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이해]
앗시리아의 이주 정책은 제국의 통치 전략으로서 피정복민은 포로로 끌고오고 그곳에는 다양한 민족들을 보내 피정복민의 민족적, 종교적 정체성을 약화시키고자 했습니다. 이로 인해 사마리아 땅에는 종교 혼합주의가 자리잡게 됩니다.
[17:24-28] 사마리아에 정착한 이방민족들
24 이스라엘 자손을 사마리아에서 쫓아낸 앗시리아 왕은 바빌론과 구다와 아와와 하맛과 스발와임으로부터 사람들을 데려와서,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사마리아 성읍에 살게 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사마리아를 자기들의 소유로 삼았으며, 이스라엘 성읍들 안에 정착하여 살았다.
25 그들은 그 곳에 정착하면서, 처음에는 주님을 경외하지 않았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사나운 사자들을 그들 가운데 풀어 놓으셔서, 그들을 물어 죽이게 하셨다.
26 그러므로 그들이 앗시리아 왕에게 이 사실을 알리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임금님께서 우리를 사마리아로 이주시키셔서, 이 성읍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이리로 이주한 민족들은 이 지역의 신에 관한 관습을 모릅니다. 그래서 그 신이 우리들 가운데 사자를 보내어, 우리들을 계속 물어 죽이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이 땅의 신에 대한 관습을 모르기 때문에 일어난 일인 줄 압니다."
27 그래서 앗시리아 왕은 부하들에게 다음과 같은 지시를 하였다. "그 곳에서 사로잡아 온 제사장 한 명을 그 곳으로 돌려보내어라. 그가 그 곳에 살면서, 그 지역의 신에 대한 관습을 새 이주민에게 가르치게 하여라."
28 그리하여 사마리아로부터 사로잡혀 온 제사장 가운데 한 사람이, 그리로 돌아가 베델에 살면서, 주님을 경외하는 방법을 그들에게 가르쳤다.
앗시리아 왕은 이스라엘 백성을 포로로 잡아간 후, 여러 이방 민족들을 사마리아 땅에 정착시킵니다. 이는 앗시리아 제국이 피정복지의 민족적 정체성을 약화하고 제국 통치를 공고히 하기 위해 시행한 강제 이주 정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여호와를 알지 못했고, 자신들의 신들을 섬겼습니다.
이방 민족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자, 하나님은 사자들을 보내어 그들을 위협하십니다. 이는 이 땅이 여전히 여호와의 주권 아래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서의 우상 숭배를 심판하신 것입니다. 이에 그들은 앗시라아 왕에게 보고하기를, 자신들이 사마리아 땅의 신의 관습을 알지 못해 이런 일이 생긴 것이라고 호소합니다.
그러자 앗수르 왕은 포로로 잡아간 이스라엘 제사장 중 한 명을 사마리아로 돌려보내어, 그 땅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을 가르치게 합니다. 여기서 제사장은 베델에 머물며 주님을 경외하는 법을 가르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없이 많은 하나님의 경고에도 반응하지 않았지만 이방의 왕과 이방 민족들은 아이러니하게도 하나님의 경고에 곧장 반응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잃어버린 신앙과 영적인 타락을 더욱 부각시키는 대목입니다.
[17:29-33] 이방민족들의 종교혼합주의
29 그러나 각 민족은 제각기 자기들의 신들을 만들어 섬겼다. 그래서 각 민족은 그들이 살고 있는 성읍 안에서 만든 신들을 사마리아 사람들이 만든 산당 안에 가져다 놓았다.
30 바빌론 사람들은 숙곳브놋을 만들고, 구다 사람들은 네르갈을 만들고, 하맛 사람들은 아시마를 만들었다.
31 아와 사람들은 닙하스와 다르닥을 만들었으며, 스발와임 사람들은 자기들의 신인 아드람멜렉과 아남멜렉에게 그들의 자녀를 불살라 바치기도 하였다.
32 그러면서도 그들은 주님을 공경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들 가운데서 산당 제사장을 뽑아 세워,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게 하였다.
33 이렇게 그들은 주님도 경외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이 잡혀오기 전에 살던 그 지역의 관습을 따라, 그들 자신들이 섬기던 신도 섬겼다.
앗시리아 왕이 보낸 제사장이 있음에도 사마리아 땅에 이주한 다양한 민족들은 여전히 각자의 신들을 만들어 섬깁니다. 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세워놓은 산당을 이용해 자신들의 신상들을 두고 제사드립니다. 이러한 종교 행위는 이전부터 존재하던 이스라엘의 산당 숭배와 결합되어 더욱 혼란스러운 형태의 종교 혼합을 낳았습니다.
이방 민족들은 하나님이 사자들을 보내어 그들을 위협하자 두려움에 빠져,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의식을 도입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여전히 각 민족이 따르던 신들에게 향해 있었습니다. 그들은 산당에서 여호와를 위한 제사장을 임명해 제사를 드리면서도, 동시에 자신들의 신들을 섬기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했습니다.
이렇게 사마리아 땅에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그분을 다른 신들과 동등한 위치에 놓는 혼합주의 신앙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계명과 언약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지 않고 단지 여러 신들 중 하나로 여기는 심각한 영적 타락을 보여줍니다. 그들의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단순한 의식이나 겉모습이 아닌 마음의 헌신과 순종이어야 함을 역설적으로 강조합니다.
[17:34-41] 종교혼합주의에 대한 비판
34 그들은 오늘날까지도 그들의 옛 관습을 따르고 있어서, 주님을 바르게 경외하는 사람이 없다. 그들은 주님께서 이스라엘이라고 이름을 지어 주신 야곱의 자손에게 명하신, 그 율례와 법도와 율법과 계명을 지키지 않는다.
35 옛날에 주님께서 야곱의 자손과 언약을 세우시고 명하셨다. "너희는 다른 신들을 경외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절하지 못하며, 그들을 섬기지 못하며, 그들에게 제사드리지 못한다.
36 오직 큰 능력으로 팔을 펴시어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신 그분 주님만을 경외하고, 그분에게만 절하고 제사를 드려야 한다.
37 주님께서 몸소 기록하셔서 너희에게 주신 율례와 법도와 율법과 계명을 항상 지키고, 다른 신을 경외하지 않아야 한다.
38 내가 너희와 세운 언약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른 신들을 경외하지 못한다.
39 오직 너희는 주 너희의 하나님만을 경외하여야 한다. 그분만이 너희를 모든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여 주실 것이다."
40 그러나 그들은 이 명령을 들으려 하지 않고, 그들의 옛 관습만을 그대로 지키려고 하였다.
41 그리하여 이주해 온 민족들은 한편으로는 주님을 경외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이 부어 만든 우상들을 또한 섬겼다. 그들의 자녀와 자손도 그들의 조상이 한 것을 오늘날까지도 그대로 따라 하고 있다.
저자는 이방 민족들이 자신들이 사는 오늘날까지 혼합주의 신앙에 빠져 있음을 지적하며, 이로써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를 강조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겠다는 언약을 맺었지만, 그 언약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과 언약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철저한 순종과 배타적인 경배를 요구하셨으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고 결국 그 불순종의 결과로 멸망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사마리아에 거주한 이방인들도 마찬가지로 여호와를 참되게 경외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과 율법의 참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채, 자신들의 종교적 전통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이들은 사마리아에서 여호와를 섬기는 형식적인 예배를 도입했지만, 동시에 각자의 신들을 섬기는 혼합주의 신앙에 머물렀습니다.
저자는 이러한 혼합주의가 단순히 그 시대에만 머물지 않고, 후손들에게까지 이어졌다고 말합니다. 이는 사마리아 땅에 사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진정한 순종과 헌신이 아닌, 그저 외적인 종교 행위에 머물렀음을 보여줍니다. 결국, 이러한 혼합주의 신앙은 이스라엘의 멸망뿐만 아니라 그 땅에 정착한 이방 민족들의 영적 타락을 부각시키며,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않는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경고하고 있습니다.
[오늘 묵상]
사마리아로 이주한 앗수르 주민들은 파송된 제사장에게서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경외는 재앙을 피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참되게 섬기지 않았고, 여전히 자신들이 오랫동안 섬겨온 신들과 함께 여호와 하나님도 섬겼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여러 신들 중 하나로 여기며 종교 의식을 통해 단순히 재앙을 막으려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혼합주의 신앙은 북이스라엘이 멸망한 근본적인 이유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오직 그분만을 섬겨야 했지만, 마음이 아닌 형식적인 의식으로만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나라는 멸망했지만, 여전히 그 땅에는 이방인들의 혼합주의 신앙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통해 세우시고자 했던 거룩한 백성의 정체성과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에게는 이러한 혼합주의 신앙이 없을까요? 우리는 하나님만 섬긴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온갖 '우상들'과 함께 하나님을 섬기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돈, 명예, 성공, 쾌락 등이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놓여 있지 않은지 반성해야 합니다. 혼합주의는 단지 고대 이스라엘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우리의 신앙을 잠식하는 큰 위험입니다.
하나님만 섬긴다는 것은 단순히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마음을 다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분의 뜻을 따를 때, 비로소 우리는 온전한 신앙에 서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배타적인 충성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 외의 어떤 것도 섬기지 않고, 오직 그분만이 우리의 주인이 되도록 삶을 재정비하는 것이 참된 경외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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