밀리 바닐리의 표절곡이었지만 그쪽에서는 소속사가 외모 괜찮은 가짜 가수들을 올려보내 립싱크 했다가 들통난 탓에 망가진 거라서 무슨 거래가 뒤에서 있었는지 몰라도 소송 걸어봤자 돈 조금 받을 뿐이니 넘겼지요 생각하면 8090년대에는 외국곡 카피해서 먼저 부르면 자기 곡이 되던 시절인데다가 워낙 한국 음악사에서 걸린 것이 크다보니 다들 필사적으로 덮는 거지요
기분이 조크든요 저분 유가족 분들이 언급 삼가해달라고 한 거로 알고 있는데 음 사진을 그냥 써버리네…
@Kiesday-qo4ko
8 ай бұрын
26년 젝키팬으로 알려드리는 건데요 90년대는 포카에 포두 절대 없었고요 그대신 잡지 스크램북 보여주거나 서로 맞교환 것도아니면 다이어리에 펀칭으로 문구점에서 구매한 사진을 꽂아서 보관해둔걸 교환하거나 아니면 방송국 티켓 받겠다구 제일은행 입구앞에서 날밤 새면서 울오빠들 노래 부르거나 집앞에서 탠트치구 침낭가지구 노숙하는건 일도 아니였고요 공개방송 자리쌈질은 말쌈질로 장난아녔고 공개끝나고 피보면서 쌈질 하는것도 흔한 일이였어요 칼부림만 안난게 천만다행!! 지금야 덕질하는건 찐으로 착하게 하는거에요 우리때에 비하면...😮💨😖😶
@user-bq9ur5zx6s
7 ай бұрын
그걸 무용담처럼 말하고 다니는거 자체가 이해가 안감 진정한 팬이라면 프라이버시도 존중해주고 본인가수의 팬카페 이미지도 중요한데 그것도 쓰레기였으니.... 낭만을 가장한 민폐에 진상에 쓰레기지 걸그룹팬들이 지금까지도 그런이야기가 나왔었나?? 그래도 걸그룹팬들은 정상이었다는거임
@user-dl1yo7gk1h
8 ай бұрын
1빠!
@user-eu7uu6qw9v
8 ай бұрын
892
@user-hk8sd3xg9g
8 ай бұрын
서인국이랑 정은지 다뤄주세용
@user-dl1yo7gk1h
8 ай бұрын
가 아니사 2빠!
@환희연
8 ай бұрын
왁
@user-vv3dn7xs9r
8 ай бұрын
90년대에는 여아낙태와 성차별이 가장 심했던 세대
@user-cx1tv3gp2b
8 ай бұрын
90년대에는 아빠가 성인딸하고 같이 목욕햇나요??
@user-bn7rz8je5d
8 ай бұрын
응사하규 응팔 햇갈리셨나븀 응사인디 응팔이래 ㅋㅋ
@forgat_you
8 ай бұрын
응팔땐 인기 많이 떨어졌는데 응칠이 인기 쩔고 응사까지 피크 찍다가 응팔때 떨어져서 시리즈 더 안 나온 건데...
@user-yg7ug2ut1n
8 ай бұрын
삐삐는 의사가 주로 쓰다가 일반화 됀걸로 알고 있음...
@nolboo18
8 ай бұрын
좀 제대로 알아보고 알리세요. 90학번으로 90년에 외대앞 이문동과 노량진에서 6개월씩 하숙했는데 그 비용 아닙니다. 동네, 방의 종류(독방, 2인 1실 등) 등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제 경우 2인 1실 기준으로 당시 15만에서 18만원이었습니다. 이 비용도 아까우면 고시원이나 독서실 방이라고 있었는데 이 경우가 4-5만원이고 따로 식권 사서 식당에서 밥을 먹는 구조였어요. 40-50만은 어디서 나온 건지? 참고로 90년에 회사 경리 월급이 80만원 수준이었어요. 노량진도 그렇고 대학가 주변도 그렇고 비슷한 금액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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